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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 은유시인 -
누구나 ‘정말 그렇구나.’라고 느끼시겠지만, 우리 ‘한글’ 이거 진짜 죽여주는 언어올시다.
전 언어학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한글에 대해 연구해본 바도 없고 또 한글을 제 규격과 용도에 맞춰 잘 쓰고 있노라고 자신할 만큼 확신조차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답니다.
전 그런대로 한글로 표현하는 것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소설이든 만화든 동화든 가리지 않고 책이란 것을 엄청 읽어댔는데, 시험기간에도 공부가 안되면 도서실에 숨어서 책을 읽곤 하였답니다. 아마 내 평생 그때처럼 많은 책을 읽어본 적도 없었으려니와 앞으로 그럴 기회도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국어시간이 미술이나 생물시간 못잖게 재미있었고, 국어공부를 유독 잘했던 것도 분명하답니다. 선생님 한마디 말씀마다 머릿속에 틀어박혀 요지부동이지 뭡니까? 지금도 30여 년 전의 그때 배운 구절들이 절반은 살아나올 정도로 내겐 각별하답니다.
언젠가는 한글을 영문의 필기체처럼 풀어쓰는 법을 제 나름대로 연구하기도 했었으니, 그때만큼은 한글에 대한 제 애경심(愛敬心)을 누구에게 자랑해도 한 치 부끄럽지 않다할 것입니다.
지금은 영어만 잘한다면야 한글이야 철자법이 틀리든 띄어쓰기가 엉망이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대에 우리 자녀들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 학원만큼은 빼놓지 않고 보내면서도 유독 국어공부는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국제화시대에 부응하기위해 최소한도 영어만큼은 실력을 제대로 갖추려고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말을 잘하는 것보다 영어를 잘 씨부렁거리는 것이 사람들을 더욱 놀래키고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맞습니다. 영어를 잘해야 직장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영어로 된 최신 서적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영어를 잘 아는 만큼 좀 더 진보되고 첨단화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됩니다.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자 웬만한 나라에서는 영어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도 영어에 있어 회화는 전혀 할 줄 모르지만 어린아이들 동화책 정도는 약간 읽고 해석할 정도는 됩니다. 그러나 영어를 잘 할 줄도 모르는 주제에 외람됩니다만, 제 판단으로는 ‘잉글리시’란 영어가 언어로서는 그리 썩 우수한 것 같지는 않다 여겨집니다.
영어가 한글에 비해 분명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인구에 의해 사용되어왔고, 더 많은 학자에 의한 연구가 지속되었고, 더 오랜 역사를 지녔음직한 데도 분명 익히기가 훨씬 어렵다고 느끼기에 드리는 말입니다.
언어란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어야하며 운용상에 제약이 없어야 좋은 것 아닙니까? 물론 한글 역시 타 민족들이 터득하기에 쉽지 않다 들었으며, 우리 한글에도 꽤나 많은 문법과 난해한 단어들이 있음을 볼 땐 분명 어려운 언어란 것은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글을 쉽게 익혔대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나이가 되도록 한글을 사용하여 오면서 느끼는 것은 ‘경외감(敬畏感)’ 그 자체랍니다. 도무지 표현 못할 말이 없다는, 그 무궁무진한 ‘표현의 무한성’을 놓고 드리는 얘깁니다.
우리 한글이 다른 언어에 비해 형용사가 특히 발달했다고 많은 한글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형용사란 ‘느낌과 사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입니다. 잘 발달된 형용사는 곧 언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의 발달을 의미합니다.
이런 훌륭한 언어인 한글로 표현된 한국문학이 머잖아 세계문단을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성급한가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아직 이 땅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문학의 질이 뒤져서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이 아직 이렇다 할 수준에 못 오른 까닭이겠지요.
제가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타 언어를 잘 알아서도 아니요, 오직 한글을 부단하게 사용하여오면서 어떠한 표현에도 한글로서는 거칠 것이 없더라는 저 나름대로의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영어니 불어니 스페인어니 독일어니 중국어니 일본어니…… 그런 남의 나라 언어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운 바도 제대로 알 턱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 나라 언어에 대해 굳이 알려하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저도 영어를 배우려고 몇 번의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어도 배우려고 했었지요. 카세트도 몇 가지 종류를 사다 놨었고, 후에는 몇 십 만 원짜리 값비싼 비디오교재도 여러 종류 갖춰 놨답니다. 심지어 대학에서 실시하는 어학에도 참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저는 워낙 제 소질이나 취미에 부합되지 않는 일은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인지라 잠시 배우다 말았으니 결국 비싼 교재비며 강의료를 사장시킨 꼴이 되더군요.
