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산성(儒城山城, 월평동산성[月坪洞山城])
* 유 적 명 : 유성산성(儒城山城, 월평동산성[月坪洞山城])
* 위 치 :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月坪洞) 산 12-2 외 성재
* 시 대 : 백제시대
* 소유자
* 작 성 일 : 20030920
* 지정종별번호 : 대전광역시기념물 제7호
ㄱ) 지형 및 주변환경)
대전에서 유성으로 통하는 만년교(萬年橋) 남쪽 표고 137.8m의 산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성내의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형태를 하고 있다. 산성의 서쪽은 갑천(甲川)의 지류인 성천(省川)에 임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바로 대전-공주간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ㄴ) 체성(體城)
이 산성의 둘레는 710m로서 성벽은 거의 붕괴되어 그 원형을 잃고 있으나 그 윤곽선은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이 산성은 최고처인 소봉(小峰)을 남서벽의 일부로 삼고, 이를 기점으로 하여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의 축조상태를 보면 자연석괴(自然石塊)를 외면을 맞추어 축조하였으며 서벽의 일부에 강기(降起)된 석루(石壘)가 있어 내벽고가 1m, 외벽고는 4.3m이며, 성체의 상부폭은 2.2m였다.
ㄷ) 성내시설(城內施設)
문지(門址)는 동·서·북문지가 확인되는데 지금도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다. 동문지는 문폭이 5m로서 갈마동으로 나서게 되고, 서문지는 문폭이 3.6m로서 나서면 바로 갑천에 임하게 된다.
한편 북문지는 문폭이 3m로 이 성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성벽이 약간 어긋나 있어 통행하려면 S자형으로 굽어 들어가야 한다. 또한 이 북문지에는 매우 평탄한 곳이 있으며 그 중앙에 천정(泉井)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이 부근은 매우 습한 것으로 보아 성내의 빗물을 처리할 집수시설(集水施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북문지 부근에는 수구지(水口址)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성내에는 너비 7m∼12m의 내호(內壕)로 보이는 통로가 전체에 돌려져 있고, 동서벽의 내부에는 평지가 많아 당시 건물지로 추측되는데 이곳에서 백제시대의 기대편(器臺片)을 비롯하여 경질토기편(硬質土器片)을 수습할 수 있어 이 성의 존몰년대에 많은 시사를 주고있다.
이 산성의 동남모서리에는 인공으로 구축한 고대(高臺)가 시설되었는데, 이 곳이 산성내의 최고처가 된다. 이 고대의 상부는 동서 폭이 5.2m, 남북 폭이 10.6m인 타원형으로서 이 곳에서는 시계가 좋아 대전-공주간의 도로와 성천이 내려다 보이고 있다.
(고찰)
이 유성산성과 관련된 사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儒城縣 本百濟奴斯只縣 景德王改名 今因之(《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6 잡지[雜誌] 지리[地理]3 웅주[熊州條])
(2) 儒城縣 在川東五十四里 本百濟奴斯只縣(斯一作叱) 新羅景德王改今名爲比豊郡領縣 高麗時來屬 本朝因之《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지17 공주목[公州牧] 속현조[屬縣條])
(3) 儒城 東五十四里 本百濟奴斯只(奴一作內) 新羅景德王十六年 改儒城爲比豊郡領縣 本縣古址廢縣東四里 廣道院傍(《대동지지(大東地志)》권5 충청도[忠淸道] 공주고읍조[公州古邑條]).
(4) 古懦城 在儒城縣東四里 廣道院傍 客舍鄕校倉庫其址 尙存(《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공주목(公州牧) 유성현(儒城縣) 고적조(古跡條).
(5) 儒城山城 在儒城縣東五里 石築 周六百八十尺 內有一井 今廢(上同)(6) 儒城古城 古縣東五里 周六百八 十尺 井一(《대동지지(大東地志)》공주[公州] 성지조[城池條])
이에 따르면 유성현은 백제시대에는 노사지현(奴斯只縣)으로 불리었으며 폐현(廢縣) 내지는 고유성(古儒城)이 유성현으로부터 동으로 4리의 거리에 있었으며 이로부터 다시 동으로 5리의 거리에 유성산성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현재의 위치와 같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부흥군(百濟復興軍)이 내사지성(內斯只城)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으니, 《삼국사기》신라본기 문무왕(文武王) 2년(662)조에 보면 "8월에 백제의 잔당이 내사지성에 은둔하니 흠순(欽純) 등 19명의 장군을 보내어 토벌케 하였다" 하고 있어 신라가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여 내사지성을 공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이 성에 주둔하고 있었던 백제부흥군의 세력도 적지 않았을 것임을 엿볼 수 있겠다. 이 내사지현이 현성(縣城)인지 아니면 관내에 어떤 산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사지현의 현 지명인 유성관내에서 찾을 수 있는 구성동산성(九城洞山城)과 유성산성을 비교해 볼 때 유성산성을 상기의 내사지성으로 비정하는 것이 妥當하다 하겠다.
한편 대전시에서 이 산성의 동남쪽 외곽 능선지역에 정수장건설을 계획함에 따라 1990년 9월에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한 바 있으며, 이곳에서 백제시대 집자리 및 원형구덩이등 성격을 알 수 없는 인위적인 구덩이 수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이 유적에서는 단경광구호, 삼족토기편 둥 주로 백제시대 토기 및 기와가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어 이 산성에 대한 시대 및 성격파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大田直轄市, 《大田의 城廓》,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