시15편
종종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형식, 더 아름다운 찬양, 더 탁월한 설교, 더 감동적인 예배 흐름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보다 조용히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 주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가?" 어디에서, 어떻게, 에배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예배하느냐"를 묻는 질문입니다. 공주야! 우리가 알 뜻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거짓과 허위로 꾸며진 화려함이 아니라 범사에 정직하고 이웃에게 공의로우며 삶의 열매와 성품의 변화가 진정한 예배의 근본이라고 본다.
I have often agonized over better positions, better forms, more beautiful praise, more preaches, and more moving streams of worship. But God seeks one quieter than all that. It is not a question of where, how, or how to worship, but of "who worship." Princess! What we will know is that the worship God wants is not the splendor made up of lies and falsehoods, but to be honest with all things, to be fair to the neighbors, to be fair to the fruit of life, and to change the character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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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통치를 잘 받는 이것을 ‘거룩한 산 제사’라고 하지. 공주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전적인 은혜이지만 그것이 구속의 이유는 아니다.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고, 유하면서 그 백성은 왕이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내리시는, 살아있는 교제가 궁극적인 목적이란다(에베소서1:6, 12,14). 그러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걸맞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열망이 있을 때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다.
This, which is well governed by the Holy Spirit, is called the "Holy Mountain Sacrifice." Princess, it is a full grace to be the people of God, but it is not the reason for restraint. Living with one's own people, the people worship and praise God, the king, and God blesses them properly, is the ultimate purpose (에베소서1:6, 12,14). So when you have the desire to live as a holy people worthy of God's holiness, you can move forward befor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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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책망 받을 것 없는 길을 걷고, 공의롭게 행하며, 맘속에서부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경배를 받으신다. 근사하지 않더라도 고백과 마음과 삶이 하나 된 백성의 찬미를 기대하신다. 하나님이 가장 받고 싶은 제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가까운 벗과 이웃조차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이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높이고 하나님께 함부로 대하는 자를 멀리하는 인간관계를 바라신다.
God walks on a path that is not reproachable, does justice, and is worshiped from the heart by those who tell the truth. Even if it is not close, you expect the praise of the people who are united in their confession, heart, and life. Because the sacrifice that God wants to receive the most is ourselves. On the contrary, those who feel wronged by an innocent person and use even close friends and neighbors for their own benefit cannot come before God without solving the problem. They want human relationships that raise those who fear God and keep those who treat him reckles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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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더 괴롭게 하는 고리대금과 억울한 자를 더 억울하게 하는 뇌물을 싫어 하신다. 이처럼 뇌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백성끼리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셨다.(신23:19-20)지금도 처지가 궁한 성도들을 상대로 이득을 취하거나 뇌물을 받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을 하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들 듣지 않으실 것이다. 한편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게 사는 이들을 결코 흔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삶이 늘 평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Princess, God hates usury that makes the weak suffer more, and bribes that make the unjust more unjust. Not to mention bribery, he did not allow his people to receive interest. (God 23:19-20) Even now, those who sing God's love will not be heard even though they take profits or take bribes to make unjust victims against the saints in need. On the other hand, they will never shake those who live faithfully in the covenant they made with God. Life will not always be f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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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인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장막과 성산에 올라 찬양할 수 있으며, 거기서 하나님에게서 새 힘을 공급받을 것이야. 내가 남을 참소하거나 피해를 입히거나 훼방한 일은 없는가? 내 성품 중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웃과 관계가 원만한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가를 넘어서 하나님과 어룰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But a righteous man will never fall. A righteous man can ascend the tent of God and praise him, where he will receive new power from God. Have I done anything wrong, done harm, or sabotage others? What in my character is not worthy of being a child of God? Do I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my neighbors? Do I live a life with God beyond those who belong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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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의 장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1)
정직, 공의, 진실한 일상(2-5a b)
흔들리지 않는 삶(5c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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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1a)
주의 장막에(1b)
유할 자 누구며(1c)
주의 성산에(1d)
거할 자 누구이나이까?(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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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행하며(2a)
공의를 일삼으며(2b)
그 마음에(2c)
진실을 말하며(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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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혀로(3a)
참소치 아니하고(3b)
그 벗에게(3c)
행악 지 아니하며(3d)
그 이웃을(3e)
훼방치 아니하며(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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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은(4a)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4b)
여호와를(4c)
두려워하는 자를(4d)
존대하며(4e)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4f)
해로울 찌라도(4g)
변치 아니하며(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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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로(5a)
대금치 아니하며(5b)
뇌물을 받고(5c)
무죄한 자를(5d)
해치 아니하는 자니(5e)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5f)
영영히(5g)
요동치 아니 하리이다(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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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공의_ honesty and justice
깨끗한 말_ clean language
신실한 행실_ faithful con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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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생활예배를 통하여 새 힘을 공급해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백성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길 원하시는 주님 앞에 순종의 열망을 품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나이다. 책망 받을 것이 없고 진실한 입술로 예배하는 출발이 되게 하옵소서. 끝까지 자녀 문제로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O Lord, I thank you for providing me with new strength through the service of life. Let us go forward to the throne of grace with the desire of obedience before the Lord, who wants to be praised and worshiped by the holy and flawless people. May this be the beginning of worship with no reproach and sincere lips. Do not be swayed by your children until the end, and let them work hard on your work.
2026.7.15.wed. Clay
신학 비평//
예배는 어디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문제가 아닐가? 시편 15편은 예배의 형식보다 예배자의 존재를 묻는 시입니다. "누가 주의 장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예배당 출입 자격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예배를 찾으시기보다 정직과 공의, 진실과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백성의 열매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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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5편은 "이렇게 살아야 구원받는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막에 머무는 백성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언약 백성의 삶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령께서 빚어 가시는 성화의 모습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씀은 로마서 12장의 거룩한 산 제사'로 이어집니다.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고, 말과 돈, 인간관계와 약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이어지는 생활예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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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은 우리의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 자체입니다. 마지막 "영영히 요동하지 아니하리이다"는 완벽한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이 아니라, 성령의 통치 아래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드신다는 언약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시편 15편은 예배의 기준을 높이는 시가 아니라, 은혜 받은 사람이 어떤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지를 보여 주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