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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은 당신이 유일한 사람이라는 거예요(자밀라 우즈).
“모든 물은 완벽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영원한 노력을 한다.” 는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책 “보이지 않는 잉크”의 저자로 미국 흑인여성)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가수인 자밀라 우즈 Jamila Woods(1989.10.6. 시카코 출신)가 따뜻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가자는 의향으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내 발자국은 처음과는 다를 것이라며 “물은 우리를 만들었습니다.”라는 그녀의 세 번째 앨범이 나오는데, 괴로운 인생길을 걷는 자기 자신을 수용하려는 연민을 부르는 개인의 필요를 돌보는 성장을 위한 영양제인 “작은 정원. Tiny Garden”, “Boomerang”, “좋은 소식. Good News”등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녀의 가사에 그 가치가 실려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는 한때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물이 항상 그것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물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The good news is we were happy once. The good news is water always runs back where it came from. The good news is water made us.” 자밀라 우즈는 이 노래에 대해 항복에 대한 교훈이자 계속해서 물에서 배우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적이나 반대자에 대한 저항을 중단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항복입니다. 젊은 여성가수가 이 노래를 하게 하는 동기가 항복에 대한 교훈이라니 대단한 성찰을 할 줄 아는 가수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항복할 줄 모르는 사람과 항복을 배우지 못한 현대인에게 참으로 좋은 소식으로 이 노래가 다가옵니다.
좋은 소식과 대비해 나쁜 소식은 자신의 내면을 바꿀 수 없게 하는 자신의 우유부단입니다. 내면의 적들과 친구가 되지 못하게 하는 우유부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하느님께 전화하여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푸른 하늘을 올려 보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 Good News”
좋은 소식은 당신이 유일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The good news is you're the only one.
좋은 소식은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The good news is no need to rush.
좋은 소식은 바로 뒤에 숨어 있어요. There's good news hiding right behind.
모든 짐. Every burden.
좋은 소식은 우리가 한때 행복했다는 거예요. The good news is we were happy once.
좋은 소식은 물이 돌아온다는 거예요. The good news is water always runs back.
어디로부터 왔는지. Where it came from
좋은 소식은 물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The good news is water made us.
* 나는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가져요. I take it back, the words I said
내 머리, 머리 위에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요. That cast a cloud over my head, head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올 거예요. I'll make it back to where I been
그때 내 발자국이 다를 거예요. My footprints will be different then, then
내 자신을 비난해도 되돌릴 수 없어요. Can't rеwind, blame it on myself
거룩한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요. Call divine, asking for my hеlp
푸르고 회색하늘들이 나를 계속 올려다 보게 해요. Blue gray skies keep me looking up
기다리는 중. Standing by
2. 나쁜 소식은 나의 우유부단함(불분명함)이예요. The bad news is my indecision
잔인하게 내 마음을 바꿀 수 없어요. It's relentless, I can't change my mind
내 안에서 발견되는 적들과 친구가 되라. Befriend the foes I find inside *
자밀라 우즈에게 영향을 끼친 이들은 Lucille Clifton, Gwendolyn Brooks, Toni Morrison 및 Frida Kahlo입니다. 이중 프리다 칼로(1907-1954. 멕시코. 화가)는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평생 고생하였고 의대생으로 예술가가로 전환하여 산 여성입니다. 멕시코의 자연과 유물에서 영감을 얻어 순수민속예술로 멕시코의 정체성, 탈식민주의, 성별, 인종, 계급에 대한 질문을 한 여성으로 자전적 요소와 사실주의와의 환상적인 결합을 시도했고 자신의 통증의 아픔을 그렸습니다. 그웬돌린 브룩스 Gwendolyn Brooks(1917.6.7.-2000.12.3.)는 “사촌 비트를 위한 의식”의 시로 유명하고 20여권의 저서를 내고 시로 퓰리처상을 최초로 받은 흑인 여성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표현하여 상처입은 이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작은 사고들의 색채와 관련된 편견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루실 클리프턴 Lucille Clifton(1936.6.27.-2010.2.13.)은 자기애와 신체의 긍정을 외친 시 “내 엉덩이에 대한 오마주. homage to my hips”오 유명하고, 뉴욕 버팔로 출신의 미국 시인이자 작가이자 교육자입니다. 1979년부터 1985년까지 그녀는 메릴랜드의 계관시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영향을 주신 분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방 걸레질로 방을 닦습니다. 아직도 청소기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걸레질을 합니다. 엎드려 걸레로 닦다 보면 이제는 손목이 아파옵니다. 침대자리를 호텔처럼 반듯하게 이브자리를 펴 놓고, 옷가지들을 차곡하게 개어놓고 세탁기에 빨래할 옷들을 넣고 돌립니다. 