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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고개 ~ 육십령(대간 반쪽 산행) ...
가을 비를 맞으며~
(음악 ; 대황하 - SOJIRO)
▶ <일시> 2002. 9. 15. 일요일. 비
▶ <인원> 38명 (가이드 3명 포함)
▶ <산행 코스 요약>
무령고개(09;26)-영취산(09;44)-북바위(11;26)-민령-송전탑(11;57)-깃대봉(12;20)-깃대봉약수터(12;40)-육십령(1;30) / ( )안은 도착시간- 자세한 시간은 산행기 내용 참고
<총 산행시간 ; 4시간 04분 = 산행 3시간 42분 + 휴식, 중식 0시간 18분> = 후미 기준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무령고개 - 0.5 km - 영취산 - 11 km (혹은 13 km) - 육십령 (이정표 거리 다소 차이 있음)
* 5만분의 1 도상 거리 측정
무령고개-0.5 k-영취산-4.5 k-977.1봉-3.8 k -깃대봉-2.5 k-육십령 ; 11.3 km
▶ <산행 개요>
산정과 대구산사가 주최하는 백두대간 산행 중 2구간(왕등재~국골) 산행 참가 이후 몇 번이나 기웃거려 보았지만 산행에 참여하지 못했었는데...
근데... 이게 웬 떡이냐 ? 싶을 정도로 다음 구간은 무령고개에서
육십령까지 하고 산행 후 간단한 대간팀들의 임원진 선출 및 회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 이선배님.. 저 이번 산행 따라 갈께예... 자리 없어도 서서라도
갈께예 "
무령고개에서 육십령 구간은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어했던 코스인데다 비교적 완만한 대간 능선길이고 갈대와 형제지간(^^)인 억새도 보고 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출발부터 비가 올 징조였는데....결국 무령고개에 도착하자마자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가랑비에 옷이 젓듯이 내리는 비 덕분에 조망은 즐길 수 없었고
비도 오고 조금은 쌀쌀한 날씨 탓에 휴식시간, 점심시간 없이 걷고 나니 4시간여만에 산행을 마쳤으니 ...(후미 기준)
이거 ... 산행을 한 건지... 싱겁게 끝난 대간 맛보기 서비스구간
이였다고나 할까 ?
▶ <산행지 소개>
* 영취산(靈鷲山) 1075.6m 전북 장수군 장수읍,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영취산은 백두대간 종주코스 지도에는 표시되지만 웬만한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으로 함양의 진산인
백운산에서 백두대간이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거치는 산이다.
영취산 정상에는 정상표지목이 있고 사위조망은 북으로 남덕유산이, 서쪽으로 장안산이, 남으로 백운산이 조망된다.
영취산은 신령령(靈), 독수리취(鷲)를 쓰고 있다. 영취산은 고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王舍城)의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석가가 이곳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설법했다고
한다.
영취산를 준말로 영산, 또는 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로서의 걸맞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장수군청의 관광안내에나 그 외 일부에서는 장안산을 일명 영취산이라 표시하고 있는데 장안산과 영취산은 동일산이 아니고 다른
산이다.
* 깃대봉 (1015m)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논개의 충절이 서리어 있는 산
경남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에 걸쳐있는 깃대봉은 백두대간의 육십령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솟은 봉우리다.
수려한 산세와 높이에 비해 등산로가 험하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산행이 가능하다.
억새가 뿜어내는 가을빛이 은은한 가운데 구절초의 향기가 산행
내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정상에 올라서면 북으로는 남덕유산과 동으로 기백산이 조망되고
남으로는 장안산과 백화산이 한눈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인다.
산행 기점인 서상면에는 논개의 무덤이 있어 찾는 이들이 충절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논개와 육십령에 관한 소개는 산행기 아래 있음)
▶ << 산행기 >>
* 06;10 산정사무실 출발
* 06;40 죽전우방
* 07;40-08;12 거창시외버스 터미널 식당에서 조식
* 88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진입
* 08;45 육십령 터널
* 08;53 장수 톨게이트
* 26번 국도로 논개 생가 이정표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육십령으로 이어지는 도로 진입
* 09;07 주논개 생가지
* 09;18 무령고개 주차장 도착
* 무령고개에서부터 영취산으로 가는 길...
