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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82) 2006. 3. 24
주안에서 사랑하는 문대헌 형제 부부에게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경북대학교 캠퍼스에는 개나리의 노란 물결과 연분홍의 벚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국의 산하가 봄을 맞이하여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사계절의 아름다운 순환이 삶의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공연히 더운 날씨가운데 수고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고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까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워하는 고국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그리움과 기대와 설레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지난 2주간은 모든 한국인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답니다. 모두들 한국인으로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행복에 겨워 즐거워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World Baseball Classic)에서 한국팀이 연승을 거듭하면서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기에 말입니다. 일본팀과는 2번이나 승리하였고, 세계 최강을 자만하였던 미국팀을 ??고 중국팀, 대만팀, 멕시코팀을 모두 이기어 6연승으로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비록 이상하게 조작된 대진표 때문에 준결승에서 일본팀에 패하였지만, 한국민 모두는 참으로 잘하였다고 격려하며 위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선을 다한 경기였기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민족을 변방에서 중심국가로 이동시키는 것 같습니다. 월드컵 축구의 4강에 이어 야구도 세계 4강의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선교사 파송 숫자에 있어서는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2번째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많은 전쟁과 역경과 고난의 연속에서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도우심을 찬양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신바람이 나면 놀라운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우리 민족성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의 일꾼들에게 있어서도 즐겁고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과 선교사역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있어서도 신바람 나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활력을 얻어 즐겁고 내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주어진 오늘을 신바람 나게 주님을 섬기며 그분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행복하며 하는 모든 일에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때론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할 때도 있겠지만, 다시 일어서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일으켜 세워주시도록 성령께 온전히 의뢰하는 삶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시도록 그분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의탁할 때 우리는 성령 충만한 신바람 나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충성되고 헌신되고 신실한 일꾼인 에바브라의 믿음의 삶이 골로새 성도를 통하여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가듯이, 형제 자매들의 주님을 향한 헌신과 믿음과 사랑의 수고가 온 천하에 열매를 맺어 자라가는 것을 보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25일-28일까지 일본에서 수고하는 있는 성열완 형제 부부와 문은석 형제 부부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합니다. 좋은 교제를 위해 기도하여 주세요. 지난 3.1일 전체 기도 모임에서 나눈 메시지를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새롭게 정리하며 헌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긍휼이 각 가정과 하고자 하는 모든 일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덧입고 살아가는 박 남 규 부부 서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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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 수석 전공의가 된 이 승복 형제의 삶을 통하여 함께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게 제 운명이고 하나의 정해진 플랜이라고 생각합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세계적 권위의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 전공의가 된 재미교포 이승복(40)씨가 자서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민음사) 출간에 맞춰 2005년 8월 29일 방한,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가졌습니다.
여덟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고교시절 전미 올림픽 상비군의 촉망받는 체조선수였으나 훈련 중 사고를 당하여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뉴욕대, 컬럼비아대 공중보건학과, 명문 다트머스 의대, 그리고 하버드 의대의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입니다.
?어릴 때 뉴욕 퀸스 지역의 플러싱이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미국 아이들이 저를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알아볼 뿐,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더군요. 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리고 어렵게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체조를 시작했어요?
뉴욕주 고교 체조 챔피언이 된 그는 88서울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다는 일념으로 올림픽 꿈나무들의 산실인 펜실베이니아주 앨런 타운 체조센터에 들어갔고, 아라비안 살토(공중돌기)를 하던 중 고개가 뒤로 젖혀진 상태에서 턱을 바닥에 내리꽂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성조기가 아니라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기 위해 국적도 바꾸지 않았지요. 그런데 사고 순간 G.O.D라는 알파벳 세 글자가 눈앞에서 뭉게 구름처럼 지나가더군요. 하나님이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어요. 하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고 손이 사라진 것 같았어요. 척수신경 7번과 8번을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된 것이죠.?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던 중 간호사들로부터 ?소변을 볼 수 있으니 너는 행운아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씨는 다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의학서적을 탐독하다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5개월의 준비 끝에 뉴욕대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하게 됩니다.
?미국인 친구들이 승복이라는 제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 승박, 수박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그러나 다트머스 의대 친구들이 첫 글자를 따서 SB라고 부르자고 하더군요. 그냥 에스비가 아니라 슈퍼 보이(Super Boy) 에스비라는 거예요. 지금 존스홉킨스 의대에서는 ?슈퍼 닥터 리?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는 88올림픽 당시, 체조 선수가 아니라 도슨 트로트 맨 선교사가 창시한 네비게이토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휠체어를 타고 한국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휠체어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값진 보물이 되었습니다.
?존스 홉킨스 병원에 갔을 때 처음엔 환자들이 휠체어를 탄 제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더군요. 그러나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욱 친밀감을 갖고 다가왔지요. 환자들과 깊은 신뢰를 교환하게 되니 제겐 장애가 오히려 행운이 된 셈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 대학의 조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는 그는 ?어머니가 자꾸 장가가래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태릉선수촌과 국립재활원 등에서 초청강연을 한 뒤 다음 달 14 출국합니다.
