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의 기원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확정적인 학설이 없다.그 조상에 관해서도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키타라, 스페인의 비우엘라, 인도의 라바나스트론, 아라비아의 레바브, 15세기무렵의
같은 조상(아마도 리라 다 브라쪼)에서 비올族과 같은 바이올린族이 태어났다.
레렉과 류트의 상호 영향 등 각양 각색의 설이 있으나, 여하튼 1550년에 볼로나의 화가 줄리오 로마노가
그린 그림에 바이올린이 이미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바이올린의 탄생에 적극적인 구실을 하게된
것은 비올族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실제로 몇 세대에 걸친 경험과 모색이 있었고, 바이올린은 그
결정으로서 비올族에 이어 탄생되었다고 간주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바탕이 된 것은 15세기후반 즉, 비올族이 류트나 레벡과 같이 궁정 기악합주의 중심이 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신흥 상업 자본가의 손으로 베네치아에 극장이
세워지고, 오페라와 기악합주가 시민에게 공연 되었다는 것이었다.
넓은 극장에서 다수의 청중을 앞에 두고 연주되는 음악은 음량이 적은 비올族의 한정된 능력으로서는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악계의 혁명이라고도 일컬을 만한 바이올린族으로 지향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바이올린은 갈릴레이-V.Galilei(1520~1591)의 기록에 의하면 1568년에 나폴리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1562년에 베리오가 그린 가스파 뒤포프뤼카르-G.Duiffoprugcar(1514~1571)의 악기 공장 안의 그림에는
그의 작품인 듯한 5현의 바이올린이 비올族과 함께 그려져있다. 따라서 최초의 바이올린은 16세기의 30~40에
탄생되었다고 생각된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바이올린은 가스파로 디 펠트로티(출생한 지명을 따서 가스파로 다 사로, 1540?~1609)가
제작한 것이다.
이후 바이올린은 비올族과 1세기이상이나 정상을 다투면서 비올族에 영향을 주었고 여기서 부터 비올의
일종인 비올라가 생겨났다.
최저 음악기 비올로네가 1520년 무렵부터는 높은 음역에까지 발전하여 첼로를 낳았고 비올로네 자체는
바이올린과 음질이 균등해 지도록 개량되어 현재의 콘트라베이스가 되었다.
결국 1530년 무렵 부터 1705년 사이에 바이올린族이 완성된 셈이다.
바이올린族의 완성은
크레모나의 위대한 제작자 아마티一家(5인, Amati 1535~1684),
루제리-F.Rugeri(1645~1700),
로제리-P.Rogeri(1700부터 25년간 활동),
최대의 명가 구아르네리[우스](5인)
스트라디바리[우스](3인),
그제자인 베르곤찌-C.Bergonzi(1686~1747),
몽타냐나-D.Montagnana(1690~1750),
스토리오니-L.Storioni(1751~1801) 등의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밀라노의 그란치노(4인 Grancino 1640~1700),
과다니니-L.Guadagnini(1695~ 1760),
테스토레(3인, Testore 1688~1764),
베네치아의 센트 세라핀-S.Seraphin(1678~1730),
나폴리의 갈리아노一家(3인, Gagliano 1660~1770) 및
독일의 시타이너-J.Stainer(1621~1683) 등에 의하여 어떠한 변경도 허용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물리적 음법칙의 정수라고 일컬을 완성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바이올린은 악기 전체가 음향에 관계를 가져 관계가 없는 부속물이란 일체 존재할 수 없고 모양 또한
다른 악기에 비길 수 없는 균형미의 극치 이기에 부속품은 끊임없이 개량되어 진보한다 하여도 악기
자체에는 18세기전 부터 전혀 변화가 없었다.
18세기 이후의 제작자들의 理想은 악기를 진보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명기에 가깝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