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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자녀들의 기도
매일 기도하는 ‘주님의 기도’는 사실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자녀들의 기도’입니다. 제목이 너무 길어서 이를 줄여서 ‘주님의 기도’라고 부르지만 그 기도문은 7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기도를 자주 뜯어서 묵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 하느님을 거룩하고 간절하게 부르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믿는 것은 하늘이 높고 측량할 수 없고, 모든 세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늘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람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간절하게 부릅니다. ‘사람들 안에 살아계신 저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저희 아버지라는 말이 처음에는 무척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어렵고 정이 가지 않는 호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아버지, 아빠가 얼마나 부르고 싶고, 의지가 되는 호칭인지 알고 난 다음부터는 저희 아버지가 이제는 펑펑 울면서 부르고 싶은 이름입니다. 그냥 아빠, 아버지로 부르고 싶은 이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하느님아버지를 겸손하게 간절하게 부른 다음 하느님을 현양하는 태도는 자식이 해야 할 첫 번째의 자세입니다. 국기를 게양하면 게양된 국기를 바라보면서 국가의 존엄을 생각하고 국가를 기억하게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메달을 딴 다음 국기에 경례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단순히 기쁨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국가의 현양(顯揚)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을 현양하고, 그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함은 우리의 사명이며 기쁨입니다. 자식이 입신양명하여 부모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가장 큰 효도이며, 그 큰 효도를 바치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자녀로서 고백의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 우리는 일관되게 하늘나라에 간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길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먼저 이 땅에 오게 하시는 일이 예수님의 일이었고, 또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오게 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와서 우리가 계속해서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되도록 해 주십사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기도인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선서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뜻을 예측합니다. 그 예측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 아버지의 뜻을 예측하고 그 뜻에 맞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아버지의 심중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신비스러운 영역까지도 당신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게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이 완전히 일치하셔서 하나가 된 것과 같이 세상도 일치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사랑의 일치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일용할 양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숨 한 모금, 물 한 방울, 빛 한 조각까지도 주님께서 베풀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을 당신께서 창조해 주셨듯이 모든 생명의 유지도 당신께서 지켜주십니다. 지난날에도 그렇게 지켜 주셨고, 오늘도 주시고 계시듯이 앞으로도 풍성한 은총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면 우리는 일 분 일 초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총에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께 약속합니다. 먼저 용서하였사오니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런 자세로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런 전제조건으로 용서해 주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용서해주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의 용서만을 바란다면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욕심을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도의 자세는 먼저 용서하고 화해한 다음에 용서를 청하고, 화해를 청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속죄와 통회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 청원의 기도를 바칩니다. 얼마나 많은 청원의 기도를 바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청원의 기도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과 악에서 구해 주십사고 청원하는 것입니다. 어린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악과 욕망을 청원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멘’(Amen)으로 마무리 기도를 바칩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뤄지소서.’, ‘맞습니다.’라고 기도를 맺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응답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기도에 언제나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합당하다면 말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1,1-11
형제 여러분,
1 아무쪼록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아 주십시오.
2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3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4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
5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6 내가 비록 말은 서툴러도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든 일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7 여러분을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8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려고 여러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바람에 그들을 약탈한 꼴이 되었습니다.
9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었습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걸고 말하는데,
아카이아 지방에서는 나의 이러한 자랑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내가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아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축일6월 22일 성 토마스 모어 (Thomas More)
신분 : 인본주의자, 법률가, 순교자
활동 연도 : 1477-1535년
같은 이름 : 도마, 토머스
법률학자이자 판사이던 요한 모어(Joannes More)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 모어는 12세 때에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이며 영국의 대법관인 요한 모턴의 조수로 생활했다. 나중에 그는 옥스퍼드와 런던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문화와 신학 ·고전 문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넓혔고, 1501년 법조계에 진출했다. 1504년에 그는 영국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카르투지오회 수도자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고 1505년에 제인 콜트(Jane Colt)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의 집은 영국의 문예부흥 및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 이유는 당대의 석학들과 지성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기지는 만인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영국 인본주의자들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석학이었다. 그는 시, 역사를 비롯하여 프로테스탄트를 반대하는 논문, 신심 서적과 기도문 등을 저술했고 고전 번역 작업도 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유토피아”(1515-1516년)는 이성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국가상을 묘사한 것으로 세계의 고전이 되었다. 또 “루터를 배격하는 헨리의 변명”(1523년)은 그가 가르쳤던 헨리 8세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담긴 서적이다.
1510년 그는 런던의 사정 장관보(司政 長官補)로 임명되었고, 1511년에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 과부이던 앨리스 미들턴(Alice Middleton)과 재혼하였다. 헨리가 그의 형 아서(Arthur)의 사망으로 왕으로 등극하면서부터 그는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의 외교사절로 활약했고, 1517년에는 추밀원에 진출했으며, 1521년에는 기사작위를 받았다. 또한 그는 1523년에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529년에는 월시(Walsh) 추기경 후임으로 평신도로서는 처음으로 대법관직에 올랐다. 성 토마스 모어는 이때 왕의 이혼에 대하여 강력한 어조로 반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에 기용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헨리 8세 왕의 이혼 문제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왕의 혼란을 가중시킴과 아울러 분노케 하다가, 헨리 8세가 카타리나(Catharina of Aragun) 왕비와의 이혼 허가를 교황청에 제출하는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을 때 국왕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또 교회를 반격하는 일련의 서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후 성 토마스 모어는 대법관직을 사임하고, 1532년에 첼시(Chelsea)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또한 그는 헨리 8세가 카타리나의 시녀였던 앤 불린(Anne Boleyn)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후계 지위를 양도한다는 소위 왕위 계승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534년에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고, 15개월 동안 옥중 생활을 하는 중에도 영국 교회에 대한 왕의 수장령에 서명할 것을 요청하는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에게 침묵권을 행사하며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 일로부터 꼭 5일 째 되는 날인 1535년 7월 6일, 마침내 그는 참수형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국왕의 충실한 종이 될 수 있으나 먼저 하느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던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1850년 영국 가톨릭 교계제도가 재확립된 이후 시복시성이 추진되면서 1886년 12월 29일 로체스터(Rochester)의 성 요한 피셔(Joannes Fisher) 주교와 다른 52명의 순교자들과 함께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그리고 순교 400년이 되는 1935년 5월 19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성 요한 피셔 주교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의 축일은 7월 9일로 정해졌다가 1970년 이후 성 요한 피셔 주교의 순교일인 6월 22일에 그와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 법률가의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던 그는 2000년 10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정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토마스 모어 (Thomas Mor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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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