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글로벌 파우워?” 한자는 “오리엔탈 파우워?”
아래는 문정구(文正九) 박사와 심의섭(沈義燮) 박사간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2025.12.23)
심: 문정구 교수님! 반갑습니다. 오늘날 영어는 글로벌 파우워로 군림하는데, 동양에서는 한자가 그런 역할을 한다면 오리엔탈 파우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중국의 파우워를 한자가 대변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맥락의 초입에서 다소 궁금한 점은 한자 발음이 한국어와 광동어(廣東語: Cantonese)가 매우 비슷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 반갑습니다! 저 역시 이에 대한 상식이 별로인데 만족스러운 내용이 될 수 있을지 염려되는군요. 나의 견해를 하나의 참고로 취사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항간에서 간혹 회자하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심 교수님이 거론한 셈이에요. 광동어(廣東語)와 민남어(閩南語: Minnan language)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광동어는 중국 남부의 광둥성과 광시성 동부, 그리고 홍콩, 마카오에 걸쳐 전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방 언어이며, 민남어는 중국 남부의 복건성(福建省) 남부 지역(廈門, 泉州, 漳州 등),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 화교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지방 언어입니다. 광동어에서 한자 표기 읽기가 한국어 발음과 광동어 발음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근데 누구한테 들었나요? 책에서 보셨나요?
심: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문: 가령 한자로 표기한 단어의 발음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유사하다는 사례를 근거로 언어나 인종의 친연관계를 조명하려는 발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한자 표기를 제외한 여타 상이한 문자로 표기했을 때에는 하나의 논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중·일 3국은 한자문화권(Chinese character cultural sphere)에 속할 뿐만 아니라 고운 정 미운 정 등이 유사 이래 쌓여왔고, 이러한 추세는 지금도 진행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단어의 발음이 일치하거나 비슷하다는 점에 대해서 혼란스럽거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지요. 하지만 한자의 상형문자(象形文字), 갑골문(甲骨文) 등의 생성과정과 전파경로, 그리고 지역에 따라 동일한 한자의 발음이 일치하거나 상이하게 전해지게 되었기 때문에 교류가 빈번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한자문화권 사람들이 혼란과 착각에 직면하게 되는 점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더구나 한자로 표기한 단어의 의미와 발음이 일치하거나 유사한 점에서 직감적으로 야기되는 흔한 오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현재 한·중·일 3국이 사용하는 한자표기 단어의 약 70% 이상이 동일한 실정이거든요. 중요한 사실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자표기의 대부분 단어가 중국에서 시작한 게 아니고, 일본이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용어를 일본이 대부분 두 글자 또는 네 글자로 한자표기를 시작하여 새로운 단어를 사용한 점이 일반적인 사실로 알려졌지요.
그리고 중국도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과 중일전쟁 등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서양 문물 유입과 더불어 새로운 한자 표기의 새로운 단어 사용이 유입 통로인 홍콩을 중심으로 광동어 발음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셈이지요. 영국, 미국, 법국(法國, 프랑스), 덕국(德國, 도이칠란트), 화란(和蘭, 홀랜드) 등의 국명 표기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용어가 광동어 발음으로 급속히 출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가령 북경을 베이징(Beijing)이라 부르지 않고 광동어 발음에 근거해서 팩킹(Peking)으로, 향항(香港)을 홍콩(Hongkong)으로, 북경대학을 북경대학(Beijing University)이 아닌 팩킹대학(Peking University)으로 표기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북경대학은 고유명사란 이유로 영문표기 교명은 “Peking University”를 고수하고 있지요.
