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1. 2. 11(일) 부산역 09:00 집합
동참자/홍기환, 최환, 배승원, 박신일, 임명수, 이흥섭, 강영환, 오향미, 강민수<첫동참>
출발 09:35 목포행 무궁화호 원동역 하차(4,700원)
1. 부산역에서 만남
어제 먹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취몽비몽간에 부산역 대합실 약속 장소로 나갔다. 5분전인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뽑아 먹고 나니 최 회장님이 제일 먼저 나오셨다. 시간이 되자 한 두 분씩 모여들었다. 어제 오후 지리산에 1박2일로 출발한 내가 부산역에 나온 것을 보고 모두들 궁금해했다. 가기로 한 산행이 어제 3시에 취소되어 못 가게 되었고 저녁에 계모임에 참석하느라 전화기를 놓고 나왔다는 등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박사장, 박안나, 김미라, 배혜경은 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여러 가지 구구한 억측들을 나누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배 주간과 함께 나온 광고회사를 경영하는 강민수 씨의 소개가 있었다. 그 분은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는 책을 최근에 출간하여 한창 뜨고 있는 중이란다. 그리고 출판권을 빛남에서 영광도서로 넘겼다는 이야기도 했다. 잘 팔리는 책의 저자로써 박 회장과 맞선(?)을 보기 위해서 나왔다고 했다.
이 대장에게 늘 가던 산행코스를 벗어나 새로운 코스를 가보자는 의논을 하였다. 이대장도 이에 동의하고 향로봉으로 가기로 합의를 했다. 어른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강행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2. 오르막을 오르며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 상쾌한 날씨 속에서 원동역에 내리니 산불감시원이 입산신고서를 작성하란다. 여러 가지 사항을 기록하고 입산 허가서를 받았다. 그리고는 늘 이용하는 배내골행 버스편(요금 1600원)에 올랐다. 그런데 박 회장께서 상점에 가서 술과 식수를 직접 챙겨서 사들고 오시지 않은가. 회장의 변모된 모습에 다들 한마디씩 입에 담았다.
『회장이 되더니만 저렇게 달라진 것 좀 보아』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이겠지.』
『잘 하는데 임기를 2년으로 늘이는 것이 어때』
버스 속에서 전 mbc에 계셨던 유판수 선생과 그 분이 운영하는 사회교육원 학생들을 만났다.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자연 휴양림 쪽으로 가는 그들을 뒤로하고 버스는 배태고개를 넘었다. 그 동안 어슬렁에서는 이 고개를 넘어 가는 일이 없었다. 이 고개가 늘 산행의 기점이 되곤 하였다. 왼쪽으로 하여 매봉으로 가던가 오른쪽으로 하여 안정산으로 가든가하는 곳이다. 원동에서 가장 먼 기점이었는데 어슬렁이 처음으로 고개를 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것도 멀리 가지 않고 바로 고개 아래 다리에서 하차를 했다. 어른들은 코스가 험할 것인지, 아니면 먼길인지 궁금해하면서 다소 불안해하는 모습을 속내에 비쳤다. 어슬렁에서 향로봉은 처음이라 했다. 처음이라는 데에 갖는 불안감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니 어른일수록 불안은 더 커지는 모양이다. 산을 지키고 있는 빨간 모자 아저씨에게 입산 허가서를 보여 주고 새로 짖고 있는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산으로 들어섰다. 댐에 물이 차면 예전의 마을은 수몰됨으로 모두 철거하고 그 마을 위쪽에 새로 집들을 짓고 있는데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 집 뒤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길을 찾아갔다. 얼마 안 가서 첫 무덤을 만났고 거기에서 능선길을 찾았다. 다소 가파르지만 그대로 쉬지 않고 올라갔다. 두 번째 만나는 무덤, 전망 좋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거기서 밀감을 나눠 먹으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 주간께서 나에게 산문집을 내어 보는 게 어떻느냐고 했지만 나는 능력이 모자란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책은 아무나 내나』
강 건너 산기슭에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길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산을 허물며 내고 있는 양산, 표충사간의 산간도로는 밀양댐에 물이 고이면 정말 기막힌 드라이브 명소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환경훼손에 대한 깊은 우려를 했다. 한번 훼손되면 복구가 어렵고 길이 나면 온갖 잡스런 인간들이 몰려와 쓰레기 오물 투기로 오염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너편 산은 매봉의 한 능선으로 어슬렁이 한때 길도 없는 길을 내려오며 부딪혔던 절벽이라든가 무모하게 했던 산행을 추억했다.
