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게을러서인지 집에서 영화나 소설, 만화 등을 볼 때면 자연스레 바닥에 등을 기대게 된다. 처음에는 '바른 자세로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고 보아야지'란 야무진 다짐을 하며 책을 펴들고 영화를 보지만, 어느순간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포자기가 뒤따른다. 일어나 있어야겠다는 자각이 없는 한, 언제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중간중간에 뭔가 집중할만한 장면이나 문장이 눈에 들어오면,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우며, 내 앞에 펼쳐진 볼거리, 읽을거리를 아주 편안한 자세로 즐긴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면 왠지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딱히 공부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여간해선 책상에 앉질 않고, 바닥에 배를 깔거나 등을 깔고서 책과 영화를 본다.
가끔씩 이런 나의 게으른 행동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까닭 모를 괴로움과 자학이 곁들여진 죄의식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 무거운 몸과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버린 습관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는 못하다. 종종 내 게으름을 책망이라도 하는 듯한 작품과 만나는 일이 없는 한 말이다.
비록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지는 못해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영화든, 책이든, 만화든 간에 날 질책하는듯한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면 즐거움과 약간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지금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김진의 작품, 그 중에서도 "바람의 나라"가 나에게 그런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만화였다.
나는 우연찮게 집어든 "바람의 나라"를 펴들고 허리를 꼿꼿이 펼 수밖에 없었다. 이 만화를 눕거나 엎드려서 본다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집중해서 만화를 보지 않는 한 여간해선 그 내용이 무엇인지, 그 상징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림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과연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자문하며, "바람의 나라"를 보는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워놓고 있어야 했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고대 서사시
1992년 잡지 "댕기"에 연재를 시작하고, 여러번 연재 매체를 옮겨다니며 아직까지 미완된 상태로 남아있는, 그리고 뮤지컬과 머드게임으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바람의 나라"는 만화가 김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바람의 나라"는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않았고, 한나라와 부여, 낙랑 등의 외세에 짓눌려 있던 때인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잇다. 김진은 그 시대에 있었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는 한편의 러브스토리에 묻혀, 또 신왕이란 명칭이 붙어 있으면서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단 세 장 정도의 기록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대무신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방대한 자료를 정리만 하는 데 4개월이 걸려 한 편의 고대 서사시를 탄생시켰다.
"바람의 나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고구려와 한, 낙랑, 부여 등 고대 국가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고, 다른 하나는 대무신왕 무휼과 그 외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 사랑, 복수 등을 다룬 인간 관계이다. 전자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후자는 전적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김진이 신화적 요소를 "바람의 나라"에 집어넣어 이 작품을 한편의 판타지 만화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이다. "바람의 나라"에서 다른 국가와의 싸움도, 또 인간 관계의 갈등은 모두 그 국가 혹은 인물이 지니고 있는 신수(청룡, 주작, 백호, 현무, 봉황) 사이의 충돌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구려가 부여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복수와 주도권 다툼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루의 신수가 상극이기 때무이다. 또 무휼과 그의 아들 호동은 청룡과 봉황이라는 상극의 신수 때문에 서로 갈등하며, 결국에 가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상황으로 치달을 예정이다.
"바람의 나라"에 곁들여진 신화의 세계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다소 황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이런 설정은 신이 살아있고,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이 지배하던 고대시대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신화의 세계가 가미된 덕분에 "바람의 나라"는 한반도의 고대사를 한층 실감나게 표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람의 나라"에 한국적 판타지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이 따라붙는 것은 바로 역사적 사실에 우리에게 익숙한 신화의 세계를 덧씌워 한편의 환상적인 한국 고대 서사시를 만들어 냈기 때문인것이다.
