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동해에서 제천으로 가는 기차 안이다. 이제 6일 동안의 여행은 거의 끝났다.
지난 6일간의 기억들을 이곳에 옮겨 본다.--
넘치는 젊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좀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이런 것 들은 내가 이번 여행을 떠나게 된 동기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들이다.좀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군대 있을 때 후임병 한테 자전거 무용담을 들은 기억이 있다.그때 언젠가 한번은 자전거로 여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근데 이역시 나를 떠나게 한 이유는 아니다. 저번 여름 방학엔 중국이 가고 싶어 미치겠더니만, 이번엔 왠지 자전거쪽으로 맘이 쏠리고 있었다. 그치만 어디 가슴이 원하는 데로 다 하고 살았던가! 그래도 지난 한학기 동안 떠벌리고 다닌걸 생각하니... 어이구 이제부턴 자전거여행의 본질은 줄어들고 떠나냐 안 떠나냐의 고민이 시작됬다. 막상 방학이 되니 슬슬 문제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있는가?(있기는 있다.별로 안 좋은거다.) 누구랑 같이?(모르겠다. 이나이에 주책 떨지 말라고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돈은?(학원비가 있잖아.)
어쨌든 갈려고 맘만 먹으면 되긴 되는데,뭔가 찝찝했다. 역시 확실한 결심을 내리는게 문제 였다.
여행 며칠전 도저히 방구석엔 있기 싫었다. 낮잠을 자고나서 갑작스럽게 자전거 한 대를 샀다.(9만원주고. 꼭 충동적이었다기 보다는 이렇게라도 해야,뭔가 결정을 내릴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밤 이상이가 놀러왔다. 여행 안가냐고,물었다. 얼떨결에 내일 간다고 했다.맞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이 충동적인 대답에서 시작된 것이다.
<15일> -죽거나 혹은 알 베기거나-
일어나 보니 오전 열시였다. 어제밤에 비온다더니,비도 안온다. 내심 비가 내리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비가 오면 핑계대고 안갈 생각이었으니까...
라면 하나 끓여먹고, 반바지 2장 반팔 3장 팬티 모자 수건 세면도구.... 짐을 싸고 나니 진짜 가볍다.(원래 여행 잘하는 사람은 짐을 무겁게 안 싼다.)
11시에 출발. 막상 떠났는데, 하루에 얼마를 가야할지, 목적지는 어디까진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무작정 안동으로 달렸다. 근데 막상 제천을 막 벗으나니,"아 내가 진짜 가긴 가는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 두려웠다. 중간에 오지나 말자란 맘으로 막 달렸다.막 달렸다. 막...........
단양을 지나니 한시가 좀 넘었다. 밥먹으면 지체될까봐 안흥 찜방 두 개 먹고 또 달렸다.
이때부턴 막 달리지 못했다. ( 왜냐고? 알고 싶으면 계속 읽어봐!)
첫째날의 하이라이트는 소백산이다. 난 소백산이 거기 있는줄도 몰랐다. 두시간 반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어떤 자동차에선 힘내라고 물까지 줬다. 내가 힘들게 보이긴 했나보다. 만약에 오래달리기를 간신히 끝냈는데 또 돌라고 하면 진짜 돌겠지? 이날 난 한 열네번은 돌았다. 진짜로 날 지치게 한건 끝이 어딘지 모르는 긴 지루함이었다.
어쨌든 내려오는 길은 15분만에 끝났다. 소백산을 경계로 경북땅이다. 풍기.영주까지 가니까 여섯시다.어느 작은 시골에서(운산리)컵라면 하나 사먹고 또 달렸다. 가는데 날이 어두워져서,할 수없이 히치를 했다.근데 이 아저씨가 우리학교 안 좋다면서 노골적으로 무시했다.나도 이 아저씨얘기 무시하고 안 쓸란다. 안동엔 한 아홉시 넘어서 도착했다.
여인숙에서(만원)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내일 대구에서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고 잠들었다.
잠이 드럽게 안 왔다. 덥기도 하고, 혼자 자니까 무서웠다.
<16일> - 피도 눈물도 없이... 땀만 있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건, 아침 일찍 떠나는 거다. 선선할 때 최대한 멀리 가는데 좋다.(8.30분에 출발했다. 원래는 5시였는데...ㅋㅋ) 하여튼 대구 까지 가는길은 10분이상을 쉬지 않고,계속 달렸다. 엉덩이도 까지고,땀도 많이 흘려서 옷은 소금기로 얼룩졌다.
-그들과의 만남-
·대구 4시 도착
·5.30분 시내 중심가 도착(대구역)
지훈이를 만나기로 하고 대구역으로 갔다. 제대하고 처음이다.녀석도 창원에서 오는거다. 서로 꼭 만나자놓고,이 년만에 만나는 거다.진짜 보고 싶었는데...