첫 번째 휴식 후 오르막을 오르다 세 번째 무덤을 지나면서 바위틈을 넓히며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발견했다. 그 솔의 용틀임하는 밑둥치를 보고 백년은 넘어 갔으리라 짐작이 갔다. 진달래 가느다란 가지를 이용하여 지은 새집을 발견하고 그 앙증스런 모습에 감탄했다. 그 조그마한 새 대가리에서 어찌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자연의 불가사의는 풀어질 수 없는 것이라며 소년처럼 가슴 두근거렸다. 두 번째로 바위를 깨고 있는 소나무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 소나무의 꿋꿋한 모습에 한번 더 감탄했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또 바위 위의 편편한데 틈도 없는 가운데 억척스레 살고 있는 작은 솔을 또 발견했다. 가뭄에는 습기 한번 온전히 머금을 수 없는 그런 악조건을 이기고 겨우 솔잎 몇 개만으로 생명을 보전하고 있는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지만 나이 든 솔을 보았다. 주변에는 시커멓게 그을려 죽은 소나무가 여러 군데 있어 산불이 한번쯤 지나갔음을 나타내고 있고 바위 위에 얹혀있었기에 불길을 피했던 것으로 보여져 생과 사의 미묘한 관계가 인간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했다.
최 회장이 부사장으로 있는 부산호텔 뒷편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임진왜란 때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 터가 발견되어 그 보존에 관한 의견과 이를 홍보하는 관광안내서를 발행하여 일본인 학생관광단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자는 것, 부산은 상대적으로 관광자원이 전혀 없으므로 하여 일본인들이 부산으로 오지 않고 곧바로 경주로 가서 경주 관광만하고 가버리기 때문에 이런 일본과의 교역관계를 입증하는 역사적 유물을 찾아 복원하고 일본의 학생 수학여행단이라도 유치한다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었다.
관료들의 안이하고 편의주의에 의한 폐혜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우리 나라 관광홍보를 부분이 아니겠느냐. 대사관의 공관에 있는 노무관의 업무처리방법만 보아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분노를 머금는다. 노무관이 직접 나와 실태를 조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에 앉아서 보고만 올리라는 고압적인 자세는 후진국으로 갈수록 더 심하다는 것이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관료들의 작태를 생각하면 쓸쓸함을 느낀다 했다.
최환 회장은 원동 어영에 산을 사 두었는데 유명한 지관인 육관을 불러 물었더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관에게 물어 보아도 산소자리가 없어서 그걸 팔려고 내어놓았는데 우연찮게 대순진리교 회장을 만나 서울 근교의 지관을 소개받아서 산소 자리를 보아 달라고 했더니 그 산에 5군데나 있다하여 그 터를 잡고 이장도 하고 자신의 터까지 잡아 두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풍수란 결국 마음의 터를 이름하는 말이란다. 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 산소자리가 아닐까.
3. 즐거운 점심식사
점심을 먹으면서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로 찌개를 맛있게 끓인 분은 이 대장이다. 그걸 안주 삼아 홍 박사님이 가져온 꼬냑과 박 회장님이 가져온 솔주를 나눠 마시면서 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박 변호사께서 풍수학을 배운 지 꽤 되었다고 한다.
그런 중에 강 사장이 오 선생을 보고는 뭐라고 부를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오 여사」라고 불렀다. 강 사장은 오향미 씨가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존칭으로 그렇게 불렀는데 오 여사는 좌중에 신선한 유머가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오 선생을 부르는데 모두들 오 여사, 오 여사라고 했다. 아직 결혼도 안한 처녀를 보고 오 여사라고 부르니 듣는 오향미 선생은 화가 나서 대답도 하지 않고 샐쭉해 진다. 그런 모습이 더욱 귀여워 이 대장과 임 선배는 자꾸만 오 여사라고 불러댔다.
