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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해 개요
항구도시로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도시경관이 깨끗하다. 인천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도시
산동반도의 북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및 중국북방의 중요한 군항중의 하나로 청 해군 북양함대의 군항이 있었던 곳이며, 옛 이름은 위해위(威海衛, 웨이하이웨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과 함께 위해라고 이름이 고쳐졌으며, 1987년 시로 승격이 되었다. 원래 위해위라는 이름은 홍무(洪武) 31년(1398년)에 왜구의 습격에 대비해 이곳에 기지가 만들어지면서 붙여진 것이라 하는데 지금도 그 잔재인 부두, 포대가 앞바다인 유공도(劉公島) 등에 남아있다. 1984년 중일갑오전쟁이 이곳에서 발발했으며, 1898년 영국에 주권이 넘어갔다가 1930년에 다시 되찾은 역사가 있는 곳이다.
위해시의 해안선 길이는 1,000km로 산동성 전체 해안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넓은 해안선 일대에 3대 어장이 분포되어 있어 위해시는 중국의 제일 큰 수산물 생산 기지로도 꼽히고 있다. 여기에는 왕새우, 해삼, 전복, 패류, 해조류 및 각종 경제가치가 있는 물고기등 300여종의 수산물이 생산된다. 위해시는 지하광산자원도 풍부하여 금, 철, 동, 아연등 30여종의 광산물을 채굴할수 있다. 그리고 화강석의 매장량이 크고 품질도 좋으며 그중의 석도홍, 문등백, 유산흑등 제품은 국내외에 널리 이름 날리고 있다
위해시는 지리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으로, 한국과의 수교 후 급성장을 하였으며, 한국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인천에서 배편이 운항되고 있어서, 해상교통을 이용하여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위해 직항편 운항을 시작함으로 더욱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위해시의 총 인구는 약 270만 정도이며 경공업, 조선업, 농수산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또 위해시는 중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살기좋은 곳으로 뽑히기도 했는데, 해변을 따라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 시 전체가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곳에는 유공도와 성산두(成山頭)의 국가급 명승지 외에 "바다에 있는 선산의 조상"이라 불리는 곤영산(昆嶺山)과 중국에서 제일 큰 호수인 천아호(天鵝湖) 등의 유명한 관광지가 자리하고 있다.
위해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온대해양성기후를 보이며, 연평균 기온은 12℃고 연평균 강수량은 800mm로 겨울과 여름에 그다지 춥거나 덥지 않아, 4계절 여행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기후가 이렇다 보니 골프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2.위해 가볼만한 곳
(1)성산두(청산터우)
중국의 희망봉이라 불리며 天盡頭라고도 한다.
중국의 첫 황제인 진시황제가 두번 방문했다고 전해짐
위해의 영성 성산진에 위치하여 있다. 성산산맥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하여 있기에 이름을 성산두라고 하였는데 삼면이 바다에 둘러있고 바다를 사이두고 한국과 마주하고 있으며 직선 거리는 94해리밖에 안된다. 중국대륙의 가장 동쪽 끝에 있고 제일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옛날에는 "제일 먼저 해가 떠오르는 지역", "중국의 희망봉"이라고 불렀다. 성산두는 해발이 200M이고 동서의 폭이 0.75KM, 남북의 길이가 1KM이며 면적은 2.5㎢ 이다. 이 곳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산인데 출렁이는 파도가 무시로 절벽에 부딪치면서 무수한 흰 거품으로 흩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좋은 피서지이다. 