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의 책세상(2. 20)/ 김윤영 소설집 『루이뷔똥』(창작과비평사 2002)
명품에 들린 우리사회의 자화상
지난 90년대 우리 소설계는 여성문인들이 주류였다. 공지영, 김인숙, 신경숙, 전경린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웬만한 독자들은 이미 그들의 작품을 한번씩은 접했을 터이다. 이들의 문학성과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찬탄이 있는가하면, 후일담 소설이라느니, 지나치게 개인정서에 침윤돼 소설의 서사성을 상실했다느니, 상업주의와 결탁했다는 등의 평가도 있다.
그러면 2천 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은 어떨까? 이 물음에 부분적인 답을 주고 있는 게 김윤영의 단편집『루이뷔똥』이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해설을 쓴 임규찬(문학평론가, 성공회대)은 김윤영 문학의 장점은 동시대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그의 소설이 동시대 사람들의 삶의 한 국면을 부조하고 있다는 뜻이다.
표제작인 <루이뷔똥>은 명품과 외제를 좋아하는 세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여주인공 세미는 대학 때 운동권이었고 졸업 후에는 증권회사 직원의 이력을 가진 여성이다. 그러나 지금은 파리에서 한국 유학생이나 배낭객을 꾀어 루이뷔똥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중간책이다. 약간의 사례비를 지불하고 루이뷔똥을 사서는 영변댁에게 넘긴다. 영변댁은 조선족으로 중국 마피아에게 산 위조 여권으로 파리에 와서 민박과 루이뷔똥 장사로 먹고 산다. 여기에 판수라는 사내가 끼여 든다. 그는 한국에서 선반공이었는데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용병으로 번 돈을 가지고 파리에서 세미와 동거하기도 한다.
어두운 과방(서클룸)에서 밤 새워 대자보를 쓰던 그 세미의 현재 모습, 프랑스 외인부대가 받아주지 않는 나라라는 이유로 북한을 무시하는 판수, 마지막에 자기가 부리던 세미의 전재산을 사기치고 그간 사모아 두었던 루이뷔똥 가방이 몽땅 불에 타 울부짖지만 경찰을 부르려고하자 벌떡 일어나 ‘노옹 장다름므 농! 농!’(경찰은 안돼)라고 외치는 영변댁. 이들이 엮어내는 파노라마는 소위 세계화시대 우리의 자화상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케 한다.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는 교육현장의 부조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황복팔은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를 씹탱이 똥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수학과외로 돈을 긁어모아 돈에 똥독이 올랐다는 뜻이다. 이 황교사가 어느날 무참하게 살해된다. 그 살해 배경을 추적해가는 게 이 소설의 진행과정이다. 교사 치고는 자신의 명의로 된 건물과 주식, 채권이 너무 많은 황 선생. 그 많은 재산은 유산이라고 말했지만 알고보니 촌지교사, 과외교사로 악착같이 모은 돈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과외받는 학생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해 성적을 올리고 쪽집게라는 소리도 듣는다. 그런 황 선생을 교감은 올해의 교사상을 받은 참교육 선생이라고 변호한다. 물론 뒤로 돈을 상납받은 먹이사슬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런 교사가 있다는 게 놀랍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개혁이 시급한 분야가 교육계와 언론이라고 한다. 그런 일그러진 교육현실을 이 소설은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