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시인의 시집 <장롱의 말>이
2005년 9월 도서출판고요아침에서 나왔습니다.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
마산에서 시동인 활동을 하였고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2003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달균의 시집 <장롱의 말>을 읽고 있노라면,
시와 삶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삭혀지는 과정 속에서
배어나는 시의 독특한 맛을 감지할 수 있다.
삭히는 과정이 그렇듯, 그의 시는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농익어간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그러한 지경에서
그의 시는 눅진하게 삭혀진다....
.........곡절맛. 이 맛은 시간과 함께 어우러진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맛이다. 시간의 발효를 견디지 못하는 자는
이 곡절맛의 참맛을 느껴볼 수 없다.
요즘처럼 각종 자극적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이 곡절맛의 진미를 좀처럼 맛볼 수 없다. 어쩌면
이달균은 우리의 삶에서 스러져가는 이 곡절맛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우리의 삶 속에서 자리하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그 진귀한 맛을
감지해내지 못하는 데 대한 성찰의 시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달균 시인은 '시인의 말'에
"........말없이 수십 리를 에돌아가는 남강이 아름답다.
강물처럼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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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
- 이 달 균
뙤약볕을 누워 걸었고, 젖은 채 밤을 새웠다
천천히 몸을 밟고 지네가 지나가고
거대한 쇠똥 굴리며 쇠똥구리가 다가왔다
대지는 불온한 소문들로 가득했다
여우비에 저만치 덩굴손이 달아나고
웃자란 고춧대에 키를 재던 까치발이 저려왔다
햇살의 포화 속에서 나는 꽃을 피웠고
봉숭아 꽃잎은 저들끼리 더욱 붉어져
마침내 잘 익은 태양을 서산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두렵지 않다. 왕지네도 쇠똥구리도
개미들이 어떻게 개미집을 만드는지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엎드려 세상을 본다
나비가 잠시 앉았다 간 여름날의 울안이
내겐 대지였고 지난한 생애였다
짓무른 등창의 흔적마저 거두어야 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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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게임
- 이 달 균
햇살의 진군에 이어 폐허가 찾아왔다
마른 대지 위에서 전리품들이 나뉘어 진다
분주한
승자들의 오후
개미들의 논공행상(論功行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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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背)
- 이 달 균
오늘도 한 사람과 등지고 왔습니다
슬픔을 나눠지라던 소명을 거역하고
냉정히 등만 보인 채 돌아온 내가 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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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화(謹弔花) . 2
- 이 달 균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꽃이 있다고?
천만에! 꽃들은
생뚱맞다는 표정이다
산자와 산자를 위한
시든 꽃들의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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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처용, 진혼굿
-2003년 마산, 매미가 오다
- 이 달 균
1.
지팡이를 던지고 예언자가 떠나자
의사는 마침내 사망선고를 내렸다
살아서 조롱받던 바다는 그렇게 잊혀졌다
상어를 떠나보낸 도시의 아이들은
칠흑의 도화지 위에 종이배를 띄웠다
잘가라 수족관 속으로도 별은 뜨고 지리니
2.
유난히 비 내리고 매미들 울어쌓던
그해 그 여름밤, 매몰된 기억을 뚫고
바다는 그예 질풍노도 도시로 밀려왔다
그리운 이름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밀물로 찾아온 옛집 마당을 차올라서
살아서 귀신이 되었다고 처용처럼 춤을 춘다
3.
어허야 어화 넘자 바다위로 황급히 길을 내고 집을 지어
기꺼워라 맛난 밥상 돛대로 세운 십자가 안녕한지 어디 보자
뭍으로 지붕 위로 배들을 밀어 올려 살아서 박제된
서럽고 시든 영혼 씻어라 어허야 달구 우릴 외려 진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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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가 제대로 안 된 부분이 더러 보이지만
원문대로 옮겨 적었으며,
작품 <신 처용, 진혼굿>의 3 부분도
원문 그대로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