제법 높게 올라간다.
무령고개 주차장에 다다르니 화장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출발 전부터 날씨가 꾸물꾸물 하더니만 이 곳에 와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기에 우선 비를 피해 화장실 앞에서 산행준비를 한다.
" 이선배님 ! 긴팔로 갈아 입읍시다.
" 그래 .. 긴팔 입는게 낫겠제 ! "
비옷 입으려니 더울 것 같고 긴팔 남방으로 대신한다. 배낭커버
씌우고 후미 확인 후 출발 ! (09;26)
주차장 옆 계단으로 올라서니 도로 건너편에 "장안산 주변 관광안내도"가 우리를 먼저 반겨준다.
조경시설이 마련된 휴식공간 뒤쪽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도로 좌측 산사면을 오르는데 우측 아래에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무령고개의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의 경계부분이 구분된다.(무령고개를 기준으로 북쪽은 포장, 남쪽은 비포장)
산사면으로 비스듬히 가는가 싶더니 정상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가랑비처럼 내리는 비지만 산행기록에 먼저 신경이 쓰인다. 오늘
애 먹겠는데...
언뜻 스쳐지나 가는 이정표가 보이는데...영취산 쪽으로 0.5
km, 무령고개 샘터 쪽으로 0.3 km로 기억된다. (09;35)
산행시작 10여분이 조금 지났을까 ? 아주머니 한 분이 벌써부터
용(^^)을 쓰기 시작한다.
" 아이고 ~~ 힘들어라~~ "
" 천천히 갑시다."
돌계단 비슷한 돌길을 잠시 올라서니...." 어 ! 벌써 ~~ "
* 대간 길의 영취산 ...벌써 정상에 올랐네 ^^
정상이다.(09;44-50)
산행 시작한지 20여분만에 정상에 올라오기는 난생 처음인 것 같다.
무령고개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겠지..
영취산 정상에는 이정표와 장수군에서 세운 안내판, 그리고 돌탑이 있다.
<영취산(백두대간) 1075.6 m ; →백운산 3.8 k / ←깃대봉 7.5 k / ↓무령고개 0.4 k ; 전북산사랑회>
<육십령 11 km 7시간 / 백운산 3.5 km 2시간>
"백두대간은 이 나라 골격의 틀 중에 가장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되어진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1.8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670.km이다. 이곳 영취산은(1.076m)은 좌측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백두대간에서 정맥(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하며 동쪽으로는 낙동강 서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3강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근데 ... 육십령까지 11 km에 7시간이라 .... ???
거리는 대충 맞는 것 같은데(본인이 직접 측정한 도상거리 ; 무령고개-0.5 k-영취산-4.5 k-977.1봉-3.8 k -깃대봉-2.5 k-육십령 ;
11.3 km) 소요시간은 잘 이해가 안 간다.
놀고 먹고 쉬고 가면 그 정도 걸리겠지. ㅋㅋㅋ.......계절별, 인원별, 배낭무게 등등.. 변수가 있겠지 뭐...
지대장님과 교신 후 뒤늦게 합류할 인원이 없는 것을 확인 후 영취산을 뒤로하고 뒤늦게 출발(09;50)
* 가랑비 속을 거닐면서 대간 길은 재미 솔솔한 오르내림 길로...
촉촉한 가을 빗방울을 맞으면서 후미 일행을 뒤쫓아 최종 후미와
만나면서 걸음은 덜 바빠진다.
제대로 된 후미 위치에 서면서부터 널널한 걸음은 시작된다.
흙 절개지를 지나 (09;58) 공터... 조릿대(산죽)군락 ...을 지나
올라가니 무명봉에 도착(10;03)
중간중간에 억새와 산죽이 섞인 지역을 통과한다.
우측으로 방향이 살짝 전환되면서 (10;13) 한 걸음씩 올라가니 전망대 봉우리에 도착한다.(10;18)
우측(동쪽)으로 함양군과 서상면 일대의 조망이 안 보인다.
보이는 건 산 아래 머물고 있는 하얀 안개구름 뿐...