(국민일보 칼럼에서 인용)
우리는 미국 네비게이토 소속 이승복 형제의 간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여러 가지 교훈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한 간증의 삶이 우리의 모두의 교훈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이사야 60:1-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예루살렘아, 일어나 빛을 비추어라. 네 빛이 이르렀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밤처럼 짙은 어둠이 온 땅의 백성들을 덮을 것이나,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며, 주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모든 성도, 즉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일어나서 빛을 비추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상황이나 능력보다도 태도의 문제입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의 문제입니다. 상황이 아닙니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태도가 자신의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인도하게 됩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 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기회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좌절의 높은 벽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쥐 두 마리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한 마리는 이제 죽었다고 절망하였습니다. 결국 죽었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먹을 것은 충분히 있으니,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보자고 결심하며 안간힘을 다하여 참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유가 치즈로 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우유 통을 기어올라와서 살았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태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서 올바른 태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힌 상황을 기도와 찬미하는 마음, 즉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로 임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태도가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태도, 감사하는 태도,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는 태도, 절망을 희망의 기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1. 일어나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박차고 일어나라고 명하십니다.
(1) 부정적인 자아상에서 일어나라!
올바른 대인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건전한 자아상이 건전한 대인관계를 갖게 합니다. 건전한 대인관계를 갖지 못하면 우리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은 결코 빛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건전한 자아상을 갖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열등감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건전한 자아상은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말며,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은 자신의 생각이나 언어,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쉽게 우울하거나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들에게 빛을 발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교만한 자아상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배척 당하거나 따돌림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 주위에 있는 영혼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자아상,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아! 나는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모든 것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이나 상황이나 모든 사건을 내 자신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결정하고 계획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자기 본위의 생각입니다. 자기 지혜와 명철이 그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셨습니까?
*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창1:27-28)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녀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는 항상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피 값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자부심의 현주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소속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권속입니다. 하나님 나라 가족의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의 일원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안정감과 중요성이 나오게 되며, 모든 하나님의 자원을 내 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가치 있는 존재입니까!
* 나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4, 요10:10)
나는 충만한 삶을 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충만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2:9-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으로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완전한 행복과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세상적인 것으로는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선한 행위와 완전한 선물들은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만족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넘치는 풍성한 삶을 경험할 수 있으며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귀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위에 충만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녀가 많아도 자신을 닮지 않는 자녀는 사생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은 사람들은 마귀의 자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육하고 번성시켜 온 땅위에 하나님의 사람들로 충만케 하는 귀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창조하였습니다. 인생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명감입니다. 우리는 목적 지향적으로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기여하도록 부름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재능과 은사와 우리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계발하여 하나님의 지으신 선한 목적과 사명을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하여야 합니다.(엡2:10) 이 얼마나 놀라운 사명입니까!
그런데 나는 어떠합니까? 나는 나를 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까?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행여나 자신을 메뚜기처럼 생각하고는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메뚜기 콤플렉스(complex)라고 합니다. 콤플렉스란 ?억압된 의식아래 잠재된 부정적인 관념 혹은 열등감?을 말합니다. 콤플렉스는 죄의 속성입니다. 콤플렉스 자체가 죄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낙심하게 하고 절망하게 합니다. 그것이 삶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는 우리의 미래를 잘못된 방향으로 결정하게 합니다. 우리는 죄의 속성을 가진 이 콤플렉스를 우리의 삶 가운데 깨끗이 처리하여야 합니다. 그 자체가 죄이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우리는 메뚜기 자아상을 가지고는 있지는 않는지요?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자신을 바라보거나, 사물을 바라볼 때 ?자신을 메뚜기?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인 자아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상대를(문제, 어려움) 밥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보낸 정탐군의 보고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물과 환경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정탐군의 보고는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여겼습니다.
민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긍정적인 시야로, 하나님의 시야로 사물을 바라본 것입니다.
민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가나안 거민은 우리의 밥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밥은 단순히 먹어치울 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식은 죽 먹기?라는 정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그들은 우리의 밥에 불과합니다. 긍정적이고 건전한 자아상은 하나님과의 동행의식에서 나오게 됩니다. 요셉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깊은 확신을 가졌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있든지, 감옥에 있든지, 왕궁에 있든지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의 깊은 동행의식으로 긍정적인 건전한 자아상으로 인하여 성공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과 함께 하심을 믿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가능의식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메뚜기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콤플렉스를 버려야 합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2) 과거의 삶으로부터 일어나라!
