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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9권 13일
주체사상
날짜 : 1987. 4. 26(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큰 사랑과 강한 사랑
지금까지 인간들은 자기 나름의 이상을 그려 왔습니다. 인간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여 자기를 중심삼고 보다 가치 있는 것, 보다 큰 것, 보다 전체적인 것을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무엇이든지 옳다고 생각하게 될 때는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중심삼고 환경적인 여건을 일치시키기 위한 생활 혹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직장에 있는 사람은 직장을 중심삼고 “직장은 이러한 것이다” 하면서 환경적인 여건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의 시조는 어떻게 했을 것이냐? 인간시조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겠느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당시에 하나님은 무엇을 생각하셨을 것이냐?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이라면, 그분은 무엇을 생각하셨겠느냐? 지금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환경적으로 확대시키려고 하시는 것은 우리 개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생각하시겠느냐?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유일적인 존재이시며, 불변의 존재이십니다.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자유자재로 보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상대적인 환경을 개척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무엇을 생각하시겠느냐? 하나님 자신을 생각하신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중심삼고 생각하시겠느냐? 누구든지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환경적인 여건을 개재시켜 놓고 생각해야 됩니다. 나라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여건을 개재시켜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홀로 아무리 생각하셔도 그 생각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생각은 관계적인 여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오늘날 인간의 사회생활은 전부 다 관계의 연결입니다. 대인관계, 경제관계, 정치관계 등 모든 환경적인 여건이라는 것은 서로서로 인연되어지는 관계를 맺어 나가는 데에서 형성되어 나갑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 혼자서 무슨 관계를 맺으시겠느냐? 하나님의 생각은 이상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 이상적인 생각을 중심삼은 관계적인 여건이 필요합니다. 그 생각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반드시 상대적인 기반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데 있어서 높고 높은 것을 생각하시겠느냐, 낮은 것을 생각하시겠느냐? 높고 높은 것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낮은 것은 생각지 않으시느냐? 이런 것이 문제가 됩니다. 높은 것을 끝까지 생각하신다면 결국에는 하나의 초점과 같은 것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여건을 형성하실 수 있느냐? 그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외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면 절대적인 분이니 만큼 그분이 생각하시는 것은 모든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연의 중심적인 존재로 계시고 싶지 고독하고 단일적인 위치에 계시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높은 것도 생각하셔야 되지만 낮은 것도 생각하셔야 됩니다. 높고 낮음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동과 서가 있으면 동서가 연결되어야 하고, 남과 북이 있으면 남북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후, 좌우, 상하가 서로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꿰어서 연결시켜 가지고 영원히 관계를 맺고 싶어하신다는 개념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은 어떠한 생각이냐? 절대적인 분의 생각이기에 그 생각은 절대적인 것임과 동시에 환경적인 여건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반드시 상하, 전후, 좌우가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164-67)
그러면 거기에서 주체가 무엇이냐? 그 주체가 무엇이냐 할 때, 어디까지나 하나님 자신이 주체이시고 환경이 상대권이 됩니다. 그 둘이 연결되는 데 있어서 더 넓은 환경을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으로서 생각하실 때 제일 중심이 무엇이겠느냐? 높고 낮은 모든 입장의 관계를 맺는 것도 생각하시겠지만, 그 모든 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높은 것도 좋아하고, 낮은 것도 좋아하고, 동서남북은 물론이고 중앙이나 사방 전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 자신도 아니고, 하나님이 갖추어야 할 환경도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도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높고 낮음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이 왈(曰) 하나님한테 필요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아야 전후, 좌우, 상하 혹은 동서남북이 화합할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있지 사랑을 빼놓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전체와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동쪽에서도 필요한 것이고, 서쪽에서도 필요한 것이고, 아무리 끝에 가더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더 끝에 가려고 하는 것은 더 높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 가는 것이고, 또 끝에서 안으로 찾아오게 되어도 더 강한 사랑을 찾아서 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큰 사랑을 찾아가든가 강한 사랑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한 내적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언제든지 멀리 갈 때는 큰 것을 찾아가는 것이요, 중앙으로 돌아올 때는 강한 것을 찾아옵니다. 그 강한 것이 납작하게 강해야 되느냐, 뾰족하게 강해야 되느냐, 둥글게 강해야 되느냐? 이렇게 볼 때, 내적으로 들어오면 원형을 그릴 수 있는 강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랑과 강한 사랑이라는 개념을 정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좋다고 할 때는 큰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사랑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또, 강한 사랑이라면 얼마만큼 강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융합시킬 수 있고 모든 것의 본질까지도 마음대로 인연 맺게 하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랑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164-69)
중앙에 있는 진짜의 사랑
