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하늘거리는 하얀 원피스. 챙이 넓은 밀짚모자와 소매 짧은 연녹색 여름 자켓. 제느가 지구 반대편에 간다며 준비한 단 세 가지 물품이었다.
하늘도 맑기 그지없어 제느는 한없이 기분이 좋아져선 방방 뛰었다. 물론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날씨는 화창하고 옆에는 예쁘게 차려입어 더욱 예쁜 사랑스런 소녀가 내 손을 잡고 방방 기분을 띄우고 있는데 누군들 좋지 않을 쏘냐. 어젯밤 있는 힘 없는 힘 죄다 토해내느라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는 것 같고 학교를 장기간 땡땡이 쳐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냥...좋진 않았다.
"떠나기 딱 좋은 날씨다! 그치 자기야!"
"어, 어. 그래."
해맑게 웃는 그녀처럼 나도 아무 때나 학교를 때려 칠 수 있다면야…해맑게 웃을 수 있겠지. 아무리 신이 어떻고 저떻고 해도 12년 동안 다닌 학교를 이렇게 무단으로 결석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왠지 누가 쫓아와서 학교 안 나오는 불량한 놈이라고 혼낼 것 같달까?
하얀 햇살 아래서 빛나는 미모를 자랑하는 제느는 보는 사람마다 넋을 잃게 만들며 민폐를 잔뜩 끼쳤다. 오늘도 여지없이 차가 박살나고 사람이 대자로 바닥에 뻗었다.
"어? 박장대소."
"네, 네 놈은 어째서 그런 복장으로 그녀와 함께 있는 건가? 응?!"
"그러는 너야말로 땡땡이…냐? 럴수럴수 이럴수가! 천지가 개벽하고 태산이 붕괴한다!"
"뭔 소리냐. 나라고 모범생은 아냐."
하긴, 이 녀석은 순진한 범생이 아니었지. 참. 그래도 대놓고 모범생이 아니라니,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나중에 악덕기업 총수가 되서 사람들 고혈을 쪽쪽 빨아서 이상한 거 만드는 건 아니겠지?
지 차도 아니면서 자기 차처럼 타고 다니는 아버지 벤츠를 오늘도 타고 이 녀석은 제느에게 느끼한 시선을 던졌다. 그냥 단순히 인사하는 것에 기름기가 쳐진 것 뿐인데 그렇지 않아도 내 팔을 꼭 붙잡고 있던 그녀는 시선을 피해 내 뒤로 숨어버렸다. 박장대소 녀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맴돌았다.
"무지막지한 철옹성이로군. 사랑이란 벽은 참 높아."
"시꺼. 니가 무슨 야타족이냐?"
학교에서도 우리 둘은 공인된 커플로 인정받고 있는데 왜 이 녀석은 제느를 넘보는거지?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니 이 녀석은 교통방해도 아랑곳 않고 끈질기게 치덕거렸다. 도저히 상종 못할 놈이로고.
"저리가 이 자식아! 예진이가 싫어하잖아. 거기다 왜 교통방해하냐. 니 눈에는 뒤의 저 차들이 안 보이든?"
"어머나! 이모!"
"응?"
박정대의 지저분한 추격을 받던 도중 난입한 아가씨, 그녀는 정녕 천사였다. 가냘픈 온몸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매력이 조카를 본 정대녀석의 혼을 완전히 나가버리게 한 듯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생각지 않게 귀찮은 떨거지는 제거되었군.
"카, 카렌아. 미안한데 네가 따라오면 사랑의 여신님께서 걱정하실 거야. 저번에도…그랬잖니."
"에이! 엄마는 지금 아빠랑 여행가서 없어요. 네? 같이 가게 해주시면 좋은 거 드릴게요."
"아, 안된돼두…."
"잠깐 잠깐! 어딜 따라간다는 거야? 절대 안 돼!"
제느의 표정이 카렌이의 공성전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해 재빨리 두 여자 사이에 끼어 들어 훼방을 놓고 못을 박으니 열에 불타 오르던 카렌이의 얼굴에서 열기가 삽시간에 빠져나가며 눈가가 젖어들었다.
"으흑. 흑. 그래요. 나 같은 애는 방해만 된다 이거지요? 그래요. 난 맨날 실수 투성이에다 바보고 멍청이에요! 으흑! 그래도, 그래도…나 데려가만 주면 짐은 안될 텐데…왜들 그렇게 날 미워해요? 예? 우흐흐흑."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들키면 어쩌려구."
"그래. 여행 갔다왔는데 귀하디 귀한 셋째 딸이 가출했다면 마음이 어떻겠니? 그러니까 울지마. 게다가 이번은 좀 위험하단다."
