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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야화 - 구마온의 마녀(魔女)(상) - (글 : 김왕석)
1930년 전후만 해도 인도에서는 매년 수만 명의 사람이 각종 동물들의 습격으로 죽었다. 코브라 등 독사에세 물려 죽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으나 범 표범 등 고양이족에게 잡혀먹히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산림지역에서는 어디서 누가 뱀에게 물려 죽었다거나 범이나 표범에 물려갔다는 이야기는 일상적인 화제였다. 그들에게는 그런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그 많은 인구가 어떻게 먹고 사느냐가 문제였다.
인도에서 일부 범이나 표범들이 사람을 밥으로 삼고 날뛸 수 있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건 인도사람들에게는 총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도를 식민통치하고 있던 영국관리들은 인도인들이 총을 갖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다. 독립운동을 막기 위한 식민지 통치방법이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창과 칼 또는 활로 범과 표범들과 싸웠는데 그런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50명 내지 300명으로 구성되는 대규모 범사냥을 예외로 하면 인도에서의 사람과 범의 싸움은 언제나 범쪽이 이겼다.
코끼리들까지 동원되는 대규모 범사냥에서는 많은 범이 잡히기는 했으나 범에 의한 인명피해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 사냥에서 잡히는 범이란 대개의 경우 식인범이 아닌 선량한 범들이었다.
식인범은 그런 사냥으로는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쉽게 몰이꾼들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으며 때로는 되레 사람을 물어가기도 했다.
인도의 식인범 중에는 5년 동안에 150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놈도 있었다.
열흘에 한 명씩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그놈은 사람고기 외에 다른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그리고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놈이 5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고 계속 사람사냥을 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식인범에게는 현상금이 붙어있었으나 현상금을 노리는 사냥꾼들은 별로 없었다. 식인범은 그런 사냥꾼들을 비웃듯이 날뛰고 있었다. 사냥꾼 자신이 식인범의 밥이 되는 수도 흔했다.
150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범에게도 막대한 현상금이 붙어 10여 명의 사냥꾼들이 그놈을 쫓아다녔으나 헛수고만 했다. 그 범이 잡힌 것은 너무 늙어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이었다. 놈은 장마때 비를 맞고 돌아다니다가 몸이 쇠약해져 사냥꾼이 접근하는 걸 몰랐다고 한다. 놈은 잠을 자다가 눈도 뜨지 못하고 사살되었다.
그러나 살인범은 그 범뿐만이 아니었다. 그 범이 죽은 다음해에 네팔과의 국경지대인 구마온지방에 또다른 살인범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그 범을 『구마온의 마녀』라고 불렀다.
일부 주민들은 구마온의 암펌을 범과 표범 사이에서 태어난 짐승이라고 주장했으나 근거없는 주장이었다. 다만 그 암펌은 표범처럼 영리하고 민첩했으며 잔인하기도 했다.
강대한 힘을 갖고 있는 범이 표범의 특징을 겸해 갖고 있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그 암펌은 표범처럼 소리없이 돌아다니며 사람사냥을 하였다.
반 년 사이에 벌써 20여 명이 희생되었다.
구마온의 마녀가 유명해진 건 1931년 5월 중순이었다. 5월 중순이라면 그곳에서는 가장 더운 시기였다.
그날 구마온지역 산림보안소 사무소에서도 직원들은 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기에 선풍기도 없었으며 모두들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산림보안관은 인도총독부에서 출장나온 상관을 모시고 그날밤 파티를 열 계획이었으나 밤이 되어도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아 보안관의 관사는 찜통처럼 무더웠다.
그래서 보안관은 계획을 바꿔 사무실 앞 초원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다. 상관과 그의 비서도 그걸 좋아했다.
상관의 비서는 금발의 미녀였으며 아주 명랑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우물속에 냉장되어 있던 맥주를 서너 잔이나 마셨다.
맥주를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체내의 수분을 배출시켜야만 했다. 그녀는 1백 m나 떨어진 사무실까지 걸어가서 화장실을 사용하는게 귀찮았다.
여자라고 해서 남자들처럼 간편하게 볼 일을 볼 수 없다는 법도 없지 않느냐. 그녀는 인근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그때 숲속엔 산림보안소의 남자직원 한 사람이 볼 일을 보고 있었기에 금발의 미녀는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남자직원도 그걸 보고 혼자 웃었다.
그런데 그날밤 파티기 끝날 때까지 여비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숙소로 정해진 곳으로 사람을 보내봤으나 그곳에도 없었다.
남자직원은 그제야 한 시간쯤 전에 숲속에서 그 여비서를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숲속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남자직원이 있었던 곳에서 불과 15 m쯤 떨어진 풀속에 핏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큰 고양이의 발자국이 있었다. 발자국은 표범의 발자국보다 한둘레 컸다. 암펌의 발자국이었다.
