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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0월은
가을의 절정기로, 많은 축제와 행사가 열린다. 그래서 10월을
'축제의 달'이라고 부른다.
10월 중순의 시작인 2003년 10월 11일 토요일,
그 날도 역시 많은 축제와 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려, 많은
이들이
축제를 즐겼는데, 서울 여의도에서는 그 유명한 불꽃축제가
열리면서 여의도 부근이 사람과 차들로(人車)로
미어터졌으며, 부천 상동신도시에서는 빛의
대축제인 루미나리에 축제가 열렸고, 경기도의
중심도시인 수원시에서는
조선 22대 제왕인 정조를 기리는 화홍문화재가
열렸다. 그리고 멀리 부산 땅에서는 모토쇼가
열리고..
필자 역시 이들 축제나 행사에 가고 싶어하던 차에, 마침
부천 루미나리에 축제와 부산 모토쇼에 놀러갈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그게 모두 10월 11일에 집중이 된지라,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결국 가까운
부천으로 100% 낙찰되었다. 부산은 좀 거리가 있어서..
그래서 그날 오후 6시 30분에 부천 송내역(松內驛)에서 같은
모임 사람들과 재회(再會)를 한 다음,
송내역 광장에 있는 루미나리에 축제 매표소에 가서
입장권을 구입했는데, 마침 할인권을 가지고 있는지라, 1인당
6800원에 입장권을 구입했다. 원래 입장권
가격은 무려 8000원. 허걱~~
매표소 왼쪽, 행사장 행(行) 무료셔틀버스 정류장에는 약 200m의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버스가 자주
배차되어, 10분 이내에 탈 수가 있었다.
이
무료셔틀버스는 송내역과 루미나리에 행사가 열리는 상동
호수공원까지 왕복운행하는 버스로, 송내역→행사장은
17:30~22:00까지(행사장→송내역 17:30~23:30분)운행하며,
소요시간은 5~15분 정도.
그 외에 송내역(북부광장)에서 부천시내버스
5-2,90번을 타고 상동호수공원에서 내리면 된다.
송내역에서 15분 정도 걸려서 행사장(상동 호수공원)에 도착,
호수공원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표확인을 받고
호수공원 내로 들어선다.
공원 내로 들어서니 화려한 전구로 무장한 거대한
조명조형물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그 조형물의 모습은
유럽의
중세건축양식과 비슷하다. 그 유명한 바로크 건축양식부터
해서.. 등등
이런 조형물이 호수를 중심으로 양쪽에 펼쳐져 있는데,
조형물에 달려있는 온갖 색색의 전구들로 공원 내부가
낮처럼 훤하다. 그리고 그 화려한 빛이 나의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군.
어쨌든 처음 이런 것을 보게 되니, 감격스럽군.. 그렇지만,
엄청난 액수의 입장료에 비해 좀 허전한 감이 있다.
공원 전체가 이런 조형물로 도배된 것이 아닌
호수 주변에 몇 개 있는 것이 전부dl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저런 조명조형물 보는데 무슨 8000원씩이나
입장료를 받는건지.. 장삿 속이 은근히 보인다.
그렇지만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저렇게 비추어 댈려면,
전기세가 장난 아닐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런가?
히긴 우리는 6800원에 들어왔으니, 8000원 주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는데..
여기서 잠깐 '루미나리에'의 기원을
보면, '루미나리에'는 이탈리아에서 17~18세기에
'성자를 기리는 의식'에서
시작된 이후 축제예술로 승화한 조명예술이다. '루미나리에'는
이탈리아 말로 '빛, 조명'을 뜻한다.
이 부천 루미나리에 행사에 사용된
전구의 수가 무려 34만개라하며 그 전구가 모여서 화려한
조명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공원 가운데 자리잡은 호수에 비친
조형물의 모습도 가히 환상적이었다.
공원을 찾은 수만명의 관람객들과 시민들은 화려한
조명조형물 앞에서 사진찍기 바쁘다. 물론 우리도 사진찍기
바빴다. 여기서 한컷, 저기서 한컷.. 찍은 사진만 해도 수십
장은 넘을 것이다.
