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 득표로 김두관 후보 당선 확정!”
텔레비전 화면의 하단에 큼지막한 자막이 떴다. 김두관 후보가 꽃다발을 들고 양손을 치켜드는 순간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선거사무소는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김두관!”
“이겼다!”
“김두관!”
“이겼다!”
인터뷰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송에 나온 기자와 전문가들은 김두관의 승리를 두고 ‘지방선거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라고 논평했다.
16.9%(2002년)
25.5%(2006년)
53.5%(2010년)
계단을 오르듯 선거를 치를 때마다 득표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세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김두관은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김두관은 소파에 몸을 풀었고 그에게 피곤이 몰려왔다. 길고 긴 하루였고, 길고 긴 8년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김두관 당선자는 동지들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로 고故 노무현 대통령께 당선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일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날은 더없이 청명했다. 김두관 당선자가 도착해 보니 기자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두관은 일행과 함께 노 대통령이 누워 계신 박석묘 앞까지 걸어갔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 대통령의 어록 앞에서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누군가 묵념을 마친 김두관을 앞으로 이끌었다. 박석묘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 손을 뻗어 묘비에 얹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 기계음 사이로 김두관의 아내를 비롯해 함께 온 동지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김두관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두려워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경남에서 또 다시 패배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죽음이 가치 없어지는 것. 헛된 위안을 거부하고 쓰라린 진실을 선택한 결과가 허무한 패배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행 중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우렁차게 외쳤다.
“노무현 대통령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절망보다 강한 우정, 패배보다 강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두관이 지역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쓰러지지 않았던 것은 바로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소중한 정신과 가치가 결국엔 승리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선이 확정된 직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주의라는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여덟 번 찍었고 제가 마지막 두 번 더 찍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