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 중앙 아메리카의 패자였던 아스텍 제국이 무너졌다.
황금의 도시이자 태양신의 은총을 받은 도시라 불리던 테노치티틀란은 침략자들에 의해 무참히 약탈당했다.
불길한 징조 뒤에 나타나 끝끝내 아스텍 제국을 무너트린 침략자들은 '콩키스타도르', 스페인의 정복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혼자서만 테노치티틀란을 무너트린 건 아니다.
콩키스타도르의 도래부터, 테노치티틀란의 함락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앞에는 항상 거론되는 원주민들이 있었다.
'틀락스칼라'.
틀락스칼텍인들이 지은 도시의 이름이자
메소 아메리카의 고유한 정치체제인 알테페틀 연맹의 이름이기도 한 이 이름이야말로 역사를 바꾼 주역 중 하나였다.
틀락스칼텍인들은 콩키스타도르에 맞서 유의미한 전과를 거둔 유일한 이들이면서도
아스텍의 멸망을 위해 콩키스타도르가 무참히 패배해 도망쳐온 뒤에도 끝까지 그들을 도왔다.
아스텍 족 (멕시카 족)과 틀락스칼텍인들은 같은 나후아틀어를 쓰면서, 신앙조차 공유했고 다른 어떤 민족보다 문화적 유사성이 컸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갈라선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첫 단추는 잔혹한 배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1. 배경
메소 아메리카에는 대략 서기 900년부터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톨텍 문명이 있었다.
이들은 인신공양을 자연스럽게 행하던 이들로, 훗날 아스텍인들이 신의 거처라 치켜세운 '테오티와칸'이라는 도시를 거점으로 한 초강대국이었다.
톨텍인들은 녹색 흑요석을 독점함으로써 막강한 부를 거머쥐었고,
이 부를 바탕으로 세력을 뻗어나가 남쪽으로는 믹스텍 족과 사포텍 족은 물론 유카탄 반도의 마야인들에게까지 깊은 영향력을 미쳤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이유로 테오티와칸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톨텍인들은 몰락을 거듭해 여러 부족들로 나뉘고 말았다.
콜루아족, 아콜루아족, 테파넥족 등이 바로 톨텍인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서로가 톨텍인의 후손이라 주장하면서도 옛 톨텍인의 영광을 되찾진 못한 채 서로 싸우고 분열하기만을 거듭할 뿐이었다.
이 때, 아스텍인들이 나타났다.
2. 테노치티틀란과 틀락스칼라
스스로를 아스탈란 (하얀 땅)에서부터 왔다 하여 아스텍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 그들은 테노치티틀란, 오늘날의 멕시코시티에 자리잡았다.
이 때 아스텍 인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북방인들이 남쪽으로 대대적인 이주 중이었는데, 이러한 북방인들을 메소 아메리카는 '치치멕'이라 불렀다.
이러한 치치멕 중에는 틀락스칼텍인들도 있었다.
틀락스칼텍인들은 여러 곳에 자리잡았지만, 개중 푸에블라 계곡 인근에 자리잡은 틀락스칼라라는 도시가 가장 번성했다.
하지만 본래 거주중이던 민족들은 이 새로운 국가의 건립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테파넥 족과 콜루아 족의 거센 공격 속에서 테노치티틀란과 틀락스칼라는 원주민들과의 융화를 어떤 식으로 택해야할지 고심하기에 이르른다.
결국 테노치티틀란은 테파넥 족의 계속된 침공에 맞서 첫 왕을 뽑았고, 톨텍인의 직계 후손인 현지귀족 여성과의 결혼을 꾀함으로써 융합을 추구했다.
한편 틀락스칼라는 테파넥 족 왕조인 '아치카포찰코'의 지배를 받아들임으로써 융화를 꾀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랫동안 아스텍인들은 아치카포찰코 왕조와 테파넥 족을 위한 전사로서 싸워왔다.
이윽고 텍스코코의 함락까지 이뤄냈을 때, 아스텍인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테파넥 족 가운데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치카포칠코 왕조가 군주 테소소목의 죽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테노치티틀란과 틀락스칼라도 정치적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된다.
계승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3. 동맹, 그리고 배신
아치카포칠코 왕조의 계승전쟁은 막스틀라라는 인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막스틀라는 한번의 승리로 만족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인물들의 제거를 원했다.
