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구로연대투쟁을 겪으며 노동단체는 증가하고 다시 노동조합운동은 침체를 겪게 되지만 노동 운동단체 및 써클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되었고, 여성활동가의 숫자도 양 적으로 확대되었다. 80년대 초를 전환기로 하여 우리 사회 노동운동은 노동자대중의 노동자의식 각성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노동운동 전반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노동자가 처해 있는 성차별적 착취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정립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여성노동자가 처해 있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현실은 어떠한가, 이러한 여성노동자 문 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올바른 노동자적 입장에서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 리고 여성운동은 상류층의 관제화된 모습이나 남성에 대한 투쟁인 여권주의에서 벗어나 여성노동 자가 주체가 되는 여성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문제가 활기차게 제기되었고 노동운동 내에 여성운동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객관화되기 시작하였다.
또 그 동안 산발적으로 제기되었던 생리휴가 확보를 위한 투쟁, 삼성제약의 수유시간 확보투쟁, 콘트롤데이타의 산전산후휴가 쟁취투쟁, 개별사업장에서의 탁아운동의 모색 등은 여성노동자들에 게 여성문제를 자각시켜 주는 경험이 되었다.
또한 노동운동을 계속한 민주노조출신의 여성활동가들은 다른 각도의 고민들을 안게 된다. 옛 동 지들이 결혼과 함께 육아와 가사일에 안주하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그 원인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의식은 발전했으면서도 결혼이후 상황에 대한 예비가 내부에 전혀 없었음에 주목 하게 되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여성 개인의 몫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결혼후 운동은 커녕 최소한의 사회생활도 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게 되고 이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슈퍼우먼이 아닌 이상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본 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널려 있음을 새삼 발견한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결혼 후 일에 대한 욕구가 있어도 일할 수 있는 현장이 기혼에게 닫혀 있어 일자리자체 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당시 노동운동 내에서는 대체로 두가지 근거에서 여성노동자운동의 독자적 필요에 의문을 제기하 고 있었다. 그 하나는 노동운동 내에서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체 노동운동을 분 열시킬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이는 성차별적 착취는 자본가가 전체노동자를 효과적으로 통 제하고 저임금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수단임을 간과한 우려로 반박되었다. 자본 가들은 노동자를 분리하여 차별적으로 착취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게 하여 대립·분열 시키고 있다.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가 자본에 대항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서로 대립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자본측의 차별화정책 탓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 리는 노동자의 절반인 여성노동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 제이며 그 해결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의 내용과 조직력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또 하나의 주장은, 여성문제는 노동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이 는 노동문제 해결의 하나가 바로 성차별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을 간과한 논리이다. 이는 노동 현 장내의 성차별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체는 바로 여성 당사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문제를 일반 적인 노동문제가 해결되면 시혜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준비과정이나 창립 초기 한여노는 여성노동자운동의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활동을 통해 기 계적이고 편협한 노동운동의 논리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한여노의 이념은 노 동운동에서의 여성노동자운동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전체 사회문제, 노동문제를 해결해 나감과 동시에 여성의 특수과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남녀 노동자의 단결 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