제느의 눈물 외에 그 어떤 눈물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말에 정신을 되찾은 제느의 강공이 뒤따르니 눈가에 자근자근 눈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카렌이는 점점 더 찌그러졌다.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란다. 다만 우리는 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서 그런거야. 더구나 아직 어린 네가 이모와 이모부가 가는 곳에 있을 상상하지 못할 위험에 무슨 수로 대처하겠니? 그런 곳에 널 데려갈 수는 없어."
"이모 하지만 나 요르스의 10대 금법도 다 알고 나 한 몸 충분히 지킬…."
제느가 카렌이의 얼굴을 풍만한 가슴 한 가운데 푹 박아버리고 입을 막곤 들키지 않게 옆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음. 행복하겠다…는 아니겠고 어쨌든 이 골칫덩이를 어떻게 막아야 되나? 아무 때나 XX도 YY도 ZZ도 할 수 있는 단 둘만의 여행이 이렇게 해결 불가능한 직격탄을 맞을 줄이야. 제느도 X씹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뭔가 해결책 없냐고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미안하구나. 나중에 이모가 건강해지면 우리 같이 놀러가자. 물론 좋은 곳으로. 이번에 갔다가 우리 카렌이가 다치면 이모도 엄마만큼이나 슬플거야. 그건 사랑의 여신님이나 페르가 널 보는 마음과 똑같단다."
품에서 빠져나온 카렌이가 눈가에서 눈물을 훔치더니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제느도 마주 따라서 미소를 짓는데 미소녀 두 명이 미소를 지으니 그대로 꽃밭이 펼쳐진 듯 하더라. 옆에 지나가던 정대의 차를 뒤에서 누군가 박았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에헷. 그럼 꽝! 다음 기회에, 인거죠?"
"호호호. 그런 셈이구나. 물론 다음엔 행운의 상품이 나올거야. 기대하고 있으렴."
"네! 그런데 두 분 정말로 어디 가시는 거예요? 전 큰언니랑 둘째 언니 심부름으로 피자랑 케이크를 사러가는 길이었는데요."
카렌이의 말을 듣곤 제느가 놀란 얼굴을 하고 날 바라보았다. 피자와 케이크가 왜?
"들었어? 피자랑 케이크래."
"응? 그게 뭐?"
피자랑 케이크가 도대체 왜? 내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니 제느는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며 빠득 이를 갈다가 다시 살풋한 미소를 지으며 카렌이를 바라보았다.
"페르나 사랑의 여신님이 아니?"
카렌이의 눈이 아차 하는 것처럼 커지며 얼굴이 굳어졌다. 뭐야. 이런 전개는? 피자나 케이크는 자기도 아주 즐겨 먹으면서 애들한테는 왜 저런 반응인데? 솔직히 22인치 허리에 피자 두 판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정말 아스트랄하고 그 길다란 이름의 케이크를 맛있게 받아들이는 혀도 아스트랄하다. 그 외에도 아스트랄 한건 셀 수 없지. 먹은 건 죄다 길다란 머리카락하고 36인치 짜리 가슴으로 가는 듯 하고 말이야.
어쨌든 카렌이는 엄마 지갑에서 돈 훔치다 들킨 아이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려댔다. 저 눈빛을 보아하니 머릿속에서는 분명 이것저것 대안을 생각하느라 팽팽 돌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이런. 사랑의 여신님께 말씀 드려야 겠구나."
"히에엑! 안 돼요! 저 죽어요!"
또 다시 울상으로 변하는 카렌이의 얼굴. 피자와 케이크가 그렇게나 약점이었을 줄이야. 더구나 제느는 아까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은 어디 팔아먹고 싸늘함만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카렌이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있었다.
"하여튼. 함부로 그런거 먹지 말거라. 살도 찌고 안 좋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 언니들한테는 내가 그랬다고 하고."
"히잉…."
"어서."
"네…."
패배자의 어깨를 하고 카렌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제느가 피식 웃으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피자는 자기도 잘 먹으면서…."
"큰일났다. 빨리 도망쳐야 돼."
"엥? 왜?"
내 질문을 가로막곤 다짜고짜 팔을 끌어대는 제느에게 끌려가다 보니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저번에도 아렌이가 게이트 열어놓고 무작정 따라왔었지 아마? 분명 도움된 일도 있었지만 골치 아픈 일도 그만큼 있었다. 더구나 단 둘이 있는 거랑 세네 명이 있는 차이는 엄청나다. 우선 기본적인 욕구 해결조차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돈도 더 들고 입도 더 늘고 부담도 더 늘고…새로움에 목말라 하는 그 아이들은 죄다 우리한테 달라붙어서 시시콜콜 간섭할게 뻔했다.