1988년 국무원으로부터 "국가급 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는데 주요 관광지로는 해노도, 秦代立石, 秦日臺, 秦橋遺迹, 望海亭, 觀濤閣과 야생동물원 등 이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옛날에 이 지역은 태양신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사기"의 기재에 따르면 강태공이 주무왕을 도와 천하를 얻은 후 이 곳에 와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일출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219년과 기원전 210년에 진시황은 두 차례 이곳을 다녀 갔으며 秦代立石, 사교대, 시황묘 및 李斯가 쓴 "天盡頭秦東門" 등 고적들을 남겼다. 기원전 94년에 한무제가 이 지역으로 와서 일출을 보고 성산관을 지었으며 赤雁歌를 불렀다고 한다.성산두는 군사의 요충지로 삼국시기부터 수, 당, 명청이 이르기까지의 많은 싸움이 이 지역에서 있었다. 중외에 크게 이름난 청일 갑오해쟁도 여기에서 불과 10해리 밖에 안되는 바다에서 있었으며 북양수사 애국장령 등세창 장군도 여기에서 희생되었다. 등세창의 영웅적인 사적을 기리기 위하여 광서황제는 특별히 영웅의 기념비를 만들어 "壯節"이라는 글로 영웅을 기념하였는데 이 등세창의 기념비는 지금 시황묘에 보존되어 있다. 진한문사관: 진한문사관은 성산두 풍경구내에 있는데 전시관에는 진,한시기의 문화사료와 문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런 문물들은 문자, 그림, 도편, 영화 등 다양한 수단으로 각 전시실에 전시되어 성산의 특징과 이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민족적인 특징을 띠고 있으면서 현대의 모습도 잃지 않으며 중화민족의 오랜 역사를 보여 주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에게 애국주의 교육을 하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문무장관들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시찰하던 중 성산두에 이르러 여기가 끝이라고 판단하고 재상 이사더러 "天盡頭秦東門" 라는 글자를 쓰도록 이곳에 그 기념비를 남겨 놓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기념비기 두 부분으로 분단되면서 한 쪽 분은 바다에 떨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높이가 120CM이고 너비가 145CM이며 두께가 75CM인데 전문가에 따르면 이 기념비는 목성암으로 되었으며 성산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진나라 때 세워진 것임이 분명하다고 한다. 시황묘:시황묘는 성산봉 하양파에 있는데 진시황이 기원전 210년 동쪽으로 시찰을 떠나 성산두에 이르렀을 때 지은 것으로 후에 당지의 주민들이 진시황의 발자취를 기념하여 이름을 시황묘라고 하였다. 이는 중국에 유일한 진시황을 기념하는 사찰로 일주사, 시황전, 동후궁, 등공사, 종루, 희루로 구분된다. 붉은 기둥이 푸른 기와를 받치고 있는데 위풍스럽고 늠름한 기상을 보여 주고 있다. 등공사에는 광서황제가 등세창을 기념하여 만든 기념비가 있고 등공사의 첫번째 주인인 서복창의 문물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청나라 출토된 문물이다.
가는방법 위해시에서 성산두까지 75Km, 90분.버스터미널에서 매일버스가 06:30-17:00 30분마다 출발
출처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
(2)적산법화원
당나라 불교사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츠샨파화위웬)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의 북쪽에 위치하여 있는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만들어지기 시작한 당나라 때 교동지역에서 규모가 제일 큰 불교 사원인데 당회창 년간에 파괴되었다. 기재에 따르면 적산법화원은 신라사람 장보고에 의하여 만들어 졌는데 여기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적산 주위는 원래 온통 붉은 색으로 덮여 있었는데 적산신이 바다로 출항하는 배들을 보호하여 주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적산신에게 와서 평안을 기원하였다고 한다.성당시기 신라사람 장보고가 용역에 응하여 무녕(지금의 서주)에 와서 군의 장령으로 있었는데 용감하게 작전을 하여 많은 당나라 장군들의 사랑을 받았다. 후에 신라로 귀국한 그는 청해진의 대사로 있으면서 당나라와 "해상 실크로드"를 열어 유명한 해상무역가로 되었다. 장보고는 적산신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해상무역의 번영을 기원하고 상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견지에서 법화원을 설립하고 스님을 초청하여 불경을 읽게 하였다. 