어째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느냐? 이것이 근본문제입니다. 무엇 때문에 창조하셨느냐?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느냐?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최귀(惟人最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싸우거나 노는 걸 보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지으셨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확정짓지 않고는 오늘날 이상(理想)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을 때 관계를 맺으셨는데, 그게 무슨 관계였느냐? 사랑을 중심삼은 관계였습니다. 여러분도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생각하느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중에서 최고의 생각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중에서 최고의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은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렇게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을 갖게 될 때는 그것과 절대적으로 하나되려고 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에는 그러한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해서 망해 가는 이 현실, 절망에 부딪쳐 파탄이 벌어져야 할 위기일발적인 세계를 보면서 우리 개개인도 최고의 것을 바랍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좋다고 하는 황금을 소원하지만, 그것은 어느 한 과정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것보다 더 높은 차원을 원합니다.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그 지식보다 더 높은 차원을 필요로 합니다. 권력을 필요로 하지만 더 높은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지 그 자체는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목적점이 아니고 종착점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전부를 포괄해 가지고 전체를 희생하더라도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치입니다. 오늘날 가치관의 몰락이라고 하지요? 가치문제입니다. 가치가 있는 것이 뭐냐? 어떤 사람은 돈이 가치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이 가치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 가치 있다고 합니다. 내가 가치적인 존재가 되려면 권력이 최후의 종착점이 될 수 없습니다. 지식 있는 사람도 보편적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도 보편적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도 전체가 아닙니다. 많은 인간을 중심삼고 공통적인 입장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 모두가 이상으로써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처음부터 모든 지식과 지혜의 왕이신 하나님이 “인간세상이 어떻게 되어서 어떻게 발전할 것이다” 하는 걸 아셨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셨던 그분이 출발과 더불어 발전하는 과정을 거쳐서 끝까지 가시더라도 인간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필요합니다. 전체가 필요할 뿐만이 아니라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필요한 그 무엇을 남겨 주셔야 됩니다.
그것이 누구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공동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중심존재와 연결되어 가지고 부딪혀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을 다 들어오게 하는 것,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 사람을 전부 다 들어오라고 할 수 있는 것, 전체를 포괄하고 집약시켜 가지고 귀일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여기에다 붙여 놓으면 됩니다.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이 다이아몬드나 돈을 필요로 하시겠어요? 그것은 다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알지 못하는 게 없으신 분인데 지식이 필요하시겠어요? 권력이 필요해요? 권력은 한낱 과정적인 현상입니다. 하나의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모든 것이 움직이면서 상하고저로 물결과 같이 파동을 칩니다.
하나님한테 필요한 게 뭐냐? 또, 하나님한테 필요한 내용이 뭐냐? 전체를 조화시킬 수 있으면서 전체를 규합시키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힘이나 지식을 가지고 얻으실 수 있겠느냐? 그것들은 한 방향이고 한 면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영원히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밤에도 좋고, 낮에도 좋고, 나면서도 좋고, 자라면서도 좋고, 죽으면서도 좋을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걸 택하실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가짜 사랑이 있고 진짜 사랑이 있습니다. 진짜 사랑 가운데도 가장자리 진짜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동쪽 진짜 사랑, 남쪽 진짜 사랑, 북쪽 진짜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면 중앙에 있는 진짜의 사랑은 무엇이냐? 진짜 사랑이란 무한히 확대될 수 있으면서 무한히 축소될 수 있는 것입니다. 펼쳐 놓으면 세계를 덮고도 남을 수 있고, 뭉쳐 놓으면 모든 세계가 들어가 박힐 수 있는 한 알의 씨알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조화무쌍한 힘을 가진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도 연구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신으로서 사람과 같으시다면, 전지전능한 그분도 그것을 대할 때 그 속에 가셔서 안식의 잠을 자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눈을 바로 뜨고 “이 멍청한 자식아, 밤낮 쉬지 말고 탕감복귀해” 이러실 수 없습니다. 이치가 그렇잖아요? 숨쉬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내쉬면 들이쉬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했으면 쉬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도 쉬는 기쁨을 느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같으신 분이라면 무엇에 안겨 쉬고 싶으시겠느냐 할 때 돈이에요, 황금판이에요, 지식이에요? 하나님의 머리에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도서관에 있는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잠겨서 살고 싶지 않으시다는 거예요. 지식의 종이 되고 싶지 않으시고, 황금의 종이 되고 싶지 않으시고, 권력의 종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종이 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그런 것들의 종이 되기 싫으시죠”라고 물으면, “그렇지”라고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의 종이 되고 싶지 않아요” 하면, 하나님이 생각해 보고 “글쎄…” 하십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다”라고 대답하실 수 없습니다. (164-70)
하나님의 주체사상
‘사랑’ 하게 되면 할머니들도 좋아합니다. 여기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사랑을 좋아해요? 영감도 없는데 사랑이 좋아요? 영감이 없지만, 손녀라든가 젊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면 옛날 젊은 시대의 모든 것들이 그냥 그대로 소생합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만년 청춘이에요. 여러분의 마음이 늙어요? 언제나 옛날 사춘기 시대에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던 그때의 그걸 붙들고 늘그막에 와서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좋아합니다.