아침에 이렇게 매일 한 시간 정도를 걸려서 일을 하고서 하얀 거실에 누우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어제 깨끗이 방 청소를 했으니 오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대해서 그럴 수 있지만 다시금 걸레질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방을 훔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안창호선생님이 미국생활을 하실 때 보이지 않느 곳까지 깨끗이 하셨다는 초등학교 때 읽었던 위인전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방을 깨끗이 하시던 모습과 안창호선생님의 깨끗이 하신 청소가 제가 방을 깨끗이 걸레질을 하는 것과 늘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화학을 공부하는가?”라는 일반화학시간에 한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비누의 발견으로 인간이 수많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화학을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병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전사의 생각을 늘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사제가 되어서도 이러한 전사의 인식이 변하지 않았고 운동하면서도 그 전사의 인식이 더 단단하게 자리잡은 듯 합니다. 너무 병적으로 병균과 싸운다는 계몽주의적 사고로 사는 게 아니냐는 도반의 지적에 대해서 아마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걸레질을 지금도 계속합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제 스스로 몸운동도 한다는 명분으로 대체되기도 하면서도 걸레질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밥을 물리고 나시어 일어나시면 할아버지 앞에 있었던 귀한 반찬을 할머니는 손자인 제 앞으로 갖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밥을 다 잡수시고 일어나시면 이후 어머니는 제 앞으로 반찬을 옮기셨습니다. 동네 큰 잔치에서도 어르신들이 물러나시면 아이들 앞으로 귀하고 맛난 음식을 아이들 앞으로 다시 상을 재배치하시는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도반에게 반찬들을 늘 재배치하는 중입니다. 도반의 손이 닿는 거리에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늘 들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도반의 지적의 말을 잘 들어야 편할텐데 아직도 잘 듣지 아니하는 제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반찬을 더 가까이 놓으려는 의향이 어색하게 보이는 도반입니다. 제가 도반의 그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과거의 삶에서 아무것도 가져오고 싶지 않은 가난하게 산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정도가 되니 가난하게 산 사람을 자신의 삶에서 조금 정도라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했으면 과거의 가난에 대해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산다고 말을 했을까? 과거의 가난한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과거를 잊으려고 아예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니 가슴이 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걸으면서 주님께 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미 제 몸이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라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하여 자신의 몸의 기억까지 버리고 싶은 의향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가난의 비참함과 가난했기에 포기하는 자신이 싫어서 그랬든지, 가난으로 인해 너무 심하게 아파서 그랬던지 그 알지 못하는 슬픔이 제게 깊이 다가온 시간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가난햇던 어린 시절을 경험한 한 어른의 말이 제 귀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한 개인과 한 개인이 만나 평행선을 그리며 사는 것이 가정이 아닙니다. 한 개인이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유일성을 존중하며 살 때 각자 다르게 살지라도 일치하는 점으로 성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성령으로 각자 다르게 사는 삶을 풍요하게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일치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에 평행선이라는 차원을 넘어서게 합니다. 성부는 우리에게 믿음을 지니게 하고 성자는 삶의 본을 보게 하고 성령은 각자의 삶을 활성화하면서 일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고자 하기에 일치가 아닌 평행선으로 가정을 인식할지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자기 색깔보다 상대방의 색깔을 더 드러내려고 하는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아직 시간이 안 와서인지 아니면 그 시간을 당길 수 있지만 게으름으로 당기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께 전화로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사는 방식과 태도를 새롭게 배치하는 작업을 수시로 했습니다. 삶의 재배치 작업을 멈추면 현실이 주는 감옥에 영원히 갇힐 것 같아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러한 재배치 작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이 너무 많아 삶을 재배치하는 작업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잠시간 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재배치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과 고됨과 힘겨움이 제게 늘 붙어 다니는 삶이어서 삶의 재배치 작업을 멈추지 않게 된 것입니다. 결국 삶의 재배치 작업으로 어느 시간에 연약한 담장 벽을 무너뜨리기도 하여 탈출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감옥의 담장을 무너뜨린 적이 있기에 이를 자신의 삶의 방향과 삶의 목적이 되어 자기 자신이 되는 자유를 경험하면서 궁극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습니다.
