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데다 잠자리까지 불편하여 몸이 무겁다. 형님이 차를 두드려 일어난다. 더 작아진 어머니 혼자서 차례상을 차린다. 한결이 한볕이더러 도우라고 하고 잔 부어 놓고 모두 절만 두 번 한다. 밥을 먹고 풋고추를 따러 바가지 들고 밭으로 간다. 고추가 주렁주렁하다. 참 대견하다. 나는 수확의 기쁨을 모른다. 한 바가지를 따 집에 오니 제석사 스님이 전화를 했댄다. 두통을 안고 시동을 켜고 인사한다. 큰댁에 가는 일이나 누님과 조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어머니도 아무 말 않고 스님께 갔다 가라고 한다. 준환이가 트럭을 몰고 내려온다. 오후에 다시 보자는 것을 그냥 가겠다고 한다.
오르는 길은 온통 물봉선이 가득하고 절은 고요하다. 돌담 벽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차실로 간다. 스님은 연신 차를 따르고 나는 반가부좌로 앉아있는데 힘들다. 제석사의 역할과 일에 대한 이야기, 요가, 지도자론, 학교 교육, 지역 문화 등 닥치는 대로 이야기를 하다 스님도 제사 지낸다고 10시 20분쯤에 방을 나온다. 마무리 단계에 있는 요사채 설명을 해 주시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법당에 들른다. 부처님께 애매하게 인사하고 복전함에 약간의 돈을 넣고 나오자 잿빛 바지를 입고 나란히 앉아 있던 세 여인 중 한 분이 ‘합장하고 절 하세요’ 한다. ‘예’ 하고 그냥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온다.
내려오는 길에 정휴 집에 들러보는데 그는 안 왔다. 음료수와 밤과 물 항아리의 파란 풀을 주신다. 아버지의 글씨를 보고 순천으로 간다.
순천 입구에서 밀리지만 심하지는 않다. 아버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잡고 늘이기를 하신다. 무어라 말씀하시나 알아들을 수 없다. 눈빛으로 알아들은 척 할 수 밖에. 누님은 간호사를 하신 때문인지 정성도 움직임도 다르다. 나한테 딸 멀리 시집 보내지 말라고 하신다.
고속도로에 들어서 주암 휴게소에서 육개장을 먹고 석곡으로 빠져 나왔다. 노래자랑, 동창회, 체육대회 프랑이 가득한 동네 지나 코스모스 핀 보성강변을 따라 태안사로 간다. 절 앞에 차를 세우고 성기암 가는 등산로에 들어 선 시각이 2시 10분이다. 경사가 급하지 않고 잔돌 많으나 미끄럽지도 않다. 외사리재는 15분 정도 금방이다. 쉬지 않고 오른다. 30분 지날 무렵 버섯을 찍으며 물 마신다. 오르막이 지칠만하면 어깨 위의 완만한 능선이 숨을 골라준다.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오른다. 봉두산 정상 754미터. 도착시각이 3시 5분이다.
3.5킬로의 산길을 한 시간이 안 되어 올랐다. 지리산의 연봉과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큰 나무 사이로 백운산도 보고 섬진강도 본다.
빗방울이 자주 떨어진다. 지리산을 찍어 보지만 카메라나 내 솜씨나 모두 못 미친다. 곡성 골짝나라라더니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산이다. 중첩된 산의 모습이 좋다. 반대쪽으로 봉우리를 따라 약간 급한 경사를 내려간다. 절재까지 1.5킬로, 절재에서 태안사까지 1.7킬로. 나의 지팡이 소리만 침입자처럼 숲을 울리고 썩은 나무에 핀 버섯 보며 내려온다. 4시 20분. 세 시간 이상의 산행 안내를 나는 꽤 앞당겼다. 태안사에 들러 몇 년 전 한강이가 할머니 손 잡고 오르던 입구에 한참 서 있다가 온다. 부도와 연못 가운데의 3층탑과 경찰 충혼탑, 능파각도 본다.
금년 3월엔가 문을 연 조태일 문학기념관은 추석연휴 동안 휴관이다. 땅을 파고 문학관과 시집전시관을 두었다. 옛 동계초등학교 자리에 임소혁의 지리산 사진전시관에 들러 구경한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부럽지만 너무 많아서 차분히 보지 못한다. 나의 사진은 나만의 사진이다. 1,000원을 내고 엽서와 팜플렛을 줍는다.
빗방울에 어둑해지는 보성강 따라 다시 석곡으로 와 27번 국도를 타고 삼기 옥과를 지난다. 오산과 화순온천을 거쳐 무등산 너머 오는데 차가 밀린다. 음악을 크게 틀어보는데 산 속이라 잡음이 많아 줄인다.
집에 와서 정휴 어머니가 주신 물풀을 그릇을 씻고 넣어둔다. 내일은 산을 잊고 보고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천관산 조계산 봉두산 다 좋다. 코스모스 다 지기 전에 다시 드라이브 하며, 지리산 사진과 조태일의 국토서시와 봉두산의 참나무를 보러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10월 21일 지나면 코스모스도 져 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