"으악! 또 달라붙을 거란 말이야?!"
"지금 걔 어리벙벙한 얼굴만 보고 판단한거야? 방금 걔 분명히 지 언니들이랑 동생들 다 끌고 올걸? 틀림없어. 집에 알리는 교감이 느껴졌단 말이야. 하마터면 발목 잡혀!"
"억! 따돌릴 수 있겠어?"
"두말하면 잔소리! 라지만 자신은 없네. 헤헷."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제느의 어처구니없는 능글함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저 애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꼼짝없이 당하는데 뭐가 그렇게 태평한거야? 단 둘만의 오붓한 여행이 파탄나게 생겼는데!
"일단은 힘을 쓰면 안되고 길을 열어도 걸리니까 탈 것이 필요해. 그리고 그 탈것이 뜰 자리가 필요하지."
탈것? 하늘거리는 짧은 치마 아래로 보이는 각선미를 바라보며 5분 정도 뛰어가 어떻게 온 건지 공원에 당도한 제느가 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공원의 빈터에서 사방을 둘러본 제느의 손이 허공 중에 쑥 들어가더니 은빛으로 빛나는 물체가 잡혀 나왔는데, 그 크기가…집채보다 큰 비행기였다.
"저, 저거?!"
아, 아무리 무식하게 힘이 세다고 해도 말이야, 기본적인 질량 차라는 것이 있지 저런 거대한 전투기를 살도 별로 없는 여자가 잡고 아무런 흔들림도 없다는 게 말이나 돼?
무슨 종이조각마냥 비행기의 기수를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제느는 적당히 방해물이 없을만한 곳에 그것을 내려놨다. 원래 그렇게 되어있는지 내려져 있던 랜딩기어가 땅에 닿는 순간 쿵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리는데 적어도 10톤은 나가 보이는 쇳덩어리가 땅에 5cm는 박혀 들어가는 소리였다.
"무, 무슨 차력해?"
"어머 싫다. 차력이라니. 이런거야 먼지 만한 무게도 못해. 빨리 타 자기야. 잘 못하면 붙잡혀. 설마 단둘이서 하는 뼈와 살이 녹아 내리는 뜨뜻므흣한 여행에 애들을 끌어들여 다 망치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뒤쫓아 올 애들 생각을 하니 정신이 퍼뜩 들어 제느를 따라 비행기에 올라탔다. 작은 유선형의 외양새와는 달리 문이 닫히고 안을 둘러보니 이건 완전히 초호화판 여객기였다. 한쪽 벽면이 TV라도 되는지 공중파 방송 하나를 보여주고 있고 우리 집보다 큰 붙박이 냉장고가 있는가 하면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이상한 장난감도 보였다. 거기다 어떻게 들어있는지 의심되는 체적의 퀸사이즈 침대하며…없는 게 없군.
내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니 제느가 당연하게도 거드름을 피웠다.
"이건 내가 357번째 들렸던 곳에서 산 거야. 여기 화폐가치로 5조원 정도 하는데 성능에 비해 그리 비싸지는 않더라."
"5, 5조원? 히에엑!"
F-22도 5조원씩 하지는 않는다구! 역시 갑부는 스케일부터가 틀리구나. 그런데 가격 대 성능비를 찾는 게 묘하게 뭔가 안 맞는데?
"자. 빨리 앉으세요 낭군님. 애들이 몰려오는 기척이 느껴져."
너무나 놀라고 얼이 빠져 당혹해 입을 벌리고 서있는 나를 조종석에 앉히더니 그 옆에 앉은 제느가 치마를 정리하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행기의 계기를 이것저것 켜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닿을 때마다 원리조차 아리송하게 반투명한 계기들에 전원이 들어오고 웅웅거리는 소음과 함께 앉아있는 의자가 낮게 떨었다. 밖에 내다보이는 창 앞으로는 허공에 화면이 떠올랐는데 온통 처음 보는 글자들과 그림이었지만 뜻은 정확히 이해가 갔다.
"세상에. 어쩐지 비행기치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허공에 화면이 떠오르다니."
"으흠. 기술력의 격차지. 여기 인간들하곤 거의 1만년쯤 차이가 나던데? 이 비행기엔진도 역장엔진이고, 초보적이긴 하지만 종합적인 중력제어장치도 있더라. 물론 이 비행기는 거기서 최고사양이니 그런건 다 갖춰져 있고 나 나름대로 개조도 했어. 그리고…이 비행기 이름이 뭔지 알아?"
"뭔데? 으악!"
갑자기 덜컹하더니 비행기가 뜨기 시작하면서 주위가 완전히 바깥의 배경으로 뒤바뀌고 땅이 아래로 멀어져갔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올라갈 즈음 제느가 의자 팔걸이에서 솟아난 반투명 조종간을 아래로 당기자 겨우 온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처음에 컴퓨터보고 놀라워했던 건 순 내숭이었군.