하느님은 한계가 없고 끝이 없고 억제되지 않는 성령을 제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제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존의 제도에서 유익을 얻는 이들과는 다른 양식으로 사는 제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다르게 사는 양식을 사람들에게 보여줘 힘을 주니까요. 그때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고요. 제가 이상한 사람인 것은 맞습니다. 기존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야 연약한 우리 교회가 살 것이니까요. 한발 더 나아가 “저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야”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기에 안심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더 용기있게 살았더라면 그 말도 들렸을 것입니다. 저의 용기없는 삶이 하느님 왕국에 대한 정신나간 사람처럼 살지 못했다는 자체적인 평가를 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수시로 예언자처럼 살라고 제 가슴의 귀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라는 말이 미래를 단지 안다는 의미가 있다면 오래된 언어로 선지자라는 말이 더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먼저 산 지헤있는 사람이라는 선지자란 말이 더 적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지자 내지 예언자로 살지 못하여 늘 하느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매일 밤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침대에 두 손을 올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용기를 갖지 못하여 후회한 인생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 부족하게 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이 저를 자꾸만 붙잡습니다. 나쁜 소식이라는 것이 우유부단함과 불분명함으로 살 때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게 가장 부족한 것이라면 용기부족입니다. 그러니 지혜를 갖춘 용기를 제게 부어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게 되는 아침입니다.
오늘이 제천 곰바위에 사시는 누나의 생일입니다.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최고의 꿈으로 하느님이 보내주신 큰딸인 장녀로 태어난 우리 네 동생들의 누나이자 언니입니다. 엄마와 네 동생들 모두가 심정적으로나 삶에서나 누나에게 의지합니다. 자형이 퇴직하셔서 귀향하심에 따라 누나도 함께 제천 곰바위에 내려가신 것입니다. 열 가정도 안 되는 작은 동네 곰바위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조청을 만들어 서로를 살게 만드시는 누나이기도 합니다. 누나의 두 아들이니 제게는 두 조카인데 듬직하고 마음씨가 선하여 늘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시집의 구남매 큰며느리로 시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친정 오 남매를 잘 보살핀 누나의 선한 삶으로 남편과 두 아들과 복있게 지내게 하느님이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돈 잘 버는 의사 며느리를 택하지 않고 마음씨 좋은 며느리를 맞이한 누나는 노후가 더 복있게 삽니다. 세례성사를 받을 때 입은 하얀 옷을 입은 두 조카의 모습이 사진으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곰바위에 사시는 누나에게 처음으로 포도 한 상자를 생일선물로 부친 것입니다. 자형과 누나가 가장 좋아하는 포도라며 고맙다는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생일을 못 챙긴 죄송함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물 흐르듯이 복이 흐릅니다.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복이 흐르는 하느님 왕국 가정을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우리 성교회의 복이 넘쳐 세상 사람들에게 흘러가기를 비는 아침입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