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그린 그림이 겨우 5,000달러에 팔릴 정도로 평생을 무명으로 살아왔던 화가 스캇 칸(Scott Kahn).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매튜 웡(Matthew Wong)을 만난 게 그에게는 다시 없는 호기(好期)이자 눈부신 햇살 속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었으니...
미국이나 유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로의 한 형태인 막다른 골목(dead end street)은 우리 말 그대로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끝이 있는 골목이 아니라,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끝 부분에서 회전할 수 있는 곳으로 끝이 없는 도로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칸은 막다른 곳에 사는 무명화가였지만, 그 끝이 따로 없는 무한의 영역에서 사는 게 아니었을까?
기회는 실로 우연히 찾아온다는 게 맞는 말인지, 무명작가였던 칸이 뒤늦게나마 이름을 드높이게 된 건 후배와의 뜻하지 않은 우정 덕분이었다던데...칸이 실로 우연히 캐나다 작가 웡과 연락을 주고 받다 서로간의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고 그를 자신의 작업실이 있는 뉴욕으로 초청했는데, 웡은 칸의 작품들 중 하나인 Cul-De-Sac을 사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나 뭐래나.
이때부터 칸의 그림들이 수집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데다, 특히 아시아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웡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바람에 웡의 작품과 흐름이 유사했던 칸의 그림들이 덩달아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라 하겠거니...
당초 칸은 독학으로 추상화를 시작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게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이를 포기하고, 롱아일랜드로 이주하여 4년 여에 걸쳐 은둔하면서 사실주의 경향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후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그럴 듯한 작업실도 없이 사촌의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자니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자 그는 상상력, 꿈, 그리고 기억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해서리 뉴욕에서 그린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다락방에서 내다 본 그림들이었고, 실제 그림 제목도 '다락방(attic)'이란 단어가 든 작품이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 즈음 운명적으로 웡을 만나게 되고 한낱 무명화가에 불과했던 칸의 작품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만남을 두고 혹자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위대한 만남(Great Expectation』과 비슷한 이야기라고 하기도 하는데...시골 소년 피프가 탈옥한 죄수 매그위치를 도와주면서 그의 물질적 지원을 받아 마침내 런던 사교계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칸에게 있어서 웡은 칸의 입신양명을 위해 결정적으로 도와준 은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