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망량의 상자>
에도가와 란포에서 춤추는 대수사선까지
일본 추리소설은 왜 재미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이다. 일본 추리소설에는 극에서 극까지,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밀실 트릭을 이용한 본격추리물,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잔인한 세상을 돌파해가는 하드보일드, 범죄의 동기를 더욱 중요시하는 사회파 추리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리물부터 말랑말랑하고 화사한 코지 미스터리, 요괴와 귀신이 등장하는 심령 추리물,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라이트 노블의 추리물, 야하고 폭력적인 성인용 추리물 등 다종다양한 추리소설의 천국이 바로 일본이다. 스스로 추리물에서만은 세계 최고라고도 자랑스럽게 말한다. 거기에 동의하건 말건, 일본의 추리소설이 탁월한 즐거움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도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유별나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어떻게 지금처럼 광활한 대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장황한 일본 추리소설의 흐름을 몇 문장으로 축약한다면 이렇게 된다. “미스터리의 번성기에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등을 필두로 엽기적이며 괴기스러운 환상적인 미스터리가 주류였고 이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마쓰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가 대두했다....한편 엘러리 퀸이나 S. S. 반 다인의 영미권 고전 추리소설을 주로 읽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논리로 의문을 규명한다는 원점으로 회귀하자는 운동이 생겨났다. 이건이 신본격 추리소설이다.”(기시 유스케)
일본 추리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는 에도가와 람포다. 이름으로는 분명히 일본 사람이지만, 사실은 외국 이름을 일본식으로 차용한 것이다. <도둑맞은 편지>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 추리소설과 기괴한 공포소설 등을 썼던 미국의 작가 에드가 앨런 포우를 존경하여, 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슬쩍 바꾼 것이 에도가와 람포인 것이다.
1922년 데뷔한 에도가와 람포는 <D언덕의 살인사건>, <괴인12면상> 등 전통적인 추리소설부터 <다락방의 산보자> <음수> 등 엽기적인 소설까지 다양한 오락소설을 발표했다. 번역 중심이었던 일본 추리소설계에 충격을 던진 에도가와 람포는 일본 추리문학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고, 현재 일본 추리소설의 다양성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뻗어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출간된 에도가와 람포의 <음울한 짐승>과 <외딴 섬 악마>를 읽어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얼마나 기이한지 알 수 있다. 암호와 밀실을 이용한 전통적인 트릭이 나오는 추리소설부터 살아있는 인간을 의자로 만든다거나 다락방에서 아래층의 여인을 훔쳐보는 등 온갖 엽기적이고 에로틱한 몽상들이 기발하게 전개된다. 그것을 영상으로 만나고 싶다면 케이블에서 방영했던 <람포 R>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에도가와 람포가 창조한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의 외손자가 등장하고, 소년 탐정단의 일원인 고바야시 소년이 노인이 되어 나오는 묘한 분위기의 드라마다. 람포의 소설을 보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단지 수수께끼를 푸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어둠을 파고드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추리물은 소설이 아니라 만화로 나온 <소년탐정 김전일>일 것이다. 사실 김전일은 일본의 성인 긴다이치를 그냥 한국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그리고 만화판 긴다이치 소년의 할아버지는 거장 요코미조 세이지가 창조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오스케다. 요코미조 세이지는 30년대에 도회적인 유머가 깃든 작품을 쓰다가 점차 탐미적인 경향으로 흘러갔고 50년대에는 서구형의 추리소설에 일본의 풍토를 이식하여 독특한 스타일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지리, 민속학적 지식과 분위기가 제대로 녹아들어간 <옥문도> <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등은 ‘괴기스러운 본격물’로 평가받았다. 일본 추리물에서 느끼는 음산함은 요코미조 세이지에게서 확실하게 정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의 교고쿠 나츠히코가 이런 흐름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추리소설의 거대한 산맥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회파 추리를 들 수 있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의 마쓰모토 세이초와 <야성의 증명> <인간의 증명>의 모리무라 세이에치가 형성, 발전시킨 사회파 추리는 일본 특유의 범죄소설을 만들어냈다. 역사소설의 시바 료타로와 함께 전후 최대의 작가로 평가받는 마쓰모토 세이초는 당시 일본 추리소설이 너무 트릭만을 중시하며 유희적 경향으로 빠지는 것에 반대하여, 극한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고들 것을 주장했다. 또한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장중한 묘사와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일본 추리소설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이후 사회파 추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테마로 삼고, 탐정보다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는 스타일로 발전해갔다. 이런 사회파 추리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오히려 희생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과거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하여 범죄를 계획한다. 사회파 추리는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개인이나 집단의 피해, 정치권력의 폭력 등 명백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권력의 실질적인 범죄를 폭로하고 있다.
사회파 추리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추리물이다. 본격 추리는 게임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장르 애호가가 아니고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독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트릭 자체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왜 그가 죽어야 했는지, 왜 죽여야만 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파 추리의 강세는 한편으로 부작용도 있었다. 사회의 어둠을 쫓는다는 명목이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성과 폭력의 극단적인 묘사를 일삼는 작품들도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추리, 수수께끼 풀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범죄, 악당을 쫓는 과정의 액션이나 스펙터클에만 치중하다가는 자칫 추리물로서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신본격이 등장한다. 87년에 등장한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독자에게 하나씩 단서를 던져주면서 공정한 게임을 벌이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이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등의 본격추리는 단지 트릭 자체에만 몰두하지 않고, 사회적 병리현상을 파고들면서 그 내부에 추리소설다운 트릭을 교묘하게 설치하여 많은 지지를 얻었다. 신본격이 지나치게 트릭에만 의존하는 ‘몰사회적’ 소설이라는 오해는 말 그대로 오해인 것이다. 신본격에서 추구하는 ‘트릭’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시스템’이다. 장르를 결정짓는 시스템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혁신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고, 그 기반 없이는 추리소설이 존립할 수 없다.
지금 일본의 추리소설은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다. 기존 추리소설의 세부 장르만이 아니라 '라이트 노블적인 요소와 신본격 미스터리의 요소를 결합'한 <잘린 머리 사이클>과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의 니시오 이신이 있는가 하면 굳건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휴머니즘을 관철시켜나가는 <사라진 이틀> <동기>의 요코야마 히데오도 있다. <그로테스크>의 기리노 나쓰오와 <마크스의 산>의 다카무라 카오루 등은 이미 추리라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지을 수없는 거대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후루하타 닌자부로> <시효경찰> <갈릴레오> 같은 전통적인 수수께끼 풀이가 있고, 엽기적이고 괴기스러운 <케이조쿠>와 <트릭>이 있고, 하드보일드에 속하는 <언페어>와 <SP>가 있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따뜻하고 즐거운 경찰물이라고 할 <춤추는 대수사선>과 <아이보>도 있다.
일본 추리물의 세계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고 광활하다. 그러니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든 상관없다. 다만 하나를 보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작품으로 이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일본 추리물에 푹 빠진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
원출처 : extmovie.com/4535
첫댓글 우리나라는 추리물이 없다,, 왜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