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을 열기 위한 실마리
파티 또는 만찬 석상, 취직하여 출근 첫날, 새로 이사 온 이웃을 만났을 때, 기타 무수한 경우에 말을 붙이기 위해 쓸 수 있는 화제 거리에 한계는 없다.
1994년 동계 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였다면 토냐 하딩과 낸시 케리건의 사건이 말문을 열기 위한 화제거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화성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일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모든 사람이 날씨에 관하여 떠들어 대면서 그에 관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날씨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상대방에 관하여 당신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경우에는 아주 안전한 화제다. 중서부의 홍수, 서부의 지진, 산불, 산사태, 동부의 폭설과 혹한 등 날씨는 수많은 화제거리를 제공해 준다.
W.C.필즈는 '아이들과 동물을 싫어한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 둘을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을 다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아이들이 있고 또 애완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말 붙이기가 훨씬 쉽다는 점은 필즈 자신도 인정하였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화제는 일단 꺼내기만 하면 말이 술술 나오게 된다.
앨 고어 부통령이 TV에 나올 때 너무 딱딱해서 목상 같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어쨋든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에게 편안한 이야기를 물어 본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즈(미국 볼티모어 프로 야구단)에 관하여 물어 본다든지, 또는 테네시 출신 상원 의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워싱턴으로 와서 세인트 알반즈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는 생기에 넘치고, 정열적이며, 활력있는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지금 그를 목상 같다고 비판하는 이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물어 보라. 역시 우리는 아주 다정하고 인간적인 앨 고어를 보게 될 것이다.
부통령과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러한 화제를 선택한다면 성공적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그에게 물어 보고 싶은 정치적 문제들이 아주 많고, 또 그 하나하나에 관하여 그는 길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문을 열게 하는 데 가장 좋은 화제는 그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가장 친근한 일들이다. 이 점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약 파티 석상에서라면, 그 자리 자체가 말문을 열 수 있는 좋은 실마리가 된다. 내가 예순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친구들이 파티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때 그들은 그것을 '래리 킹의 열 번째 생일의 제50회 기념식'이라 부르면서 1940년대에 브루클린에서 유행하던 음악을 주제곡으로 틀었다. 그날 밤 참석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는 대부분 다저스, 코니 아일랜드, 그리고 향수어린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때로는 당신이 참석한 장소 자체가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날 밤 파티는 백악관 건너편에 있는 유서 깊은 건물 디케이터 하우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파티가 누군가의 집 또는 사무실에서 열린다고 해 보자. 그런 경우에는 대개 가구 가운데 어떤 것, 또는 추억을 상징하고 있는 어떤 물건에 관하여 말을 꺼냄으로써 주인을 즐겁게 해 줄 수가 있다. '붉은 광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면? 러시아 여행에 관하여 물어 보라. 벽에 크레용으로 그린 자국이 있다면? 아들 딸 또는 손자 손녀 중 누가 그렸는지 물어 보라.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피하라.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좋은 대화에 장애가 된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두 마디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무더위가 아주 지겹죠?"
"다시 한 번 경기 침체가 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레드스킨즈 팀(미국 워싱턴 D.C.의 프로 미식축구팀)은 올 시즌에도 여전히 고전할 것 같죠?"
이것들은 모두 훌륭한 화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하면 대답 역시 단순한 "예", 아니면 "아니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화제가 끊기게 되고 마침내 대화 자체가 그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풍부한 내용을 담아서 질문한다면 돌아오는 대답에도 풍부한 내용이 담기게 된다. 그럼으로써 대화가 계속하여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물으면 대답이 얼마나 다양해 질 수 있는지에 주목해 보라.
"요새 날씨가 이렇게 찌는 걸 보면 지구 온난화인지 뭔지 하는 게 사실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해 증권 시세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 좀 보세요. 경제가 그다지 안정국면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러다가 경기 침체로 연결되는 건 아닐지.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 것 같습니까?"
"워싱턴으로 이사 온 뒤로는 줄곧 레드스킨즈 팀을 응원해 왔는데, 요새 그 팀은 세대 교체중인 것 같아요. 게다가 카우보이즈 팀(미국 남부 댈러스시의 프로 미식축구팀)은 언제나 강적이고요. 올해 래드스킨즈가 선전할 것 같습니까?"
보통 사람은 한두 마디만 가지고 대화의 실마리를 끌어내지 못한다. 당신이 상대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주제만을 본다면 두 번째로 예시한 질문들과 그 앞에 나온 질문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첫 번째의 방식으로 묻는다면 간단히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다. 반면에 두 번째 방식의 질문은 좀더 길게 대답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고 따라서 자동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대화의 규칙 제1조 : 경청하라.