그런 어학강의나 교재들은 틀림없이 어떤 사람한테든 그들 낯선 언어들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짜여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제 머릿속엔 도무지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 머릿속이 굳어져서 일까요? 물론 10대나 20대에 비해서 머리는 많이 굳어졌겠지만,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습니다.
기억력이나 인지력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원인은 그런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가 원해서 하는 것, 그리고 재미있어 하는 것들은 의외로 쉽게 터득이 되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렇게 자판을 뚜드리며 글을 적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독수리타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또한 벗어날 마음도 없답니다. 제가 쓰고자 하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뱉어내는 시간과 비록 독수리타법일 망정 받아 적는 속도가 희한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빨리 워드를 쳐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생각이 손끝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글 쓰는데 장애밖엔 더 되겠습니까?
이렇듯 글을 쓰기위해 워드와 컴퓨터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불과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컴퓨터를 무서워했기에 컴퓨터 앞에만 앉아도 머릿속이 온통 ‘웽~’ 하고 텅텅 빌 때가 많았습니다. 남들은 쉽다고 말들 하지만 감히 컴퓨터 앞에 당당하게 마주 앉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안하면 안 될 지경에 이르고서야 감히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아 이것저것 마구 클릭하고 뚜드려 보길 며칠, 컴퓨터가 의외로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후론 ‘포토샵’이든 ‘일러스트’든, 그 어렵다는 ‘쿼억익스프레스’같은 편집프로그램을 아주 자유롭게 구동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누구한테서 개인지도를 받았다거나 학원에 가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젠 이 분야에선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오히려 저보다 몇 년 앞서 시작한 사람들보다도 더욱 이들 프로그램을 잘 응용할 줄 알게 되었답니다. 컴퓨터의 온갖 기능을 맘껏 향유해가면서 즐기게까지 되었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에는 이런 요령이 안 통할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관련 교재나 교육프로그램이 오히려 제게는 역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하여 내게도 적합해야 된다는 것은 억지다.’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영어든 일본어든 평소에는 쓸 용도가 없으니 팽개쳐 두자. 그리고 외국에 나가면 그때 현지인들하고 부딪히면서 익히자.’이겁니다.
내년 초부터 저는 새로운 잡지 한 가지를 발행하게 됩니다. 이 잡지의 제목은 이 칼럼 취지에 역행되게끔 영문으로 지었는데 ‘The Great Korean(주간 한국인)’이랍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신문과 잡지를 발행해본 경험이 있었고, 그때마다 번번이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실패를 했었으나 이번에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연구께나 했으며 또 그간 쌓인 노하우로 결코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섰답니다.
이 잡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성공담을 직접 현지에 찾아가 인터뷰하여 게재함으로서 모든 한국인들의 귀감을 삼고자하는 데에 목적이 있답니다. 따라서 발행부수도 매주 3만부 이상 될 것이고, 이 책들 상당수를 전 세계 각지로 보낼 것입니다.
이때 겸사겸사 세계 각지를 돌며 여행도 하고 언어도 자연스레 익히고, 또 세계의 풍물과 유적지 문화 인종 역사 예술 등등을 취재하고 여행기를 쓸 것이며 또 이를 바탕으로 말년에 세계적 스케일을 갖춘 글을 쓰고자 합니다.
사실 한국인들 상당수가 조국에 대해 배타적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음에 저도 놀랬습니다. 특히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사는 사람들 사이엔 이런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 있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국에서 사기 등을 당해 쫄딱 망한 많은 한국인들이 타국에 가서 성공한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애들 교육 때문에 이 땅을 떠난 사람들도 꽤나 많답니다. 그들 모두는 이 땅의 교육제도와 인심, 정치권의 행태에 더할 나위 없는 혐오감을 갖고 두 번 다시 이 땅을 찾지 않겠다는 생각들도 갖고 있답니다.
이래서야 어찌 우리 대한민국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정도령 도래설’이나 ‘환태평양주역설’ 등을 굳이 믿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우리 한민족이 한번쯤은 세계의 주인으로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어찌 보면 조금 미친 생각을 저 나름대로 한번 품어 봅니다.
만약에 우리 대한민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주인이 된다면, 영어나 일본어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땐 우리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될 테니까요.