"바람의 나라" 도입부에 실려 있고, 이야기기 전개되면서 종종 등장하는 이 시는 대무신왕 무휼의 삶과 "바람의 나라"의 등장인물들의 운명과 삶, 그리고 "바람의 나라"에 깔려잇는 분위기와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만화평론가 박인하는 이 중 가장 핵심적인 연이 '돌아가지 못한 인연/되돌리지 못한 사랑아'로 되어 있는 4연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이 연이 "바람의 나라"의 주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 고구려란 이름은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인데, 김진은 굳이 고구려를 '바람의 나라'로 명명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본시 '바람'같은 것이고, '나라'란 꼭 고구려라기보다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말하죠. 그러니까 '인생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세상' 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공간에는 반드시 인생 이야기가 있게 마련인 것처럼, 김진은 "바람의 나라"에서 인연과 업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과 그 삶, 그리고 인간 사이의 문제를 그려냈다. "바람의 나라"가 고구려의 대외전쟁보다 인간 사이의 갈등에 더 비중을 둔 것은 바람같은 인생이 모여 사는 공간과 그 속에서 맺게 되는 인간 '사이'의 인연을 그리고자 했기 때무이며, 그것은 김진이 꾸전히 지향해 온 주제이다.
"특별히 강조한다기보다는 인간간의 유대관계를 잔잔한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까요? 흔히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해주기를 원하지만 타인들은 이해하려 들지 않기에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죠. 저는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상황을 만든다고 보고, 그것을 작은 눈으로 바라보며 표현하지요."
이를 위해 김진은 "바람의 나라"에서 무휼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면서도 정복욕과 절대권력을 갖고 있는 냉혹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인연과 업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김진의 말을 들어 보자.
-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인간이나 사람에 대한 어떤 계산된 속성을 표현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나의 주제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일생을 지배하게 될 필연적인 양심과 진실의 눈물에 있다. 화려한 치장,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는 긴 인생 중에 한번 입어 보는 의상에 불과할 뿐 생의 전부는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인생을 살아가는 어떤 목표란 늘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에도..... 그러므로 나는 그가 늘 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강하고 매력적이었지만 결코 행복할 수는 없었다. 그의 의지는 늘 그를 불행하게 했고, 그의 대왕과 신왕이라는 찬양의 이름 뒤에는 서글픔이 인지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왕이어서 불행한 자로 사랑한다. 우리 역사의 잊혀진 부분, 신화의 시대에 존재했던 가장 뜨거우면서도 가장 냉정했던 왕..... 그리고 그럼으로써 내가 몹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가 무휼이다.
김진이 무휼을 "왕이어서 불행한 자로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인연과 업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즉 인간 '사이'를 탐구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인간에 대한 세심한 이해 없니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김진은 인간 관계에 대해, 또 인간 본성에 대해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심도있게, 그리고 줄기차게 파고들어왔다.
김진의 만화가 무거운 분위기와 내용을 담고 잇는 것은 그가 다루려는 주제 자체가 인간이라는 아름답고도 추한 존재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앞에 작가주의란 이름이 붙는 것도, 내가 그의 작품에 몰두했던 것도 그의 작품이 갖고 잇는 주제 의식과 무거운 분위기 때문이다.
* 작가라는 명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만화가
만화평론가 박인하는 김진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만화가 편안함과 달콤함을 제공하는 오락이라고 생각한다면 김진의 작품은 만화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독자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김진의 작품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은 김진의 만화를 재미없다고 폄하해버린다. 그러나 만화가 편안함과 달콤함을 제공하는 오락 이상의 '무엇'이라고 믿는 독자들은 신작이 나올 때마다 그 '무엇'을 찾는 행복을 경험한다. 나는 그 '무엇'이 '예술'이 주는 진지한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은 김진이 추구하는 끝없는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다."