암펌은 그곳에 숨어있다가 여비서가 오는 걸 보고 덮쳐들었다. 여비서가 비명 한번 못지르고 죽은 건 범이 목줄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암펌은 여비서를 죽인 다음 불과 15 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남자직원도 모르게 시체를 끌고 갔다. 암펌은 시체를 5 Km나 끌고 가 아주 안전한 산림속에서 처리했다.
체중이 50 Kg이 넘는 사람을 한끼의 식사로 먹어치웠다. 남아있는 건 붉게 물든 한줌의 금발과 몇 개의 뼈뿐이었다.
더 상세한 조사가 실시된 결과 그 암펌은 원주민들이 구마온의 마녀라고 부르는 식인범임이 밝혀졌다. 원주민들은 벌써 한 달전부터 그 식인범을 잡아달라고 몇 차례나 진정하고 있었는데도 산림보안관은 그때까지 제대로 추적도 해보지 않았다.
산림보안소가 발칵 뒤집혀졌다. 하필이면 그 암펌이 상관의 비서를 잡아먹을 줄이야.
다음날 새벽 보안관이 직접 총을 들고 암펌의 발자국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산림보안소 소속 백인 사냥꾼 한 사람과 인도인 보조원 네 사람이 보안관을 따라갔다.
그들은 나흘 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보안관은 독이 있는 가시나무에 찔려 들것에 실려 운반되었다.
그 식인 암펌은 주민들이 산림보안소에 제출했던 진정서에 의해서도 이미 열 명 이상의 원주민들을 해쳤는데 산림보호소는 그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다가 백인 여자 한 사람이 희생되자 갑자기 야단법석을 치기 시작했다. 산림보호소는 암펌의 행적을 조사하고 현상금을 걸었다. 그리고 위험지역에 있는 민가들에게는 이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산림보안소는 또한 그 지역 삼림에서 원숭이들의 생태연구를 하고 있던 리치박사와 미라여사에게도 철수를 하라고 요청했다. 물론 범 한 마리 때문에 연구를 중단하고 물러설 리치박사가 아니었다.
리치박사는 단호하게 철수명령을 거부했고 산림보안소 측은 강제로 철거시키겠다고 경고했다. 산림보안소 직원은 사흘 내에 자진 철수를 하지 않으면 강제철거하기로 하고 상부에 보고를 했다.
그러나 산림보안소 직원들은 산림 속에서 원숭이들과 같이 생활을 하고 있던 그 학자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뉴델리에 있던 인도총독부 산림국장은 리치박사의 동물연구소를 철거하겠다는 현지 산림보안소장의 상신을 기각했다. 보호는 못해줄망정 철거가 웬말이냐는 질책이었다.
산림국장은 리치박사를 잘 알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캡틴 강(姜雄起·강원도 출신, 한국계 귀화인 영국왕실박물관 직원·1882 - 1949)도 알고 있었다. 캡틴 강은 10여 년 전에 인도에서 현상금이 붙어있던 식인범을 잡은 일이 있었는데 국장은 그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산림국장은 현지 산림보안소장을 캡틴 강에게 보내 식인범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했다. 캡틴 강은 그 의뢰를 받아들였다.
리치박사나 미라여사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 암펌을 잡아야 했다. 10여 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암펌을 그냥 둘 수가 있겠는가.
캡틴 강은 암펌을 잡아달라는 현지 주민들의 진정서를 검토했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마을을 다니면서 조사도 했다.
그 결과 암펌이 잡아먹은 사람들은 20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 년동안 20 명을 잡아먹었으니 평균 9일에 한 명씩을 잡아먹은 꼴이 된다.
구마온의 마녀라는 별명을 지닌 그 암펌은 정말 무서운 식인귀였다. 마녀는 사람고기만 먹고 사는 범이었다.
마녀의 영토는 구마온지역의 동북부 일대였다. 그곳은 해발 5백 m가 넘는 고지였으며 2천 m가 넘는 바위산들도 있었고 나무들이 총총히 들어선 삼림도 있었다.
주민들의 마을은 삼림 안에도 있었고 바위산 중복에도 있었다. 그들은 그런 곳에서도 밭을 일구어 살고 있었으며 범이나 표범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영국인들은 주민들이 총을 갖는 것조차도 금지했다.
캡틴 강이 조사해보니 구마온의 마녀는 거의 밤에만 사람들을 습격했다. 마녀는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이용했다. 길을 따라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녀는 그렇게 해서 마을을 찾아내면 마을 안까지 들어갔다.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 암펌에게 발견된 사람이 희생되었다.
암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마을 안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도 밥이 되었다.
그 암펌은 사람을 습격할 때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포효소리는 물론 적을 위협하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암펌은 벙어리처럼 침묵하였다. 사람사냥에는 소리가 필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암펌은 또한 발자국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무처럼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소리없이 돌아다녔다.
암펌은 스스로도 소리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도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소리를 내는 목줄부터 물어 비틀어버렸다.
구마온의 마녀는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나타나 소리없이 사라졌다. 사람의 시체를 물고 ….
