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아 반성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신학수업은 단순히 남을 가르칠 목적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반성할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을 보면, 때때로 그들이 목회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부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에 관심이 있을 뿐, 그것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반성하고 고쳐야 하나”를 성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교육에서조차 무의식중에 ‘갑’과 ‘을’이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예비)목회자는 ‘갑’이 되고 성도들은 ‘을’이 되는 신학교육은 온갖 문제점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터전을 제공한다.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교육은 참된 교육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회자 중심의 신학교육을 지양하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고 성역 없이 신앙을 공론화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신학교육 현장에서 민감한 주제나 신학적 규범을 뒤집어서 사고할 수 있는 훈련의 하나로 토론식 교육이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신학교육은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 남을 평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이른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정신과 통한다. 그리고 이 정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과 희생정신과 통하는 바가 있다. 예수의 삶과 행동양식을 바로 알아듣는 제자는 그를 본받아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분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 닮기’라고 한다.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이론에 치우치기 쉬운 조직신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동시에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다.
조직신학을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질문들로 시작하는 것도 그 답을 삶의 자리에서 찾고자 함이다. 이런 질문과 대답의 신학구도는 신학적 이슈를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담론으로 남게 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신앙의 실천으로 연결하게 한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