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준① : 현역 선수 제외
-기준② : 처진 스트라이커, 최전방 스트라이커

호나우두
1994-2011 / 98경기 62골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 결정력과 개인기 딱 하나 빼고 모든걸 지녔던 스트라이커였다. (그 딱 하나라면 부상..) 종종 에우제비우, 게르트 뮐러, 반 바스텐, 호마리우를 넘어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다.

펠레
1957-1971 / 92경기 77골
축구를 넘어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 하나. 축구의 대중화를 이끈 혁명가로 일컬어진다.

히바우두
1993-2003 / 74경기 35골
호나우두와 함께 199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던 브라질의 공격수. 강력한 왼발, 드리블, 밸런스, 볼 컨트롤과 결정력에 중거리슛까지 공격수로서 필요한 것들을 지녔던 선수였다. 특히나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였는데, 2001년 바르셀로나 시절 마지막 라운드에 넣은 오버헤드킥은 축구사 최고의 바이시클 킥 중 하나로 남아있다.

레오니다스 다 실바
1932-1946 / 19경기 21골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불렸던 전설. 프리덴라이히로 시작된 브라질 슈퍼스타 계보에 서있던 선수로 1938년 월드컵에서 골든볼과 골든부트를 모두 수상했던 선수였다. 바이시클 킥을 개발한 선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호마리우
1987-2005 / 70경기 55골
호나우두 이전 브라질을 대표하던 선수. 신체적인 단점(167cm)이 있었으나 드리블과 개인기로 단점을 장점으로 바꾼 선수였다. 특히나 패널티박스 안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였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패널티박스 안에서 만큼은 역대 최고로 꼽기도 한다.

토스탕
1966-1972 / 54경기 32골
1970년 펠레와 함께 투톱을 구성했던 선수. 공격수였음에도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했던 선수였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나 1970년 페루와의 8강전 당시 넣은 2골은 아직까지도 회자 되어지고 있는 귀중한 골들이다. (당시 브라질은 페루에게 4-2로 승)

아데미르
1945-1953 / 39경기 47골
턱이 돋보여서 'jaw(턱)'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선수. 양발을 모두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상대를 속이는 드리블 기술과 빠른 스피드, 다양한 슛스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국 브라질에서 열린 1950년 월드컵에 참가해 총 6골을 넣었으나 우루과이와의 결승에서 패배하는 바램에 영원한 비운의 선수로 남게 되었다. (일명 마라카낭의 비극)

베베토
1985-1998 / 75경기 39골
우리에겐 '아기어르기' 세레모니로 유명한 선수.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호마리우와 투톱을 구성,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브라질을 통산 4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렸던 선수였다. 후에 이 투톱은 역사상 최고의 투톱으로 자주 이야기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사이는 정말 정말 안좋다고 한다.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1914-1925 / 23경기 10골
브라질 축구사 최초의 슈퍼스타이자 지금의 브라질을 있게 만든 인물. 프리덴라이히는 독일인 아버지와 브라질 원주민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선수였다. 당시 브라질 축구계는 백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흑인임에도 정식으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차별을 받고 살았었으며, 심지어는 살해 위협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1919년 브라질 대표로 참가한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지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크게 활약했고, 브라질 국민들은 이 프리덴라이히의 활약에 열광해 축구에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많은 스포츠 전문가들은 프리덴라이히를 스포츠 역사 최초의 뛰어난 흑인 선수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카레카
1982-1993 / 64경기 30골
마라도나가 사랑한 유일한(?) 브라질인. 1980년대 브루노 지오르다노,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일명 '마-지-카' 라인으로 활약했다. 기술력이 좋고 빠르고 결정력이 뛰어났던 선수로 마라도나의 전설도 카레카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엘레노 데 프레이타스
1944-1948 / 18경기 19골
1930-4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던 공격수 중 하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인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엘레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틀림없이 탁월한 범죄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분석능력, 활기 넘치는 움직임 그리고 마침내 놀랄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서 팀에 기여하는 그 모습은 새로운 탐정 소설의 창작자에 걸맞는 능력이다." 실제로 보타포구의 역대급 레전드 중 하나로 99년동안 250골 이상을 넣었다고 알려져 있다.

호세 알타피니
1957-1958 / 8경기 4골
이탈리아 세리에A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 세리에A 외국인 역대 최다 득점 2위, 통산 득점 4위에 올라있다. 주로 1950-60년대에 활동했던 선수로 1958년 월드컵 우승 당시 멤버였다.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벽한 스트라이커라고 알려져 있다.

콰렌칭야
1960-1963 / 13경기 14골
1950-60년대 보타포구를 대표하던 레전드. 통산 442경기 313골로 보타포구 역대 최다 득점자에 올라있다. 주발은 왼발이였으며 '대포'라고 불렸을 정도로 강력한 슈팅을 자랑했다.

레이날도
1975-1985 / 37경기 14골
1970-80년대 아틀레티코 미네이루의 선수로 미네이루의 팬들에게 'The King(왕)'이라고 불렸다. 미네이루에서 통산 255골을 넣었으며, 1977년 브라질 세리에A에서 18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넣은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바바
1955-1964 / 20경기 15골
1958년과 62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 1962년 월드컵 당시 8강 잉글랜드전에서 1골, 4강 칠레전에서 2골, 결승 체코전에서 1골을 넣어 월드컵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등극했었다. 당시 선수로서는 드물게 스페인으로 떠나 아틀레티코에 입단하기도 했다.

호베르투 지나미티
1975-1984 / 47경기 26골
브라질의 명문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설. 바스쿠 다 가마에서만 864경기에 출장해 698골을 넣었다고 알려져 있다. 1971년 데뷔전 당시 인테르나시오날을 박살내며 한 스포츠기자에 의해 '다이나마이트-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마리우두
1961-1966 / 20경기 7골
1962년 부상당한 펠레를 대체했던 선수로 같은 해 보타포구가 6관왕을 달성했었을 때 4개의 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별명은 'Possesso'(귀신에게 홀린 혹은 미친)으로 마치 스팀팩을 맞은 것처럼 뛰어다니고 귀신같이 골을 넣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쿠티뉴
1960-1965 / 15경기 6골
펠레의 짝꿍. 1950-60년대 산토스의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로 10년간 400골 이상 넣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1962년 월드컵 멤버였으며, 62년도 당시에 펠레와 호흡을 맞춰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 예정이였으나 부상을 당해 무산되었다.

지오반니 에우베르
1998-2001 / 15경기 7골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로 명예의 전당에까지 올라있는 전설. 하지만 브라질판 비운의 공격수. 하필 동시대에 호나우두와 히바우두가 있어 제대로 활약도 못해봤다. 당시 에우베르는 '테크닉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비교 대상이 호나우두나 히바우두같은 선수들이였다.

에바리스토 데 마세두
1955-1957 / 14경기 8골
1950-60년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던 브라질인. 50년대 초중반 플라멩구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중 바르셀로나의 전설인 호셉 사미티에르에게 스카우트 되어 바르셀로나에 입단한다. 이후 라슬로 쿠발라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주전으로 저승사자 군단에 대항하여 2번의 라 리가 트로피를 빼앗아온다.

페페
1955-1965 / 41경기 22골
1950-60년대 펠레와 함께 산토스의 주전 공격수. 산토스의 원클럽맨으로 클럽에서 통산 750경기 405골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왼발 킥이 유명했었으며, 펠레는 그런 페페를 보고 "산토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첫댓글 저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딩요)가 현역으로 뛰던 2002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 갔다는게 새삼 자랑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