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을 함께 찍었다는 게 자랑스럽다
2008.06.09 / 허남웅 기자
코미디(<반칙왕>)와 공포(<장화, 홍련>), 누아르(<달콤한 인생>), SF(<인류멸망보고서>)까지 섭렵한 김지운 감독의 장르 실험이기도 한 <놈놈놈>의 실체, 칸에서 진행된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놈놈놈>은 미국 서부극과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김지운 감독(이하 ‘김’) 정통 서부주의 영화 중에서도 <하이 눈>이나 <쉐인>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강렬한 느낌을 주는, 세르지오 레오네로 대변되는 스파게티 웨스턴에 영향을 받았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가 서부극 중 가장 멋있기 때문이다.
허 어떤 이유에서?
김 미국 서부극은 미국적 가치관을 강조한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천지를 개척하는 프론티어 정신을 미국적인 사고방식과 이데올로기로 대변한다. 반면 스파게티 웨스턴은 장르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전복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 후 미국에서는 미국적 가치관을 존중하는 그동안의 서부극을 반성하는 의미로 수정주의 서부극이 등장했다. 존 포드의 <수색자>,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작품은 미국 서부영화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허 출발은 <석양의 무법자>이었지만 이야기적으로는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의 영향이 더 크게 느껴진다.
김 한국 만주 웨스턴 중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이만희 감독이 활동하던 시절 선배들은 여러 장르를 섭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희 감독은 서정적인 멜로영화로 대표되는 분인데 필모그래피에서 유독 동떨어진 장르인 <쇠사슬을 끊어라>를 만들었고 그걸 영상자료원에서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허 <놈놈놈>은 오락영화로만 보기엔 단절된 한국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싶다.
김 역사의 격변기 속을 지나온 남자들이 무용담을 풀어놓을 때 “내가 예전에 만주 벌판에서”로 운을 떼는 특유의 이야기성이 있지 않나. 한국영화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성을 오락적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은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허 <놈놈놈>을 통해 뭘 말하고 싶었나?
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은 무엇인가를 좇아 질주하게 만든다. 또 누군가는 그 사람을 쫓는다. 그런 것들을 형상화해서 표현하고자 했고 방법적으로 서부극의 질주하는 영화를 만들게 됐다. 만주 벌판을 달리는 건 어쩌면 민족적인 판타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판타지인가?(웃음)
허 제작비가 170억 원에 이르고 중국 현지에서 촬영이 길었던 만큼 고생이 심했다고 들었다.
김 어떤 영화 현장에서나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하고 영화에 반영하는가다. <놈놈놈>은 중국에서 100일 가까운 현지 촬영을 했는데, 순조롭게 찍을 수 있는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었다. 40도가 넘는 고열에서 두꺼운 옷을 입고 연기하는 배우나 스탭의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문화가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현지 스탭과 생기는 책임 문제, 문화 차이도 힘들었다. 아마 중국에서 촬영하는 모든 영화들이 그런 고통을 겪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놈놈놈>은 한국과 중국 스탭들이 어떤 영화보다 우호적이고 강력한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촬영했던 성공적인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허 힘들게 영화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김 좋은 배우들과 즐겁게 작업해보고자 이 영화를 시작했다. 관객들의 눈높이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춰져 있는 까닭에 그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제작비도 초과했고 스탭들과 배우들의 고생이 심했다. 속된 말로 몸으로 때워서 만든 영화다.
허 잘나가는 배우 세 명과 함께한다는 점이 부담되지는 않았나?
김 촬영 시작 전에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이들과 영화를 무사히 촬영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송강호라는 훌륭한 배우가, 아니 인격적으로 훌륭한 그가 모든 배우와 스탭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해주었다. 모두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정서적인 중심이 돼주었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허 중국에서 다시 한 번 잘나가는 배우 세 명과 영화를 찍으라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승낙하겠나?(웃음)
김 말이 나오고 주인공이 세 명인 영화를 중국에서는 다시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다시 가고 싶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찍을 때의 쾌감이라는 게 있다. 석양의 대평원을 질주하는 모습을 촬영할 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됐다.
허 최근 세계적으로 서부극이 유행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미이케 다카시가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를 만들기도 했다. 동양 웨스턴이 앞으로 유행할 것이라 보나?
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오디션> 때부터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는 예고편은 봤지만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서부극을 만든 건 원래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장르였기 때문인데 아시아에서 서부극이 붐을 일으킬지는 잘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한때 사랑받았던 만주 웨스턴이 내 영화를 기점으로 더 건강한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줬으면 좋겠다.
허 칸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와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내용이 다르다고 들었다.
김 칸 버전과 한국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칸 버전보다 한국 버전이 액션과 유머의 밸런스가 훨씬 오락적으로 구현될 예정이다. 오락영화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한국 버전이 더욱 아기자기하고 풍요로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가 ‘오페라’ 같은 서부극이라면, 칸 버전의 <놈놈놈>은 하드록, 한국 버전 <놈놈놈>은 훨씬 흥겨운 로큰롤에 비유하면 될 것 같다.
허 결말이 달라지면 해석도 달라질 텐데?
김 그렇다. 단순히 결말이 달라진다는 의미보다 영화의 전체적인 해석이나 느낌,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이번 칸 버전은 최고의 격조를 갖춘 화려하고 요란한 모니터 시사가 아닐까. 국내 개봉 버전을 최상의 것으로 완성하기 위해 칸영화제 반응을 최대한 반영할 것이다. 스스로 최종 결과물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내용의 충실한 기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