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 용머리 [高下島 龍頭]
-충무공 이순신의 혼이 깃든 목포항의 관문이자 용의 모습인 섬
목포 하면 우선 유달산과 삼학도가 떠오른다. 유달산을 오르면서 보는 목포는 너무도 멋진 항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현재 목포시 충무동에 속해 있는 고하도(高下島)는 고하도(孤霞島), 고화도(高和島), 보화도(寶和島), 비하도(悲霞島)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목포 사람들은 고하도를 흔히 ‘용섬’이라 부른다. 목포해양대학교 부근이나 신안비치호텔에서 보면 섬의 옆면을 잘 볼 수 있다. 산의 형상이 솟거나 낮아지기를 반복하다가 용머리 부분이 굵게 변해 풍수지리설의 용뱀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육로를 통해 쉽게 건너갈 수 있으나 예전엔 바다로 둘러싸여 배를 통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 고하도는 목포 북항과 2012년 6월 29일 개통된 목포대교를 통하여 연결되고 있다. 새로운 목포의 명물로 등장한 목포대교는 두 마리 학이 마음껏 멋을 내면서 날갯짓을 하는 형상이다.
고하도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목포항에서 신진페리호를 타면 된다. 이 배는 목포 근해의 고하도, 허사도, 달리도, 율도, 외달도, 매월도를 순회한다. 또 하나는 자동차를 가지고 목포 하구언을 지나 진도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가다가 용당의 삼호중공업 아파트를 거쳐 연륙교를 통해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 또 하나는 2012년 개통된 목포대교를 통하여 쉽게 고하도에 들어갈 수 있다. 양쪽에 다리가 놓이기 전, 고하도 사람들은 ‘바다의 시내버스’라 하는 근해 순회관광선을 타고 뭍을 오갔지만 지금은 정기항로인 여객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섬에 살아본 사람들과 섬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섬이 육지와 연결되는 것이 왜 최고의 꿈이자 희망사항인지를 알 수 있다. 바다는 단절의 상징이다. 그런 단절을 잇는 것이 다리이다. 길을 통해 사연이 더 쉽게 들어오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람 냄새가 더 짙어지게 되어 생기가 돌게 된다. 물론 땅값도 오르고 생산되는 물산의 값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길은 외딴 변방으로부터 어머니의 자궁으로 이어진 탯줄같이 마침내 평안의 땅으로 자리잡는 상징이 된다. 그들은 평화와 안정의 상징을 육지로의 연결선인 다리로 본다. 먼먼 단절의 기억을 벗어나 마침내 육지라는 고향의 어머니 품으로 들어오는 상징이기에 그토록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목포의 명물로 등장한 목포대교는 2004년 공사를 착공하여 7년 8개월 만인 2012년에 지역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개통되었다.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 목포 북항에서 고하도를 연결하는 목포대교는 총 연장 4.129km, 왕복 4차로로 건설되었다. 목포대교는 서해안 고속도로와 목포 신외항을 연결하여 산업적으로 볼 때 서남해안권 물류와 관광객 이동을 원활하게 할 것이다. 이동 거리도 대폭 축소되어 분명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익이 있을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목포 나들목에서 고하도의 신항까지 50분 걸리던 것이 20분으로 단축되었고, 출퇴근 시간에 상습 교통체증을 일으킨 영산강 하구언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되어 진도 · 영암 · 해남 발전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고하도는 목포의 높은 산인 유달산 밑에 있어 고하도라 불렀다고 한다. 서남해에서 배를 타고 내륙의 영산포까지 연결하는 영산강의 관문 역할을 하는 데에 위치하고 있다. 목포항에서 서남방 약 2km 지점에 있는 고하도는 목포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섬이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고하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고군산군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고하도에 106일 동안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는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기는 밑거름이 됐다. 고하도 고하마을에는 고하도이충무공기념비(전남유형문화재 39호), 고하도이충무공유적(전남기념물 10호)이 있다. 한편 고하도는 우리나라 최초로 육지면을 재배한 곳으로, 일본이 세운 조선육지면발상지비가 있다.
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2023-11-20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