강 사장의 나이가 쉰 둘이라 해서 나와 동갑인 것을 알고 보기보다는 많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화제는 다시 禱올 김용옥에게로 갔다. 지난 금요일 논어 강좌에서 「바둑 9단과 9급은 서로 비교할 수가 없다. 9급이 9단의 바둑에 대하여 가타부타 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듯이 풍수도 마찬가지로 급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풍수의 좋은 땅을 보는 눈은 바로 그 사람의 수준과 직결된다. 그러니 실력이 모자라는 반풍수가 묏자리를 잘못 짚어 집안을 망치게 하지 않는가. 반풍수는 자신이 반풍수인 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그럼 우리 시대의 온풍수는 누구인가. 풍수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소주를 두 병이나 샀는데 술이 남게 되었다. 한 병을 따서 중간쯤 마시다가 날씨가 추워지자 서둘러 일어났다. 걸으면서 추위를 쫓아 보자는 것이다. 향로봉 정상은 아직 남아 있고 금방 밥을 먹은 탓에 오르막이 그처럼 힘들었다. 향로봉 정상에는 표지석 하나 없이 그냥 삼각점 하나만 억새풀 속에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내리막에 접어들자 임 선배께서 힘들다며 주저앉았다. 식후 격렬한 운동이 위에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조금 쉬어 가면 낫지 않겠느냐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앞서가는 이들에게 쉬어 가자고 소리쳐도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꼬리가 보이지 않게 달아나 버렸다. 티뷔 안테나를 설치한 지점을 통과해 조금 내려가니 일행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강 사장은 쉬지 않고 무슨 말인가 했다. 입담이 매우 좋은 분으로 보였다.
4. 하산길에서
박 회장께서 어느 서울대 학생이 풍수에 대한 공부를 할 때 체험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산소 자리를 보면 그 안에 시신이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 하였다. 풍수는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영험에 의해 터득되는 것이라 했다. 풍수학을 배운다는 박 회장이 풍수란 개인의 성품과 땅이 만나 조화를 할 때 좋은 묏자리라고 하는 거지. 그 사람의 성정과 맞지 않는 곳에 산소를 쓰게되면 나쁜 터가 되고 그런 것이 풍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자가 좋은 풍수이고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반풍수이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서툰 짓을 일삼는 것이다.
『반풍수를 정하는 척도는 누가 만드는 것이지요.』
『온풍수가 정하지.』
『그러면 온풍수라고 부르는 준거는 있나요』
『… ?』
『내가 생각하기에 고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 즉 아들이나 형제가 산소 후보지에 가서 조용히 앉아서 그 땅에서 전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있어보면 마음이 가장 편안한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고인이 갈 자리라는 거야』
박 변호사가 마지막 무덤에서 쉬면서 풍수에 대한 정의를 끝냈다.
그런 중에 임 선배가 특유의 농담 섞인 어조로 말한다.
『예전에 박 회장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산에다 뿌려 주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말을 취소하고 싶다. 이유는 박 회장이 나보다 오래 살 것 같지가 않고 뿐더러 요새는 개나 소나 다 산에 가기 때문에 산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조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에 뿌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 산에 뿌리되 내 마음이 늘 머무는 봉래산에다 뿌려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고 그 적임자가 이 대장이라 생각한다. 이 대장은 덩치도 크고 또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은 분명하기에 부탁하고 덧붙여 후배 시인들을 위해 봉래산 바위에다 내 이름이라도 하나 새겨서 나를 찾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면 싶다.』
그러자 박 회장께서는 그 농담을 맞 받아쳤다.
『죽음에는 선후가 없는 것이라네』
두 분은 서로 바둑을 상대하면서 그런 농을 예사롭게 나누곤 하였던 것이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중에 임 선배님이 나뭇가지에 눈을 부딪혔다. 오른쪽 눈이 충혈되었다. 모두들 걱정을 하였으나 정작 본인은 태연했다.