암펌은 언제나 밤에만 사냥했으나 예외도 있었다.
사냥꾼이 추적해오는 경우였다.
암펌이 미스러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촌장 아들을 물어갔을 때 촌장과 다섯 명의 사냥꾼들이 그 뒤를 추격했다.
아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한 촌장은 나흘 동안이나 범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나흘 동안을 추적당한 암펌은 배가 고팠다. 이번엔 마을까지 원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 사냥꾼들은 험한 바위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범의 발자국만 보고 산정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암펌은 그때 그들의 등뒤에 있었다.
교활한 마녀는 어느새 뒤로 돌아서 자기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을 역사냥 하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그것도 모르고 산정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산너머 아래쪽을 살폈다.
범은 없었다. 그들은 다시 발자국을 추적하다가 비로소 발자국이 옆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사냥꾼들은 크게 놀라 등 뒤를 살폈는데 자기들의 뒤를 따라오던 촌장이 없었다. 큰소리로 불러봤으나 대답도 없었다.
사냥꾼들은 자기들의 발자국을 따라가 봤다. 핏자국이 있었고 범의 발자국도 있었다.
촌장은 10 m이내의 거리를 두고 사냥꾼들의 뒤를 따라왔는데 암펌은 소리없이 그를 물고 가버렸다. 암펌은 부자를 모두 잡아먹은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세 개의 마을이 합동하여 암펌을 잡으려고 했다. 모두 쉰 명 이상의 장정들이 동원되어 암펌이 쉬고 있는 산을 온통 포위했다.
장정들은 창과 그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두 마리의 코끼리도 동원되었다.
거대한 코끼리들은 믿음직스러웠다. 범사냥의 경력이 있는 코끼리들이었으며 자신있게 범을 몰고 있었다.
사실 범이 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코끼리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범이 덤벼들면 코끼리는 긴 코로 범을 후려쳤다.
범이 설사 그 코를 피해 접근을 했을 경우에도 3 m나 뛰어올라 급소인 목줄을 물 수는 없었다. 코끼리는 접근한 범을 발로 밟아죽였다.
범이 새끼 코끼리를 잡아먹는 경우는 있었으나 성장한 코끼리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잘 훈련된 코끼리는 범을 겁내지 않았다.
그때도 두 마리의 코끼리는 남쪽과 북쪽에서 범을 몰았고 서쪽과 동쪽에서는 쉰 명이 넘는 사냥꾼들이 빈깡통을 두드리며 몰이를 했다.
식인 암펌은 사람들과 코끼리들에게 포위를 당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사람들이나 코끼리는 모두 동작이 느리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중편에 계속) -
★ 수렵야화 - 구마온의 마녀(魔女)(중) - (글 : 김왕석)
- (상편에서 계속) -
암펌은 어느 풀밭에 숨어 있었다. 누렇게 마른 풀속에 숨어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몰이꾼들은 20 m 앞까지 가면서도 그걸 몰랐다.
범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출발때부터 벌써 전속력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나 코끼리들이 범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범은 코끼리와 사람 사이를 뚫었다. 범은 1백 m를 5 - 6초로 달릴 수 있었으므로 20 m의 거리 같은 건 눈깜빡할 사이에 돌파했다.
서너 개의 창이 날아갔으나 허공을 찔렀을 뿐이었다. 범은 안전권으로 달아자나 뒤로 돌아서 사람과 코끼리들을 비웃듯 보고 있었다. 그리고 꼬리를 떨어뜨리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래서 주민들은 몰이사냥으로 그 범을 잡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몰이사냥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그 범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캡틴 강은 카크탈이라는 인도인 한 사람을 조수로 채용하여 식인범 사냥에 나섰다. 카크탈은 30여 명이나 되는 지원자들 중에서 선발한 중년의 사나이였다.
캡틴 강은 조수를 선발할 때 카크탈의 다리에 주목했다. 튼튼했지만 상처투성이의 다리였고 발바닥이 짐승가죽처럼 두꺼웠다. 그건 그가 오래된 추적자라는 걸 의미했다. 약간 구부러진 어깨와 날카로운 눈도 그가 우수한 추적자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 카크탈은 20년 동안이나 짐승들의 발자국을 추적했던 사나이였다. 그는 서투른 영어로 자기는 다른 사냥꾼들의 서너 배 몫의 일을 할 수 있으니 배 이상의 보수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캡틴 강은 그가 요구하는 보수를 한푼도 깎지 않았다.
캡틴 강은 그를 데리고 지르지라는 자그마한 마을을 찾아갔다. 지르지 마을에서는 반 년 동안에 10여 명의 주민들이 맹수에게 살해되었고 물소 양 등 가축 50여 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가장 피해가 심한 마을이었다.