* 과거의 성공과 자기 만족과 도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과거의 실패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연민의 우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과거의 아픈 상처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받은 고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입니다. 언제까지 지난 과거의 성공과 만족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바울은 생애 말년에도 지나온 과거의 모든 것, 즉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출발선상에 선 경주자의 심정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언제까지 과거의 상처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입니까? 과거의 아픈 상처는 원망과 불평과 쓴 뿌리의 올무로 자신을 얽매이게 합니다. 부모로부터, 선생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또는 동료로부터 받은 상처가 나를 망치도록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쓴뿌리나 원망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을 망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영혼과 육체가 병들게 됩니다. 왜 내가 남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고통 때문에 자신을 망치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오히려 나의 성공과 성취의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아픈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숙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따돌림당한 아픈 기억들이 그를 무척이나 괴롭게 하였을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일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아픈 상처와 고통은 오히려 그의 성숙과 성공의 디딤돌로 작용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과거는 없습니다. 오직 현재와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오직 오늘과 내일만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 눅13:32-33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 지나친 죄의식에서 일어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불순종하며 패역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그토록 입었지만, 그들은 돌아서면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또한 불순종하였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하였으며 슬프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거듭된 죄악을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끊임없는 용서와 회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몇 년 전에 이사야서를 종합적으로 공부하면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35장)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40-66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교훈과 기록(36-39장)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시적이고 계획된 진노에 비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구절에서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54:7-8)
잠시와 영원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긍휼과 진노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거룩한 진노 중에 나타납니다. 때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엄격하신 진노 중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나타남을 우리는 경험하였습니다.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엄격히 심판하시며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며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자비와 은혜와 인자가 풍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출34:6-7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은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인자는 천 대까지 영원토록 베푸시는 하나님이지만, 죄의 보응은 삼사 대에서 그치는 인자와 긍휼과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잘못과 죄의 굴레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됩니다. 지나친 죄의식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자유로움 가운데 힘차게 하나님을 섬겨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고 돌아서면 완전히 용서하여 주시리라 약속하였습니다. 여전히 죄의식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용서하심을 믿지 못하는 또 하나의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어떤 잘못이나 큰 죄로부터도 주님의 죄 용서하심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고 지나친 죄의식의 굴레에서 온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함과 당당함과 자유로움 가운데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성취하고자 하는 믿음과 헌신이 새로운 각오가 필요할 뿐입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상과 과거의 삶과 지나친 죄의식으로부터 온전히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발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빛을 발하라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빛을 받아서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빛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진정한 빛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 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요1:4-9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 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요일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빛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 행26:17-18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빛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빛을 통하여 그는 회개하고 주님의 사도로서 주님의 빛을 발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생애를 살았습니다.
*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주님의 빛을 받은 자로서 우리는 당연히 주님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빛을 발하라고 명하십니다. 주님의 빛을 온 세상 열방 가운데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열방의 모든 족속이 그 빛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의 반사체로서 또한 빛의 통로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 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 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생명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빛을 부어주신 목적은 주님의 빛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빛을 선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 행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 라엘과 이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얻게 될 생명의 빛, 구원의 빛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선포하기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 행5:19-20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빛)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주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등이며 그들의 발길에 있어서 빛이 되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게 되며 행복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주는 생명의 빛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말씀입니까!
*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빌2:15-16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행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롬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등불을 밝히는 등대입니다. 캄캄한 흑암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빛의 사명을 가지고 세상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갈 길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는 이들에게 어느 쪽이 올바른 방향인가를 밝혀주는 이정표입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영혼들에게 그들의 생명을 위해 안내하는 외로운 등대지기입니다.
(2)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효과적으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한순간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복음의 확증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전한 복음의 내용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선포가 먼저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의 확증입니다. 말로서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전파된 복음이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이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삶의 좋은 본을 보였습니다. 자기가 전한 복음의 내용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살전2:10)고 고백하였습니다.
* 엡5:8-11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빛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기초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세우며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닮은 그리스도인만큼 효과적인 증인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빛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도록 내면적이고 인격적인 삶에 더욱 발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야곱의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으십시요!
효과적으로 주님의 빛을 발하며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도움을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 믿음의 선진들이 있지만, 특별히 야곱의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야곱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기르신 하나님, 야곱을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 풍성한 인자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에게 감당할 수 없는 복을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맞이해야 하는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시고 형통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그에게 친히 나타나서 얼굴을 향하여 도와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여 주시고, 새로운 이름으로 온전케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창48:15-16, 창32;24-29)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지렁이 같은 야곱을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으셔서 온 천하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빛나는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거인도 아닙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대면하여 하나님의 가사와 이적을 행한 인물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저는 야곱의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야곱처럼 연약할 때 언제나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말입니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온전케 하여 새로운 도구로 삼으셔서 사용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습니다. 야곱을 통하여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야곱은 참으로 부족하고 연약하였지만, 한 사람의 이름이 한 국가의 명칭으로 사용되어지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야곱의 변화된 이름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특권입니까!
우리도 스스로를 볼 때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지렁이 같지만, 야곱처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복 주심을 간절히 의뢰하는 믿음과 기도의 삶을 통하여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1-22)
야곱과 같은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온 세상 열방과 각 족속들과 나라들 가운데서 주님의 추수할 일꾼들이 천을 이루며 강국을 이루어주시도록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생애와 사역 가운데 야곱과 같은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는 지난날의 모든 삶으로부터 일어나서 헌신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의 빛을 드러내는 주님의 귀한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