그때는 영감을 미워했지만 그 영감이 죽고 난 다음에는 “아이구, 영감이 그리워서 못 살겠구만! 영감이 있으면 뱃가죽도 긁어 주고 등도 긁어 줄 텐데…”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쭈그렁이 할머니라도 그러고 있습니다. “아이구, 이제 시들시들한 손이나 얼굴을 누가 만져주며 좋아하겠노? 세상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손주나 손녀도 내가 키스해 주겠다면 싫다고 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하겠나” 하면서 탄식합니다.
그렇지만 영감만은 좋아합니다. 영감은 사랑해 주고 친절하게 대해 줍니다. 그러면 영감이 뭘 가졌기 때문에 그래요? 지식을 가져서 그래요? 돈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요? 권력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뭘 가졌기 때문에 좋아하려고 그래요? 누구든지 사랑이 없어서 죽겠다고 하지 돈이 없어서 죽겠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돈은 없더라도 사랑이면 그만이지요.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양심적인 작용을 가려 가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숨길을 맞추려고 하느냐? 돈이 아니고, 지식이 아니고, 권력이 아니고 사랑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부모가 돌아가면 부모를 생각하며 사는 거예요. 아내가 돌아가고 없으면 사랑을 중심삼고 아내를 생각합니다. 사람의 얼굴에 있는 눈, 코, 귀, 입의 네 가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별스럽게 그리워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만이 인연을 확대시킬 수 있는 내용이 됩니다. 할아버지든 손자든 서로 묶을 수 있는 인연이 확대되는 것도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는 것은 사랑의 힘에 의한 것이지 다른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만이 무한하게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은 강하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묶어지면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 사랑에 의하여 둘이서 하나될 때는 생명도 그 둘을 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에 죽자사자 하는 처녀 총각들이 투신자살을 한다든가 하는 별의별 일들이 다 있잖아요. 그게 예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나로 뭉치려고 할 때는 우주도 거기에 뭉쳐 들어가야지 뗄 수 있는 작용은 할 수 없습니다. 거리를 초월해서 내 전신이 동화되어 가지고 슬픔과 기쁨이 작동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다른 무엇이 없습니다. 지식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남편이 눈물지으며 편지를 써서 아내를 울게 했다면, 그것은 사랑의 힘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주체사상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주체사상은 사랑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모두 다 그것을 받아들일만하지요? 공산당들도 사랑하고 살지요? 그들은 사랑도 정반합의 작용이기 때문에 갈라졌다가 합하면서 발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주체사상이 사랑이라면, 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대상권으로 인간을 지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대상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을 지으셨다면 그 인간의 주체사상은 무엇이겠느냐? 역시, 그것도 사랑입니다. 남자의 주체사상도 사랑이요, 여자의 주체사상도 사랑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164-85)
사람은 태어나기를 사랑 때문에 태어나
남자와 여자가 생겨나기를 반대로 생겨났습니다. 여자가 움푹 들어가고 남자도 움푹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오목하고 뭐예요? 볼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여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어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남자 여자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어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인간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여자가 고민하게 될 때, 남자가 “너 왜 고민해? 넌 나 때문에 태어났어! 나하고 하나되어 봐” 하면 엉엉엉 울던 자리에서 좋아서 헤헤헤 웃습니다. 그러면 천국이 벌어집니다. 남자가 엉엉엉 울면서 고심하고 있으면 미녀가 나타나서 “남자가 왜 고심해, 이놈의 자식아? 너, 나 때문에 태어났어” 하면 헤헤헤 하고 웃는 것입니다. 뻣뻣한 남자한테 몇 번만 바람을 불어넣으면 그저 좋아한다구요.
