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같은 평화로운 양포항
포항 남구 장기면 양포항에 조성된 어촌어항복합공간이 포항의
관광 휴식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양포항 어촌어항복합공간에는 바다위에
지어진 해상공연장과 포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해상요트계류시설,
목재테크를 재료로 만들어진 해변산책로, 북방파제로부터 700m
바닷길를 따라 설치된 건강지압로, 탄성고무포장길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또 해변가 특색을 살린 배모양 화장실과 전망대 화장실, 각종 공연
축제행사를 할 수 있는 광장, 지역 특산물인 문어, 과메기, 대게 등을
판매하는 특산물 판매장도 세워졌다. 양포항 어촌어항복합공간조성사업은
어촌어항을 생산기반시설 중심에서 친환경 리모델링을 통해 어항기능
활성화와 도시민, 어촌이 공존하는 쾌적한 어항건설을 위한 사업으로,
국비 100억을 투입해 2006년 착공에 들어가 올해 11월 5일 완공했다.
포항시는 양포항 어촌어항복합공간을 찾는 관광객과
시민들을 위해 각종 음악회와 전시회, 해양관광·레저축제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인근 장기읍성을 연계한
포항시티 투어 등 다양한 관광코스 개발과 함께 지역 특산물을
생산자와 직거래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불국사의 말사인
오어사(吾魚寺)의 가을
오어사ㅡ포항 운제산 저수지 오어사를 앞에두고
뒤로는 경관이 빼어난 암봉위에 자장암이 있는
원효와 혜공선사의 전설이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
라고 하였다. 그리고 창건이후 혜공(惠空)·원효
(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등이 주석하여 신라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효 대사와 혜공 대사가 수도하고 있었는데
서로 법력을 시험하여 보고자 , 고기를 낚아 다시
살리는 재주를 겨루었다. 고기 한 마리를 놓고
서로자기가살린 고기라고 주장하였다고 한 데서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포항시 오천읍 일월지
해병부대안에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깃든 저수지가 있는데 규모가 큰
해룡사란 절도 있고 있어서 풍광이 좋아서 포항의 관광지로 즐겨찾는
곳이라 합니다 연꽃의 개화기에는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번지 없는 주막
추미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1.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 구려
능수버들 휘늘어진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2.석유등 불빛 아래 마주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처량쿠려
새끼손을 걸어놓고 맹세도 했건만
못 잊겠소 못 잊겠소 울던 사람아
3.아주까리 그늘 아래 가슴 조이며
속삭이든 그 사연을 꿀 같은 정이었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한 그 시절이
그립구려 그리워요 정녕 그리워
번지없는 주막 노래에 얽힌 사연
"나그네 설움"과 함께 "번지없는 주막"!
백년설의 대표곡이면서 오늘까지도 널리 불리는
국민애창곡이다. 왜? 번지없는 주막인가? 나그네 설움이
번지없는 주막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나라도 잃고 성도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
시대상을 담았다. 외면적으로 감시망을 피해서 노래를 부르고
들어야 했기에 한 주막에서 있었던 일에 낭만을 싫어 야화
비숫한 노래로 부른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달래야 했던 조선사람들이었다.
이 노래의 작사자가 박영호로
일제 강점기부터 조명암과 쌍벽을이룬
작사자다. 태평레코드에 재직하던 문예부장시절,
이 노래를 작사해서 백년설이 불러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노래의 작사자 박영호가 월북자여서 금지곡으로 될뻔 했지만
이노래가 처녀림으로 발표되어 박영호와는 잘 연결되지 않던
차에 이 노래를 살려내려는 진방남이 차녀림과 비슷한 추미림
작사로 해서 노래가 계속해서 불렸다. 월북작가의 노래가
해금되면서 이 노래는 처녀림이 박영호의 예명으로
밝혀지면서 박영호 작사로 불린다.
첫댓글 친절한 안내 감사함니다
한번 찾아 가 보고싶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