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평생을 두고 음미할만한 깊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위 학생운동을 한답시고 쫓아다니던 학부시절부터 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던 대학원 시절 내내 나는 꼬박 12년을 대학에 있었으므로, 너무도 많은 스승님들로부터 다양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진리란 무엇인가?", "사회, 철학, 국가, 민족, 역사, 사관(史觀), 정치, 권력, 진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인간은 정치행위를 하는가?" 등 지극히 본질적인 문제들을 스승님들께서는 늘 상기시켜 주셨고, 이른바 '인간주의'(humanism) 정치에 대해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사회를 조망하는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등 제 방면에서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 주시기 위해 부단히 독려해 주셨다.
돌이켜 보건대, 스승님들께서는 한결같이 대 학자이셨다.
오래 전에 작고하신 스승님 중 두 분은 5개 국어를 구사하신 국제정치 분야의 대가이셨는데, 그 중 한 분께서는 운명하시던 날, 내게는 또 한 분의 스승이 되시는 수제자를 불러 놓고 불어(佛語)로 유언을 하시면서 비문(碑文)을 구술해 주셨다.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셨다.
또 한 분께서는 1980년대 초, 당시로는 1급 비밀이었고 소위 '불온'문서로 취급되어 학생들은 절대 열람할 수 없었던 서고에 나를 불러 소련 관영 언론이었던 <프라우다>지를 읽어 주시며 북방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주셨다. 내가 러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소련정치를 공부하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는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 시절,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나를 인도해 주신 스승님 또한 잊을 수 없다. 그 분께서는 늘 "제자가 스승을 학문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학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른바 '학문적 근친상간'을 경계하셨다.
하지만, 누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미 사십 줄에 들어섰건만, 그리고 나의 스승님들 중 몇 분은 이미 오래 전에 은퇴하셨고, 또 몇 분들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직도 나는 그분들이 이룬 학문적 업적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오늘도 마음이 괴롭다.
일전에 나는 요 몇 주간 국내외에서 전개된 이슈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나의 스승님들 중 또 한 분께서 주신 가르침을 새삼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학부에서부터 대학원 시절에 이르기까지 내게는 너무도 힘든 스승님이 한 분 계셨다. 그 분은 리포트에 마침표 하나 잘 못 찍어도 감점을 하시던 분이셨다. 3시간 짜리 전공필수과목 수업을 한 학기 내내 개념정의만 하시다 끝내기도 했는데, 어쩌다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실 때는 토씨 하나를 가지고 무려 30분 씩 토론을 하시기도 했다.
심지어 옷매무새에서부터 몸가짐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교정해 주시는 철저하신 분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제자들은 그 분 앞에만 서면 괜히 긴장이 되고, 평소 잘 알고 있던 것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한심스럽고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솔직히 그 분을 대하기가 늘 부담스러웠고, 가급적이면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그 분에 대한 내 태도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내게 최초로 강의를 주신 분이 바로 그 분이셨던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분이 나를 당신의 제자로 인정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과정 초년생 시절 어느 날, 나는 갑작스런 호출을 받고 바짝 긴장하여 선생님 연구실로 쫓아갔다. 문 앞에서 한참 동안 옷매무새를 고치고 조심조심 들어갔는데, 그 날 따라 웬일인지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맞아 주셨고, 단도직입적으로 지방의 모 대학에 출강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조건 사양했다. "선배님들도 계시고, 무엇보다도 아직 강단에 설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라고 공손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전에는 하시지 않던 말씀을 하셨다. "무슨 소리야? 가르치는 것이 최상의 공부야. 나도 너희들을 가르치면서 공부하는 거야."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한번 더 사양해야 할 것 같았다.
너무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제 너는 강단에 설 자격을 갖추었어. 대신 내가 한가지 당부를 할 테니 꼭 명심해라" 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슨 비법이라도 전수해 주시는 줄 알고 바짝 긴장하여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은 딱 한 줄이었다.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말할 때 마치 그것이 나쁜 것인 양 말하지 않아야 한다."
선생님 방에서 나온 나는 한참 동안이나 주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무슨 말실수를 저질러서 경고하는 말씀인 줄로 착각했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나는 선생님께서 주신 그 가르침의 뜻을 깨닫고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싫은 것을 남에게 말할 때엔 마치 그것이 나쁜 것인 양 표현하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내가 듣기 싫고, 보기 싫고,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해서 무가치하다거나 나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재미없으면 남들도 재미가 없겠거니 지레짐작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싫은 것도 남들은 좋아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은 싫어 할 수도 있다. 내게 맞지 않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맞는 경우가 있으며, 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다른 사람에겐 소중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내게 불리한 여건이라 해서 그것이 모두 부정의(不正義)한 것은 아닐 것이며, 내게 유리하다고 해서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사회의 모든 현상이 반드시 단일한 준거(準據)에 의해 판단되고 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개인 또는 집단의 호오(好惡)의 감정이 반드시 선악(善惡)의 차원이나 진위(眞僞)의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어쩌면 그것은 서로 상치되어 발생되는 경우가 더 많은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선(善)과 진(眞)을 좋아하고 악(惡)과 위(僞)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처지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에 따라, 선과 진보다는 악과 위를 더 선호하는 경우도 왕왕 보게 된다.
근본적으로는 진실하지 못하고 정의감이 부족한 데에서 발생하는 것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다원주의(多元主義)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빚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중민주정치 하에서 발생하는 숱한 이슈들은 상당부분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