그러니까 인생문제는 간단합니다. 남자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다고요?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또,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여자 남자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사람은 태어나기를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꼭대기에만 계시겠다는 게 아닙니다. 꼭대기에서 내려오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입니다. 인간은 낮지만 사랑의 힘이 생겨나면 하나님이 내려오시게 되어서 인간은 자연히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주체와 대상이 한 번, 두 번, 세 번을 주고받으면 사랑을 중심삼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힘은 작용하면 감소가 되는데, 사랑의 힘만은 작용하면 강해집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무한히 확산된 것은 그 안에 무한히 집약된 힘이 있기 때문에 끌어당깁니다. 그러니까 순환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 논리를 세우려니까 이성성상의 논리가 필요합니다.
그래, 사람이 무엇 때문에 태어났어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그게 누구의 덕분이에요? 하나님의 덕분입니다. 사랑의 눈이 어떠냐 하면 사각도 있고, 팔각도 있고, 백각도 있습니다. 이 각에 맞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안 맞으면 안됩니다. 오목볼록한 것이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첫사랑은 모든 것이 맞게 되어 있습니다. 첫사랑에 눈이 어두워지면 “아이구, 저런 남자가 저런 여자하고 어떻게 사나” 할 정도가 됩니다. 그렇다고 그 남자도 별것 아니에요. 가짓수야 마찬가지지요. 눈, 코, 입, 귀의 네 가지입니다. 얼굴은 그렇지만, 사지백체를 봐야지요. 손발을 보면 도둑질할지, 고달프게 살지를 압니다. 발이 큰 것을 보고 도둑놈 발이라고 그러지요? 그러나 아무리 잘못 타고나고 못 타고나서 도둑놈 같고 뭐 같더라도 사랑의 코만 걸게 되면 꿰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말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랑의 마음이라야 됩니다. 불효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될 때, 부모가 돌아간 후 무덤 앞에 와 가지고 과거를 회개해 가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역사적으로 등장한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언제나 사랑은 재창조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의 종이 되시고 싶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종 되시고 싶다는 말을 들어 봤어요? 하나님도 사랑의 종이 한번 되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도 하나님과 같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도 사랑의 종이 되고 싶지요, 남자나 여자나?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래요?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화합하시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하십니다. 누구든지 닮지 않고 어떻게 통해요? 안 그래요? 누구든지 끼리끼리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사랑하는 사람과 통하십니다. 하나님이 통하시는 것은 천지간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164-87)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래서 통일교회의 주체사상이 뭐냐?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사상입니다. 이 주체사상 가운데 질서적인 단계를 말하면, 삼 단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와 부부 그리고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이 중심이 하나님과 인연되어 가지고 사위기대의 이상을 확대시킬 수 있는 이상권이 우리 주체사상의 내용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척 하면 “하나님…” 해야 됩니다. 하나님 다음에는 뭐예요? 하나님 다음에는 누구예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하고 누가 있었어요?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그 아담 해와가 사랑을 이루려면 그냥 그대로 이룰 수 있었어요? 성숙되어야 했지요? 오늘날에도 성숙되어 가지고 17·8세가 되어야 사랑의 이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이상을 이루는 데는 곧장 안 됩니다. 그건 왜 그러하냐? 우주의 중심권에 올라가려면 여기서부터 올라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성장기간을 두어 가지고 인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성숙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숙된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하나되는 데서부터 종적인 주체사상이 확립되고 결정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90각도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사상의 내용은 하나님을 제1주체로 하고, 그 다음에 참부모를 제2주체로 하고, 그 다음에 자기의 상대를 제3주체로 하고, 그 다음에는 자녀를 제4주체로 하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 다음에는 참부모입니다. 아담 해와에게는 하나님하고 참부모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확대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만인류를 품고 살아가려니까 확대시켜야 됩니다. 그것을 확대시켜 놓은 것이 우리 인간의 번식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둘을 횡적으로 확대시켜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사상의 내용을 추려 보면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주체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부모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예요? 자기들 부부입니다. 자기들 부부가 참부모의 대신이 되어서 자녀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참부모를 절대적으로 사랑합니다. 그 다음에는 뭐예요?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절대적으로 사랑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원리나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절대적이니 만큼 자체로부터 있는 것입니다. 