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주일학교 / 목포 용당장로교회
주일학교 성장으로 피라미드형 교회 세운다
바닷바람이 상쾌한 전라남도의 끝자락 목포. 거칠다는 남도 사람들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가장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목포 용당장로교회에는 남도 사랑만큼 교회를 사랑하는 구수한 성도들이 모여 있다. 용당장로교회 담임 심해석 목사는 이 성도들을 “고구마 같다”고 표현한다.
도시에 있으면서도 시골냄새 물씬 풍기는 용당 성도들은 부지런함을 무기로, 성실함을 신념으로 교회 안과 밖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다지 크지 않은 용당장로교회가 장년 성도수 650명에 주일학교만 300여명에 이르는 생명력 있는 교회로 성장하기까지는 심해석 목사의 목회철학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빈의 삶 살았던 이두영 목사
1925년 가정교회로 시작된 용당교회는 장로교 분열의 역사를 거치면서 1956년 기장 목포용당교회로 새 역사를 시작했다. 1957년 담임으로 온 이두영 목사는 37년간 교회와 지역사회를 섬기며 존경받았던 인물로 청빈의 삶을 실천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는 목회자로 기억된다.
이두영 목사는 그의 회고록 ‘거룩한 곳에 박힌 못이 되어’에서 “나는 민초입니다. 한 잎 언덕배기에 나왔다가 사라지면 그뿐, 교회나 세상에 내놓을 것이 없이 하나도 없는 풀잎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두영 목사는 70년대 유신독재에 저항하고 용당교회를 근거지로 민주화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다. 민주화 인사들을 대거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포경찰서는 지역의 주민들의 동요를 의식해 신망이 두터운 이두영 목사만 제외한 일이 있었으며 “나만 남는 것이 죄스럽다”며 직접 담당 형사에게 항의한 것은 용당교회에서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94년 은퇴 후 명예목사로 추대된 이두영 목사에 이어 용당장로교회를 맡은 심해석 목사는 전임 목회자의 사역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선교방식을 적용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믿음 안에서 훈련되고 무장된 성도를 양육한다는 신념으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않는 제직은 임명에서 제외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없다며 철저한 영성 훈련을 강조했다. 그 결과 평신도 사역자를 양성하며 교회 안팎의 일을 모두 감당하는 전천후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다
지방 소도시에서 동역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용당장로교회 역시 열악한 지리적, 환경적인 요건으로 교단 신학교에서 배출하는 목사 후보생을 구하기 힘들었다. 이때 심해석 목사는 교회에서 사역에 은사가 있는 평신도들을 교단 교육원으로 보내 교육시켜 전도사와 목사 등 사역자를 충당했다. 현재 전도사 5명에 목사 2명을 양성했고 개척교회와 타 지역에서 각각 1명씩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강력한 기도훈련을 강조하는 심해석 목사는 기도일꾼과 전도일꾼을 양성해 전도에 주력한다. 기도 일꾼은 매주 수요예배 후 30분 이상 기도하고 심야기도에 참여하여 주어진 기도제목을 가지고 합심 기도를 한다. 전도일꾼은 매주 화요일 오전에 모여 거리 전도에 나서며 날씨가 흐려지면 교회 안에서 전도교육과 기도훈련을 받는다.
심 목사가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기도를 통해 성장해왔고 전도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령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매년 100명의 새 신자가 등록하는 용당장로교회는 새 성전 건축으로 50%였던 새 신자 정착 비율을 70%까지 끌어 올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용당장로교회 새 가족 반에 들어오면 담임목사가 첫 번째 편지를 띠우고 이후 12주 동안 담당 교역자가 믿음의 편지를 보낸다. 새 가족이 성경공부를 원하는 경우에는 제자훈련을 실시해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유도한다.
심해석 목사는 “교회에 오는 사람은 사랑받고 위로를 얻기 위해 온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새 신자를 관리하며 성도들에게도 사생활에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말고 책망하거나 정죄하는 일을 절대 금하라고 가르칩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생각하고 행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부터 이런 훈련을 시키다 보니 교회 밖에서도 섬김을 실천하고 이웃을 돌보는 교인들이 많아졌습니다.”
주일학교의 놀라운 성장과 비전
용당장로교회는 건강한 교회성장을 위해 주일학교의 성장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어린이의 수가 장년의 수를 뛰어 넘는 피라미드형 조직을 갖췄기 때문으로 심 목사는 분석하고 있다. 어린이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보는 심 목사가 용당장로교회에 부임해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이 주일학교를 연령별로 나누고 각각의 담임을 세우는 것이었다.
처음 유치부가 한 명으로 어린이부에 통합교육을 받았지만 과감히 교실과 담임을 세워 유치부를 독립시켰다. 또 반장제도를 만들어 어린이들로 하여금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주일을 성수할 수 있도록 양육했다.
유치부에서 유년부로 올라갈 경우 교사가 월반하는 학생들을 따라 1년간 유년부에서 활동하는 등 교사 순환제를 도입해 진급에 따른 이탈을 막고 있으며 교사들의 적극적인 심방과 가정방문도 어린이 정착에 큰 몫을 감당하고 있다.
현재 용당장로교회는 중고등부 130명, 어린이부 150명, 유치부 50명 등 300명이 넘는 주일학교 학생을 확보하며 부흥의 길을 걷고 있다. 주일학교 부흥은 자연스레 장년 성도의 증가로 이어져 교회 성장에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처럼 교육을 강조하는 심 목사는 매월 첫째 주 아이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며 매월 마지막 주에는 고3을 직접 찾아가 안수기도를 해주는 등 따뜻한 사랑과 기도를 나누어 주고 있다.
지난 2007년 새 성전을 건축한 용당장로교회는 연건평 1200평에 5층 예배당을 완공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수십억 공사가 무리라고 했지만 오히려 성전건축으로 교회는 안정되고 성도들은 성숙해지는 시너지효과를 거뒀다. 특이한 것은 건축 중에도 교회학교 교육비와 이웃을 위한 대외선교 구제비 예산은 더 늘려 나갔다는 것. 선교와 구제에 인색하면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없다는 신앙고백이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017호/이현주 기자) (생략) 78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