호수 주변에 자리잡은 조명 조형물은 각각 주어진 명칭이
있는데, 그 명칭들은 복사꽃세레데나(복사꽃은
부천시의
꽃), 르네상스의 빛, 평화를 위한 기원(호수 북쪽),
그리고 빛의 호수(공원 가운데 호수)들인데, 조명의
빛색깔이
모두 비슷한지라, 굳이 어느게 어느거다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고 즐기는게 중요하니까
공원 서쪽 구석과 호수 북쪽에서는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서쪽 구석 스테이지에서 열리는 공연은 무슨 가수가
나와서 노래부르는 것 같던데, 가질 않아서 모르겠고, 호수
북쪽에서 열리는 공연이 일종의 깜짝 공연 같은 건데,
그냥 댄스파티이다. 물론 주변에는 구경하려는 인파들로
미어터진다.
호수 서쪽
주변에는 온갖 먹거리가 관람객들의 후각을 간지럽히고
있었는데, 주로 아이스크림,오징어,과자 등의
간식류를 팔고 있었다. 이들 상인들은 장사가 잘되서 그런지
즐거운 표정들을 짓고 있네..
호수를 반바퀴 돌아 공원의 남쪽 부분으로 갔다. 역시
화려한 조명의 조형물이 관람객들을 향해 빛을 비추고
있다. 역시 모습은 북쪽의 그 것과 비슷..
조형물 동쪽에는 야인시대에 나오는 인물의 얼굴을 쓴
사람들이 관람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사진을 같이 찍어주는 것인데, 우리 역시
이들과 함께 사진을..
다시 호수를 반바퀴 돌아 호수의 북쪽으로 다시 왔다. 북쪽
광장에는 높은 탑이 하나 솟아 있는데,
어린 애들이 거기를 올라가기 위해 모두들 열심이다. 그러나
반도 못올라가고 미끄러져 내려온다.
이렇게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니 시간은 8:50분. 마침 9:10분부터
호수에서 불꽃축제가 열린다고 하여
호수 주변과 호수 북쪽 나무다리에 수 천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며, 불꽃을 기다린다.
우리도 나무다리에 자리를 잡고 불꽃을 기다린다.
9:10분이 되자 호수 주변 조형물의 전등이 하나둘 꺼지면서,
대낮처럼 밝던 공원이 일시에 어둠의 나라로 변신한다.
잠시 뒤 호수 남쪽에서 온갖 모양의 불꽃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기
시작하면서, 불꽃축제의 서막이 열린다.
불꽃축제의
처음부분은 약간 시시했으나, 뒤로 갈수록 점점 화려한
모습의 불꽃이 여기저기서 터지면서, 사람들의
환호도
점점 커진다. 환상적인 불꽃이 계속 연달아 올라오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었으나, 겨우 5분만에 불꽃축제가
끝나버리니. 많은 사람들이 아쉬운 한숨과 한마디를 하면서
모두 흩어지기 시작한다. 솔직히 아쉽군.
불꽃축제가 끝나자, 우리는 약간의 아쉬움을 간직한 채 상동호수공원을 나왔다.
루미나리에 축제 기간 동안, 행사장에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가 개최된다.
자세한 것은 루미나리에
홈페이지 참조.
루미나리에 행사장 북쪽에는 그 유명한
야인시대 촬영장이
자리해 있다.
야인시대는 SBS에서 방영한 대하드라마로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남성들이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 되었을 정도이니,
그 드라마를 찍기 위해 부천 상동신도시 부근 공터에
촬영장을 만든 것이다.
우리는 촬영장을 관람하기 위해, 아픈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촬영장으로 갔다.
이 곳 역시 입장료를 징수하는데, 어른 입장료는 무려 3000원.
쩝~~.
여기서 잠깐 관람할까? 말까?를 망설였으나, 대세는 이미
관람 쪽으로 기운지라, 입장권을 구입하고 촬영장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촬영장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실외가 아닌
어두컴컴한 실내 통로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이상하다. 무슨 큰 건물 내
실내복도를 걷는 기분이군..
