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상
조용숙
수원역 24시간 편의점에서
좀 이른 저녁을 먹는다
밥상 위에 차려진 저녁 메뉴는
컵라면 하나
나보다 조금 먼저 젓가락을 든
노숙자 옆에서 컵라면 포장을 뜯는다
단단히 뭉쳐진 면발을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대는 그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내 라면에도 뜨거운 물을 붓는다
뜨거운 물에 바로 풀어지는 면발 앞에서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손바닥에 전해지는 컵의 온기로 녹여낸다
세상에 굽실거리기 싫어
거리에서 혼자 밥 먹는 날이 많았을 그와
아무 데나 함부로 고개 숙이기 싫어
세상 살아가는 일이 불편한 내가
먹으면서 서로 정이 든다는 가족처럼
어느새 많이 닮아 있다
—시집『모서리를 접다』에서
카페 게시글
시사랑
겸상/ 조용숙
이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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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13 13:1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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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컵라면에서도 잠언을 길어 올리는 시인이란....
시인이란 일상적인 것들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일종의 연금술사 인지도 모르지요. ^^
언제 컵라면 한 컵해야겠네요.
밖에서 경치 보면서 컵라면이 적당한 때가 왔네요.
시는 좀, 결론으로 달려간 느낌을 주네요.
컵라면의 몸을 퍼지게 하는 그 뜨거운 물... 그에 기뻐하는 우리들!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그 죽음으로 배를 채우고 누군가는 그 시에 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