얘기가 많이 횡설수설처럼 어긋나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언어학자가 아니라고 미리 밝혔듯이 분명 우리 한글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면서도 타 언어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해 비교분석을 못해 드리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된다는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도대체 우리 국민 가운데 한글을 사랑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책을 안 읽는 것이 무슨 큰 자랑처럼 된 우리 국민입니다. 일본이 년 4.8권을 읽는데 우린 1.2권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컴퓨터 채팅용어란 신조어가 마구 생겨나 한글의 본래 모습을 망가뜨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글을 쓰면서 맞춤법 몇 개 틀리는 것은 애교로 봐줘야 한다니 차라리 아랫도리를 홀라당 벗고 대로를 활보하는 것이 더 애교스러울 판입니다.
벌거벗고 다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요 체면에 손상되는 짓이라면서 한글을 엉터리로 쓰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니요.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대학교수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우리글을 제대로 표현을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인쇄출판업을 하기에 때론 그들의 원고를 책으로 제작하기 위해 재편집하면서 겪는 일들인데, 휘갈겨 쓴 것이 알아보기도 어렵지만 어떤 문장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어 제가 알아서 문장 자체를 대충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다시 지어주기까지 한 적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게 지어준 글을 당사자가 읽어보고는 오히려 칭찬까지 해 주더라니까요.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너무 많이 알다보면 한글정도는 서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서도 논리가 합당치 않은 것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맞춤법과 띄어쓰기 틀린 것을 일일이 집어내기가 겁날 정도로 엉터리 논문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논문들을 근거로 하여 석사니 박사니 학위는 잘도 줍디다. 논문이야 엉터리지만 그 사람 대가리속의 숨은 지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고 주는 거겠지요?
지금은 국내대학 박사출신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많이 나아졌다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미국 하버드나 엠아이티 그리고 영국 캠브리지, 옥스퍼드 등 명문대학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분명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다년간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혀가 언제부터 버터가 듬뿍 발렸던지 모국어 발음도 제대로 못할뿐더러 웬만한 문서하나 작성을 못했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그런 이들을 지켜보는 주위의 시선들입니다. 그것이 도무지 흉이 될 수가 없다니까요.
많이 배운 놈은 한글을 몰라야 더 돋보인다니 이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너무 많이 배우면 아마 조상은커녕 제 부모도 몰라 볼 호로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신체적으로 어느 한 부위가 특별히 크다면 우린 그를 기형인이라 즐겨 부르듯이 그 친구들이야 말로 기형인의 전형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한쪽 지식에만 치우쳐진 ‘기형적 지식인’이란 얘깁니다.
길거리에서는 가래를 예사로 뱉고 담배꽁초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친구들이 양식당에 가서는 영국 황실사람 못잖게 포크며 나이프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얘기 아닐까요? 저야 양식당에 가서도 포크나 나이프를 잘 사용하지 않지요. 숟가락과 젓가락 갖다 달라며 이도 없다면 손가락으로 뜯어 먹는 나쁜 버릇이 있으니까요.
내 돈 내고 내가 편하게 먹자고 하는 짓인데 구태여 남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내 습관대로 먹어야 소화가 잘 되는 것이라 여기면서…….
그러니 양놈들이 길거리에서 설혹 내게 길을 묻더라도 전 우리말로 자세히 가르쳐 줄 따름이지요. 괜히 그네들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또 그네들 말을 잘 할 줄 모른다고 쩔쩔맬 이유가 어디에 있답니까? 못 알아듣겠으면 저거들이 우리말을 빨리 배우면 될 것을…….
한글은 우리 한민족의 ‘혼(魂)’입니다. 한민족이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일 당당한 자부심이요 한민족을 특징지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전자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왜 한글을 만드셨겠습니까? 그 훌륭한 중국어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언문(쌍놈 글)’취급까지 받으면서, 그리고 일제로부터 지켜온 한글입니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진짜 인생에 도움 안 되는 헛된 공부 그만 시키시고 부지런히 책을 읽게 하고 뭐든 글을 열심히 쓰도록 해보세요. 뭐 때문에 하찮은 지식 쌓기에 애들을 그리도 못살게 굽니까? 나중에 컴퓨터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외워대어도 아무리 열심히 산술문제 풀어도 컴퓨터 따라잡을 수 있나요? 그러니 실컷 놀게 해주시고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도록 놔두세요. 그렇다고 그렇게 키운 애가 절대로 멍청하게는 안 될 겁니다. 제 말 믿으세요. 헐…….
- 끝 -
(200자 원고지 39매 분량)
2002/12/09/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