자연스레 테노치티틀란의 군주였던 치말포포카는 막스틀라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아치카포칠코 왕조와의 밀접한 관계가 도리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끝내 막스틀라에 의해 치말포포카가 살해됐고, 막스틀라는 명실상부 유일무이한 아치카포칠코 왕조의 군주로 거듭났다.
허나 그의 치세를 테노치티틀란과 틀락스칼라는 반기지 못했다.
테파넥 족에 의해 군주가 살해당한 테노치티틀란은 분노했고, 때마침 테파넥 족의 정치적 혼란에 치가 떨린 틀락스칼라도 서로 뜻을 같이했다.
뿐만 아니라 테파넥 족의 치세에 불만을 품고 있던 우엑소친코 등의 도시까지 반란의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아치카포칠코 왕조에 맞선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치코아틀이라는 이름의 군주가 이끄는 테노치티틀란을 주축으로 한 반 테파넥 동맹은 마침내 아치카포칠코 왕조를 무너트리고 막스틀라를 무찔렀다.
그러나 여기서 우엑소친코 등의 도시는 물론, 틀락스칼라조차 예견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테노치티틀란이, 아스텍이 자신들과 함께해온 전우들을 외면하고 다른 이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3. 아스텍 삼각동맹 - 엑스칸 틀라톨로얀의 결성
테파넥 족들을 몰아내자마자 아스텍은 중립을 표명했던 테파넥 족 도시인 틀라트판과 문화가 발달하던 텍스코코를 끌어들여 삼각동맹을 이뤄낸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스텍 제국이라 부르는 국가의 등장이었다.
아스텍 삼각동맹은 각 도시에 각자의 역할을 맡겼는데,
텍스코코는 입법 + 건축을, 틀라트판은 농사를, 테노치티틀란 (아스텍)은 전쟁을 담당했다.
또한 각각의 도시를 저승, 현세, 지옥에 대입시킴으로써 세상의 이치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명분으로 본격적인 정복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삼각동맹의 연계는 견고해서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이에 굴복했다.
틀락스칼라는 박탈감과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강대한 아스텍 삼각동맹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심각한 가뭄이 닥쳐오자, 이를 신을 달래주지 않아 생긴 것이다 여긴 목테수마 1세가 본격적인 정복활동을 펼치면서
대규모의 의식들을 전례화함으로써 틀락스칼라의 처절한 역사가 시작된다.
틀락스칼라는 함락되지 않았다.
아스텍이 일부러 봐준 게 아니라, 정말로 미친듯이 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 대가로써 많은 젊은이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걸 막진 못했다.
틀락스칼라는 자신들의 국가와 도시는 지켜냈지만 인신공양을 위한 제물로서 사람들이 끌려가는 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4. 아스텍 제국의 황금기, 틀락스칼라의 절망
목테수마 1세 이후로도 아스텍 삼각동맹에는 연달아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지닌 틀라토아니들이 즉위했다.
이들은 동맹의 군대를 이끌며 승리를 이뤄냄으로써 자신들이 후손임을 자처한 옛 톨텍인들의 영광을 다시금 세상에 재현시켰다.
남쪽으로는 믹스텍 족과 사포텍 족을 복속시켰고, 서쪽에서 새로이 떠오르던 타라스캔 왕국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둠으로써
아스텍의 시대를 당당히 온 세상에 선언시킨 것이다.
황금기에 걸맞게 아스텍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문명을 이뤄낸다.
'틀라텔롤코'라는 이름의 대시장에는 대략 수천명의 상인들이 각자의 품목에 맞게 배치된 구역에서 상권을 형성했고,
모든 평민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법의 집행은 사회의 고위층에게도 대단히 엄격히 집행됐다.
사회의 신분이동은 전사로서의 명예와 자질을 증명해보인다면 구세계보다 훨씬 쉽게 가능했고,
심지어 노예조차 재산의 소유권이 인정되어 충분한 부를 쌓거나 합당한 의식을 치룰 경우 자유인으로의 신분으로 되돌아갔을 뿐 아니라 노예라는 신분이 세습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찬란한 번영의 뒷면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신공양이 있었다.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간을 바쳐야한다는 신앙으로 인해 아스텍은 인근에 복속된 국가들에 피의 공물을 요구했다.
그들은 제물을 얻기 위해 때와 장소를 상대 국가에 알려준 뒤 전쟁을 선포했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포로들을 끌어다 신을 위한 제물로써 바쳤다.
