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올라와 집에와서 울띵 교육청앞마당 공연장에 가자고 아무리 설득해도 협상능력 한계로 설득하지 못하고 혼자 5시쯤 서둘러 농성장으로 갔더니 상호맘 해락맘 등 몇분이 저녁 장사?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오뎅국물 다시물내고 컵라면 물을 끓여서 보온통에 넣고 우리 이병환샘도 손님맞이 준비에 마당쇠처럼 바삐 움직이셨습니다
석환씨 균용씨 차려놓은 밥상 마주할 시간도 없이 오늘도 쫄쫄 굶으시고 연신 동동걸음이신데 우두커니 서있는 제모습이 쬐금 미안했습니다
가져간 아구찜으로 저녁을 먹고 공연장에서 상영하는 장애인 이동권투쟁을 영상으로 보며 참 살맛나지 않는 세상이란 생각이 들며 울컥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오신 손님들을 위해 자리를 펴고 몸자보와 촛불을 나눠주며 감사합니다 좋은시간 되세요라며 진심을 말했습니다
실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잘못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생략하고 왔다갔다 할일없이 수선을 피우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더니 중부서 정보과에 계신 신랑친구분이었습니다 여기에 왠일이냐고 물으시기에 울띵이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 이것을 개선하고 싶어 왔다고 말하고 공연장주위에 불좀켜게 해달라고 교육청에 이야기 좀 하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갔는데 안되더랍니다
함께 계신 형사나리들 알고보니 전부다 울신랑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악쓰며 눈흘기기도 했고 교육청인사인줄 알고 댓거리도 했는데 이궁 이게 뭐람
울신랑 거친 마눌님 모시고 산다고 완전 고향바닥에 소문 깔리겠습니다
그치만 어떻게합니까 이땅에서 세부류의 존재가 있다고들 하죠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
근데 그 거칠다는 아줌마보다 더욱 드세어야할 사람
그이름은 장애아어머니 인것을 적어도 이땅에서 장애아를 키우기 위해선 아줌마보다 더 거센 어머니가 될수밖에 없는것을요
오돌오돌 떨다 투쟁영상보며 울다 함께한 이들과 감사함과 든든함에 울다 온갖 감정들이 교차되며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오늘밤은 꿈꾸지 않고 편안한 잠에 들수 있을것 같습니다
첫댓글 같은 생각,같은행동에서 느낄수 있는 끈끈한 동지애. 슈바언니 저도 피곤하지만 잠시 오지 않아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가끔씩 피로회복을 위해 마시는 와인한잔 하고서 잠을 청했습니다.내일도 모래도 새로운 투쟁!!
'새끼가 살아야 에미도 산다'는 글귀를 보니,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요. 새끼를 꼭 살려내십시오. 그래야 같이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몇년 전에 말을 하나도 못하는 아이였는데, 잃어버렸다고 어머니가 전활하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십년은 더 되었네요) 어머니들은 차가 없었거든요.
여기 저기 찾아댕기며, 하늘이 노랗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초보 선생이었으니, 사실, 그 애 엄마보다 제가 먼저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찾았는데 못 찾았어요. 그 애 어머니 풀석 주저앉더니, 내가 이놈 죽은 거 봐야 한다고 통곡하시는거에요. 이게 어디서 무슨 꼴로 있을지 자기는 못산다고,
이 놈 시체를 봐야 한다고..... 다음 날, 아이는 찾았습니다.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잃어버렸는데, 시체를 죽은 거 봐야 한다니요..... 이제 두 아들의 어미가 되고 나니, 그 맘 알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나... 통곡하던 그 맘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애들 살립시다!! 아자! 엄마들, 아빠들 !! 힘 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