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주, 연세소망교회 예배
묵상 7. 시편16편
묵상기도
신앙고백
찬송 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기도인도 김성오 집사
성경말씀 욥기 38장 1~38절
찬양 김정자 목사
설교 모나리자의 미소
찬송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기도
광고 어려운분 연세소망교회서 사세요. 3월 2층 증축
찬송 4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축도
지난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이날 대상 후보 인터뷰를 위해 객석으로 내려온 신동엽은
이경규 강호동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유재석 앞에서 멈춰섰습니다.
신동엽은 언제나 해도 곤란한 "대상을 탈 것 같냐"는 질문에
유재석은 신동엽의 질문을 못 들은 척,
"그거보다 일단~"하고 운을 뗀 뒤
신동엽에게 "사장님 오랜만이에요"라고 느닷없이 말하며
"이런 곳에서 뵙니다"하고 능청을 떨었습니다.
이에 말 뜻을 아는 신동엽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당황했습니다.
유재석은 연달아 "죄송해요. 당황하게 해서…"라며
"사장님은 누가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되묻고는 한술 더 떴습니다.
바로
유재석은 신동엽이 대표로 있던 기획사의 소속 연예인이었습니다.
개그 내공으로 따지면 신동엽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순발력의 천재였지만,
유재석의 동문서답에 당황 했습니다.
요즘 정부의 전세대책을 두고
‘동문서답’한다고 합니다.
묻는 말에 엉뚱한 말을 할 때
동문서답 東問西答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동문서답입니다.
욥은 왜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못 된 사람들이 번성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에 침묵하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간곡히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모두 욥처럼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욥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욥만큼 당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만나기를 꺼려할지도 모릅니다.
욥이 친구들과 많은 논쟁을 벌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직접 서기를 원했습니다.
본문은 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긴장되고
흥분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의인의 고통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두 4장 126절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말씀 중에 한마디도 욥의 고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욥과 논쟁도 하지 않습니다.
욥의 질문에 동문서답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절,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절,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지금 우리가 읽은 장면은 욥기서의 절정입니다.
신과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주 긴장 되고 초조합니다.
엊그제 오규석 집사님도 기술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폴리텍 대학 면접 시험장에 갔습니다.
꿈을 심어 주면 변화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오규석(42세) 집사님은
일찍이 결손 가정에서 가출하여 노숙을 하면서 술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면접을 보는 것입니다.
잔득 긴장한 탓에 새벽 기도회가 끝나자 사라졌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는데 들어 왔습니다.
술기운이 역력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른 체 했습니다.
마치 제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추억 만들기라도 하듯
오 집사님을 제 차에 태워 면접 시험장에 갔습니다.
혹여 길을 잃을 까봐 돈도 좀 가지고 있으라고,
그리고 끝나면 전화하라고 당부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면접관 앞에 서는데도 긴장이 되어 술을 마시고
숨고르기를 하는데
하나님 앞에 선 욥은 어떻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나타 나셨습니다.
Good morning!
How are you?
따듯한 인사말도 없었습니다.
왜?
무지한 말로, 어리석은 말로 이치를 어둡게 만들었냐고 묻습니다.
이제 대장부처럼 허리를 동이고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4절)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8절)
창세기 1장 9,10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창조의 셋째 날입니다.
이오같이 하나님은
바다의 물이 육지를 침범하지 못하게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집체만한 성난 파도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바다의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고 비밀입니다.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느냐?(12절)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느냐?(18절)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19절)
네가 눈 고간에 들어 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22절)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23절)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33절)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35절)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36절)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 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서로 붙게 하겠느냐(38)
하나님께서 이루신 천지 창조, 우주질서, 창조의 비밀
우주의 구조에 대하여
네가 아느냐?
네가 보았느냐?
네가 했느냐?
욥에게 물었습니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욥은
나는 미천 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 하겠고
대답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욥40:5)
욥은 친구들과 긴 논쟁을 벌이면서
너희들이 나를 정죄하지만 깨긋한 나를 판단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며
하나님과 직접 변론하기를 소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선 욥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욥의 모습은 불쌍하고 애처롭습니다.
지금 그 초라한 모습을 생각 해 봅시다.
불쌍해서 눈물이 나지 않습니까?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기도를 조금만 열심히 한다고 하면
얼마나 잘난 체 합니까?
조그만 은사라도 받으면 얼마나 으시댑니까?
그리고
성도들에게 충고 합니다.
기도 하라고.
회개하라고.
하나님 앞에선 욥은
자신이 얼마나 잘난 체 했던가?
하나님 앞에 선 욥은
얼마나 교만 했던가?
하나님 앞에 선 욥은
얼마나 부질없이 지껄이고 까불었던가?
깨달을 뿐입니다.
갑자기 이런 노래가 생각납니다.
애모 - 김수희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속에 흔들리는데
얼만 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입니다.
애모 - 김수희가수가 부릅니다.
이러한 것을 샤이 증후군shy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내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아직도
이유 없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유 없는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누구 때문에 내 꼴이 이 모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인 이해득실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창조 비밀에 대하여
욥에게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욥은 우주 질서와 하나님의 섭리에
나는 미천 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 하겠고
대답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욥40:5)
욥이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모습과
주님을 만난 지금의 상황은 180도 변화 된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욥은 고난에 대하여 시원한 답을
한마디도 얻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욥의 모습은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변해 버렸습니다.
나는 미천 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 하겠고
대답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욥40:5)
하나님의 임재에 대하여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라고
인생의 정답을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 석가모니라고 인생이 이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인생은 깨달음입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왜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못 된 사람들이 번성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에 침묵하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도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새벽 기도회를 드리면서
우리 모두 오른 손을 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오른 뺨을 쳐 보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오른 손으로 자신의 오른뺨을 쳤습니다.
그리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왼손을 들어보자고 제안 했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왼 손으로 왼 뺨을 후려 쳤습니다.
이렇게 살자고 했습니다.
어쩜
목회라는 것이
내 것 주고 뺨 얻어맞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욥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마저도 버려야겠습니다.
교만입니다.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것입니다.
입버릇이 내 인생을 만든다고 합니다.
입버릇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우리도
말 때문에 곤욕을 당합니다.
그리고 말 때문에 실패 했습니다.
그렇다면
입버릇을 바꾸면 성공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항상 축복의 말을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항상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축복 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 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모두가 사랑의 언어입니다.
우리함께 실천해 가도록 합시다.
모나리자의 미소의 법칙을 아십니까?
모나리자의 미소 속에는 기쁨이 80%고
슬픔이 20% 조화롭게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고난은 현실감을 잃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내 마음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주 들여다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시간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욥처럼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미천 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 하겠고
대답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욥40:5)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