캡틴 강은 암펌에게 피해를 입은 마을들을 지도에 기입하여 조사한 결과 지르지 지역이 그 중심이라는 걸 알아냈다. 암펌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캡틴 강은 그 마을에 도착하지 왜 암펌이 그곳을 중심으로 삼았는지 의문을 쉽게 풀었다. 마을의 서북쪽에는 험한 바위산들이 있었고 그 산기슭에는 나무들이 울창한 삼림이 있었다. 범이 활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의 곳이었다.
마을에는 약 50채의 집들과 2백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주민들은 모두 가난한 것 같았다. 다른 마을들과 격리된 마을이었으며 생활필수품을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200여 명의 인구에서 반 년 동안에 10여 명이 맹수에게 살해되었다고 하니 그대로 두면 몇 년 내에 모두 죽을 게 틀림없었다. 그들은 캡틴 강이 도착하자 땅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마을 촌장은 열두 살짜리 소녀와 그녀의 남동생 둘을 데리고 왔다. 소녀의 어머니는 두 달 전에, 아버지는 한 달 전에 식인 암펌에게 잡아먹혔다고 했다.
긴 속눈썹에 둘러싸인 커다란 눈을 가진 예쁜 소녀였다. 소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캡틴 강은 소녀에게 약간의 돈을 주면서 부모의 원수를 꼭 갚아주마고 했다. 소녀는 세 번이나 엎드려 큰절을 했다.
캡틴 강은 그날밤 그 마을에서 잠을 잤는데 바로 다음날 아침 또 사고가 일어났다.
새벽에 물소를 몰고 밭으로 나갔던 주민 한 사람이 고함을 지르면서 마을로 뛰어들어왔다. 식인 암펌이 물소를 몰고 갔다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식인 암펌이 제발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캡틴 강은 마을사람들에게는 마을 안에서 꼼짝말고 있으라고 지시한 다음 카크탈을 데리고 나갔다. 카크탈은 용감한 사냥꾼이었으며 식인범이 나타났다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캡틴 강은 그를 불렀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캡틴 강은 마을에서 2 Km쯤 떨어진 황무지를 가리켰다. 그곳엔 열서너 마리의 독수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황무지엔 잡초가 우거져있어 망원경으로도 범이나 물소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캡틴 강은 망원경으로 주위의 지세를 살펴봤다.
사냥을 하기엔 아주 고약한 지형이었다. 서북쪽에 있는 바위산들은 등산기구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험했다. 거대한 바위들로 되어있어 한 발만 실수하면 수십 m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쪽으로는 갈 수 없었다. 범이 그 바위틈에 숨어있을 것 같았다.
캡틴 강은 독수리들이 날고 있는 잡목림을 살펴봤다. 독수리들이 땅에 내려앉기도 하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그곳엔 범이 없었다.
캡틴 강은 마을에서 똑바로 황무지로 가지 않고 우선 서남쪽의 협곡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협곡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황무지의 동쪽으로 올라갔다.
풀속에 엎드려 기어서 황무지 인근에 있는 잡목림으로 나왔다. 독수리들은 황무지쪽만 보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캡틴 강은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10 m쯤 올라가 망원경으로 황무지쪽을 살펴봤다. 물소의 시체가 보였다.
아랫배가 찢겨져 있었으나 다른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범은 내장만 먹어치우고 다른 부분은 남겨둔 것 같았다.
좀 이상했다. 범은 한끼에 보통 30 Kg쯤의 고기를 먹는 법이었는데 왜 다른 부분은 먹지 않았을까.
독수리들도 이상했다. 물소의 시체가 내버려져 있는데 왜 그곳으로 가서 먹지 않는 것일까.
독수리가 그곳에 가지 않는 이유는 알만했다. 물소를 죽인 짐승이 그 인근에서 먹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짐승은 조만간 나머지 먹이를 먹기 위해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나무 위에서 그곳까지는 약 50 m의 거리였으며 충분히 총을 쏠 수 있었다.
캡틴 강은 기다렸다. 자리가 편치 않아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으나 그런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머리 위로 올라와 이글거리는 햇볕도 참을 수 있었다.
식인범의 발자국을 따라 몇 날 며칠 아니 몇 주일 동안이나 돌아다니는 것에 비하면 하루종일 기다린다 해도 억울하지 않았다.
황무지와 그 주위 산림들은 오후가 되어도 조용하기만 했다. 독수리들도 그저 물소의 시체를 보고만 있을 뿐 접근하지 못했다.
하오 두 시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물소의 시체가 움직였다. 분명히 엎어져 있던 시체가 뒤집혀졌고 다리가 벌어졌다.
누르스레한 물체가 보였다. 긴 꼬리와 대가리가 보였다. 그러나 캡틴 강은 크게 실망했다. 누르스레한 짐승은 줄무늬가 아니라 점무늬였다. 범이 아니라 커다란 표범이었다.
그래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 짐승이 물소의 내장만 먹고 다른 부분을 먹지 못한 이유도 풀렸다. 표범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15 Kg 이상은 먹지 못했다.
독수리들이 먹이 가까이에 가지 못한 이유도 상대가 표범이었기 때문이었다. 표범은 먹이에서 가까운 것에 숨어있었을 것이었다.
