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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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토플 시험을 봤다.
대기실에서 기다릴때 즈음부터 나의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불타오르는
자신감이 내 온 몸을 휩싸고 돌았지만 가까스로 내 자신을 억제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전날에 고해커스닷컴 이란 곳에서 토플 후기를 보다가 중2 짜리가 111점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물론 나의 직독직해 능력 덕분에 자세히 읽지는 않고 요점만 파악했다. '아 중 2
짜리가 두달 공부해서 111점이라?' 라는게 내가 직독직해한 핵심 내용이었다.
중2짜리가 두달해서 111점 맞았는데 대딩이 3일 공부해서 50점 못맞겠어? 하는 생각 때문에서인지
왠지 토플이 무척 쉬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부풀어오르는 희망을 가득 안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부터 잠에서 깨어났다. 창 밖에서는 상쾌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아침의
맑은 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의 감성을 자극했고 나는 개똥지빠귀와 함께 아름다운
육성의 하모니를 노래하며 섭씨 마이너스 5도씨의 물로 샤워를 했다.
터벅터벅 집 밖을 걸어나오며 가벼운 발걸음에 콧노래를 불렀다. 대로변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줄줄이 서 있는 택시들이 애타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호쾌하게 차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선린 인터넷 고등학교로 갑시다.'
택시 기사는 그곳이 어딘지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선린고등학교는 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그것일
거라고 그 순진한 택시기사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가 과거에 선린고등학교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평소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써는 그것을 추측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 능력이라면 영어 듣기 평가 때 몇 문장을 놓쳐도 답을 맞추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나는 나 자신에게 감탄하며 그렇게 고사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도착한 선린 인터넷 고등학교, 그곳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과도 같았다. 수천 번은 걸어야만
오를법한 높다란 계단은 나에게 다소 육체적인 피곤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때까지 컨디션에 별다른
문제는 느끼지 못했다.
대기실에 도착했다. 나는 G실이었다. 처음에 D-13번으로 잘 못 받았다. 진행요원이 내가 G 라고
했는데 D 라고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은 이래서 문제이다. 영어를 자의적으로 듣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게 문제이다.
입실했다. 삐걱삐걱 미끄덩 미끄덩 둔탁한 마찰음이 나의 귓전에 울렸다. 고사실의 분위기는 다소
어지러웠다. 나는 17번이었다. 15번하고 16번 다음으로 웹캠을 찍게 되었다. 웹캠을 찍던 16번 여성분,
그래도 사진을 찍는데 부스스한 머리 모양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는 그 불굴의 정신! 하지만 난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 그냥 찍었다.
시험이 시작됐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처음의 리딩 석션(섹션이 아니라 석션이라고 써야 맞나보다)
은 해석하기 어려웠다. 4년동안 영어와 담 쌓은 결과일까? 그래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열심히
봤는데... 물론 사진만... Passage 가 뭔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런대로 풀어냈다.
리스닝 석션 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감독관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의 마찰음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듯 했다. 계속해서 내 주위를 서성이며 나의 컴퓨터를 좌우로 흔들었다. 짜증이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솔솔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그냥 한번 보는 건데 뭘.' 하는 생각으로 참았다.
새 이야기도 나오고 뉴런 이야기도 나오고 ID분실도 나오고 여기서 말하는 더미란게 많이 나온 것 같다.
근데 난 열심히 풀었다. 감독관은 아마도 더미를 열심히 푸는 나의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껴서 이
불쌍한 어린양의 주위를 서성였는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이다. 잠시 쉬었다. 화장실에 가서 내 마음의 고요를 분출했다.
스피킹 석션이 시작되자마자 어디에선가 불협화음의 심포니가 울려퍼졌다. 고사실은 온통 영어
발음의 전시장이 되었다. 한국 토종 발음도 있었고 원어민 발음도 있었고 중간 발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옆자리에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던 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 소녀는 그야말로 사쿠라지마의 활화산이 폭발하는듯한 엄청난 분출력으로 화려한
영어 문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을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다만 그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스피킹의 물결은 쓰나미처럼 내 머릿 속의 해변에 몰려와, 열심히 토닥토닥
자그마한 영어 문장 오두막을 짓고 있던 나의 뇌세포들에 심한 타격을 주었다는 것 밖에 할말이 없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소녀, 스피킹 소녀의 앳된 입술에서 주구장창 뿜어져 나오는 그 강력한
잉글리쉬의 소용돌이란, 그 파괴력이란, 토플 초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나는
곧 말문을 잃었다. 곧 나의 스피킹 석션도 시작되었지만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열심히
집을 짓고 있던 나의 영어 뇌세포 인부들이 스피킹 소녀의 강력한 쓰나미 공격에 휩쓸려버렸기
때문이다. 망망대해를 헤메고 있을 나의 몇 안되는 영어세포들을 생각하니 안구에 눈물이 이과수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급히 구조대를 보내 나의 분신들을 주워담으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스피킹 석션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은 라이팅 석션, 라이팅 석션에서도 스피킹 소녀의 실력은 빛을 발했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600~700타에 가까운 스피킹 소녀의 손놀림은 98년부터 나우누리 블루베리
타자방을 통해 단련했던 나의 타자 실력을 초월하고도 남았다. 나는 한글로 600~700 타를 치는데
스피킹 소녀는 영문으로 600~700타를 치고 있었다.
이른바 '떡실신' 나는 완전히 스피킹 소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사실 거의 반은 그저 궁금해서
보러온 것이었을 뿐이지만 열심히 하고 싶었다. 스피킹은 한 두 마디에 불과했지만 라이팅은
그럭저럭 쓰긴 했다.
스피킹 소녀여! 이것은 물론 핑계일지언즉슨, 나의 실패는 나의 부끄러움, 그것은 본인 능력의
부재로 인한 것이었음을 충분히 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 스피킹 소녀의 화려한 영어놀림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한 청년 군상의 슬픔을 그대는 알랑가 모를랑가?
아아, 슬프도다! 이 세상이 나에게 내려준 시련은 더도 말고 딱 하나 뿐이다. 그것은 토플!
토플은 나에게 끝없는 눈물의 소산이요, 혼란의 근원이도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물론 방바닥이 따뜻해서 그랬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집에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 이 심야에 해커스VOCA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쓸데없는 일기나 쓰고 있는 셈이다. 이 일기는 내가 시험을 볼 떄마다 계속될 것이다.
나는 돈이 많다. 아니 우리 부모님이 돈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서울에
집살 돈은 없다. 그런데 한달에 한번 토플 시험볼 돈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볼 생각이다. 끝
첫댓글 발성영어 시작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분 다음일기 궁금해요
근데 왜 토플시험을 보시는 건가요? 유학? 열심히 도전하시고 꼭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 뒷이야기도 올려주세요.
토플을 보지 않으면 유학 자체를 못 갑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최소 점수는 다 다르지만 일단 처음으로 유학을 가면 토플을 꼭 봐야 해요. 하지만 미국에서 고등학교 때 유학가서 거기서 졸업하고 대학을 갈 경우엔 토플이 필요 없답니당.
아 조낸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언어영역 푸는 거 같아.......ㅋㅋ
도대체 누굴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떡실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정말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