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조) 는 종의 아드님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한 나라의 제왕이 었지만 어머니는 전라도 땅 임피의
천노 최씨의 딸로 후일에는 임금을 낳은 숙빈이 되었으나, 처음에는
숙종비 인경왕후가 혼인할 때 교전비로 사가에서 따라 들어온 몸종이었으니.
만일 노비 종모법을 따른다면, 아무리 아버지가 임금이라 하여도
자신은 종의 자식인즉 사노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이 아닌가.
다만 천행으로 임금은 그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을 묻지 않는 무치여서
종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지만, 그는 언제나 거꾸로 흐르는 외가의
피와 맞부딪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하여, 비(妃) 정성왕후를 일생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혼불 4권, 34쪽
여전히 노비 제도는 깊이 깊이 뿌리를 박은 채 성하였다.
노비와 상전의 관계는 마치 서리를 튼 나무 뿌리와 견고한 지반처럼
서로 엉키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혼불 4권, 36쪽
" 장희빈에 대하여 역사이야기. "
이름은 옥정이구, 종질녀(일종의 첩)로써 아버지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한때 장렬왕후의 동생 조사석의 딸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는 조사석과 그녀의 어머니가 내연의 관계였다는 설 때문입니다.
장렬왕후의 시종으로 있다가
숙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고, 소의로 승격되면서 왕자 균을 낳아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됩니다.
균이 세자의 책봉되자 빈으로 승격되고,
나중에는 숙종이 인형왕후 민씨를 폐위하고 그녀를 왕비에 책봉하려 합니다.
그러자 반대파들이 상소를 올렸으나 반대파들 모두 참혹한 형벌을 받고 파직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조정은 남인이 완전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은 폐비복위운동으로 민씨는 다시 왕비에 앉고
이를 '갑숙옥사'라합니다.
그리고 민씨가 죽은 뒤 장희빈이 거처를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설치하고
민비가 죽기를 기원한 것이 발각되어 숙종은 이일에 관련된 장희빈과
그의 오빠 장희재를 사사하고 궁인, 무녀등도 함께 죽였습니다.
'무고의 옥'이라는 사건이지요.
이로써 궁녀에서 후궁생활을 거쳐 와이에 오르기까지 했던 희빈 장씨는 수많은
충문과 일화를 남긴 채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인현왕후 민씨가 죽자 간택되어 궁중에 들어가 다음해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천연두를 앓앗다가 회생했고,
2년 뒤 혜순이라는 존호를 받앗습니다.
숙종이 죽은 뒤 왕대비에 올랐고,
경종이 죽은 뒤 다시 대왕대비에 올랐습니다.
숙종은 인경왕후 김씨를 비롯하여 6명의 아내에게서 9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인경왕후는 공주 셋을 난게 아니라 둘을 나았는데 공주 둘 다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주 셋을 낳았다고 한 건 잘못된 기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귀인김씨는 나중에 1702년에 영빈이라는 첩지를 받아 품계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귀인김씨는 영빈 김씨라고 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숙종에게는 또 다른
귀인 김씨라는 후궁이 있기 때문입니다.
숙종의 후궁은, 희빈 장씨, 영빈김씨, 숙빈 최씨, 명빈박씨, 소의 유씨,
귀인김씨가 있습니다.
이중에 숙종의 아들을 낳은 후궁은 희빈 장씨, 숙빈 최씨, 명빈박씨입니다.
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
숙빈 최씨의 ( 동이 ) 아들이 후에 영조임금이 됩니다.
세자시절 어머니(장희빈)가 사약을 받게되자 경종은 모진 당쟁의 풍파를 겪어야했다.
즉위 3년전 상대당파인 노론이 세자의 대리청정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데 노론은
세자의 대리청정을 종묘에 고하는 것은 반대하는데... "세자의 대리청정!" 이는 곧
세자 폐위 계획과 일맥상통하고 있던 것이다!
왕위 계승에 라이벌이었던 경종과 영조. 그들의 어머니 장희빈과 최숙의! 최숙빈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숙종에 고하여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고간 여인이다.
경종과 영조는 이복형제임과 동시에 원수지간이었던 것이다.
재위 기간 내내 영조를 괴롭혔던 경종 독살설-. 이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또다른
비극까지 불러오게 됩니다.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그는 아버지를 반대했던 소론과 정치적인 입장을 같이 했다고 하죠. 결국 이로 인해
노론의 음모에 희생됐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인데요. 경종 독살설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영조는 이로 인해 결국 아들까지도 희생시켰고, 탕평책이라는
개혁도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인터넷 _
첫댓글 혼불이 전라도 남원 사투리의 사전이라 하던데..아직 몬 읽어서...그곳에 가려 합니다.
아...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