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 애슬론, 수영, 싸이클, 런닝으로 구성된 경기
듀애스런 대회, 런닝 5키로. 싸이클 40키로, 런닝 10키로 ...........
아무래도 바닷가 출신인 내게는 수영없는 경기 참가가
힘들었다는 것을 차츰 실감 할 수 있는 대회였다
처음 이대회 참가는 아마 2000년, 10년전??
기억에도 아름하지만
마누라가 따라 왔던 것을 생각하면 철인경기에 입문한 초창기
뭔지도 모르고 따라 다니던 마누라
마누라 따라왔던 대회라면 분명 오랜전 참가한 대회인듯하다
하지만 어느순간 경기장에는 늘 나 혼자였다
아마 춘천 마라톤에 따라나선 그 대회가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론 늘 먹고 할 일없어 뛰고 솟고 날리 버거지 치는
요란 벅적한 지랄용천 쯤으로 생각하는듯
가면 가는가
오면 오는가 .........
토요일 출발해서
일요일 땡볕에서 죽어라 뛰고 솟고 달리다 와서
그냥 밥 먹고 엎어져 자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라서
이제 이런 운동경기 참가가 그저 일상이 되어버렸고
나 역시 별다른 바램도 없으며 그저 내 자유로운 영혼이 가는 대로
내 마음이 나서는 대로
내 몸이 꼴리는 대로 하면서
그것이 내가 좋아서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만족했으며
행복했고 즐거웠다
좌우든
떠나기 전 식사나 하고 가라는 나라 감자탕 사장님의 말씀
늘 신세만 지는듯해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우리
배푸는 것으로 행복해 하는 마음이라면
이것도 사람살이의 즐거움일리라 ............
4. 3 토요일
나라감자탕 사장님의 배려로 3 사람이 모여서 점심 먹고
장거리 운행에 대비해서 장만한 승용차용 자전거 케리어에
3대의 자전거를 매 달았다
고속도로 내려가는 내내 뒤에 매달린 자전거에 신경이 가곤했지만
다행히 별다는 문제 없이 천안 도착
평시하는대로 선수등록
그런데 내 이름이 안보인다
좌측 어느 구석에 있는 것을 종민씨가 찾아준다
인자 나도 다됐나?
어리비리 하게스리 이름도 찾지 못하고 ........... 슬며시느껴지는 나이
그래도
거울이라도 보면서 머리라도 빗을라 치면
집사람은 '발악은 한다 해 ........"하면 궁시렁거리곤 하더니만
정말 내가 이런 날, 이런 경기에 참가한다는 것이 발악일까?
저녁
도승이 아는 사람이 천안에서 식당을 한다는 곳으로 갔는데
그저 평범한 식당일줄 알았는데
가 보니 웬걸
아마 천안에서 제일 호화롭고 규모도 큰 중국식 레스토랑이었다
본래 중식은 안좋아하지만 ......그 분위가 너무 좋았고
더구나 천안에 사는 고치 친구 부부도 불러 같이 했다는게 더 좋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우리 아버지 모습들이 보인다
일요일
대회 시작
런닝 5키로
예상은 했지만 독립기념관 주변 도로로 은근히 이어지는 언덕
뛰는게 힘들다
아침에 거시기를 봤는데 한바퀴 돌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아침에 싼것은 아랫층 거시기 였고
이제 느껴지는 것은 이층에 퍼져있던 거시기 였나?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막을 오르면서 첫바퀴 뛰면서 얼핏 보았던
화장실이 생각났다
아직 그곳 까지 갈길이 먼데 .........미꾸멍에 앙금을 주고 달려보니 아직은 달릴만 한데
화장실 까지 남을 거리와 슬슬 조아오는 뱃구리의 통증과 힘주어 조여보는 미자바리의
앙금 한계 ..............남은 거리, 다소 무리가 있을듯한 느낌이라서
달리면서 도로 옆 숲과 길 밑 고랑을 쳐다봐도
적당히 갈길만한 곳이 없다
우리 고향에는 움침한 곳이 너무 많아 좋았는데 ............
그러나 이곳은 민족의 혼과 얼이 스민곳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이 모셔져 있는
이른바 민족의 성지나 다름없는데
하물며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이놈을 갈겨서 되겠는가 그것도 보통 것이 아닌
엄청난 놈의 거시기를 ......어제 저녁 중국집에서 공짜다 싶어 그냥 퍼 넣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전에 퍼 마신 맥주가 ...........알고보니 공짜도 아니였고
줄것은 조금 주었던 모양이던데 ............좌우든 쏟아지면 엄청나게 더러운 것들이
내 질러 나올듯한데 이놈을 독립기념관 뜰에다 .....안된다
참아야 한다
늘 나라는 위하고
그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왜놈 앞잡이 보다는 독립운동이나
안중근 의사정도는 됐을거라고 아들놈한테 꽁사발 쳤던 나 아니였던가
더구나 평화로운시절에 태어난 죄로
나의 희생을 무기삼아 뭔가를 보여줄게 없어
나의 진가를 발휘할수 없었덙 불행한 영웅, 휼륭한 서방
그런 놈을 남편으로 맞아 살고 있는
니는 정말 시집 잘 왔다고 마누라 한테 뻥뻥거렸던 내가 아니였던가
그런 내가 이런 독립기념과 뜰에다 그것도 앞뜰에다가 ..........