박인하는 이 글의 제목을 "김진과 작가주의 만화"라고 정했다. 그것은 김진이 작가주의라는 명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만화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고, 자기만의 색깔을 중시한다. 작가가 남들과는 다른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했을 때, 이 책에 실린 만화가 모두를 작가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김진이 유독 작가주의 만화가로 불리는 것은 그의 행보 때문이다. 그는 독특한 창작 사이클을 갖고 있다. 상업적인 재미를 추구한 만화와 무거운 분위기와 주제를 가지고 있는 작품성에 치중한 만화를 번갈아 창작한다. 한번에 아주 다른 색깔의 만화를 창작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다른 순정만화작가들이 상업적인 면을 전혀 무시하지 못하고 한 작품 안에서 타협점을 설정하거나 오락적인 요소를 만화의 최대 강점으로 삼는다. 그에 비해, 김진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그대로 남겨두고, 때로는 가볍게, 또 때로는 무겁게 그 주제를 개진시켜 나간다. 특히 불편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내용을 갖고 잇는 만화를 그릴 때는 숨막힐 정도로 인간의 추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
김진은 데뷔 후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런 작품을 창작해 왔는데, 그것은 그가 그려내고 싶은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하며, 작가로서의 자의식도 대단히 강하다. 그가 말하는 작가론을 들어 보자.
"......우리는 청소년 잡지만 있고 작품을 다양하게 소화할 매체는 적죠. 청소년지도 고등학교 저학년과 중학교 고학년만 타깃이고...... 작가도 어른이니까 어른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언제까지나 애들 이야기만 하라고 하면 고문에 가깝지요. 만화가 '팔려야 한다'는 개념은 잘못 되었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적게 봐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 다양성이 있어야 돼요. 대중적인 적도 중요하고 아닌 것도 중요해요. 쥐를 많이 잡는 고양이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돈 버는 사람은 벌어도 좋아요. 하지만 '그리는 사람'한테 그런 걸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못 벌어도 라면만 먹어 가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작가'죠.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히트작을 내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하지 않을 정도만 벌고 그 선을 유지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해요."
* 조숙했던 문학 소녀
그러나 김진이 처음부터 무거운 주제와 분위기를 갖고 있는 만화를 그렸던 것은 아니다. 그가 처음에 내놓은 것은 밝고 귀여운 캐릭터를 등장시킨 코믹 만화였고, 그 만화들로 인해 인기작가가 되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김진은 ####년 4월 #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진의 어머니는 만화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김진은 별 어려움 없이 만화를 탐독하며, 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 그는 만화가가 도리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학창시절 김진은 학교라는 공간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획일화된 교복과 공부를 잘 하냐 못 하냐로 학생의 모든 걸 판단해버리는 교육 현실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획일적인 교복과 공부를 잘 하냐 못 하냐로 학생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교육 현실을 못 견뎌했다. 김진의 씁쓸한 말 한 마디를 들어 보자.
"나의 학창 시절은 백지같이 하얗게 날아간 기억이다. 나에게 학교란 체형에도 안 맞는 개미허리같이 졸라맨 교복을 매일 아침 입어야 했던 시절이고, 얼굴에도 안 맞는 단발머리를 알레르기로 목이 빨갛게 붓거나 말거나 풀 빳빳이 먹인 하얀 칼라 위에 얹어야 했던 시기이며, 하다못해 왼 가르마를 타면 교문 앞에서 튄다고 잡혔던 시기다. 선생님들은 유치한 사건을 확대 해석해 아이들의 장래 따위 보지 않고 무우 토막 자르듯 애들 인생이나 자르는 듯 보였고, 그 뒤에 앉는 아이들이란 남의 말이나 하기 좋아하고 불행한 친구들을 물어뜯는 듯 보였다. 마치 자기들은 티끌 하나 없이 모범 학생에 모범 주부가 될 것 같이. (하긴, 학교란 그런 것이다. 모범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가끔은 무미건조하고 냉랑한, 남을 깔보는 무언가는 없는 곳인가> 학교는 비장하게 아이들을 훈련시켜 사회라는 전투장으로 내어보내는 것일까?) 모여 저 잘난듯 하는 애들도 보였고, 난, 날이 갈수록 어두웠다."