"아하핫! 그래도 역시 비행기는 이런 속도감이 있어야지. 안 그래 자기? 아. 그리고 이 비행기의 이름은 아르벤! 내가 사랑하는 어느 남자의 이름이지. 우후후후."
"푸하. 십년 감수했다."
이름이 내 이름이고 뭐고 간에 이렇게 난폭하게 운전해대면 옆에 앉은 사람은 어쩌라구. 거기다 발 밑까지 배경으로 바뀌어서 발 밑이 허공인 이상한 곳이 되니 가슴이 벌렁거린다. 나 고소공포증 끼가 조금 있단 말이야! 아니, 아무리 대담한 사람도 지상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허공에서 달랑 의자에 앉아 날아간다는 게 얼마나 겁나는 일인데!
"우으윽. 살려줘."
"살려달라니 무슨…앗! 이제 따라온다. 찾았나봐."
"뭐? 정말이야?"
"잠깐 손 좀 줘봐. 저 녀석들이 우릴 못 찾게 하게."
"으응. 뭐."
손을 내주니 제느가 잡고서 내 힘을 끌어당겼다. 이거 이젠 완전히 휴대용 발전기 신세가 다 됐네.
곧 주위의 공간에 뭔가 뿌연 것이 흩뿌려지는 게 느껴지며 제느와의 교감이 약간 약해졌다. 느끼기로는 감응 자체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이제 한 10분은 헤맬거야. 다른 존재였다면 계속 감출 수 있는데 아렌이는 똑똑하니까 금방 위치추정이 가능하겠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데 굳이 방해하면서까지 오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오면?"
내 질문에 제느가 피식 차갑게 웃더니 작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혼내줘야지. 단 둘이서 하는 오붓한 여행을 방해하는 건 아무리 귀여운 조카라도 용서 못해."
제느가 허공 중에 떠 있는 자판을 두드려 뭔가를 입력하니 비행기가 감속하기 시작했다. 지도에 떠오른 도착 예정시가 10분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변한 걸 보면 꽤나 느리게 설정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화면에 자동조종이란 메세지가 뜨자 제느는 한바탕 기지개를 쭉 펴더니 좌석에 늘어진다.
"아함. 자기야. 나 벌써 3일치 힘 써버렸어."
"쿨럭! 뭐, 뭐야? 뭐하다가?"
내 힘을 수돗물 쓰듯 왕창 퍼가선 벌써 3일치나 써버렸다니 대체 이건 무슨 소리람? 더구나 이 여자는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내 어이없는 말투에 손가락을 꼽아본다. 아이구. 그렇게 사람 잡아먹을 것처럼 퍼가더니만….
"미네르바 치료해주느라 2일치. 나머지는 새어나갈 거야. 히힝. 어떡하지. 구심점이 없으니 힘을 끌어안을 수가 없어."
"뭐 방법 없어?"
"그래서 생명석 찾으러 가잖아."
아. 그렇지. 생명석 찾으러 가는 참이었지. 하여튼 가지가지 고생해요. 참. 일어나서 좌석에 늘어진 제느의 팔을 잡고 끌어당겨 품에 몸을 안았다. 얇은 원피스 사이로 몸의 굴곡이 느껴지는데 그동안 잡아먹은 힘이 다 흉위로 간 건가 어째 좀 탄력이 붙은 느낌이다. 어쨌든 비리비리 아프다고 하는 병약 소녀이면서 겉모습은 멀쩡하니 진짜로 그럴지도 모르지.
"쭉쭉빵빵 아가씨. 힘 더 줄게."
"쭉빵? 푸훗. 마음은 고마운데 됐어. 여기서 힘쓰다간 바로 들통난다구. 그럼 바로 나락이야. 그럼 그 대신…우리 그거 하자."
"그거? 여기서?"
침대도 있고 못할 건 없긴 하지만 비행기 안이라서…집이라면 또 몰라도…근데 그걸 왜 따지지? 아니야. 비행기 안이라 좀 그런데.
내가 이상한 걸 가지고 고민하는 줄 아는지 제느가 몸을 부벼대며 흥얼거리듯 콧소리를 냈다.
"여기 우리 단둘 뿐이야. 누가 문열고 들어올 걱정 안 해도 된다구."
제느가 재촉하더니 바닥에 발을 대며 힘주어 일어나 연녹색 자켓을 벗어버렸다. 가느다란 어깨 끈 달랑 두개로 이어진 흰색 원피스 위로 쇄골이 확실히 드러난 동그란 어깨와 봉긋이 솟은 가슴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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