범이라면 그런 쩨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꺼번에 30 Kg 이상 먹어치우고 시원한 곳으로 가서 잠을 잔 후 배가 고파지면 돌아오는 것이 범의 습성이다.
캡틴 강은 총을 들어올렸다. 식인범이 아니라고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식인범에게 잡아먹혔다고 생각하고 있는 희생자들 중에는 그 표범에게 희생당한 사람이 있을는지도 몰랐다.
캡틴 강은 방아쇠를 당겼다. 영국제 450구경 좌우 2연신 라이플이 불을 토했다.
킥하는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표범은 공중으로 길길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풀밭으로 떨어지더니 움직이지 못했다. 등에서 아랫배를 뚫고나간 총탄에 치명상을 입은 것이었다.
잡은 표범은 몸무게가 70 Kg이 넘는 수컷이었다.
표범치고는 이례적으로 큰 거물이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 중에는 그동안 사람들을 잡아먹은 짐승은 바로 그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영감은 두 달 전에 마을 어귀에서 아이를 물고 간 짐승은 틀림없이 그놈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를 잃은 소녀는 어머니와 함게 밭을 갈다가 눈앞에서 어머니가 범에게 끌려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캡틴 강은 식인 암펌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다음날 바위산으로 올라갔다. 해발 2천 m가 되는 높은 산이었으며 도처에 굴이 있었다.
캡틴 강은 그 굴을 하나하나 모두 조사했다. 곰의 굴도 있었고 표범의 것도 있었다.
캡틴 강은 그날 하오 짐승뼈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큰 굴을 하나 발견했다. 동굴안에는 사람의 뼈도 있었다.
그 동굴은 식인범이 드나드는 동굴임이 분명했다. 동굴 안쪽에 있던 뼈와 먹다 남긴 찌꺼기 등으로 봐서 식인범은 며칠 전에도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곳엔 범의 냄새까지 남아 있었다.
동굴 안쪽에 있던 뼈는 대부분이 사람뼈였고 먹다 남긴 찌꺼기는 곰의 것이었다. 곰의 껍질과 대가리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사람고기보다 맛이 없어 먹지 않았던 것일까.
그 곰은 그곳에서 1 Km쯤 떨어진 곳에 있던 동굴에서 살았던 것 같았다. 히말라야산맥에서 사는 검은 곰이었는데 덩치가 크고 성질이 거친 종류였다.
하지만 곰과 범이 그런 가까운 거리에서 공존할 수는 없었으며 둘중 하나는 죽어야만 했다. 범은 곰을 죽이고 자기의 영토를 확보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범은 무리생활을 하지 않고 단독생활을 하는 동물이었다. 고양이족 중에도 사자와 같이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도 있었고 치타처럼 암수가 같이 사는 동물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고양이족들은 단독생활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범은 고독하게 살았으며 어미범이 새끼를 데리고 있을 경우 외엔 언제나 홀로 다녔다. 매년 한번 번식기가 되면 암수가 만나 짧은 기간에 동거할 뿐 범은 홀로 떠돌아다녔다.
범은 먹이를 찾아 넓은 산림지역을 떠돌아다녔으나 일정한 거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배하는 영토가 워낙 광대했기 때문에 동굴에서 쉬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그래도 며칠에 한번 때로는 몇 주일에 한 번씩은 동굴로 돌아온다.
기후가 좋지 않거나 몸이 아플 경우엔 동굴에서 며칠 동안이나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암펌이 새끼를 갖고 있을 경우에는 새끼는 동굴에 있었고 어미범도 사냥을 할 때만 제외하고는 늘 동굴에 있었다.
그 식인 암펌도 언젠가는 동굴로 돌아올 것이었는데 캡틴 강은 그걸 노렸다. 캡틴 강은 동굴에서 50 m쯤 떨어진 곳에 있던 나무 뒤에 잠복장을 만들었다.
좀 거리가 멀기는 했으나 그만큼 범에게 발각될 위험이 적었다.
캡틴 강과 조수 카크탈은 나무 위에 앉아서 잠을 잘 수 있을 발판을 만들고 밤이슬을 막을 지붕도 만들었다. 그리고 암펌이 동굴로 돌아올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기로 했다.
캡틴 강이 꾸민 작전은 거의 완벽한 것이었다. 범의 생태를 알고 거기에 맞추어 만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넓은 지역을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는 범이 언제 집으로 돌아오느냐에 달려있었다. 캡틴 강은 이틀 동안 기다렸으나 범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마을 사람들 네 명이 허겁지겁 현장에 달려왔다. 식인범이 가까운 마을에 나타나 젊은 여인을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캡틴 강은 잠복을 중지하고 얼핏 그 마을로 달려갔다. 그가 계획을 바꾼 이유는 리치박사와 미라여사가 그 마을 인근 산림에서 연구조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캡틴 강의 가장 큰 임무는 두 학자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캡틴 강은 그날밤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들렸다.