처음으로 초청된 명승은 천대종파의 스님으로 그가 읽었던 불교 경전은 "법화경"이었으므로 이 곳을 "적산법화원"이라고 하였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때 벌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는데 많을 떄 이곳에는 30여명의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비용은 장보고가 지출하였으며 많을 때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불경을 들으러 왔었다고 한다. 당 개성4년(839년) 6월에 일본의 명승인 원인법사일행이 불경을 구하러 당나라에 왔었는데 이 적산법화원에서 2년 9개월 체류하였었다. 현지의 관리들과 스님들의 도움으로 그는 당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순조롭게 불경을 구할 수 있었다. 일본에 귀국하여 원인법사는 당나라 사람들의 정성어린 관심을 잊을 수 없어 "入唐求法巡禮行記"를 썼는데 책은 적산법화원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에 적산법화원은 멀리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원인법사의 제자들은 이를 기념하여 일본 교토에 "적산법화원"을 세웠다. 1987년 일본의 학술계의 지명인사가 적산에 와서 고찰, 답사를 하면서 영성시 인민정부 대외판공실의 도움으로 이 법화원을 새롭게 보수하였다. 이에 선후로 200만 위안을 투자하였다. 새롭게 보수하는 과정에 상급 관계부문과 국제인사들의 관심과 방조를 많이 받아왔는데 지금 법화원의 면적은 5000㎡ 쯤 된다. 건물은 모두 당나라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구조는 "入唐求法巡禮行記"에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 대웅보전은 뒤로 산을 끼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며 한가운데 석가모니의 상을 모시고 있다. "大雄寶殿"이란 간판은 전국정치협상회의 부 주석이며 전국불교협회 회장으로 있었던 조박초 선생이 쓴 것이다
적산법화원은 산동성(山東省) 롱청시(榮成市/용성시) 석도진(石島鎭) 북부의 적산 남록에 위치해 있다.
당(唐)대 교동반도에서 최대규모의 불교사원 중 하나로 꼽히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7년 일본학계의 저명한 한 인사가 영성시인민정부의 협조아래, 인민폐 200만 위안을 투자해 이곳을 중건했고,
중건사업을 하면서 중국 관련부처와 국제사회에서 투자와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곳은 5,000평방미터의 부지에 건설되었는데, 당대의 건축양식을 살려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묘사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산의 남쪽을 기대고 앉아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곳의 중요한 건축물로서
보전 안에는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석가모니의 소상이 자리하고 있고, 전국불교협회의 회장인 조박초(趙朴初) 선생이
직접 쓴 "대웅보전"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적산법화원은 석도항에서 4km 떨어져 있는데, 청도나 대련 등에서 선박으로 올 수 있어서 교통이 편리한 편이고,
육로를 이용할 경우 위해, 연대, 청도, 북경 등지에서 장거리버스가 있다. 위해공항에서 약 40km 떨어져 있으며
북경, 제남, 광주 등지에서 직항노선이 있다. 특히 위해에서 올 경우 버스로 2시간 소요되는데,
새벽 6시부터 매 15분마다 버스가 출발하고 있으며, 요금은 일인당 10위안이다.
-가는방법 80km,2시간 거리,버스터미널에서 06:00 부터 15분마다 출발
(3)신조산 자연 야생동물원
(4)구정 철차산(523m)
아홉 산봉이 거뭇거뭇하게 이어져 있는 철차산은 황해바닷가에 위치하여 있는데 주봉인 청량정은 해발이 539m이고 면적이 30㎢로 아홉 산봉이 면면히 이어져 있어 '9정 철차산'이라고도 불린다. 철차산은 풍경이 수려할 뿐더러 인문경관도 아름답고 명승고적이 많아 예로부터 "대동의 으뜸가는 명승지"로 불리었가 철차산에 대한 기록은 "?雅", "齊乘", "封神演義", "楊家將"등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철차산의 이름의 "사"는 고대의 한자로 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봄, 여름, 가을철 구름이 많이 낀 날 바다의 운무가 산골짜기에 가득 끼었다가 사라질 때면 베일을 쓴 철차산이 쪽배처럼 구름바다속을 가르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안개가 짙을 때의 철차산은 아홉 산봉우리만 짙은 운무 속에서 만경창파를 가르고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9정철차산"이라고 불리어 왔다. 철차산은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운광동은 도교 전진파의 발상지이며 천진동는 중국과 외국에 널리 이름을 날린 제1해안 석굴이다. 