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구 학하동에는 추성(樞星, 북극성)이 떨어져 만들었다는 별봉(星峯)과 그 아래의 마을인 별밭(星田)이 있다. 학하동의 옛지명은 성전(星田)리였다.
신라 말의 고승인 도선국사는 이곳 별 밭에 머물면서 이곳을 추성낙지로 확인하였다. 즉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도선국사는 “도선비기”등을 저술하였으며 풍수지리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고려 태조왕건의 출생을 예언하였으며 왕건도 그를 추앙 하였다고한다.
우암 송시열은 42세 때인 인조 26년(1648)에 성전(현 자광사)으로 주소를 옮기고 5년 동안 거주하면서 이곳에 학당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학당을 짓고 가르치면 큰 인물이 나올 것 이라 하며 심은 향나무가 지금도 살아서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우암의 혼천의는 제자인 이민철(1631~1715)에게 제작하게 하여 하늘과 별을 관측하며 성리학을 깊이있게 연구하였다. 우암은 천문의기나 천문역법에 해박하여, 숙종 6년(1680) 경연석상에서 임금에게 일식의 이치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성리학은 우주의 섭리와 인간의 심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 결과로 효종에게 기축봉사를 올릴 수 있었다. (기축봉사: 청나라에 대한 북벌정책등을 밀봉하여 효종에게 장계를 올림)
탄허스님(1913~1983)은 조계종 승려로서 송시열이 강학하던 자리에 1969년 자광사를 세웠다. 현재 자광사 입구 마당에는 기둥의 받침돌이 있어서 우암 송시열이 강학했던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국어학자 양주동도 탄허스님에게서 장자를 배우고 크게 탄복했다고 한다. 탄허스님은 기상이변과 핵전쟁등을 일찍부터 언급하였고 우리나라가 세계사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동양천문학회장 김구연선생은 어릴때부터 외계인과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대 초반에 학하동에 살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였다. 1950년대로 추정된다. 즉 한밤중에 느낌이 이상하여 눈을 떠보니 외계인이 방의 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인데 어찌 벽으로 들어오는가? 방문으로 다시 들어오라.”하니 외계인이“ 이런 일은 처음이다.”하며 문으로 다시 들어왔다. 외계인이 “이곳은 세상의 길지이니 이곳을 잘 보존하라. 내가 다시 이곳에 올 날이 있을 것이다.”하며 물러났다. 김구연 선생은 이후로 백마를 타고 다니며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구연 선생은 평생 천문학 연구를 하며 신성한 별봉을 지키며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별궁(천명각)을 만들었다.
학하동 멸왜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범하지 못한 곳 이라한다.
별봉 남쪽으로 월봉이있고 거의 직선상으로 '칠성당이 고인돌'이 있다. 아래쪽으로는 대정동 한우물마을 고인돌에 별자리 모양 성혈이 차례로 위치하고 있어서 별봉을 중심으로 땅위에 하늘세계를 펼쳐 놓고있다.
지금도 별 밭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종종 볼 수있다.
별밭마을 서북쪽으로는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이 탄탄하게 마을을 감싸고있다. 빈계산과 도덕봉 사이의 수통골물은 사계절 끊이지 않으며 물고기들이 생명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암탉을 닮았다는 빈계산 아래는 마한 신흔국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별밭의 동남쪽과 남서쪽은 넓은 들이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아온 지역이다. 진잠천과 갑천이 흘러간다.
유성문화원-유성의 역사-구전설화 중에서
첫댓글 계속 수고 많이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사님~ ^^
학하동은 조선시대 진잠현 성전리였다. 별성(星), 밭전(田), "별밭"
대전 지명 중에 별밭처럼 예쁜 이름이 또 있을까?
이곳이 언제부터 별밭으로 불렸는지 모르지만 별밭은 마한 54개국 중 신흔국이 자리했던 곳으로 알려진 장소이다. 대전 역사의 시작이 바로 별밭 주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대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모른다면 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