리치박사와 미라여사도 마을에 있었기에 캡틴 강은 우선은 마음이 놓였다.
죽은 처녀는 전날 초저녁에 마을 어귀에 있는 방앗간으로 갔다. 초저녁이었으므로 방앗간에 불이 켜져 있었고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앗간 앞에는 가축으로 사육하는 물소들이 대여섯 마리나 있었다.
처녀는 물소들의 옆을 지나 방앗간으로 들어가려했는데 방앗간 벽에 몸을 붙여 엎드려 있던 식인범은 늘 하던 수법으로 대뜸 사람의 목줄을 노렸다.
식인범은 턱밑의 목줄을 노렸으나 처녀가 그 순간에 몸을 돌렸기 때문에 목덜미를 물었다. 범은 그리고 처녀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범을 발견한 물소들이 범에게 덤벼들었다.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물소들이 단결하여 범에게 덤벼드는 일이란 극히 드물었다.
물소들이 범에게 덤벼든 이유는 사람을 구출하려는 것보다는 자기들의 안전을 위한 행동이었다.
물소들 중에 아직 젖먹이 새끼가 두 마리나 있었는데 그 어미들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용감하게 범에게 덤벼들었다.
거기다가 물소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방앗간 안에 있던 사람들도 뛰어나왔다. 그중에 있던 처녀의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며 몽둥이를 들고 범에게 덤벼들었다.
식인 암펌은 물소떼들과 사람들의 반격을 받고 물러섰다. 범은 쓰러져있는 처녀를 내버려두고 산림쪽으로 도망가버렸는데 그 식인 암펌이 공격에 실패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새끼를 지키려는 물소와 사람들의 강한 본능이 범을 쫓아버린 결과가 되었다.
- (하편에 계속) -
수렵야화 - 구마온의 마녀(魔女)(하) - (글 : 김왕석)
- (중편에서 계속) -
마을사람들은 얼핏 쓰러진 처녀를 마을로 운반하고 인근 산림에서 조사활동을 하고 있던 리치박사와 미라여사에게 통지했다.
리치박사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병도 고칠 수 있는 해부학자였기에 그는 곧 수술을 했다. 처녀의 상처는 범이 목덜미를 문 곳뿐이었기에 어쩌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맥도 끊어지지 않았고 식도에도 상처가 없었다.
하지만 범의 긴 송곳니가 목뼈를 깊숙히 찌르고 있었다. 뼈를 부수고 들어간 송곳니가 신경을 파괴했다. 살인범의 수법이었다.
처녀는 눈을 멍하지 뜬 채 다음날 새벽에 죽었다.
처녀를 살리려고 온갖 치료법을 다했던 리치박사는 기진맥진했고 미라여사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리치박사와 미라여사가 처녀를 살리려고 산림 안에 설치된 관찰소를 떠나 마을에 와 있는 사이 식인범은 그 관찰소를 습격했다. 그 집은 관찰소라고 하지만 대나무로 비나 이슬을 막을 정도로 만든 엉성한 것이었으므로 맹수들에 대한 피난처는 되지 못했다.
식인범은 그 집안에까지 들어가 사람의 냄새가 스며있는 옷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만약 리치박사와 미라여사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처녀를 살리려고 마을에 온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결과가 되었다.
캡틴 강은 범이 처녀를 습격했던 현장을 조사했다.
처녀를 습격했던 범은 식인 암펌임에 틀림없었다.
범의 발자국 치고는 작은 것이었고 잠복하고 있다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는 수법도 같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범은 앞발 하나를 절름거리고 있었다.
그 범이 처녀의 턱밑 목줄을 물지 못한 이유나 물소들의 공격에 반격을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암펌은 왜 앞발을 절름거리는 것일까. 이유는 그날밤에 밝혀졌다.
그날밤 산림보호소에 근무하는 백인사냥꾼이 리치박사를 찾아왔다. 그는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여기 캡틴 강도 계시는구만요. 모든 것이 잘 되었습니다. 이젠 그 식인 암펌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가 없다니요 ?"
"이틀 전에 내가 그 범을 죽였으니까요."
"어제 밤에 여기에 나타났는데요."
그는 크게 놀랐으나 어젯밤에 나타난 건 그 식인암펌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리고 그 범은 틀림없이 자기가 죽였다고 주장했다.
산림보호소는 보름 전에 망신을 당했다. 리치박사의 연구현장을 철수시키려다 상부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캡틴 강에게 식인범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산림보호소는 그후 전직원이 식인 암펌 추적에 나섰다. 그들은 운좋게 암펌을 발견했다. 이틀 전 하오 늦게 어느 바위산으로 암펌을 몰아넣고 일제사격을 가했다.
범은 절벽 끝으로 몰려 뒤돌아섰다. 거리가 좀 멀기는 했으나 추적대는 한꺼번에 원거리사격을 했다. 그때 백인포수는 자기가 쏜 총탄에 맞아 범이 쓰러졌다가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장에 많은 핏자국이 남아있었고 절벽 밑은 격류가 흐르는 계곡이었다고 말했다.