그것은 처절한 저항으로써 간신히 존속만을 허락받은 틀락스칼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스텍인들은 제물이 처절하게 피를 흘릴수록 제물의 가치가 늘어난다 믿었기에, 틀락스칼텍인들은 보다 '특별한 위치'에서 취급됐다.
인신공양이 끝난 뒤 심장이 뽑혀나간 틀락스칼텍인의 육신은 갈갈이 찢겨졌다.
넓적다리는 웰던으로 잘 구워져 최고위층이 맛볼 수 있는 몹시 특별한 제례용 음식이었고, 대부분의 살점들은 옥수수와 함께 삶아진 국물 요리이자 제례용 음식으로써 사용됐다.
아스텍은 이렇듯 틀락스칼텍인들을 이용해 만든 요리를 '틀라카틀롤리' 라 불렀다.
틀락스칼라는 이를 벅벅 갈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하나만 남은 시점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스텍의 왕성한 정복에 맞서 도시만이라도 지켜내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던 아스텍의 전성기에도 끝이 찾아왔다.
틀락스칼라가 그토록 바래오던 기회가 도래한 것이다.
5. 올인
아스텍과 코르테스의 기록은 상충되는 면이 많지만,
코르테스의 상륙 초기 당시 아스텍이 코르테스를 환대하고자 테노치티틀란으로 초대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다만 이 때 벌어진 원주민들의 기습이 과연 원주민들의 독단이었는지, 아니면 아스텍의 공작인지는 오직 목테수마 2세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일 것이다.
어쨌든 코르테스는 막강한 화력에 힘입어 별다른 걱정없이 진군하던 도중, 드디어 저항다운 저항과 맞부딪히게 된다.
틀락스칼텍인들의 기습에 처음으로 피해다운 피해를 입은 코르테스는 다음의 전투로 그들을 완전히 꺾은 뒤 말린체를 통해 그들의 사정을 듣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동맹을 제의하는데, 이것이 틀락스칼라의 운명을 바꾼 분기점이었음은 누가 보더라도 명확했다.
아스텍 군대의 강력함을 알고 있던 틀락스칼라는 코르테스가 과연 저 강대한 아스텍을 무너트릴 수 있을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세기동안 당해온 치욕을 기억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걸 걸었다.
첫댓글 아즈텍을 배신한 아즈텍출신 귀족여인이 있엇는데 누구엿더라...
아즈텍 출신이 아니라 틀락스칼라 출신인 말린체입니다...
엄밀히 말해 배신자는 아니죠.
@띠노 그여자 지금도 멕시코에서는 안좋게 여긴다던데.
@나베르 당연히 싫어하겠죠. 코르테스를 도왔으니까요.
@나베르 안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냥 나쁘게 보지도 않습니다. 멕시코는 메스티소가 다수고 매스티소의 정체성의 근원이 도나는게 말린체이기때문에... 모든 메스티소의 어머니인 말린체를 부정하고 폄하하면 자기네ㅜ정체성도 같이 박살나거든요. 좀 복잡한 기분일겁니다. 여튼 마냥 나쁘게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띠노 말린체에대한 입장은 나베르님에 대한 댓글로 갈음 하겠습니다. 무조건 싫어하진 않습니다.
@MARIN 멕시코 민족성이 아즈텍에서 나와서 싫어한다는 내용은 많이 봤었는데, 메스티소 정체성은 생각 못했네요. 덕분에 저도 유익한 지식 얻고 갑니다
틀딱스칼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동맹으로 틀렉스칼라는 스페인 식민정부가 멸망할때까지 수백년동안 세금면제등 많은 혜택을 받았죠.
일단...'말로는'
@Veritas 저는 멕시코가 들어설 때가지 세금면제 받았던 걸로 배웠었는데 실상은 아니었나요?
@Highsis 세금면제까진 모르겠지만, 멕시코에 있는 한 교회가 틀락스칼라인들의 노역에 의해 지어졌고 그것으로 인해 죽어나간 사람들을 기념하는 벽화도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인디오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는 거죠
@Veritas 정치체제의 존속 및 식민지 건설 등의 권리가 있는 점에서 이미 다른 인디오들과 차이가 컸습니다...
맨날 전쟁벌이던 애들이라 배신이라는 표현은 쵸큼
멕시코에서 틀락스칼라를 부르는 수식어이기도 하고, 아스텍과 한때 동맹이었으나 배신당했다는 역사도 있고 해서 이렇게 제목을 썼습니다.
이렇게 또 지식이 늘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