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앙에 관한 경전 연구 (3)
김정신(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2. 경전이 마련된 경위
일반적으로 경전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로 말할 수도 있겠으나 대개 성인의 말씀을 담은 경전이 본래적인 의미의 경전이요, 다음은 작자가 미상이나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절대자가 전해준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귀중한 경전이 있다.
이 두 가지 경우의 것은 계시경전으로 성전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다가 고매한 인격과 특출한 자질을 가진 성직자가 쓴 저술 중에서 후대에 추존하여 경전 속에 포함시킨 것 등 세 가지 경우가 있다.
대종교 경전으로는 앞에서 설명한 세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천부경 天符經』․『삼일신고 三一신誥』․『팔리훈 八理訓』․『신리대전 신理大全』․『신사기 신事記』․『회삼경 會三經』․『삼법회통 三法會通』의 7경전이 있다.
이 중에서 한배검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는 『삼일신고』를 비롯하여 『천부경』․『팔리훈』․『신사기』의 넷은 계시경전이요, 나머지는 세 번째의 경우에 속하는 경전이다. 다만 『신리대전』은 초대교주인 홍암대종사의 저술로, 교단 자체로는 성전에 준하는 귀중한 경전으로 중히 여기고 있다.
❚ 천부경
원래 대종교가 중광될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경전이다.
그 시절 묘향산에서 수도하고 있던 계연수(桂延壽)가 10여 년 동안 정성을 들인 끝에 암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찾아내어 1916년 9월 9일 이를 탁본해 뜻을 살펴보려고 해도 헤아릴 도리가 없어 고심하던 끝에 서울에서 한배검을 신봉하는 단군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1917년초에 대종교로 전해옴으로써 밝혀졌다.
그 후 1946년에 발간된 『종리문답 倧理問答』 등에서 한배검의 사관(史官)인 신지(神誌)가 ‘비사(秘詞)’와 ‘천부경’을 지어서 한배검의 교화를 전했다는 내용으로 ‘천부경’을 말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경전에 편입되지 않았다.
1975년 6월 교단의 교무회의의 결정에 따라 경전으로 공식 공인되었고, 1983년에 간행된 『대종교요감』에 처음 경전으로 실리기 시작하였다.
❚ 삼일신고
대종교가 중광하여 한배검의 가르침을 다시 펴는데 제일 기본이 되었던 최고의 성전이 계시경전이다.
1906년 1월 24일 하오 11시 당시 구국운동으로 동분서주하던 나철이 일본에서 귀국, 서대문역에 도착하여 세종로 방향으로 걸어갈 즈음, 한 노인이 급히 걸어오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고 “그대가 나철이 아닌가” 하고 묻고는 “나의 본명은 백전이오, 호는 두암이며 나이는 90인데 백두산에 계신 백봉신형의 명을 받고 나공에게 이것을 전하러 왔노라” 하면서 백지에 싼 것을 주고 총총히 가버렸다. 나중에 풀어보니 『삼일신고』와『신사기』가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이상이 대종교에서 이 경전에 대하여 밝히고 있는 경위이다.
그런데 이 『삼일신고』에는 신고 자체인 본문 앞에 발해국 고왕(高王)의「어제삼일신고찬문 御製三一신誥贊文」이 있고, 또 그 앞에 어제(御弟)인 대야발(大野勃)의 「삼일신고서 三一신誥序」가 있으며, 본문 뒤에는 고구려 개국공신인 마의극재사(麻衣克再思)의 「삼일신고 독법」이 있고, 끝으로 특히 발해국 문왕(文王)의 「삼일신고 봉장기 三一신誥奉藏記」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는 『삼일신고』가 정해진 경위와 유실되지 않도록 보존하고자 문왕이 각별히 노력한 경위가 실려 있다.
특히 봉장기에는 발해 문왕까지 이 경전이 전해진 경위를 밝히고 있고, 그 후에 대종교에 전해지기까지의 경위는 앞의 절에서 언급한 「단군교포명기」에서 밝히고 있으므로 이들 내용을 두루 살피면 이 경전이 전해진 모든 경위가 밝혀진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삼일신고』는 한배검께서 홍익인간․광명이세의 대 이념으로 팽우(彭虞)에게 명하사 그 가르침을 받게 하시고 고시(高矢)는 동해가에서 청석(靑石)을 캐오고 신지(神誌)는 그 돌에 고문으로 새겨 전하니 이것이 고문석본이다(따라서 삼일신고는 신지의 작이라는 주장이 성립된다).
그 후 부여조의 법학자 왕수극(王受棘)이 은문(殷文)으로 단목(檀木)에 새겨 읽게 하니 이것은 ‘은문 단본’이라 한다
.