50 m나 되는 절벽이었으니 설사 범이 총탄에 의해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죽었을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캡틴 강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범과 같은 고양이과에 속한 집고양이를 3층 정도의 높이에서 던져도 그 고양이는 죽지 않는다. 고양이는 낙하하면서 몸의 중심을 잡아 사뿐히 땅에 내려앉는다.
미국의 퓨마는 높이 20 m 이상의 언덕 위에서 뛰어내려 그 밑을 지나가는 먹이를 덮친다. 표범도 높이 10 m 정도의 나무 위에서 먹이를 보고 뛰어내린다.
백인포수는 절벽 높이가 50 m나 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과장된 것일 수도 있었고 과장되었다면 범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공중에서 몸의 중심을 잡아 물 흐르는 계곡이나 모래밭에 내려앉았을 것이다.
범은 단지 앞발에 총탄을 맞고 절름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확실한 원거리사격을 해놓고 범을 잡았다고 믿고 있는 친구들이 한심스러웠다.
캡틴 강은 다음날 새벽 카크탈을 데리고 발자국 추적에 나섰다. 추적이 늦어지면 굶주린 식인 암펌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캡틴 강은 다른 포수들처럼 덮어놓고 범을 잡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현상금만 노려 범이 무슨 짓을 하든 잡기만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캡틴 강은 범이 주민들을 죽이려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고 했다. 범을 잡는 일도 중요했지만 주민들의 안전은 더 중요했다.
그 암펌은 앞발 하나를 잘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앞발 하나를 못쓴다는 건 육식동물들에게는 치명상이 될 수 있었다. 상처가 악화된다는 뜻이 아니고 다른 짐승들을 사냥할 수 없게 되어 굶어죽는다는 뜻이었다.
범이 노리는 야생 짐승은 거의가 발빠른 초식동물들이었으므로 범이 전속력을 내어도 잡기 힘들었다. 영양 사슴 산양 등이 모두 그런 짐승들이었다.
앞발 하나를 절름거리는 범에게 잡혀먹힐 동물이란 별로 없었으며 그런 동물들을 사냥하지 못하게 되면 범은 굶어죽어야만 했다.
그래서 범이 굶어죽지 않는 방법이란 하나 뿐이었다. 앞발을 쓰지 못해도 잡을 수 있는 먹이를 찾는 길이었다.
그런 먹이가 바로 사람이었다. 범이 앞발 하나를 쓰지 못해도 그는 세 개의 발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사람의 발은 두 개였다. 사람쯤은 세 발로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사람만을 잡아먹는 맹수는 비단 범뿐만이 아니라 거의가 다른 사냥을 할 수 없는 결함을 갖고 있었다. 큰 상처를 입고 있거나 병들었거나 아니면 늙은 짐승들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식인 버릇이 있는 그 암펌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는 뻔했다.
거기다 그 범은 굶주리고 있었다. 범은 사람들처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먹이를 먹지 않았으나 최소한 사흘에 한번은 먹어야 했다. 한꺼번에 아무리 많은 양을 먹었더라도 사흘이면 배가 고파진다.
그 암펌은 벌써 일주일째 먹이를 먹지 못했으므로 닥치는대로 먹으려 할 것이다.
캡틴 강은 산림보호소 직원들에게 그 점을 설명하고 인근마을을 돌아다니며 범에 대한 경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산림보호소에서 그런 경고를 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경고를 했는데도 주민들이 그걸 무시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캡틴 강이 염려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추적 이틀째 되던 날 포수들은 나무 위에서 밤을 지냈다. 캡틴 강은 맹수사냥을 하면서 나무 위에 피신하는 짓은 하지 않았으나 그때만은 예외였다.
캡틴 강이 예상해던대로 암펌은 그날밤 나무 주위를 돌아다녔다. 암펌은 숲속을 돌아다니며 으르렁거렸다. 적과 먹이를 눈앞에 두고 잡아먹지 못한 맹수의 살기가 어둠속에 떠돌고 있었다.
"쏴요. 총을 쏘아요 !"
카크탈이 속삭였으나 캡틴 강은 쏘지 않았다. 그도 어둠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범을 쏘고 싶었으나 그런 유혹을 꾹 참고 있었다.
그의 경험으로 어둠속에서 쏜 총은 맞지 않았다.
활이나 창 같으면 맞힐 확률이 높았으나 총은 달랐다. 활이나 창은 손으로 조작하는 무기였으나 총은 눈으로 쏘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명중될 가능성이 없는 사격을 하면 범에게 경계심을 주어 사냥을 더윽 어렵게 만들 뿐이다.
범은 한 시간 이상이나 나무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사라졌다. 포수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 같았다.
캡틴 강은 날이 밝자 나무에서 내려와 추적을 계속했다.