그렇게 어두워져 가고, 학교를, 또 주위 친구들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김진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나 뒤가르의 "회색 노트"등을 읽으며 그 힘겨운 시기를 견뎌냈다. 그리고 고 3때 대학이란 곳에 가기 싫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떨어진 이력에서 볼 수 있듯, 김진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숨통을 문학에서 찾았다. 학창 시절의 경험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전부인 학교와 그 안에서 방황하고 힘겨워하는 학생들을 그린 "HERE"(1995)란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어찌어찌해서 김진은 대학에, 그것도 관심도 없던 관광학과에 진학했다. 또다시 답답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김진은 교지 편집부에 ㄷ르어가 글을 쓰고 원고를 편집하는 일을 맡으며, 나름대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 그는 대학 1학년때부터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 책을 보고, 만화 출판사나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만화 작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며 독학으로 차근차근 만화를 배워나갔다.
* 너무나 부끄러웠던 데뷔작
김진은 대학 3학년 때인 1983년에 만화가로 데뷔하였지만 그 과정이 수월치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문하생 생활도 하지 않은 독학 만화가가 만화계에 첫 발을 내딛기가 상당히 어려운 시절이었다. 김진은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전전하며 자신의 원고를 실어줄 곳을 찾아다녔다. 제법 유명한 출판사에 찾아갔을 때 편집장이 일본만화 베끼는 일을 맡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휴학계를 내면서까지 매달렸던 만화가 일을 그런 식으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그 요구를 거절했다. 그는 그 결과 몇 달 뒤에나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김진은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원고를 내밀었다. 그러나 원고를 거부당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자, 김진은 한국 만화가협회에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김진은 만화가 김형배를 소개받았고, 그의 소개로 어문각이란 출판사에서 발행하던 "여고시대"에 "바다로 간 새"를 연재하며 자신의 이름 앞에 만화가란 직명을 달 수 있었다. 그러나 "바다로 간 새"는 "여고시대" 잡지가 폐간되었을 때 원본을 찾지 않았을 정도로 김진 스스로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었다. 데뷔작이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바다로 간 새"의 여파는 컸다. 김진은 만화가로 데뷔하였지만 역량 부족을 절감해 회의를 느끼고 약 1년동안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가 다시 펜을 잡고 작품을 내놓게 된 것은 1985년이었는데, 이때 내놓은 작품이 "우리들의 데이빗"과 "별의 초상"이다. 이중 김진에게 만화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정도 안겨준 작품이, 또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작품이 바로 "별의 초상"이다. 대본소용 단행본으로 출간된 "별의 초상"은 단박에 그를 인기 작가로 만들었고, 연달아 내놓은 "레모네이드 3부작"-"레모네이드 처럼"(1986), "모카커피 마시기"(1988), "여보세요 SOS I LOVE YOU"(1991)으로 그 인기를 이어나갔다.
* 독특한 창작 사이클
앞서 언급한 대로 김진은 독특한 창작 사이클을 갖고 있다. 그것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과 비교적 가벼운 작품을 번갈아가며 창작하는 것인데, 그 경향은 "별의 초상"부터 시작된다. 다소 진중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던 "별의 초상"이후 김진은 1986년 표독이와 현우를 등장시킨 코믹물 "레모네이드 처럼"을 내놓았다. 1987년부터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던 시기인 1813년부터 1815년까지의 역사적 배경에 전쟁과 죽음,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작품 "1815"를 내놓았다. 그리고 다시 코믹물 "모카커피 마시기"로 급선회했다가, 같은 해 SF를 소재로 인간 본질에 대해 논의한 "푸른 포에닉스"를 발표했다.
