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장 12절 – 14절
우리는 신앙안에서 자라나야 하고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라나는데 있어 고난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고난이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기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시키시는 일보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뜻을 성취시키는 일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신앙이 어린 자들입니다. 바로 이유식밖에 못먹는 그런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자기일만 추구함으로 고난을 당하고 고난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중심적인 자세로의 전환입니다. 이런 자들은 신앙안에서 자라납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절로 하나님아버지께 순종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참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와 하나님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자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아버지와 하나님아버지의 뜻의 성취를 위해서 동역자로 서는 그런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삶의 과정에서 헤아릴수 없는 많은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그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여 그 고난이 어서 해결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헌금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라남의 기회요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게하시려고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인데 우리는 도리어 그 고난을 어서 해결해 달라고 때를 쓰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심히도 어린아이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때론 교사로서 아이들을 신앙으로 지도합니다. 그런 우리가 신앙이 어린아이처럼 신앙의 초보를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즉 소경된 인도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는 분별해야 합니다. 그 고난이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인지, 우리의 어린아이적인 자세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한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몸의 병으로 인한 고난을 당했을 때 그 까닭을 알기 위해 세 번이나 하나님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고난을 해결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도리어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강하심을 붙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