교육이 필요 없어요. 기원과 같이 절대적이니까 기원서부터 같이 가는 것입니다. 끝도 같습니다. 변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원칙은 동물들도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미 아비가 있고, 상대가 있고, 그 다음에 새끼가 있지요? 하나님을 몰라도 식물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 가지고 모든 것이 쌍쌍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과 참부모 그리고 자기 부부와 자녀인데, 이것을 대수로 말하면 4대입니다. 4대는 하나님, 부모, 부부, 자녀입니다. 참부모 대신 자리를 횡적으로 확대시켜 놓은 것이 여러분 가정의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모를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하나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또, 남편과 아내가 부모들이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될 때도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데는 절대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또,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가 하듯이 그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또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부모, 처자가 완전히 하나되면 됩니다. 이것이 교본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자기 가정에서만 적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이걸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사회로 확대하고 나라로 확대하고 세계로 확대해야 됩니다. 사랑은 무한히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한히 확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확대되었던 모든 것을 집약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확산시키고 집약시키는 놀음으로 연결되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구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164-93)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사랑
통일교회의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사상인데, 사랑의 내용이 무엇이라구요? 하나님과 참부모입니다. 이 세계가 한 나라가 되면 참부모를 부모의 대신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영계에 가는 것입니다. 그 대신 인간들은 참부모를 대신하여 지상에서 부모와 하나되고 처자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 이걸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금이 가서는 큰일이 벌어집니다. 여기에 금이 가게 되면 전부 다 어떻게 되느냐? 우주에서 추방됩니다.
언제든지 사랑권에서 이탈되면 옥살박살이 됩니다. 어디에 가서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서구사회는 전부 다 반대입니다. 동양에 예속시키려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인데, 끝날에 와서 다 그렇게 되는 것은 동양을 주체로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인데, 사랑이 무엇이냐?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요, 그 가운데 참부모가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 이상적인 부부가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 이상적인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정이 형성됩니다. 그 가정이 핵이 되어 가지고 세계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은 그냥 그대로 축입니다.
그 가정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참사랑에 포괄된 환경권에서는 배척을 받지 않습니다. 보호받게 됩니다. 거기에 불합격이 되면 몰립니다. 우주력이 반발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없게 되면 슬픈 것입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왜 슬퍼하는 거예요? 우주력이 보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왜 슬픔을 느끼느냐?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길에 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적인 사랑의 완성권에 부합될 수 있는 요소가 결핍되기 때문에 그렇게 결핍되는 만큼 우주의 운세가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 갑니다. 인과법칙에 있어서 자기의 선조로부터 잘못된 것이 있어도 자연히 외부로 흘러갑니다.
우리 통일교회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입니다. 여러분 그 내용을 알지요?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잊지 말라구요! 내가 딱 서 있으면 부모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확대됩니다. 미국에 갖다 놓으면 거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자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생각할 수 있고, 거기의 청년 남녀들을 전부 다 자기의 아들딸같이 생각할 수 있고, 모든 부부들을 자기 부부처럼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래야 할 입장인데 그 가정이 침해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미국 놈들이 온 세상에 바람을 피우면서 가정을 파탄시키고, 그 바람을 따라서 그 나라의 백성들이 전부 다 거꾸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미국은 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의 이상권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위기대가 이루어진 이상가정의 기반을 중심삼은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자녀가 사랑으로 뭉쳐진 것이 그 이상권의 핵입니다. 거기에는 우주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우주의 삼 단계 질서가 다 들어가 있고, 확대하면 동서남북이 벌어집니다.
언제나 여러분은 심각해야 됩니다. 거기에 일체되지 못하면 사랑의 법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확산된 가인적인 가정들을 우리가 거름이 되어 가지고 구해 주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를 동화시키기 위한 놀음을 하고 계십니다. 이 가정적인 사랑의 파장이 끝까지 가서 세계의 가정들을 거쳐서 돌아 들어와야 됩니다.
