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곡 박수량(1491~1554) 선생은 오랜 세월 공직자이면서 정치인으로 살았다. 그는 38년 동안 고위 관직을 지내면서도 뇌물을 받지 않았다. 접대는 커녕 술 한 잔도 얻어 마시지 않았다. 부정한 뒷거래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 결과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이 됐다.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이 부정ㆍ부패와 연결되고 심지어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지금, 그가 떠오르는 이유다.
청백리 뿐 아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푸른 숲을 가꾼 춘원 임종국(1915~1987) 선생도 있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21년 동안 축령산 황무지에 나무를 심었다. 수십 년, 수백 년 앞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은 선생의 의지와 열정이 지금의 치유의 숲을 만들어냈다.
호남 유학의 거두였던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과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이상국을 건설한 홍길동도 장성과 엮인다. 동학농민군이 정부에서 파견한 경군에 맞서 처음 승리한 격전지도 장성이었다.
축령산 숲길
장성으로 간다. 박수량과 임종국, 김인후와 홍길동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청렴길'을 찾아서. 필암서원에서 시작되는 청렴길은 황룡전적지 기념탑과 홍길동테마파크, 백비를 거쳐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 선생과 그의 제자 고암 양자징을 배향하고 있는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피해를 보지 않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돼 있는 고문서와 인종이 하서에게 하사했다는 묵죽도, 하서유묵 등 60여건의 자료가 눈길을 끈다.
필암서원에서 나와 홍길동테마파크로 가는 길에 만나는 황룡전적지는 1894년 4월 반봉건ㆍ반외세를 기치로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관군을 격파했던 곳. 여기에 동학농민혁명의 상징이 된 죽창 모형의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당시 총알받이로 썼던 장태(대를 원통형으로 엮고 속에 짚을 넣어 만듬)를 굴리는 모습도 조각돼 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동학농민군은 관군보다 먼저 전주를 점령하고 집강소를 설치하며 역사상 유례없는 농민통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홍길동 테마 파크
홍길동테마파크는 아곡리 아치실마을에 있다.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의적 홍길동의 생가가 고증을 거쳐 복원돼 있고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엔 홍길동이 실존인물이었음을 뒷받침해주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자료가 모아져 있다.
세상의 차별과 불의를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 의적이 된 홍길동의 일대기도 살필 수 있다. 활빈당원들이 생활했던 산채와 망루, 의적의집, 당수의집을 재현한 산채 체험장도 있다.
지척의 금호리에서 만나는 백비(白碑)는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비다. 청백리의 상징이 된 이 비석에는 고인의 이름과 직위는 물론 그럴싸한 업적 한 줄도 새겨져 있지 않다. 직사각형의 대리석 위에 호패 형태의 비신을 올렸을 뿐이다. 박수량 선생은 조선 성종 22년 장성 황룡에서 태어나 24살 때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았다. 청빈 그 자체였다.
얼마나 청빈한 삶을 살았는지 그에 대한 일화도 전해진다. 그의 고매한 인품이 어쩌다 임금의 귀에까지 전해졌단다. 명종 임금은 사실 확인을 위해 암행어사를 두 차례나 보냈는데,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보고만 들어왔다고 한다. 선생은 세상을 뜨면서도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 것을 유언했다. 그의 유품으로는 임금이 하사한 술잔과 갓끈이 전부였으며, 집안에 장례 치를 비용도 없었단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이 장례비용과 함께 비석으로 쓸 만한 돌 하나를 하사했다. 그러고선 "빗돌에다 새삼 그의 청백한 삶을 쓴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면서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했다. 어설픈 글로 비문(碑文)을 새기는 게 오히려 선생의 생애에 누(累)가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보잘것없는 공이나 직위일지라도 크게 치장하는 요즘 세태에 이름 하나 남기지 않은 백비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추암마을에선 후세에 숲을 남긴 '조림왕' 임종국 선생을 만난다. 선생은 일찍이 숲의 가치를 알고 1956년부터 황무지였던 축령산에 나무를 심었다. 멀쩡한 나무까지도 베어 땔감으로 쓰던 때인지라 임업에 대한 그의 투자는 웃음거리였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마다 나무를 돌보고 숲을 가꾸는 데만 신경을 썼다. 가뭄이 들 땐 가족 모두가 매달려 물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내렸다. 숲을 가꾸면서 재산을 다 날린 것도 부족해 빚까지 안게 됐다. 결국 더 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는 숲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선생이 가꾼 축령산은 수십 미터씩 뻗은 편백나무와 삼나무, 잎갈나무, 잣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에 들어서면 드넓은 연녹색에 눈이 시원해진다.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공기는 머릿속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호흡도 편안해지며 마음 속 갈증까지 후련하게 풀어주는 보약 같은 숲이다. 느슨해진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을 때, 무엇엔가 도전정신을 부여받고 싶을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숲이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으로 나가 상무대 방면으로 24번국도를 타야 한다. 제2황룡교를 건너 장산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필암서원과 홍길동테마파크, 백비, 축령산휴양림을 차례로 만난다. 황룡전적지와 필암서원을 보고 홍길동테마파크에 차를 두고 걸으면 된다.
●먹을 곳
홍길동테마파크에 청자연(394-9909)이 있다. 쇠비름, 참비름, 방한잎, 방풍나물, 죽순 등 갖가지 나물로 청렴밥상을 차려낸다. 꿩요리 전문점 산골짜기(393-0955)도 가까이 있다.
축령산 부근에 추암관광농원(394-4600), 추암골산장(393-0960), 백련동(393-7076), 대덕휴양관(395-2728)도 있다. 장성읍에 있는 호산식당(393-8449)과 초야식당(393-0734)은 메기찜과 장어구이로 소문 나 있다.
●묵을 곳
홍길동테마파크에 청백한옥(393-9466)과 야영장이 있다. 축령산편백펜션(011-9620-1132)과 축령골펜션(010-6292-9792), 돌탑산장(011-628-6773), 휴민박(010-6625-5557), 추암숲속나라(010-7767-1419), 소소원(017-334-0212)도 있다. 추암관광농원과 추암골산장, 백련동, 대덕휴양관에서도 묵을 수 있다.
●가볼 곳
고불총림 백양사가 북하면에 있다. 다소곳한 절집과 함께 초록이 흐르는 신록을 만날 수 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펼쳐지는 입암산 기슭의 남창계곡은 더위를 피하기에 제격이다. 8년째 주인 없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촌마을의 양심가게도 들러볼만 하다. 장성호반 드라이브도 멋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