능선 길을 따라가면서 전망대가 몇 군데 나타나지만 ..... 오늘
조망은 일찍이 포기할까 ?
멋진 전망대 바위봉우리에 올라선다. (10;35)
가랑비가 서서히 멈추면서 주변산세가 틈틈이 보이는데... 이 정도 조망이라도 계속 볼 수 있다면....
" 여기는 후미.. 바위전망대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
이선배님 " 아마 .. 첫 번째 전망대 봉우리인 듯 한데..........@#$%^&......"
무슨 교신 내용인지 모르겠다. 무전기가 맛이 갔나 ?
흙비탈 길을 지나 억새를 헤쳐나가니 넓은 안부지대가 나타난다.(10;39)
<물-50m / 육십령-2시간40분 /영취산-1시간30분>을 알리는 코팅한 종이 안내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안부를 지나 올라가면서 길은 봉우리를 피해 우측으로 우회하는
듯 하더니 (10;44) 산죽군락이 나타난다.
(조릿대(산죽) Sasa borealis (Hack.) Makino [벼과])
길 양옆에 우뚝 선 1m가 넘는 높이의 산죽이 마치 집 마당의 울타리 역할을 하듯 길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길은 8분여 동안 길게 계속된다. 아주 강하게 인상에 남는 길이다.
중간 가이드인 미정씨 뒤를 따라가고 있다. 중간과 후미가 같이
붙어가고 있다.
중간 그룹의 간격이 벌어진 것 같다. 비도 오고 하니까 그냥 무작정~ 진행한 모양이다.
가뿐하게 한 봉우리 넘고 안부를 지나 바위전망대 봉을 넘어
(11;01-03) 바로 내려가니 사거리 이정표가 금방 나타난다. <육십령 6.5 km / 영취산 6.5 km / 논개 생가 2.0 km / 경남 옥산리 3.5 km>
논개 생가가 2 km 라 ? 지도상 표시된 논개 생가 위치라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데 ...?????
" 논개는 영취산 북쪽 대곡리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시 진주성이 함락되자 기생으로 변장하여 왜장 게다니무라로쿠스케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논개 생가는 현 위치에서 2 Km 위 지점으로 2만 여평의 부지로 옮기기 위한 생가 터를
재정비 중에 있다. " 고 한다.
알쏭달쏭 생각하다가 돌이 여러 개 박힌 봉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11;09)
비만 안 오면 돌을 방석 삼아 좀 쉬었다가 구름과자(^^) 하나 먹으면서 갈 수 있겠는데...쩝쩝
비를 맞고 가니 숨은 안 가쁘지만 여유롭게 쉴 수도 없다.
영취산부터 북진한 대간 길은 지금까지 봉우리, 언덕 같은 오르내림길은 다소 반복되지만 크게 힘들게 용(^^)쓰면서 올라가는 길은
없는 것 같으며 지금까지는 영취산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00 여
미터 고도를 내려온 듯 하다.
남편과 함께 따라온 사모님은 출발부터 힘들어하시더니 지금도 힘들어하신다.
중간 그룹도 이제는 보이지도 않고 후미와 간격이 점점 벌어져 내외분과 나 .. 3명 뿐이다.
* 북바위를 지나 .... 억새 산상 평원....
뭔가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북바위 이정표를 만난다.
(11;26)
<북바위 ; 영취산 7.0 km / 논개생가 7.0 km / 육십령
6.0 km>
왼쪽 길 지척에 있는 바위가 북바위인데... 봤다고 생각하고 우측
내림길로 바로 내려간다.
날씨라도 좋으면 논개생가와 오동저수지 등 일대의 조망을 볼 수
있으련만 ....
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서 내려간다. 억새군락을 이룬 안부를 지난다.(11;35)
아직까지 억새는 파랗다. 누렇게 익은 억새를 볼 날도 곧 다가오겠지....
억새가 군락을 이룬 지대를 지난다. 아~~~ 억새여....
영남알프스 대평원의 억새군락은 아니지만 산상에 핀 억새평원이랄까 ?(좀 과장되기는 하지만..^^)
억새군락을 헤쳐나가는 것이 재밌기도 하지만 바지에, 등산화에
빗물이 다 떨어진다.
