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경남에서 두 곳을 이겼다. 밀양시장과 함양군수다. 수도권에서 겨우 한 석(구리시장)을 얻은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적진이라 할 수 있는 경남에서만 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노 대통령을 '부산 출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남지역에서는 어느 누구도 열린우리당을 영남 연고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압도적이다. 선거 전에는 밀양시민들도 "한나라당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말라"고 말했었다. 그런 곳에서 시장 선거에서 이겼다.
이런 결과는 선거 전에 이미 예고됐었다. 나도 칼럼에서 밀양의 사정을 소개한 적이 있다. "정당 배지 떼고 붙여보자" (
http://blog.joins.com/gugi/6231704)라는 칼럼(4월 27일자)이다.
선거 전 밀양의 민심은 다른 지역에서 보여준 이번 선거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면 당연히 당선된다는 분위기였다. 밀양 유권자들이 경남 도지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64.1%의 몰표를 던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도 의원과 시 의원 비례투표에서도 모두 60%가 넘는 표를 몰아줬다. 그런데 유독 시장 선거에서만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아래 표 참조)
선거 전에 조성된 밀양시의 분위기 때문에 밀양 시장에 나서려는 유력 예비후보들은 대부분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분위기를 거슬러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경선을 벌였다. 그런데 이번에 공천을 받은 박태희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다른 경쟁 후보보다 0.078% 앞섰다며 후보로 공천장을 줬다. 다른 후보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당원 투표에서는 다른 후보가 앞섰는데도 여론조사를 조작해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박태희 후보의 부인이 경찰에 긴급구속됐다. 여론조사 대상자들에게 돈을 뿌린 혐의였다. 한나라당 중앙당도 밀양시장 후보의 공천을 한동안 보류했다.
그러나 박 후보의 부인은 돈 살포와 무관하다고 주장해 풀려났다. 돈을 직접 전달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졌다. 그러나 누가 돈을 돌렸건 그런 금품 살포가 있었다는 것은 여론조사의 표본이 이미 특정 후보에게 공개돼 있었다는 의미다. 시민들은 그 배후에 김 의원과 박 후보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김 의원의 지역구인 창녕도 공천 관련 시비와 금품관련 시비가 있었는데 이번에 무소속이 당선됐다.)
밀양에서 만난 시민들 가운데 박 후보측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김용갑 의원에게 도움을 받은 일을 마무리하러 상경했다는 밀양 사람마저 "김 의원이 공천을 잘못해 말이 많다"고 걱정했다. 박 후보의 고등학교 동기 동창들까지 시장감이 못된다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공천을 강행했다.
밀양 시민들은 고민을 많이 했다. 찍을만한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에 참가해 선거법에 따라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없었다.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엄청난 반감을 보였다. 밀양의 정당 선호도도 선호도지만 최근 전국의 분위기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없이 열린우리당을 찍어야 할 것 같다.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은 또 망한다. 밀양 시민이 허수아비냐. 아무나 내보내도 찍어줘야 하나. 이번에 혼을 내야 정신을 차린다.이 정부를 생각하면 열린우리당으로는 가기 싫지만 그래도 다른 후보 가운데는 열린우리당 후보가 낫다."
밀양은 이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는 도시다. 김용갑 의원이 바로 그 수혜자다. 김영삼 정부 당시 김현철씨의 추천으로 민자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출마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과거 밀양을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밀양 시민들은 말했다. 갑자기 고향이라며 낙하산을 타고 왔다는 것이다. 밀양 시민들은 외면했다. 공무원들조차 관공서를 다니는 그 후보를 외면하고, 악수하기를 거부했다. 3당 합당으로 반 평민당의 거센 민자당 바람 속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용갑 의원이 당선됐다.
밀양 시민들은 이번에 다시 잘못된 공천을 응징했다. 막대기를 꽂아서는 당선될 수 없게 하겠다는 밀양시민들의 오기다.
선거가 끝난 뒤 밀양 시민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파란 영남 지도 한 가운데 눈에 도드라지게 노란 얼룩을 찍어놓았느냐고 놀린다며 속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부심을 토로했다. "나는 한나라당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열린우리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도의원, 시의원은 압도적으로 한나라당 후보를 뽑아준 것만 봐도 알지 않느냐."
전국적으로 공천 비리가 거론되는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휩쓸었다. 서울의 한 선거구에 사는 정 모씨(34)도 그런 불만을 표시했다. "한나라당 후보보다 열린우리당 후보가 훨씬 더 좋아보였다. 그렇지만 열린우리당이 싫어 한나라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공천을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화가 났다."
밀양 시민들이 지역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런 정서를 갑자기 내던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묻지마 투표가 전국을 휩쓴 와중에도 '멋대로 공천'은 반드시 응징하고야 말겠다고 나선 밀양시민의 선택은 정말 박수를 보낼만하다.
<밀양시장 선거 결과>
열린우리당 엄용수 23,261(40.7%)
한나라당 박태희 23,012(40.3%)
무소속 김종상 6,357(11.1%)
무소속 이창연 1,661(2.9%)
무소속 이태권 2,866(5.0%)
<밀양지역 경남지사 선거 득표 내용>열린우리당 김두관 15,879(27.8%)
한나라당 김태호 36,650(64.1%)
민주노동당 문성현 3,844(6.7%)
국민중심당 김재주 82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