말하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다. 이것이 대화의 규칙 제1조다. 나는 내가 오늘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로부터 내가 배울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점은 너무나 뻔한 진리이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남의 말을 경청하여 듣는 사람이 얼마나 드문지를 생각해 보라. 가족 또는 친구들에게 당신 비행기가 여덟시에 도착한다고 말했다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몇 시에 도착한다고?' 하고 물어 올 것이다. '좀 전에 무어라 하셨지요? 깜박 잊었네요.' 하는 말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는지 한 번 헤아려 보라.
당신이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면서 남이 당신의 말을 경청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시골이나 소도시 근처의 철도 건널목에는 '서시오--살피시오--들어 보시오'라는 표지판이 있다. 나는 언제나 이를 잊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말하는 바에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말하는 바에 상대방 역시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의 깊은 경청은 당신이 말할 차례가 왔을 때 응대를 잘할 수 있게 해 준다. 상대방이 한말에 대하여 적절히 응대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훌륭한 대화꾼의 표지인 것이다.
유명 여성 MC 바바라 월터즈의 대담 프로를 보면서 내가 자주 실망하는 이유는 바바라가 '그래서요?' 하는 투의 질문을 너무 자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금 귀국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같은 것이 그런 식이다. 내 의견으로는 그렇게 피상적인 질문 말고 좀더 나은 응대, 상대방이 한 말과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질문으로 응대한다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유명 MC 테드 카펠은 몇 년 전에 '타임'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서 나를 아주 기쁘게 했다.
"래리는 자기 쇼의 게스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합니다. 그는 게스트가 말할 때 주의를 기울입니다. 대담 프로의 사회자 가운데 그와 같은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나에게 붙은 별명은 비록 "떠버리"이지만, 나 스스로 생각할 때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방송에서 게스트와 대담할 때에는 미리 질문 사항을 쪽지에 적어 둔다. 그렇지만 대담 도중에 그들이 하는 말에 이끌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결과 대화가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1992년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때에 댄 퀘일 부통령이 내 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낙태 규제 법안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퀘일은 "내딸이 학교를 하루 결석하는 데에도 내 허락 또는 내 아내의 허락이 필요한데, 부모의 동의없이 낙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 정치적 문제를 퀘일이 인간적인 각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만일 딸이 낙태를 하겠다고 상의해 오면 어떻게 하겠는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 딸이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딸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퀘일의 말은 곧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 해 선거전에서 낙태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공화당은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시의 러닝 메이트로서 공화당을 대표하는 퀘일이 갑자기 자기 딸이 낙태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발언한 것이다.
낙태 문제에 대한 입장이야 어찌되었든지, 내 이야기의 초점은 이것이다. 퀘일에게서 국민들이 엄청난 반항을 일으킨 대답을 내가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미리 준비한 대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말하는 바를 경청하였고, 그러다 보니 뉴스거리가 된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해 2월 20일에는 로스 페로가 내 쇼에 나왔는데 그 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 그는 자신의 대통령 출마설을 몇 번이나 계속해서 부인하였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의 말에 무언가 빠진 구석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쇼가 거의 끝날 즈음에 나는 같은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 그러자 만일 50개 주 가운데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유권자들이 자신을 후보로 등록시켜 준다면 대통령에 출마하겠노라고 말한 것이다.
이 두 경우에 모두 대답을 끌어내게 된 것은 내 입 덕분이 아니라 내 귀 덕분이었다. 그들의 말에 내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인기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였던 짐 비숍은 생전에 마이애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같은 뉴욕 출신이기 때문에 내가 마이애미에서 활동할 때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를 짜증나게 하는 일 한 가지는 사람들이 자기한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 놓고는 자기 대답은 듣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심하게 그런 사람이 하나 있어서, 짐은 그 친구가 얼마나 남의 말을 안 듣는지 시험해 보았다.
어느 날 아침 그 사람이 전화를 했다. 으레 그렇듯이 그는 "어이 짐, 그 동안 어찌 지냈나?" 하면서 말을 시작했다. 짐은 슬쩍 "내가 폐암이래."하고 대답했다.
"아주 잘 되었구먼. 그런데 말이야,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짐 비숍은 자기 추측이 맞았다는 확증을 얻었다. 데일 카네기가 써서 지금까지 천오백만 부 정도 팔린 책, '친구를 사귀고 남에게 영향력을 가지려면'에는 이 점이 아주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남의 관심을 끌려면 남에게 관심을 가져라'
카네기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이 즐겨 대답할 만한 것을 물어라.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자기의 업적에 관하여 말하게끔 도와주어라. 그 사람들로서는 당신에 관한 관심보다 자기 자신에 관한 관심이 수백 배나 높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중국에 기근이 일어나 백만 명이 아사하는 것보다 자기 입 안의 치통이 그 개인에게는 훨씬 중요한 것이다. 아프리카에 지진이 마흔 번 일어나는 것보다 자기 목에 난 뾰루지가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이다. 다음번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점을 명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