『눈이 보이면 괜찮은 거야. 이런 일은 젊어서 이미 떼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이러구 다니니 내가 철이 덜 들긴 덜든 모양이야.』
도로에 내려서니 개들이 짓는다. 개를 좋아하는 임 선배님이 개들에게 갔다. 사람이 그리운 두 마리의 개들이 반갑게 꼬리를 친다. 개 주인에게 마을의 이름을 물으니 <운곡리>라 한다. 그리고 일명 <다람쥐재>라고도 한단다. 그러니까 배내골 본류에 있는 선리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는 계곡의 끄트머리 마을인 셈이다. 다리를 두 번 건너니 한 마을이 있는데 디딜방아가 아직도 사용 중인지 발판이 반들거렸다. 그리고 잘 생긴 개 두 마리가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고 한참을 더 내려오자 어떤 사람이 홍 박사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홍 박사님이 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 곁을 지나자 나에게도 다시 인사를 한다. 낯선 사람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일은 무척 마음 갖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 일만 명에게 인사하기를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일까. 사람을 만나 반갑게 하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얘야 이 할아버지하고 놀자』
햇살은 없어도 길가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임 선배님이 꼬셨다. 아이는 순진하게 임 선배님에게 손을 맡기고 몇 미터를 따라 내려 왔다. 이내 그 아이의 친구들이 와서 그들에게 보내 주고는 임 선배는 혼자가 되었다. 아이와 개를 좋아하는 임 선배님의 천진성이 좋아 보인다. 사실 그랬다. 임 선배님은 잔정이 많아서 누구에게나 양보하고 누구에게나 권유하는 정으로 가득한 분이다. 그렇게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20여분쯤 내려오니 배내골 본 계곡 마을인 선리 학교 앞에 당도했다. 15:30이었다. 버스가 오려면 30분쯤은 기다려야 한다.
정자나무 아래 모여서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한 우스개 일화를 소개했다. 미국 방문 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면 세 마디만 알면 된다고 하면서 열심히 영어를 학습했단다.
김 대통령이 학습한 것은 「How are you」, 「Me too」 그리고 「Thank you」였다. 김 대통령이 맨 처음 클린턴을 만나 「How are you」라고 해야 하는데 그만 「Who are you」라고 해버렸다. 그러자 클린턴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참 농담도 잘하시는 군요」라고 응수를 했더니 그때 또 김 대통령이 다시 「mee too」라고 했다. 클린턴이 「이 사람 미친 사람 아니냐」고 하니 김 대통령이 「Thank you!」라고 하면서 손을 여유 있게 흔들었단다.
이것은 실제 일어난 사항이 아니고 지금 일본에 들어가서 형편없이 철없는 이야기들(*김대중 정부가 언론 세무조사를 하는데 자기도 집권 중에 언론에 대하여 세무조사를 해보니 엄청나게 잘못한 부분이 있어 자기가 발표를 하게 되면 국민들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 같아 발표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등의 회견 내용)을 일본 언론과 회견하면서 쏟아 내니 그 철없음에 비유하여 충분히 일어 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을 때 임 선배님은 개를 보러 간다고 다리 건너편 쪽으로 갔다.
버스는 정확하게 16:00에 왔다. 버스를 타고 원동에 와서 16: 45분 열차를 탔다.
5. 열차 안에서
플랫폼 대합실에서 산에 갖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막걸리에 두부를 안주하여 맛있게 먹고 있었다. 생각 있으면 오라고 해서 서슴없이 강 사장과 내가 그들의 막걸리를 거들었다. 술이 깨려는 상황이어서 목이 탔었는데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키니 가슴이 후련했다. 막걸리는 타는 목에 좋은 것이여.
『역시 술산이야』
배 주간께서 술 얻어먹는 나를 보고 한마디를 거드신다.
미리 예매한 결과 좌석에 앉아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리 저리 좌석이 분산되어 있었고 앞쪽에서 강 사장이 어떤 노파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로의 나이를 82세라고 밝힌 노파였다. 광주에서 탔다는 그 노파는 오랜 시간의 여행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이 없이 기력이 좋고 활달해 보였다. 큰 소리로 열차내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강민수 씨가 노파의 부탁으로 짐칸에 올려져 있는 짐을 내려 주자. 「오래 살 거야」라고 하자 「전 아직 총각인데 중매 좀 서 주세요」라고 농담을 하자. 「알고 보니 이 사람 복장이 시커멓군, 복장이 시커매지면 오래 못살아 복장이 하얘야 90까지 살지. 복장이 꺼매서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면 마음에 IMF가 오지. 사람은 웃으면서 살아야 90까지 살지. 나를 보라고 복장이 바르니까 지금 이 나이까지 병도 없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지. 복장을 바로 써야지 안 그러면 일찍 가. 알겠나.」
최환 회장이 구포역에 내렸고, 배승원 회장이 사상역에 내렸다.