이런 주체사상 밑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적인 내용을 전체에 적응시키는 입장에서 생애를 거쳐 나가야 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의 생활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오늘날 살아가는 생애 자체가 무엇 때문이냐? 돈 때문에 싸우지요? 경제문제 때문에 싸우고, 그 다음에 지식 때문에 싸웁니다. “아이구, 우리 여편네는 학교도 못 나왔으니까 이혼해야 되겠다” 하는 그놈의 자식들은 앞으로 죽어야 됩니다. 하늘의 사랑법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사랑은 이상적인 내용을 갖춘 가정과 사회, 그리고 세계에 연결될 수 있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창조이상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이 출발과 동시에 끝까지 가게 되면 확장되기 때문에 돌아옵니다. 집약된다구요. 그렇게 집약되었다가 또 확산되면서 발전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생활에 이런 개념을 심고 생활적인 환경에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살게 될 때는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 자신의 생활배경에 이루어져서 발전할 것입니다. (164-95)
사랑을 주체로 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전체를 투입해야
여러분, 선생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님을 떠억 모셔 놓고 선생님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그리울 것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돈을 가진 사람이고, 명령만 하면 수백만이 별의별 놀음을 다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공산당식으로 했으면 김일성 같은 것은 전부 다 모가지를 따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 조직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무서운 게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원수가 되는 날에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내가 아는 사람입니다. 미국이 나를 무서워합니다. 원수가 안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일본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러운 것이 없지요. 이러한 선생님의 모가지를 딱 매어 가지고 끄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 사랑입니다.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내가 꼼짝을 못 하고 여기에 옵니다. 내가 신경질이 있었고 욕심이 많았지만 사랑을 알고 난 후에는 다 없어졌습니다. 내가 사랑을 알고 난 다음에는 모든 것을 다 나누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꾸 줘야 됩니다. 나한테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없는 것까지 주려고 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위하여 살라고 했거든요.
지금 세상에는 찾아 세우자고 하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지도자를 찾아 세우자, 정의의 사람을 찾아 세우자”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의의 대통령을 찾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통령을 찾아 세우는 데도 자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이 말이 뭐냐 하면 하나님도 만물을 찾아 세워서 창조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위하는 자리에 서신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찾아 세우려는 곳에서는 위하는 개념이 먼저 서야 됩니다.
이 세상에 옳은 것을 찾아 세워야 됩니다.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적인 지도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지도자를 찾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개념은 위하는 개념입니다. 자기가 위하라는 개념인데, 그렇게 위하는 개념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창조라는 것도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위하시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위하는 것은 투입입니다. 누구든지 무엇을 위하는 데서 모든 시작이 벌어집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 자신이 절대자로서 투입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자신이 위하셔야 된다는 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이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위하라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정당도 둘이서 서로 위하라고 하니까 싸움이 벌어집니다. 권력을 중심삼고 위하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위하라고 하면 독재가 됩니다.
오늘날 세계의 탈이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사상을 가진 것입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전부 다 자기들만을 위하라고 그래요? 아무리 엄한 시어머니라도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시아버지, 아들, 그 다음에 손자와 손녀들을 위하는 며느리를 좋아합니다. 그들을 자신의 생명을 넘어서 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랑이 있어야 그 집이 만사성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입니다.
세계를 개조할 수 있는 것은 위하여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자신의 모든 진정(眞情)을 투입해야 됩니다. 가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미국 같은 데 나가 가지고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내 전체를 퍼붓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자신의 세포까지 전체를 투입해야 합니다. 이 거대한 미국을 소화해서 재창조하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배경을 중심삼고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164-98)
우리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주체사상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주체사상을 지닌 우리로서는 권위와 책임소행에 있어서 피조물이라든가 창조주가 보게 될 때 부끄럽지 않은 합격자로 남아져야 합니다. 그것을 생애의 목표로 삼아야 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이 주체사상을 중심삼고 우주를 위해서 줄 수 있는 가정적 기반, 종족적 기반, 민족적 기반, 국가적 기반을 가꾸어서 세계를 품고 되돌아와 하나님을 모시고 사랑의 왕궁에서 천년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는 시대로 전진할지어다, 아멘!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16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