통로를 지나니 1920~50년대 서울시내를 재현한 야인시대
촬영장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이 곳에 들어서니 마치 1920~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의 늪에 빠져들었는데
아까전 그 통로는 2003년에서 1920~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타임머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촬영장은 서울의 중심거리인 종로(鐘路)를 중심으로 서울의 몇십년 전
모습을 재현한 곳으로, 촬영장 가운데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그럴싸하게 세워져 있다. 이
백화점은 종로1가에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철거되었다.
5층의 화신백화점 건너편에는 보신각(普信閣, 鍾閣)이 자리잡고
있는데, 각(閣)내에는 커다란 동종이 걸려 있다.
그런데 그 종이 과연 진짜 종인지 가짜종인지 궁금하다.
아마 가짜종일듯.. 참고로 보신각의 진짜 종(보물
3호)은
서울국립박물관에서 주무시고 있으며. 현재 종로1가 보신각에
걸려있는 종은 옛 종이 연로하신 관계로
대체용으로 만들어진 종으로 현재 보신각 2층에 걸려있다.
옛날 종은 땅바닥 위에 걸려 있어서, 종을 치면
그윽한 종소리가 왕십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지금은 보신각
주변에서나 들릴 정도..
세트장의 중앙로(中央路)인
종로에는 전차가 다니는 전차선로가 놓여져 있는데, 마침
전차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전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898년이다. 이때 한성전기회사를 세운 미국인
콜브란,보스트윅이
고종광무황제의 홍릉(洪陵) 참배의 편의를 위한 목적으로 정부(政府)의 허가를 얻어, '서대문-청량리'구간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고종(高宗)은 홍릉(명성황후의
능)을 방문할 때 전차를 이용하지 않고,
전용 어차
(御車)를 이용했다고 한다.
명세기 일국의 황제가 서민들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리는 없을테지...
처음에 전차가 굴러댕길 때, 서울시민들에게 별로 환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차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전차가 운행하던 초창기에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어느 여름철, 몇몇 사람들이 전차 선로를
목침삼아 낮잠을 잤다고 한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전차에 의해 낮잠을 자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그 때 전차
선로가 목침으로 아주 좋았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목이 잘린 채
죽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하기 이를데 없다.
그리고 어느 아이가 전차에 치였는데,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아버지가 삽을 들고 전차에 달려들어 행패를
부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런 일화를 통해 전차의 이미지는 처음에는 좋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시민들은 점차
전차와
친숙해지면서, 서울시민의 발이 된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시내버스에게 점차 밀리게 되고, 늘어나는
자동차에 의해 찬밥신세가 되면서 점점 경쟁력을
상실. 결국 1968년 11월 29일을 마지막으로 서울의 전차는 운행을
중단했다.
그 때 굴리던 전차 1대가 현재 서울국립과학관에서 쓸쓸히 주무시고
있다.
종로 뒷골목 쪽에는 야인시대에서 많이 나오는 집들과 주점,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모두 겉모습만 그럴싸하지
건물 안은 소품들이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거나, 또는
사무실이 있는 등, 외부와 딴 판이다.
역시 촬영세트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뒷골목 중간에는 야인시대의 상징물인 우미관이 자리잡고
있다. 우미관의 모습은 드라마에서 많이 나왔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테고, 우미관은 극장으로써,
건물 위에는 '형제는 용감했다'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 영화는 1950년대 미국 서부영화로 알고 있는데, 형제가 얼마나
용감했길래.. ㅋㅋ
이 영화 포스터를 보니, 예전 야인시대 드라마에서 동대문에
반기를 든 김동진이 이 영화를 보러 왔는데, 이때
동대문파의 기습을 받고 쓰러진 장면이 기억이
난다.
우미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부근에 있는 관철여관에
들어가보았다. 이 여관은 우미관 패들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여관내로 들어서니 마치 우미관패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군..
이렇게 뒷골목을 거닐고, 다시 종로로 나온다. 그런데
동쪽에 동대문이 자리잡고 있군. 별로 실감은 나지 않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해보니 모형이 아닌 벽에 그린 그림이
아닌가? 허걱 황당하군..