참기 힘들다
독립심도 없어지고
그저 나의 안위만 생각하는 일본놈 앞잡이 보다 못한
놈이 되는게 더 낳다는 유혹이 온다
뱃병의 고통이 그저 나를 배신자로 만든다 ............
이 고문
이 고통
독립투사들도 그랬을까?
아!
하늘이 노랗고
미꾸멍에 전기가 찌릿 찌릿오고
아랫배는 틀어 오른다
어제 저녁 해삼탕이 잘못되었나 ......... 별라별 생각을 다 하면서
미꾸멍 앙금을 한것 틀어 조이면서 언덕을 뛰어 오르는데
저멀리 아스라이 화장실이 보인다
우라질
문디 같이......
길가가 아니라 길에서 잔디밭을 지나 돌계단을 좇나게 뛰어올라 간 언덕에 있는 화장실
무슨 화장실이 전망대도 아니고 .......왜 저렇게 높은 곳에다 지었는지
독립기념관 화장실이라서 그런가?
옷에 싸기 직전에 바로 뛰어 들어가서
문 닫을 틈도 없이 그냥 .........................하늘에 벼락치는 소리가
어려서 조금 별나고 호기심도 많았던지
고모뻘 되는 친척따라
옥포 사돈집에가서 사돈할배 반주마시는 것 보고선
그것 안준다고 얼매나 땡깡을 부렸던지
사돈할배가 밥 먹을때 마다 술을 주었다는 애기
나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좌우든 일주일 정도를 그곳에서 지내다 아니 깡소주를 반주로 마시고 집에 왔는데
우리 엄니 애기를 빌면
배가 부어 있고
설사를 삘삘하는게 심상찮아 ...........알아보니 .........음주 사건이었단다
다섯살때 일이었다
좌우든 ㅡ 그후로 난 늘 뱃병을 달고 살았다
기억에도 늘 새벽 화장실
화장실이 너무 무서워서 갈때마다 할매를 깨워서 똥꾸시를 가야했던
어린시절 .......똥구시 앞에 할매 있는지 없는지 중간 중간 할매를 불러 확인하면서
그 무섭고 어두운 똥구시에서설사를 삘삘 갈기던 시절
할매는 "빌어먹을 할배탕구, 아 한테다 줄 것을 줘야지"
옥포 사돈할배를 일컬어 욕을 하다가는
이내
초저녁에 쳐 먹을때 알아 봤다든가
배성이 안좋으면 조심해야지 ..........좌우든 별라별 잔소리를
새벽 똥구시에서 싸면서, 갈기면서 듣곤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해 주는 알라궂은 약,
벌꿀에 마늘 찧어 넣은것,
들께 볶아 넣은것 따위를 달고 살았던 탓인지
어느 순간 새벽 똥구시 잔소리를 차츰 잊어갔다
이런 급박한 순간에
늘 어린시절 지나치게 깡소주를 마신탓으로
한번씩 급작스런 똥내림 고통을 격는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일을 마치고 화장지를 찾으니 ..............
아니 이 독립기념관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다,
자세히 살피니.........있긴 한데 ....너무 멀리 있다 .........
문 열고 한참을 나가 문 출입구쪽에
공중 화장실에 어울리는 두루말이 화장지 .........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경기중이고 다시 달려야 하는 상황
체면이고 지랄이고 그냥 ............나가서 북 찢어 한방에 해결하고 다시 달렸다
경기 참가 중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
겨우 초반 런닝 마치고 싸이클 거치대로 가니
이미 자전거는 거의 다 나가고 몇대 없다
느껴지는 서글픔 ..........한때는 들어오면 많은 자전거들이 남아 있었는데
유독 수영없는 경기에서는 늘 후미 구룹에서 달리는 이 기분
싸이클 40키로 마치고 런닝 10키로
언덕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늘 하듯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달리는 템포 런닝
막판에 그 힘을 발휘해서
그래도 나를 앞질러 가던 사람들을 재껴나가면서 골인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첫댓글 캐리어가 문제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앞뒤 바퀴 다 떼어 내고 매달았더니 괜찮더군요
똥구시 이바구가 웃기기로 말하자면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부영아파트 살때 이바구가 있는데 당시는 거의 매일 아침 검단산을 갔다가 출근하는 열의를 가졌던 시절이였는데 캄캄한 새벽에 검단산 정상을 찍고 엄마사랑화장실 앞 또랑있었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집앞 화장실을 코앞에 주고 또랑(당시는 비포장 도로)길에 다가 더러운 것을 발사, 그 길을 지나가던 행인(여자)이 쩍벌어진 앙상한 엉덩이를 보고 하는 말, 에고 망측해라 하면서 지나가더군요,그 사건은 대망신이였지요, 암튼 그런 고통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뛰고 타고 고생하셨요
ㅋㅋ,내년엔 같이 화장실 가겠습니다.가겠읍니다.(뭐가맞나?성만씨.) 지가 좀 무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