대구역앞에(정확히 시민회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녀석이다.!) 얼싸안고,반가워하다가 목욕탕으로 가서 먼저 흘린 땀부터 씻었다. 그리고 함께 미정,은영.정은이를 만나러 갔다.
얘들도 참 오랜만이다. 은영이랑 정은인 중국에서 헤어진후 처음이고,미정인 저번 겨울이후 처음이다. 다 함께 모여서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내가 여행을 잘 왔다는 확신이 처음들었다. 반가운 맘을 반갑다고만 표현하면 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그날의 대구는 내 맘에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에피소드1>
그날밤 지훈이랑 사우나에서 잤다. 우리는 참 신기한 구경을 했다. 어쨋든 지하철에서 여자들한테 성추행 하는 놈들은 진짜 나쁜놈이란걸 느꼈다. 여자들이 당하면 얼마나 기분이 이상할까?(오해 말라. 난 전혀 상관 없으니까, 단지 보았을 뿐이다.)
<17일>-아름다운 청년 염윤호-
지훈이와 아침먹고, 동대구에서 헤어졌다.
이번에도 아쉬움을 아쉽다고만 표현할란다. 진정한 아련함은 가슴속에 묻고.....
오후 한시 반에 포항으로 출발. 대구에서 포항까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자전거는 소화물로 부쳤다(이건 반칙이다.)
포항역에서 윤호를 만났다.여전히 토끼눈에 상냥한 미소가 보기 좋은 놈이다. 윤호가 사주는 점심을 든든히 먹고, 영화까지 얻어보니 미안한 맘이 들었다.가난한 주머니 사정이 안타까웠다. 한동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곳 분위기는 거의 수도원 수준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학생들 답게 순순한 열정이 깃든곳 같았다.
윤호랑 같이 누워서 있는데, 예전처럼 녀석을 갖고 놀수(?)없다는게 역시 시간이 흐른걸 느끼게 했다. 자기의 삶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윤호를 보니 보기 좋았다.
이곳에서도 윤호의 신세를 많이져서,또 빚진 신세가 됬다.
<18일> -어느 작은 교회에서-
포항역에서 어제 부친 자전거를 찾고 나니 오후 한시 사십분이다. 윤호와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먼저가라고 다투다가 내가 먼저 떠나왔다. 등뒤로 녀석의 토끼눈이 선하게 느껴진다.
이날은 얼마 못 갔다.
영덕근처 도곡리 도곡 교회에서 신세를 졌다. 아주 작은 교회 였는데, 이곳 교회 아이들이 외지에서 온 내가 신기 했는지, 무척 반겨줬다. 나도 사투리 쓰는 꼬마들이 귀여워서 계속 귀신 얘기 해줄라고 했지만, 피곤해서 그냥 잤다.
<19일> -비가 와도 갔다.-
아침을 너무 푸짐하게 차려주시고, 비맞들까봐 걱정하시는 두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떠났다.비 때문에 걱정이었지만, 막상 떠나니까 오히려 시원하고 좋았다.특히 긴급하게 만든 우의는 방수뿐아니라 보온의 효과 까지도 좋았다. 단지 흰색비닐을 뒤짚어 쓴다음에 빨산색 노끈으로 허리띠를 해서 모양새가 웃기긴 웃겼다.
동해안은 길이 정말 편했다. 큰산도 없고, 거의가 직선인 느낌이다. 더군다나 소백산과 대구길에서 다져진 나의 체력은 아직도 생생했다. 아니 그보다 아침을 잘 먹은 덕 뿐일 것이다.거기다 김밥까지 싸주시지 않았던가. 이 날은 배고픈걸 몰랐다.pc방에서 잤다.
<에피소드2>
가는길에 어떤 여자 둘이 같이 가자고 했다. 얼씨구나 하고,같이 걸었다.
근데 가다 보니까 걷는게 더 힘들었다. 한 두시간 걸었나... 한명이 화장실 간 사이에 다른 한명한테 얼른 가봐야 한다고 긴급히 인사하고 나먼저 자전거로 달렸다.
역시 난 포병출신인가보다. 걷는건 체질이 아니다.
<20일>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 새벽 5시에 출발해 동해에 12쯤에 도착했다.
새벽에 보았던 동해의 일출이야기도 안했고, 자전거 타면서 생각나는것들도, 끊임없이 이어진 도로 위에서의 느낌도 빼먹은 것 같다. 그치만, 일일이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건 느끼는 것들이지 듣는다고 되는 것 도 아니다.
시커멓게 탄 얼굴이 제 색깔로 될 때쯤이면, 뭉친 근육이 풀릴 때 쯤이면, 다시 일상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당신들이 내게 말해 주라. " 열심히 일했냐고. 또 안 떠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