등산화와 바지는 이미 젖은 지 오래... 방수 대책은 이미 포기한
상태라 신경 쓰지 않고 헤쳐나간다.
억새 속에 감춰진 길을 발 감각에 맡기고 진행 ~ing...
* 민령에서 깃대봉
억새군락이 끝나자 길은 조용해진다.
휴~~ 아따.. 그 넘의 억새 헤쳐나가는 것도 재미가 솔솔 하구먼...
소나무 한그루와 자갈이 깔린 조그마한 터(...민령)를 의심하면서
통과한다.
사모님이 계속 힘들어 하시기에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 곧
이어 송전탑이 나온다.(11;57)
앗 ! 그러면 자갈이 깔린 조그마한 안부가 민령이란 말인가 ?
(백두대간 지도에는 민령의 위치가 안부지역이 아닌 능선마루에
표시되어 있어 ... )
민령은 우측(동쪽)으로 성주골을 따라 방지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잡목과 숲이 우거져 우측 초입길이 뚜렷하게 열려있지 않아 보인다.
후미는 3명... 말이 후미이지 실은 독립군이나 다름없다. 교신도
안 되고 상당한 간격을 두고 있으니...
아저씨는 사모님이 힘들어하시는 것이 나에게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부담스러운 듯..." 먼저 가세요 " 하신다. 자리를 피해 발걸음을 먼저 옮긴다.
부부사랑이 따로 있나 ? 함께 있으면 부부사랑이지..ㅋㅋㅋ....
송전탑을 지나 올라서는 길에서 길은 좌측으로 꺾이면서 억새능선이 이어진다.(12;01)
억새를 헤치면서 가는 길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를 괴롭히게 만드는 건... 산에 이끌려 또 다시 나를 산으로 오르게 하는 magic(?) 때문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 magic이라면 학창시절에 써 먹었다면....다른 인생이 ?......ㅋㅋㅋ....
뒤를 돌아보니 내외분이 보이지 않는다....휘리릭~~~~~~~호루라기를 불러본다.
안개같은 비 사이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여기 있어요~ "
억새군락을 통과하고는 나무숲길로 들어서면서 가끔씩 뒤를 돌아
내외분을 확인하고는 다시 진행해간다.
손은 이미 얼어(?) 메모하는 글씨가 지렁이 담 넘어가듯 큼직하게
꿈틀거리면서 쓰여진다.
물 몇 모금 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 배도 고픈데....
잠시라도 쉬었다가는 땀이 식어 금방 한기를 느낄 것 같아 계속
진행.... 애고~ 배 고파...
* 깃대봉에서 약수터를 지나 육십령까지.... 지루하게 느껴지는 하산 길
서서히 올라서다가 삼각점과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12;20-30)
" 어~ 깃대봉이네.."
<깃대봉 백두대간(1014.8m) ; 육십령 2.5 km / 977봉
3.5 km>
생각보다 깃대봉이 일찍 나타나네....근데 사람이 아무도 없네 ?
그러면 선두는 그렇다 치고 중간그룹도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고
가버렸는갑다 .ㅠㅠㅠㅠ...
우짜겠노.... 기다릴 여건도 안 되는데...나로도 안 기다리겠다.^^... 길도 빤하게 보이는데...
내외분이 올라오신다.
잠시라도 쉬었다 가자고 권해보지만 이제 2.5 km 남았다며 1시간이면 다 내려갈 수 있으니 그냥 가자고 하신다.
정상에서 좌측 길로 내려간다. (12;30 출)
억새밭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 후 다시 올라서는 길로 들어선다.(12;33)
잠시 올라선 후 길은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쭉 내려가니 ....깃대봉 약수터 (12;40)
"여기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하라 푸르는
이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림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하니 산인을 인식합니다"
약수물 한 모금 마실 겨를도 없이 좌측 길로 바쁘게 걸음팔이 한다
나지막한 언덕길이 나오기에 이거 하나 넘으면 바로 떨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또 언덕 길이 나온다.
이제 조금만 가면 다 왔다고 생각해봤지만 뚝 떨어지는 하산 길은
안 나오고 ....