황당한 동대문(흥인지문)에서 부터 화신백화점까지
종로거리가 펼쳐지는데, 길가에는 우미관패가 심심하면
술을 마셨던 종로회관, 야인시대의 단골로 나오는
종로경찰서, 최동렬의 친구인 김이수가 운영한 비너스까페,
야인시대 2부에서 많이 나왔던 서울시의회(옛 국회의사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역시 겉모습만 그럴싸하고,
속은 빈, 완전
속빈강정이다.
종로 앞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 유명한 청계천(淸溪川)이 나온다. 청계천은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곳으로,
옛날
서울
도성의 젖줄이었던 하천이다. 촬영장 내부에
청계천은 수표교와 동대문 인근 부분만 만들어져
있는데,
수표교의 모습은 실재 수표교(水標橋)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규모가 실제 보다 작고, 돌로 만든 것이
아닌 나무 등으로 대충 만든 것이다. 아마 다리를 두드려
보면 알 것이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는데, 역시 속담의 진리가 맞는 듯..
수표교
아래에는 물이 고요있는데, 거의 흙탕물 수준이다. 수표교 서쪽에는 거지촌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곳은
야인시대 초반에서 많이 나왔다.
김두한과 정진영,개코가 초반에 살던 곳, 거지촌의 규모는 tv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매우 협소하다. 거지촌은 나무와 짚등으로 대충 만들어져 있으며, 무너질 것을 우려하여
현재는 접근이 금지되어있다.
수표교에서 동쪽으로 가면 동대문상인연합회 건물이
나온다. 이 곳은 이정재 부분을 찍을 때 나왔던 곳.
건물 앞에는 조그만 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 다리는
동대문패가 시내로 나갈 때 주로 이용하는 다리로 많이
나온다.
이렇게 청계천 주변을 거닐고, 다시 종로로 나오니 마침
어디서 나타났는지, 전차 2대가 운행을 하고 있었다.
많은 관람객들이 전차를 타려고 따라가는 것 같던데, 우리도
역시 전차를 타기 위해 열라게 뛰어 갔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3명이 전차의 문과 뒷부분에 매달리는데
성공,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는지라, 전차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 때 전차 내부에는 관람객 2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 전차도 돈을 내고 타야
된다는 것이다. 허걱~
그래서 전차에 좀 매달려 있다가 내렸는데, 전차의 속도는
사람이 뛰는 속도와 비슷하다.
참고로 전차 탑승비는 어린이는 1000원, 성인은 2000원이다. 허걱,
고급좌석버스보다 더 비싸다니, 완전 장삿속이네..
거리도 얼마 안되는데 저렇게 까지 받아야 될까.. 쩝
비록 전차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매달려서 타봤으니, 타긴
탄 것이다.
1968년에 없어진 전차를 타보니, 기분이 묘하다. 전차에
매달린 순간 마치
1930~50년대인듯한 기분..
나는 잠깐이나마 그 시절 서울시민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침 정거장을 막출발한 전차를 보고 지각하기 싫어 열나게 뛰어가서 뒤에
매달려서 가는 학생, 직장인이 된듯한..
종로 거리 곳곳에는 가게와 파전 등을 파는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들을 유혹하나, 과감히 통과하여,
명동거리로 들어섰다.
명동거리는 야인시대 1부에서는 혼마찌로 나오고, 2부에서는
명동(明洞)으로 나오는데, 거리에는 여러 곳에
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을 거닐으니 마치 서북청년회
조직원이 된 기분이 든다.
명동거리 끝에는 명동패의 본부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위에
서북청년단 어쩌구라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건물의 모습은 tv에 많이 나왔으니 굳이 언급안해도 될듯.
이렇게 명동거리를 마지막으로 야인시대 촬영장 관람은
끝났다.
촬영장을 거닐으니 마치 내가 야인시대에 출현한 듯한
기분도 들고, 내가 마치 1930~50년대 서울사람이 된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촬영세트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
속빈강정의 세트장..