또한, 때마침 동아시아 국제환경 격변기에 한국과 중국의 일부 젊은이들이 선진 개혁 사상과 문물을 체득하려고 일본 유학을 선호하는 추세였었지요. 더구나 일본의 대륙 진출 야욕과 맞물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 3성 등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한자표기 단어들이 급속히 확산한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비록 한자는 중국 문자이지만, 지금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한자표기의 단어 대부분은 의미 표현과 의사 전달이 정확하고 편리해서 한자문화권에 급속히 보급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따라서 한·중·일 3국이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지만, 발음이 일치하거나 상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중국도 지역별로 이러한 현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지요. 그리고 같은 한자 발음이 지역에 따라 단음(短音), 혹은 장음(長音)으 발음하기 때문에 오해나 착각의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지요. 한국은 모든 한자를 단음으로 발음을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단음과 장음으로 발음하고 있지요. 가령 민(民)은 한·중·일 3국이 “민”으로 단음이고, 한국어, 광동어, 민남어(대만과 동남아) 등은 단음으로 발음하지요. 중국의 혹자는 이 단음이 당나라 통치시대의 원형 발음이라고 주장한 바도 있었지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동북 3성, 북경, 상해, 티베트, 민남어와 광동어 발음이 완전히 상이합니다. 한자 하나하나 발음이 단음으로 끝나는 지역이 있는 반면에 길게 늘이는 장음 지역이 있지요. 예를 들면 미(美)자는 “미”로 끝나는 게 아니고 “메이”로 끝납니다. 그래서 미국을 “미꼭” 혹은 “메이궈”라고 발음하지요. 그러나 양자강 지역인 상해나 광동성에서는 단음으로 “미”라고 발음합니다. 대만도 단음, 한문 하나에 그냥 발음이 딱 끊어지는 단음이에요.
한자 표기의 발음이 우리와 같다는 논거는 아마도 당나라 때 발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당나라 때 한자 발음이 한국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중국 표준어는 중화민국을 “중화민궈”라고 발음합니다. 표준어는 국(國)자를 “궈”라고 발음하지만, 상해 지역에서는 중(中)자를 “쭁”, 국(國)자를 “꼭”으로 발음하여 “쫑화민꼭”이라고 발음합니다. 광동어와 민남어도 유사하게 발음을 하니까 같게 들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국 전역에서 보면 총무(總務)라는 발음은 거의 유사한 상태입니다. 광동성이나 상해 지역에서는 표준어와 똑같이 무(務)자를 “우”로 발음하지요. 또한, 우리나라 시골에서 옛날에 화장실을 칙간이라 부르는데, 중국에서도 단음 사용 지역에서는 화장실을 측간(廁間)이라 표기하고 발음도 “측간 또는 칙간”이라고 부르지요.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측간이나 칙간 발음이 같다고 강조하면서 오해나 착각을 유발할 수도 있는 일이지요.
이처럼 한자 표기의 발음과 의미가 일치하거나 유사하므로 혹자는 한국말이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냐고 터무니없는 의문을 간혹 제기하는 사례도 있지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지요. 한국 유학생이 60여 년 전 대만대학에서 중국고전 첫 학기 수업 중에 교수로부터 읽기 지명을 받고, 중국어 능력이 짧은 상태라 순간 긴장한 나머지 안 읽을 수는 없는 상태에서 기지를 발휘해 아는 글자는 중국 발음으로 읽고, 모르는 발음은 한국식 발음으로 줄줄 읽어 망신을 무난히 모면하게 되었지요. 그랬더니 교수가 참 잘 읽었다며 참 똑똑한 한국 유학생이라고 칭찬을 했었데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연로한 교수가 상해 지역 출신이어서 본인 발음하고 똑같아서 칭찬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지요. 바로 오해나 착각은 흔히 당사자의 무지나 이해 부족에서 유발된다고나 할까요.
심: 우리가 나이 80을 훌쩍 넘겼는데도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모르거나 알아도 잘 못 알고 있는데, 너무 많아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욱더 많아 닦아오는 것만 같습니다.
문: 그렇지요! 공감입니다. 파면 팔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이 나타나요, 정말. 그리고 잘못 알았고, 자기가 아는 게 옳다고 하면서 살면 어쩔 수 없는 거지요. 시대발전은 가속도가 붙은 가운데 생활환경은 개선되고 있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AI 시대가 활짝 열리니까 이러한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지식인들은 상대적으로 한없이 왜소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심: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첫댓글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