그 후 이 두 가지가 모두 전화(戰火)로 없어졌는데, 다행히 고구려조 때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전해져서 발해국 문왕이 조부인 태조 고왕의 찬문(撰文)과 대야발공의 서문과 극재사공의 독법 등을 엮고 자신의 봉장기를 덧붙이니 이것이 어찬진본(御贊珍本)이다.
문왕은 전대에 석본과 단본이 모두 유실되어 후세에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대흥 3년 3월 15일 백두산 보본단 석실 안에 비장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비장된 지 1,300여 년이 지니도록 찾지 못하고 있다가 천행으로 백두산에서 수도 중이던 백봉신사가 10년을 도천(禱天)한 지성으로 한배검의 묵시를 받아 찾아낸 다음, 후에 대종교 초대 교주가 될 나철 흥암대종사에게 비전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대종교 교단이 파악하고 있는 전래된 경위이다.
❚ 팔리훈
이 경전은 ‘참전경(參佺經)’으로도 불린다.
천부경이 조화경(造化經)이오 삼일고가 교화경(敎化經)인데 대하여, 이 찬전경은 치화경(治化經)이 되는 계시경전이다.
이 경전도 천부경의 경우와 같이 대종교가 중광될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경전이다.
뒤에서 논급할 『신사기』라는 경전에 나오는 조화기편(造化紀編)에 보면 ‘인간의 366가지 일’이 언급되어 있으나, 자세한 조항은 오랫동안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종교 간부의 한 사람인 정훈모가 만든 단군교(일제강점기 때 있었다)에 알려지기는 했으나 출간되지는 못하였고, 광복 후 공주의 박노철에 의하여 『단군예절 교훈 성경 8리 366사』라는 표제로 간행되었다.
대종교에서는 1975년 교의회의 결정에 따라 이를 경전으로 정식 공인하였고, 1983년 간행된 『대종교요감』에 경전으로 처음 실리기 시작하였다.
❚ 신리대전
이 경전은 1911년 1월 15일 초대교주인 나철이 『삼일신고』속의 오훈 중에서 신훈을 근거하여 풀이한 것으로, 그 후 서일 백포종사가 주해를 붙였다.
1923년 1월 중국 상해에서 대종교시교회(大倧敎施敎會)가 삼일신고․신리대전․신사기․회삼경의 순서로 함께 엮어서 ‘종경합부(倧經合部)’로 발행된 것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경위이다.
❚ 신사기
이 경전은 1906년 1월 24일 후에 초대교주가 된 나철이 서대문역 근처에서 백두산의 백봉신형의 명을 받고 왔다는 두암이라는 노인으로부터 『삼일신고』를 받을 때 같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어느 때 누구의 저작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내용이 조화기(造化紀)․교화기(敎化紀)․치화기(治化紀)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교화기의 내용이 『삼일신고』의 내용을 자구 몇 자만 다를 뿐 그대로 담고 있어 귀중한 계시경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2대 교주인 무원종사가 이를 종경에 편입하였으며, 1923년 1월 대종교 시교회의 명의로 중국 상해에서 종경합부로 삼일신고․신리대전․회삼경과 같이 합본 출간되어 세상에 처음 밝혀지게 되었다.
❚ 회삼경
이 경전은 1917년 5월 후에 북로군정서 총재가 되어 청산리대첩을 이룩했고, 교단에서도 초대․2대․3대 세 교주 이외에는 유일하게 종사 칭호를 받은 서일 백포종사가 저술한 귀중한 경전이다.
『삼일신고』의 진리훈을 강해(講解)하여 대종교 교리를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풀이함으로써 교리 연구를 위해서는 물론이요,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로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독서로 높이 평가된다.
내용은 유가(儒家)의 역리(易理)와 불가(佛家)의 묘리(妙理)와 도가(道家)의 현리(玄理)를 바탕으로 삼신(三신)․산철(三철)․삼망(三妄)․삼도(三途)․삼아(三我)․삼륜(三倫)․삼계(三界)․삼회(三會)․귀일(歸一)의 9장으로 나누어 설강(說講)하고 있다.
이 책도 1923년 1월 대종교 시교회가 중국 상해에서 종경합부로 삼일신고․신리대전․신사기와 같이 합본 출간하여 경전으로 편입되었다.
❚ 삼법회통
정식 명칭은 수진삼법회통(修眞三法會通)이다.
3대 교주인 윤세복 단애종사가 1944년 4월 임오교변 당시 만주 목단강성 액하옥중(掖河獄中)에서 저술한 옥중저서이다.
삼일신고의 진리훈에 있는 지감(止感)․조식(調息)․금촉(禁觸)의 삼법에 대한 원리․방법․공효론(功效論)을 상세히 풀이한 내용이다.
1960년 저자가 조천(朝天)한 후, 1983년 대종교총본사가 발행한 『대종교요감』에 경전으로 편입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