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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단기2538년/AD205}을유, 4월, 진서장군 <주설>에게 명하여 <서안평>을 정벌하게 하였더니, <평호>에서 싸우다가 장군 10명이 죽었다. 7월, <주곡>을 진서대장군을 삼아 <서안평>을 정벌하여 빼앗았다.
첫댓글 서안평에 대해서는 현재 학계의 정설은 단동 부근이라고 합니다. 압록강 하구 의주 맞은편에 있는 박작성(호산성) 인근에서 안평(安平)이란 글자가 새긴 기와가 나왔는데, 이를 기준 삼아, 이보다 서쪽인 단동 지역을 서안평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서안평이 이곳이 아니라, 요하 하구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동천왕이 242년 요동 서안평을 공격하자, 곧 위나라의 반격을 받게 되는데, 이 사건의 정황상 압록강 하구보다는 요동쪽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을 가진 논문이 나온 적이 없어서, 아직은 개인적인 추론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서안평이 요하 하구일 가능성에 동의합니다.
박노석(2016) <고구려의 서안평 점령의 의미> 건지인문학 제17집
10년 전에 그런 견해가 나온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