촬영장 출구는 입구와 달리 실외이다. 출구에는 경비원 1명이
지키고 서 있으면서 나오는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는군. 이 출구를 통해 다시 2003년 10월 11일
현재로 돌아온다. 이때 시간 밤 10:30분
저녁 7시부터 지금까지 약 3시간 30분 동안을 루미나리에
행사장과 야인시대 촬영장을 쉬지 않고 관람한 것이다.
물론 뭐 먹지도 못하고. 모두들 피곤한 듯.. 축 쳐져있다.
우리는 다시 송내역으로 나가기 위해 아까전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정류장에는 약 200m의
긴 줄이 형성되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언제
기다리나...
다행히 버스가 계속 들어와서 승객을 태움으로써, 금방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앉아서.. 피곤한데..
버스를 타고 다시 송내역으로 돌아온다.
송내역에서
바나나 한뭉치 사서 나눠먹고, 영등포 방면 전철에 탑승,
영등포역에서 내려,
영등포 번화가에서 감자탕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물론 약간의 소주도 겻드려서. (자정 12시)
이렇게 저녁을 먹고, 2차를 가려는데, 나는 다음날을 위해
그들과 작별을 하고, 영등포역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였다.
정류장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부분 불꽃축제를 구경하고 영등포에서
한잔
한 사람들인 듯 싶다. 다들 표정이 헤롱헤롱...
나는 여기서 서울시내버스 30,30-2번(월계동◀▶광명시)을
타고 강북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예전에
0:30분에 탄 기억이
있어, 그걸 믿고 기다렸으나, 끝내 버스는
오지 않았다.
다행히
0:35분에 시내 방면으로 가는 서울좌석버스 718번(광명시하안동◀▶종로2가)
막차를 탔다.
그런데 버스 안이
승객들로
미어터지는 지라 앞문에 매달리다 싶이하여 종로2가까지 이동하였다.
종로2가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종로2가 역시 종로의 제일 번화가로
심야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넘쳐찬다.
나는 종로2가에서 종로5가까지 걸어갔는데, 차비가 없어서.
ㅋㅋㅋ
걸어가는 도중, 심야에만 볼 수 있는 여러 광경을
구경하였다.
술에 취해 넘어진 사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엇을
뱉어내는 사람, 택시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버스가 오자 목숨을 걸며 타려는 사람들, 지나가는
시내버스는 모두 수십명의 승객을 구겨 집어넣은듯, 꽉
채우고
제 갈길로 가고 있었고, 길거리 행상들과 24시간 운영하는
식당들은 야식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심야 장사도 꽤 쏠쏠한듯..
부지런히 걸어가서 종로5가 의정부 방면 정류장에 새벽 1:15분에
도착.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건지..
1:25분이 되자 서울시내버스 13-3번(양주시덕정동◀▶종로5가)이
오니, 승객들 우루루 몰리고..
1:30분에 종로5가를 출발, 새벽 2:10분에 도봉동 집에
도착했다.
-> 이로써 부천 루미나리에 축제와 야인시대 촬영장 관람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간만에 르네상스의 빛이라고 불리우는 국제적인 행사인
루미나리에 축제도 관람하고, 야인시대를 촬영한,
촬영장도 관람하고, 그리고 3~4시간 동안 강행군을 하면서,
저녁도 제때 못먹고, 약간 피곤하기는 했으나.
많은 경험을 하였고 또한 재밌었다.
요즘 문화생활을 좀
소홀히 한 감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축제와 행사들도
많이 참여하여 문화시민으로써의
권리를 누려야 할 것이다.
*
집으로 가져온 기념품은
1. 루미나리에 행사장 입장권과 안내자료
2. 야인시대 촬영장 입장권
* 이 후기는 2003년 10월
13일에 완성
Copyright (C) 2003 by Park Yung,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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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문화유적 답사기가 아닙니다. 까페게시판 성격과 맞지 않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대축제 루미나리에 축제는 이탈리아의 무형문화재 격인 행사이며, 야인시대 촬영장은 20세기 초반 서울시내를 재현한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입니다.
미륵리석불님 감사합니다. 보는눈을 넓히고 비교하는것 얼마니 좋아요.전통문화는 계승 되어야 하지만 눈은 업그레이드 해야지요.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