다시 노파가 강 사장을 집적거렸다.
『이 보오, 당신 어디까지 가오』
『녜, 부산 역까지 가는데요?』
『잘됐소, 당신 91살까지 살고 싶지 않소?』
『…』
『내가 당신을 91살까지 살도록 기도해 줄 테니까. 역에 내리면 이 짐 좀 들어주시오.』
처음부터 명령조로 나왔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녜, 그러지요. 오래 산다는데 여부 있습니까』
할머니의 수완이 보통이 아니다. 그 할머니는 벌써 역에 도착해서의 일까지를 해결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일행은 뒷풀이를 위해 부산진역에 내려야 했다. 그 할머니는 닭 쫓던 개처럼 난감해 했다.
6. 뒷풀이 장소에서
점심 때 돼지고기 찌게를 너무 맛있게 먹었으므로 뒷풀이는 깔끔한 회가 낫다고 하며 수정시장 내에 있는 시장횟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마 부산에서는 가장 싼 횟집이란다. 3만원 짜리 하나 시키면 셋이 먹고도 남는다 했다. 일행은 손님으로 그득한 그 횟집 3층에 올라가서야 겨우 자리를 얻어 잡을 수 있었다. 이 집에 7석이라는 이처럼 많은 자리를 잡는 것이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요일에는 더욱 그렇단다.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뻐하며 음식을 기다리며 강 사장이 어슬렁에 나오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배 주간이 정년퇴임을 하므로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강 사장이 배 주간에게 사장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큰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편안한 업무를 맡겨 놓고 함께 소일거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배 주간이 박 변호사에게 했더니 박 변호사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혹시 배 주간이 퇴직금을 날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러면 그 사장이라는 분을 한번 박 변호사가 만나 사람 됨됨이를 살펴보자는 것이었고 그렇게 해서 오늘 어슬렁 등산에 배 주간과 함께 강 사장이 나왔던 것이다.
저술한 책이 팔리면 그 수익금은 삼원 장학회의 장학금으로 전부 기탁된다 함으로 자신의 책을 선물 할 때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슬렁 회원들에게는 박회장이 사서 선물하던가 아니면 강 사장이 구입해서 선물하던가 아니면 13일 출판기념회장에 나와서 선물 받던가 하라는 것이었다. 강 사장이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공무원 생활을 하는데 돈의 유혹을 물리칠 방법이 없어서 선택한 것이 사표였다고 한다.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책에 잘 나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보클럽 사이트를 개설하여 운영한다고 했다. 그 내용인 즉 「하늘에서 내려준 천진성과 순수성을 오래오래 간직하고자 이 바보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행복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천진성과 순수성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임명수 시인이 맞은 편에 앉은 박신일 회장에게 명령조로 부탁한다.
『어이 박 회장, 재떨이 좀 갖다 줘』
일동 웃음,
『오늘 말 중에서 그 말이 가장 히트 친 말이 될 거야』
『오 여사라고 했는데 오 선생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 앞으로 강 사장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될지가 끔찍하게 생각되는군』
이 대장이 오 선생의 눈치를 보면서 말하자 뒤이어 임 선배가 다시 보골을 채운다.
『어이 오 여사, 한 잔 들게. 낄낄낄』
시장횟집에서 나와 오 선생과 홍 박사님은 댁으로 가고 나머지는 다시 한잔을 위해 생맥주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인간관계의 좋은 발전을 갖자고 서로간에 다짐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잔씩 마신 뒤 임 선배와 박 변호사는 맥주집 위층에 있는 기원으로 들어가 대국을 하기로 했다.
『눈 다친 임 선배님은 한쪽 눈을 감고 두시고 변호사 님은 왼손으로 두시지요. 그러면 공평하겠지요』
그렇게 조언하고 술 반, 정신 반으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