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 설명을 위한 세 관문 중,
2) 관문 2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그 이전에 있었던 두 나라 사이의 최초 전쟁을 본다. 건국 후 4백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두 나라 사이에 고국원왕의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전쟁이 발생한 것은 369년이다. 그 369년 전쟁 원인이 몇 년 몇 월에 어떻게 발생하였는지를 설명하는지를 본다. 이를 설명하면 두번째 관문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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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를 보면 고구려와 백제는 함께 부여에서 나와 서로 존경하고 아끼는 사이였습니다.(백잔은 고구려의 형제국이 아니라 속민이 아니었나?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만, 백잔은 삼국사기의 百濟이며, 중국사서의 百濟가 아니라 伯濟입니다. 동진의 진서의 백제가 삼국사기의 백제와 같아지는 것은 396년 고구려의 잔국토벌 이후입니다.) 그러다 369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끝없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제가 수 십년 전에 한국고대사 전공자에게 369년에 발생한 두 나라의 전쟁 원인이 언제 왜 발생하였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답변을 들어보니 대충 다음과 같았습니다.
"4세기 초인 313년과 314년에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위치한 낙랑군과 대방군이 사라지자 고구려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두 나라가 두 군의 영토를 두고 충돌하게 된 것이 369년의 전쟁 원인입니다."
그래서 제가 "4세기 초에 국경을 맞대면 그때 전쟁이 벌어져야지 왜 반세기도 더 지난 4세기 중반인 369년에 시작됩니까?"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답변이 "왜 그걸 제게 물어봅니까? 근초고왕과 고국원왕에게 직접 물어보시죠."라고 하였습니다.
형제 국가이던 고구려와 백제가 369년에 대 전쟁을 하는데 원인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답변을 못하는 것은 우리 사학계의 책임입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학계 어른들 책임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 해에 근초고왕이 영산강유역을 정벌하여 백제로 편입시켰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실제로 학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이에 영산강유역 고대사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반론하기를, "4세기 중반은 영산강유역에 하류인 영암을 중심으로 대규모 왕릉급 옹관 고분군이 축조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근초고왕이 정벌했다는데 왜 한강유역보다 더 큰 대규모 왕릉급 고분군이 들어섭니까? 설명이 고고학과 모순이 아닙니까?" 하자, 답변이 "저는 고고학은 모릅니다." 였습니다. 역사에서 고고학과 모순되는 이론은, 과학에서 실험과 모순되는 이론이나 마찬가지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돌아가보면 이 말씀이 맞습니다. "근초고왕과 고국원왕에게 직접 물어보시죠."가 올바른 답변입니다.
당사자에게 369년에 전쟁이 발생한 원인을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원인에 대한 답변이 둘이 같으면 그것이 전쟁의 원인이고, 다르면 누가 옳은지 모르므로 전쟁의 원인도 모릅니다. 369년 전쟁의 원인 같은 중요한 것이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에 안 나올리가 없습니다.
1) 근초고왕이 말하는 두 나라의 전쟁 원인
369년에 전쟁이 발발하였으면 그 원인은 전 해인 368년 봄 3월에 발생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삼한사의 기본구조입니다.
*근초고왕 23년(368), 봄 3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좋은 말 2필을 보냈다.
봄에 신라에 말 2필을 선물합니다. 그것이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 원인입니다. 백제가 고구려에게 선전포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만일 봄이 아닌 다른 계절에 말을 선물했으면 전쟁 원인이 아닙니다. 다른 계절에 말을 선물했으면 아예 삼국사기에 나오지도 않지요.
신라본기를 보면 368년 봄 3월에 말 2필이 오기 전에는, 백제에서 사신이 왔다, 또는 백제인이 왔다고 하지 백제왕의 사신이라던가 하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다 말 2필이 오고서는 "백제왕의..." 라고 말합니다. 근초고왕은 368년 봄 3월에 백제에서 신라로 말 2필이 가자 황해도를 포함한 한강유역 전체를 臣民으로 둔 통치자, 즉 백제왕이 된 것입니다.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한강유역 마한소국 10여개가 368년 봄 3월에 동시에 모두 사라졌습니다.(아니, 그럴 것 같으면 신라로 말을 좀 일찍 보내지 왜 하필 이때... 같은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근초고왕 30년 재위기간 중 앞 약 20년이 기록 공백인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백제왕이 아니라 일개 소국의 수장이었기에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지운 것입니다. 그 기록 공백기에 근초고왕이 요서에 있었느니, 왜국에 있었느니,... 별별 소리가 다 나오는데 전혀 근거가 없고 목격자인 신라인들이 근초고왕이 그 기간에 무엇을 했는지를 상세히 증언하고 있습니다.(나중에 다시 설명)
2) 고국원왕이 말하는 두 나라의 전쟁 원인
*고국원왕 40년(371), 겨울 10월, 백제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오니 왕이 군사를 내어 막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고구려본기를 펴보면 371년에 "백제왕"이 평양성까지 쳐들아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백제왕"이 전쟁 원인입니다. 근초고왕이 368년 봄 3월에 백제왕이 되어 고구려 남부영토인 황해도를 파(破)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자 고구려 남부통치가 붕괴해버렸습니다. 고구려에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만일 고국원왕의 비문이 발견된다면 369년부터 시작되는 백제와의 전쟁 원인을, 백제가 본래 우리 속민이었던 대방지역(황해도)을 368년 봄 3월에 파하여 신민으로 만들었기에 우리 왕이 군사를 일으켰다고 나올 것입니다.
왜 백제가 신라에 말 두마리 보낸 것이 백제왕이 되고 고구려에 대한 선전포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가에 대한 설명은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의 한조를 통해 나중에 자세히 할 것입니다. 기초부터 설명해야 하니 이야기가 깁니다. 어쨋든 고구려-백제의 전쟁 원인에 대한 당사자 두 왕의 증언이 같다는 것은 전쟁 원인이 믿을만 하다는 뜻입니다.
결론: 369년 고구려-백제간 전쟁 원인은 그 전 해인 368년 봄 3월에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