"범이 산에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캡틴 강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추적을 서둘렀으나 때가 늦은 것 같았다. 산기슭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는 것이 보였다.
암펌은 그 마을쪽으로 가고 있었다. 캡틴 강이 마을 가까이 갔을 때 마을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어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곳엔 핏자국이 보였다. 새벽에 암펌이 나타나 물을 긷기 위해 마을을 나섰던 여자들을 덮쳤다고 한다.
암펌은 세 명의 여자를 죽이고 그중 한 여자를 물고 갔다고 한다. 범은 물고갈 여자를 죽여 놓고는 비명을 지르며 마을 안으로 도망가는 여자들을 추격해 두 사람을 더 죽였다고 한다.
전에 없었던 일이었다. 식인 암펌은 언제나 한 사람만 죽여 물고갔으나 이젠 아마 사람들에게 복수라도 하듯 마구 살육을 했던 것이다.
캡틴 강이 마을에 들어서자 촌장과 장로들이 나와 범에게 습격당한 여자들은 모두 죽었다고 하소연했다. 캡틴 강은 그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서 여자들이 범에게 학살당하고 있을 때 무얼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인도의 남자들은 게으른 사람들이었으며 여자들이 물을 길러 나갈 땐 모두 잠만 자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 여자들을 보호하려고 따라나간 사람이 없었다.
"당신들은 식인 암펌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나요 ?"
산림보호소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캡틴 강이 그렇게 주민들에게 경고해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산림보호소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캡틴 강은 당장 산림보호소로 달려가 무책임한 영국인 관리를 쏘아 죽이고 싶은 충격을 느꼈다.
그러나 캡틴 강은 추적을 계속했다.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암펌을 빨리 잡아야만 했다.
암펌은 마을 뒷산에서 끌고 간 여자의 시체를 모두 먹어치웠다. 마을에서 불과 500 m쯤 떨어진 곳이었기에 범은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식사를 즐긴 것 같았다.
암펌은 식사가 끝난 뒤에도 그곳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다가 캡틴 강이 추적해 오는 걸 보고 도망간 것 같았다.
그날따라 그 범은 운이 좋은 것 같았다. 하오에 비가 내려 범의 발자국이 없어졌다.
비는 소나기가 아니었으며 그 날 내내 내렸다. 캡틴 강은 추적을 중단했다. 초조했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다.
비는 다음날에도 계속 내렸으며 언제 그칠지 몰랐다.
"안되겠는걸요."
카크탈이 절망적으로 말했다. 사실 더이상 추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사냥은 실패한 것 같았다.
캡틴 강은 사냥을 포기하고 되돌아섰으나 그때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캡틴 강은 그때 암펌의 동굴을 생각했다. 전에 발견했던 그 동굴이었다.
캡틴 강은 어쩌면 그 암펌은 그곳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집이 소중한 것처럼 동물들에게도 그랬다. 어느 종류의 동물이라도 집 또는 그 비슷한 것은 있었으며 범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그 암펌은 앞다리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집이 가장 필요한 경우였다.
캡틴 강은 암펌이 거기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빨라 가자. 빨리."
캡틴 강은 다행히 그 방면으로 가는 목재운반 화물차를 발견하고 올라탔다. 화물차는 빗길을 느릿느릿 갔으나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는 빨랐으며 캡틴 강은 그날 밤 현지에 도착했다.
전에 만들어놓았던 나무 위의 잠복소는 그대로 있었다. 두 사람을 그걸 손질하여 비가 새지 않도록 했다.
동굴안에 범은 없었으나 캡틴 강은 반드시 범이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확신은 옳았다.
밤 12시께 캡틴 강은 나직한 소리를 들었다. 암펌이 코를 굴리는 소리 같았다.
암펌이 돌아왔다. 먼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암펌은 안도감에서 코를 굴리고 있었다. 암펌이 물에 젖은 풀들을 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범은 동굴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캡틴 강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암펌은 날이 밝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랜 장마가 그쳐 찬란한 해가 떠오르고 있었는데도 동굴속은 조용하기만 했다. 암펌은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캡틴 강은 결코 서둘지 않았다. 그 범을 잡는 건 이젠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캡틴 강과 카크탈은 입안에 넣은 비스킷이 바스락 소리를 내지 않게 씹으면서 동굴 출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오께 햇빛이 동굴 안까지 스며들었을 때 동굴 안에서 누르스레한 물체가 나타났다. 드디어 암펌이 나타난 것이다.
암펌은 동굴 바깥으로 나오더니 털의 물기를 털어버리기 위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붉게 물들어 있는 상처를 혀로 핥기 시작했다.
암펌은 이제 기운을 되찾고 몸 단장을 하고 있었으나 인근에 포수들이 있는 건 몰랐다.
총성이 울려퍼졌다. 단 한발이었으나 두개골을 분쇄당한 암펌은 털썩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뭇 사람들을 통곡하게 만들었던 구마온의 마녀는 영원히 움직이지 못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