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답사(장승배기-상도역)
1. 상도역 부근은 오래된 동네이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는 특정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변화’의 대상이다. 위치가 좋은 곳은 건축업자, 소유자 모두에게 투자할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낡은 건물이 새로운 건물로 바뀌게 되면 대부분 주거면적은 커지고 그에 따라 상당한 이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상도역 주변을 걷다보면 곳곳에 주택 건설이 한창이다. 거의 재건축이다.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은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낭비적이며 위험한 방식이다. 불과 몇 십년밖에 안된 건물을 불편하고 낡았다는 이유로 제거하는 일은 거기에 동반하는 엄청난 쓰레기와 부산물 그리고 자원과 환경의 파괴로 이어진다. 더구나 이러한 파괴와 건설의 반복은 도시를 항상 불안정하게 이윤의 대상으로만 놓게 되며 그 과정에서 ‘이윤’과 관련없는 수많은 존재들과 요소들을 배제하게 된다. 결국 도시는 잔인한 ‘자본’의 속성에 어울리는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2. 상도역 2번 출구에서 ‘국사봉’ 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조선시대 태종의 장자이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의 사당 ‘지덕사’(至德祠)가 있다. 양녕대군은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왕이 되기 위한 준비에는 소홀했고 아버지의 권력지향적인 잔혹함에 저항했으며 여성들과의 스캔들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낭만적인 모습으로 역사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녕의 사양으로 동생 충녕이 왕이 됨으로써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의 치세가 가능했다는 점이 양녕을 마치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로까지 확대 해석하게 하는 것이다. 양녕의 사당 ‘지덕’이란 의미도 그런 양녕의 외형적 장점이 반영된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양녕’은 칭송받기에는 역사에서 많은 죄를 지은 인물이 아닐까? 양녕이 왕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자유롭게 산 것은 훌륭했으나, 그 자유로움은 상식과 인정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타락한 욕망의 실현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그는 조카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먼저 수양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단종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을 눈감은 인물인 것이다. ‘왕권강화’라는 명분으로 혈육을 제거하는 일을 앞장 선 일은 그의 사당 ‘지덕’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오래까지 살면서 ‘노추’의 씁쓸한 모습을 보여준 전형적인 인물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3. ‘장승배기역’에서 ‘상도역’에 이르는 대도는 상당히 넓고 정돈되어 있다. 과거의 옹색한 느낌을 주었던 거리가 계획적인 도로 사업을 통해서 정리된 것이다. 정돈된 거리를 걷다보니 이 거리의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띈다. 도로 주변은 보통의 서울 번화가처럼 상가가 밀집되어 있고 주택가는 상가 뒷쪽에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주택가의 위치가 대부분 고지대였다. 특히 상도역에서 장승배기역 도로 오른쪽에서 주택가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이나 언덕을 통해서 올라가야 하는 골목길이 연이어 나타났다. 중심 도로가 낮은 쪽에 위치해 있고 양쪽 주택가가 높은 지대에 자리한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러한 전형적인 V형 지형은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홍수가 나면 도로에 과중한 물이 모일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물을 빠르게 뺄 수 있는 구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댓글 상도역 주변을 걷다보면!!!!!
걷다보면 옛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