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움츠리면 몸이었고 쭉 펴면 길이었을
연체의 습성으로 한 생을 주무르던
곱사등 연초록 일념이 산 하나를 넘는다.
다 두고 나서는 길 하늘에 짐이 될까
절망이 늘 그렇게 희망 쪽으로 다리를 놓듯
내 삶의 가장자리엔 초록빛이 가득해!
인정 없는 세상에서도 굽힐 만큼 굽히리라
더도 아니 덜도 아니 딱 그만한 보폭으로
눈 뜨고 길 잃는 세상, 눈 감고 또 길을 낸다.
강은미 <자벌레 보폭으로> 전문
움츠릴 땐 확실하게 움츠리고, 몸을 펼땐 몸 안의 주름살 하나 남김없이 편다. 행동 하나하나 함부로 해선 안된다. 최선, 생의 밑바닥에서 희망쪽으로 오르기 위한 처절한 경험, 거기서 우러나는 최선이 있지 않고서는 손가락 하나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 그런 몸놀림이 모여 결국 산을 넘는 자벌레, 길에 놓인 것이 수렁이든, 장벽이든, 절대 서두르는 법 없이 딱 그만한 보폭으로 걸어가는 시인,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그녀의 말에는 강약이 없다.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을 터인데도 그녀의 목소리 톤에서는 그걸 찾을 수 없다. 높은 것도 낮은 척, 낮은 것도 높은 척, 결국엔 처음과 끝이 다 같이 평등해지는, 그런 상태로 그녀는 말을 한다. 그러는데도 듣는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왜 일까. 높낮이 없는 그 말 속에 수많은 계곡과 산이 있음을 곧 알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수많은 골짜기와 계곡을 건너와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통달의 경지가 아닐까. 깊은 산에는 쉽게 바람이 일지 않고, 깊은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는 것처럼, 덤덤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인의 얼굴은 밝다. 그 얼굴에서 금방 그녀만의 독특한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시인에게 글은 '밥'이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듯, 시인에게는 글을 쓰면서 일상을 풀어나갔고, 대화를 했고, 삶을 살았다.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는 유년기, 고향을 모른다는 것은 곧 자신의 근원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근원의 부존재는 늘 시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거기다 잦은 전학으로 인한 내성적 성격은 자연스레 혼자놀기와 혼자 끄적거리기로 이어지고, 그런 습관들은 글을 쓰는데 있어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고 시인은 인정한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시인에게 행운이었다. 그 외로움의 깊은 터널을 걸으면서 글쓰기는 저 앞에 아스라히 보이는 터널의 끝, 그 햇살 비치는 바깥세상과 연결된 끈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
| |
|
|
흙 위에 그린 오선지, 달팽이 집 그리며, 내 마음의 풍금, 無, 우리 동무하며 놀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작나무 숲, 자벌레 보폭으로, 나의 시, 나의 참회... 청소년기서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글쓰기 노트의 제목이다. 좋아하는 시를 써서 오려 붙이기도 하고, 일기처럼, 편지처럼, 누군가에게 그리움을 전해보기도 하고, 결혼 후 사랑하는 남편에게 투정섞인 편지를 써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터는 육아일기를 주구장창 써 넣기도 하고, 그야말로 노트에다 웬갖 '야빈닥'을 다해 놓았다.