손을 호호~~ 불면서 손을 녹이며 따뜻한 국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지막한 오르내림 길이 잠깐 잠깐 나타나지만 마음이 급한 탓인지 지루하게 느껴진다.
오솔길 같은 길을 따라 완만한 구릉지를 4-5곳을 지나니 우측으로
민가들이 보인다.
이제 다 왔구나....
갈림길이 나온다. (1;26) 우측에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내리막 길로 가지 않고 직진한다.
곧이어 이정표 <육십령 0.1km / 영취산 11 km / 북바위
6 km / 남덕유산 8 km>가 나오고 묘지군이 나오면서 좌측으로
꺾으면 육십령휴게소 주차장(1;30)
쉼없이 달린(?) 반쪽 대간사냥이 비 덕에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산행 후 대간팀의 회의 겸 회식이 있어 한 자리 마련한 곳에서 임원선출 및 서로간의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부디 끝까지 사고 없이 안전한 산행이 되길 바라면서...
◎ 대간서 나고 대간에 묻힌 논개
‘충절의 여신’ 주논개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논개가 13세가 되던 해 부친 주달문이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숙부 주달무는 당시 장수 토호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았다.
그러나 논개 모녀가 완강히 반대하자 주달무는 논개 모녀를 상대로 장수 현감에게 소장(訴狀)을 올렸으나 오갈 곳 없게 된 모녀는
현감 부인의 병수발을 하면서 머물렀다.
이후 현감 부인은 세상을 뜨고, 결국 이게 인연이 되어 최경회와
논개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몇 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된
최경회는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 당하자 최경회는
남강 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에 논개는 승전 축하잔치를 연 왜군들 틈으로 기생으로 변장하고 들어가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10여일간 내린 장마비가 넘실대는 진주 남강에 몸을 던졌다.
현재 최경회와 논개의 묘는 백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 마을 뒷산에 있는데, 이들 부부의 묘가 여기에 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진주성이 함락 당하자 장수 지역 의병들은 남강 하류를 수색해 창원 지수목에서 최경회, 그리고 왜장을 껴안은 채로 죽은 논개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들은 부부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주씨 문중과 장사지낼 것을
상의했지만, 왜적의 보복이 두려운 주씨 문중은 이를 거절했다.
또 기생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말도 있다.
결국 이들은 백두대간 동쪽의 삼남대로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아 장사지내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의병의 후손들에 의해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이 묘는 20여년
전인 1975년 세상에 알려졌다.
순절한 후 382년만의 일이다. 현재 최경회, 논개의 묘는 함양군에
의해 성역화 작업이 한창이다.
◎ 화적떼 피해 넘던 육십령
영남 선비들의 본 고장 함양과 전라도의 오지인 장수를 이어주는
고개는 백두대간의 덕유산 남쪽에 있는 육십령(六十嶺)이다. 육십령은 그 굽이만큼이나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다.
이 고개 이름을 육십령이라 하는데는 여러 얘기가 전하는데,
첫번째는 안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육십 리이고, 장수 감영에서도 육십 리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두번째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세번째는 산적의 화를 피해 육십 명이 모였다는
얘기. 옛날에 육십령 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했는데,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 명의 장정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근처에는 당시 장정들이 모인 주막이 있던 곳이라는 장군동(壯群洞)이 있고, 산적들을 피해서 살다가 이룬 마을인 피적래(避賊來)란 마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런 곳이었기에 육십령에는 그 산굽이만큼이나 수많은 전설이 전한다.
그중 산적에 얽힌 슬픈 이야기 한 토막.
옛날, 한 경상도 총각이 전라도에 사는 규수에게 장가를 들었다.
장가를 와서 처가에 머물기를 어느덧 일 년. 꿈 같은 세월이 흘러가자 신랑은 본가 형편도 궁금하기도 하고 이제는 신부를 데리고
갈 때가 되었기에 우선 혼자 본가에 다녀오기로 했다.
하지만 신랑은 육십령을 넘다가 산적들에게 붙잡혀 물건을 다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한편, 전라도 신부는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남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올
줄 몰랐다.
실성한 사람처럼 매일 동구밖에 나가 기다리던 신부는 마침내 쓰러져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끝>
http://cafe.daum.net/galdae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