김진이 딱히 순차적으로만 작품 성향을 달리한 것은 아니다 김진은 두세 개의 작품을 여러 개의 잡지에 동시 연재하는데, 일례로 1995년 한해에만 "3+1=?", "히어", "숲의 이름" 등 각기 다른 성격의 만화를 거의 동시에 발표했다. "3+1=?"는 가벼운 작품으로, "히어"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만화로, "숲의 이름"은 무거운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처럼 김진은 성격이 아주 다른 만화를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발표한다. 우리는 그 까닭을 만화가 "작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김진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김진의 내면 세계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만화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김진은 절망하고 있을 때 "별의 초상"을 그렸고, 어른이 되고 싶을 때 "1815"를, 야심을 가졌을 때 "푸른 포에닉스"를 그렸다고 한다. 또 실망했을 때 "신들의 황혼"을, 행복해지고자 했을 때 "레모네이드 처럼"을 그리고 분노로 폭발하고 싶을 때 "황혼에 지다"를, 마지막으로 슬플 때 그리기 시작했던 작품이 "바람의 나라"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김진은 작가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내면 세계를 다양한 만화로 독자에게 선을 보인다. 여기에 "한가지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보다, 여러 영역에 손을 대면서 영역을 넓히는 것이 작가에게 좋다"는 평소의 소신이 겹쳐져 김지능ㄴ 그 많은 작품량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사아게도 김진의 작품은 완결을 본 경우가 드물다. "1815", "푸른 포에닉스", "불의 강", "어떤 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날아간다", "히어" 등의 작품이 연재 잡지의 폐간으로 중단되었고, 미완된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단편을 제외하면 완결된 작품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지만, 김진은 잡지 폐간으로 연재를 자주 중단당하는 불운을 당해야 했다.
그것은 김진이 인기 작가이다보니 새롭게 생겨난 만화잡지들이 지명도 높은 그를 필진으로 끌어당기고, 그 잡지들이 부실한 경영이나 경제 악화로 인한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폐간되면서, 연재가 끊긴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즉, 김진이 인기 작가이기 때문에, 또 한번에 여러 작품을 동시에 창작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만화잡지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게 되면서 유독 그에게 연재가 끊기는 사태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 인간 '사이'의 교류를 통한 객체의 성장
김진은 데뷔 초기에 순정만화 독자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귀엽고 독특한 캐릭터와 사랑스러운 인물상, 밝고 따뜻한 분위기 등 김진의 이른바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순정만화의 공식에 적절히 부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무거운, 또 일반적인 순정 만화의 경향에서 벗어난 작품을 내놓으면서부터 김진에게 열광하던 다수의 독자군은 어느덧 소수로 변했다. 대표적인 예로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별의 초상" "레모네이드 처럼"과는 상반되게 김진의 무거운 작품 "1815"가 독자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어, 김진의 독자들은 점점 그 수가 줄어든다. 일련의 코믹하고 밝은 만화로 안정된 지지기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 즉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폭넓은 일반 순정 독자들의 이탈을 초래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진의 작품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 소수의 독자들은 김진만의 색깔이 들어간 작품에, 또 그의 무거운 주제 의식과 다소 어려운 이야기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곧 열렬한 마니아 팬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열광했던 것은 일반적인 순정 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김진 작품 특유의 매력 때문이다.
김진의 무거운 작품은 일반적인 순정 만화의 경향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있다. 로맨스가 등장하지만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며, 밝고 톡톡 튀는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설혹 등장하더라도 그것은 어두운 서사에 짓눌려 그리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 톤 처리로 명암을 표현한 덕분에, 그림은 눈을 무겁게 만드는 듯한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등장인물들의 눈빛은 공허함 그 자체다. 음울한 그림자가 항상 뒤를 따라다니는 느낌이다.
정서 변화 혹은 감정의 변화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일반적인 순정 만화와 같은 양상이지만, 그 심도에서는 보통 순정 만화가 따라오지 못할 깊이를 보여준다. 거기에다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한 장의 그림에 함축된 정보량이 많은 까닭에, 여간 꼼꼼히 읽지 않고는 작가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의 무거운 만화는 이야기가 느릿느릿 전개되고, 현재와 과거의 시간대가 아무런 예고 없이 뒤섞여 있기도 해서 읽기가 불편하다.
그러나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독자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 사이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때로 인간의 추한 면을 그려내 독자에게 불편하고 곤혹스러운 감정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의 만화가 갖는 매력은 자신의 주제를 진지하게 풀어낸다는 점,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주제는 인간 사이, 더 간명하게 말해 "사람들간의 교류를 통한 인간 객체의 성장"이다.
