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게시글로 정보를 알려드렸던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님 강의 후기입니다. 강의를 듣지는 못했는데 후기만 읽어도 돌이켜보고, 되세겨볼 것들이 많은 글이라 공유합니다. ^&^
퍼온글- 출처 : 지혜공유협동조합 유정길 이사장
성춘향과 이몽룡이 만나 연애한 나이는?
16세입니다. 로미오가 처음 본 줄리엣의 나이는? 13살이구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의 평균연령은? 15세입니다.
그때 사춘기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결혼하는 나이였기 때문에 어른의 문제였지요.
2월3일 화요일 김찬호교수의 강의의 시작 부문이었습니다.
<사춘기 자녀, 열쇠는 부모가 쥐고 있다>는 주제의 강연이었습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교육의 목표는 최소한 <아이들을 망가뜨리지 말자>가 되어야한다고 포문을 여십니다.
우리나라같이 부모가 아이에게 올인하는 나라가 어디있나요. 그렇게 헌신을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고마와하지 않습니다. 일류대 다니는 아이들일수록 부모에 대해 적개심이 많다고 합니다. 부모가 강압적일수록 튕겨나가고 싶어하고 반항이라는 형태로 자기를 찾고 싶어합니다. 어쩌면 반항이 자신의 자존성을 지키는 행위일수도 있지요.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강요합니다.
사춘기 이전에는 부모가 힘이 있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면서 강요받고 싶어하지 않게됩니다.
사춘기아이들에겐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 아이들의 상태 그대로, 존재 있는 그대로 끌어 앉는 것 (Holding)입니다.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보되 그것도 아이의 삶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불쑥불쑥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수 있어>라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지는 것입니다.
요즘 자녀는 1명이나 2명정도입니다. 그런데 과거 6명 10명을 낳아 기를 때 보다 왜 이리 힘들까요? 과거에는 동네가 키워주었고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리면서 스스로 컸습니다. 동네사람이 아이를 돌보고 완충하는 역할을 했지만, 요즘에는 집에서만 키우는 아이들과 그 부모사이에 완충 역할은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부모입니다. 부모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김찬호교수님은 부모가 아이들 학교에 보내놓고 커피집에 만나 수다떨며 서로 아이들교육 정보를 주고 받는 아줌마들 모임에 절대 가지 당부합니다.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성하게 만들어 아이들을 압박하게 되며 결국 아이들을 망치게 하기 때문이지요. 부모는 이러한 불안감이 원인이라는 겁니다.
모든 감정은 전염성이 있지만 불안감의 전염성은 특히 큽니다. 모든 감정은 논리와 세계관이 있는데 그 불안감의 실체는 뭘까요? 곧 <성적=성공=행복>이라는 도식에 대한 맹목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적이 곧 성공인가요? 또 성공이 곧 행복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행복의 구성요소는 아주 다양합니다. 건강, 친구, 지식, 성적, 가족, 경험, 추억, 운, 재정, 미모, 매력, 회복탄력성, 절재력등 다양한 것이 있지만, 우리는 성적만을 주목하고 나머지는 소거해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이 모든 것이 삶속에 등장합니다. 외모는 어쩔수 없지만, 매력은 가꿀수 있습니다. 좌절하고 무너질 때 회복할수 있는 회복탄력성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공부로 성공하는 것은 결국 50세까지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공부가 취업을 보장하고 그것이 성공과 행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행복과 성공에 대한 부모의 확고한 신념이 아이를 더 이상 망치지 않게 하는 핵심이라고 합니다.
<실제 오늘자 2월 4일 중앙일보에 “SKY도 ‘슬픈 인문계’ … 취업 절반도 못했다. 서울대도 안통한다‘는 기사는 서울,연,고대 평균 취업률은 45.4% 밖에 안되며 30%가 실업자로 밝혀져 충격>이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내면에 훙포한 흉기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그 흉기로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수많은 상처로 난도질하게 됩니다. <급살 맞을 놈, 자식이 아니라 웬수>, <니가 하는게 다 그렇지>, <왜 맨날 그모양이냐>... 등의 말은 예민한 시기 평생 지워지지 않는 큰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 성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성취>하게 해주는 것, <감동하고 환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아이를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을 찾아보는 것>, <강점, 단점, 특징을 평소에 잘 파악>하고 메모를 해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평소에 준비가 되어야 격려의 말도 센스있게 할 수있기 때문이지요.
김찬호선생님의 강의에 웃고 감동하면서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우리만 듣기 너무도 아까운 강의였습니다. 다음강의는 내일 5일 (목) 7시30분 신희경박사님입니다.
<위의 글은 김찬호선생님의 강연을 내방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혹시 글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첫댓글 아이들이 성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게 해주는 것, <감동하고 환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정말 세겨들어야할 말씀인 것 같습니다. ^&^
퍼온 댓글. -경쟁에서 앞서가던 특목고 출신들이 30대 중반이 되어 다양한 구성원들을 이끄는 위치가 되면 뒤처지기 시작한답니다. 더이상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게 되고요ㅎㅎ 그나마 이건 나은 경우고요. "지랄 총량 불변의 법칙"에 따르면, 치밀한 관리감독에 따라 특목고 명문대 대기업이나 전문직까지 가서 끝내 핵폰탄급 배신?을 때리게 되는데요~ 어차피 독립된 주체로 서기 위해서 겪어야 할 갈등이라면 가능한 빠른 시기가 낫다는 것이지요~
어머님이 개인 일이나 취미 생활로 바빠 학교 모임에 갈 시간도 없는 경우에 그 집 딸 아들이 나이에 따라 점차 공부에 속도가 붙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부모님을 보고 자기들도 그런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는 것이겠지요.
하고 싶은 거 참고 자식에 매달려 결국은 자식 불구 만들고 배신?까지 당하는 길과 당장 하고싶은 거 찾아서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부모의 행복한 삶을 따라 성장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길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 지에 따라 사춘기 자녀의 미래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제 딸도 중 2 때 엄청 지랄(?)을 하더라구요. ㅎㅎ. 총량을 소진하더니 돌아와 책상 앞에 앉더라구요. 그런데 제 친구 딸이 제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이제 고 2인데 지랄(?)을 시작 중이라 걱정하더군요. 그래서 고 3때 지랄(?)안하고 일찍하는 것이 다행인줄 알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ㅎㅎ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번역)-중에서
"나는, 나무 등걸에 붙어 있는 나비의 번데기를 발견했던 어느 아침을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덥혀 주었다.
열심히 덥혀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날개가 뒤로 접힌구겨진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으리라.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새해 아침의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참으로 적절한~~
조르바 읽고 토론하는 모임 한 번 개설해보시죠? 아직도 여운이 남는 책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