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이기론은 불교의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상을 차용한 것이다
.
주자의 이기이원론(이기이원론) 형성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스님은 송나라 시대의 화엄종 고승인 규봉 종밀(780~841) 스님과, 당나라의 화엄종 사상가들입니다. 또한 주자가 젊은 시절 깊이 심취했던 선불교(특히 대해 종고스님 계열) 역시 그의 사상적 배경에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리학의 핵심 틀을 짜는 데 결정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한 불교 사상과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규봉 종밀
주자 성리학의 ‘이(理)와 기(氣)’의 개념은 화엄종의 핵심 교리인 법계연기(法界緣起), 그중에서도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상에서 뼈대를 빌려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화엄학에서 이(理)는 우주의 근본 본체(空性, 佛性)를 뜻하고, 사(事)는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를 뜻합니다. 본체와 현상이 걸림없이 융합되어 있다는 논리입니다.
주자를 비롯한 송대 유학자들은 불교의 이(理)와 사(事)의 구도를 가져와, 유교적인 도덕 원리인 이(理)와 물질적 재료인 기(氣)로 변형하여 이기이원론을 완성했습니다.
종밀 스님의 저서들은 유학자들에게 본체론을 구성하는 최고의 철학적 텍스트였습니다.
2. 대혜 종고와 선종 스님들
주자는 20대 젊은 시절, 불교(특히 선종)에 깊이 빠져 지냈습니다. 당시 송나라 지식인 사회를 휩쓸던 간화선(화두를 타파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의 대가 대혜 종고 스님의 제자들과 교류하여 불교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주자는 훗날 불교를 강하게 비판하며 유학으로 돌아왔지만, 인간의 마음(心)과 본성(本性)을 깊게 파고 드는 불교의 심성론(心性論)적 접근 방식을 고스란히 유학에 접목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마음은 이와 기의 결합’이라고 보는 성리학적 심성론입니다.
3. 유학자들의 불교 지우기
주자를 포함한 송나라 성리학자들은 불교의 철학적 구조(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형이상학)를 적극적으로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불교가 “현실 세계를 허무한 것(空)으로 본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현실의 윤리와 도덕(三綱五倫)을 우주의 절대 진리인 이(理)로 격상시켰습니다.
즉 뼈대는 불교(화엄. 선종)에서 빌려왔지만, 살은 유교의 도덕 원리로 채운 것이 주자의 이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