김진은 인간 사이의 교류를 매우 중시하며, 그것을 만화 속에 담아내고자 한다. 또 그는 독자에게도 인간 사이의 교류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실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해보기를 청한다. 그가 인터넷 만화잡지 "코믹스 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전한 말을 들어보자.
"가끔 뉴스나 신문의 사회면을 봐주세요. 가끔 ARS의 다이얼도 돌려 주시고요. 그리고 가끔은 잊은게 또 없을까 생각도 해주세요. 친구, 부모, 책, 편지, 시, 노래, 그림, 장난감들도..... 저는 세상에 사는 모든 게, 다, ing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ing 중에는 잊히거나 이제 그만 하지 그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들과 우리 같이 걸어가도록, 서로서로 잊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해요."
* 대화의 창으로 오세요
김진은 20여년동안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단편은 물론, 중편, 장편에서 또 SF에서 미스터리 추리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그려왔고, 1991년에는 시집 "별의 초상"을 출간했다. 이 모두가 치열한 작가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작가정신 때문인지 김진은 상복도 만은 편이다. 1996년 그는 "숲의 이름"으로 동아시아 만화대회 대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1997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바람의 나라"가 제 2차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되었다. 또 김진은 1995년부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만화창작학교에 출강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1998년에는 한국 여성만화인협의회 초대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진에게 만화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숲의 이름" 3권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진은 "숲의 이름"을 끝내는 시점에서 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므로 상대의 수가 소수여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수와 할 이야기와 소수와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오지 않는 창이라고 해도 이야기를 그치기 전에는 늘 열어두려고 노력한다. 이제 드디어 한 이야기의 창이 닫히려고 하고 있다. 나와 이야기해 준 그대가 난 정말 고맙다. 당신이 용서해준다는 전제하에서 나는 실컷 울엇고 실컷 미쳐보았고 실컷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다시 어느 창에선가 당신을 만날지 모르겠고, 못 만날 수도 있겠지만, 꼭 하고픈 말이 있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난 정말 좋았다. 그리고 더불어 당신도 좋았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진심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김진에게 만화는 작가의 내면 세계를 독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대화의 창이다. 시집을 출간한 이력에서 볼 수 있듯, 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가 굳이 만화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도 정지된 컷 하나에 많은 의미를 담아 독자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수의 사람들이 대화에 동참하는 것은 별로 상관치 않고,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한 끊임없이 대화를 진행시킬 것이라고 ㅎ나다. 물론 어떤 이데올로기나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주입시킨다거나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난 기분나빴다. 좀 고쳤으면 좋겠다"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독아좌 같이 생각해보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여러분도 김진이 열어놓은 대화의 창에 한번 머물러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그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에 때론 반박도 해보고, 때론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려 보기도 하고, 때로는 흥분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떻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꽤 괜찮은 대화가 오가게 될 것이다. 그가 열어놓은 대화의 창에 한번 가보자.
첫댓글 부산 집에 이 책이 있습니다. 기회되는 대로 찍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책을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까요.....
yes24에서 이북으로 구입했습니다. 시사인물사전을 인물별로 나눠서 파는데, 인물 1명당 500원입니다.
이거.. 아직도 팔아요... 저도 몇 년 전 이 책 교보에서 봤는데...(김진님 부분만 읽어봤던;;;) 교보 갈때마다 있더군요.. -.-... 얼마전 갔을 때도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북은 싫어하니 서점을 뒤져봐야겠군요. 두분 모두 알려주셔서 감사 ^^*
어라...그런데 불의 강은 잡지가 폐간되며 미완결된 것이 아닌데;; 어찌되었든, 엔딩이 있었습니다..^^*(1회 빼고 분철본으로 갖고 있는 인간; )
이거 제 싸이에 퍼가도 될까요. 책 제목과 저자 이름, 타이핑 하신 해명님 이름 첨부해서요.
저희 학교 도서관에서 봤어요. 김진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