그 야빈닥스러움이 결국 지금의 시인을 만들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절대적인 어려움속에서, 저절로 익혀졌던 부지런함과 성실성, 그것은 결혼 후 10년, 삶의 위기감을 느낄 때쯤 만난 젊은시조문학회에서 독보적인 알리바이시리즈와 마음풍경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해 나가는 한편, 음풍농월의 시조시단에 '오랜 가뭄 끝에 단비처럼' '자벌레 보폭으로' 외 4편으로 글쓰기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등단을 하게 된다.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 헤르만헤세에 심취해 관념의 틀을 깨고 나선 인식의 무한한 확장의 순간을 경험하고, 조운, 서정주, 고정국, 현택훈 등을 직, 간접적으로 만나며 시인의 글쓰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글이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시인은 역설한다. 가벼워지고, 가벼워지고, 또 가벼워져서 결국 가쁜히 날아오를 수 있는 것, 그런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런 눈으로 글을 쓸 때야말로 진정 맑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유종인의 <저수지에 빠진 의자>의 한구절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려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자신만큼이나 외롭고 억울함이 묻어나는 시편을 읽고 장문의 메일을 작가에게 써 보내는 심성의 소유자, 시인이 좋아하는 시편들이 대부분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독하다고, 딱히 따르는 시인이 없다는 게 시인들에게 미안하고, 그런 자신이 한심스워지기까지 한다고 하면서 그건 제가 누구인지 말 할 수 없음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하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그건 아직 그의 시선을 붙잡아 둘만한 작품, 혹은 시인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건 아닐까. 그만큼 그의 시선은 깊고, 넓고, 먼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정만 보고서는 고생을 모르고 자란,
지지리 힘들어도 배시시 웃던 여자
흘렸던 눈물 자리마다 봄을 담고 웃는다. '
은연 중에 시인을 생각하며 썼던 구절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녀는 아이들 확실하게 챙기고, 차를 몰고 강의를 하러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의 구름을 보고, 길 옆으로 지나가는 나무와 꽃들을 보면서 싯구절 하나를 생각하고, 무료해지면 혼자 콧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를 것이다. 신호등 앞에서는 옆에 놓인 시집을 집어들 것이고, 신호가 바뀌자 마자 또 다시 달려갈 것이다.
첫댓글 아까워서, 글이 너무 아까워서 야금야금 읽습니다. 저보다 더 저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움츠렸던 마음을 펴고 다시 걸으렵니다. 신호등 앞에서 잠시 생각이 먼 산을 향하고 있었답니다^^.
아주 어려운 숙제를 제출한 느낌입니다. 혹시나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햐~~한라산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나..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월님과는 각별한 관계며 문우며 도반처럼 의지가 되어서 남은 생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갈 것 같습니다. 척 하면 안다고 표정 하나 눈빛하나에 서로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문우님들도 많은 공감을 할 것입니다. 물론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도 좋은 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한 편의 영화를 봅니다. 달콤하거나 새콤하지도, 그렇다고 맵거나 쓰지도 않은데 슬슬 잘도 넘어가는. 시간은 가는데 눈은 더 똘망똘망 해지고, 귓바위 스스로 오므라드는. 오소소 솜털이 서다가, 눈물이 찰랑 넘치다가 샘창아리 없는 웃음이 픽 터지는...우리가 이렇게 헤메이고 있다는 것은 절정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자벌레 보폭으로 가는데까지 함 가겠습니다. 한라산님 아까운 글 잘 읽었습니다.
일요일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컵하나를 깨뜨렸습니다. 그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길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그건 필시 이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죄송함으로 알리바이 시리즈와 마음풍경 시리즈를 챙겨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무릎을 탁탁 치며 연신 놀라고 있습니다. 아! 어찌 이런 표현을~ 훔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시월님을 가까이 두고 있어 행복한 저입니다. 그리고 정리를 진짜 똑떨어지게 해주신 한라산님, 존경합니다. 모두모두 대단하십니다^^
일요일 카페에 다녀오고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정리 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야!' 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밥 먹는 것처럼, 책을 읽지 않으면 가슴에서 올라온다는, 그리고 어디로든 달려가서 책을 집어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저건 어떻게 해야 가슴에서 울리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들과 내 정신을 깨울수 있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자리에 모인 분들은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월님에 대한 생각들도, 한라산님에 대한 생각도 그리고 앞으로 나갈 젊은시조문학회에 대해서도.... 그래서 좋았습니다. 자매 같고 친구 같고 가족 같은. 치열하지 못하고 능력이 모자라고 부족한 거 많지만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여러분 ! 사랑합니다.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두루두루 배워야 할 것이 넘 많습니다.
쓰는 이나 쓰여지는 이나, 읽는 이나 읽혀지는 이나 저마다 체중값을 하고 있어서 한없이 마음든든하네요. 후배님들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해피한 아침입니다.
참석하지 못한 죄송함에도 염치없게 알맹이는 제일 먼저 챙기는 기분입니다. 이렇게라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한라산님께 무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 보냅니다. 시월님, 늘 나약한 제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강은미 선생님의 깊이와 넓이를 배우고 싶어 갔었습니다. 까르륵 거리는 웃음소리를 더하고 왔습니다.
차근차근 준비해 온 소녀적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 마음에도 피아노같은 그 웃음도 항상 고마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