석굴 안에는 100개의 조각상이 있다. 운무 속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철차산에는 이 밖에도 산봉우리가 많아 유명하다. 이런 인공조각을 한 듯한 산봉우리들은 움직이는 사람 같기도 한데 몇 십 미터에서 몇 백 미터까지 솟아있다. 국가삼림공원에 속하는 이 지역은 70%가 산으로 되어있고 대부분이 소나무이며 삼림 속에서 나오는 공기는 깨끗한 바닷물에 정화되어 여러 가지 질병을 고칠 수 있을 뿐더러 관광객들의 피로를 씻어주고 체력을 회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바다에 면하여 있는 철차산의 소산도는 바다에 있는 누각처럼 보이는데 매일 배를 타고 드나들면서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철차산에서 민속을 배우고 직접 체험하면서 하루쯤 민박을 하고 어민들을 따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며 바다낚시를 즐기고 해수욕을 즐기는 것도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취이다. 많은 문인들은 이곳을 다녀가며 수많은 옛 시를 남겼다. 예하면 "구름과 바다가 맞닿았는데 배를 타고 하늘에 오르노라.", "세상만사의 시름을 잊고 철차산의 동굴을 찾아 신선이 되다"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철차산은 도교의 발상지이다. 역사의 기재에 따르면 금나라 때 왕중양이 이곳에 와서 도교의 전진파를 만들고 옥양이 곤유산 연하동에서 왕중양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전수 받았으며 전진교 곤윤파를 창시하였으며 교의를 "운관집"이라 하였는데 지금까지 많은 곳에서 그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91년 이 산은 산동성 정부의 허가를 받고 "성급관광명승지"로 지정되었으며 1992년에는 국가임업부문으로부터 "국가급 삼림공원"으로 명명되었다. 1991년 영성시인민정부에서는 관광업을 대폭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철차산풍경관리처"를 만들고 산에 대한 개발과 관리를 다그쳐 등산을 할 수 있고 탐험을 할 수 있으며 관광을 하고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이 곳에 아서 대 자연의 정취에 한껏 젖어보며 옛날의 진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인생을 재 체험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다. 延壽宮:연수궁은 산의 용정정에 있는데 금나라 때 만들어진 건물로 삼진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협곡에, 뒤로는 운광동에 면하여 있다. "구름 속의 소나무를 발 아래로 하고 위로 창을 열어 북두성을 보는 "느낌도 형용할 수 없이 좋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된 이 건물은 아쉽게도 전쟁의 재난으로 부레 타서 많이 없어지고 동강난 비석만 의구할 뿐이다. 관광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1991년 영성시 정부에서는 100만 위안을 투자하여 연수궁을 수건하였는데 궁전내의 그림과 조각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하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 연수궁의 뜨락에 있는 용천우물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용의 머리가 있는데 사철 마를 줄 모르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은 병을 물리치고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며 장수를 하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어 "龍泉神井"이라 불리고 있다. 함수동은 연수궁의 남쪽에 있는 절벽에 있는데 동굴에는 맑은 물이 있다. 물은 조금 짠 편인데 전하는 데 따르면 동굴의 물이 바닷물과 이어져 있으며 바닷물이 불으면 동굴의 물의 수위도 올라간다고 한다. 千眞洞:천진동은 산의 서북쪽의 청량정에 있는데 역사의 기재에 따르면 금나라 때 왕중양이 이곳에 와서 도교의 전진파를 만들고 옥양이 곤유산 연하동에서 왕중양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전수 받았으며 계속 운광동에서 수련하여 천진교 곤윤파를 창시하였으며 교의명을 "운광집"이라고 하였다. 후에 다녀가는 사람이 많아지자 왕중양은
이 곳으로 옮겨와 동굴을 파고 동굴을 "全眞洞"이라 명명하였다. 명나라 때부터 도교가 점차 몰락하고 불교가 다시 흥해 짐에 따라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 몰려왔는데 "全眞洞"의 비범한 기상을 보고 이 곳에 많은 불상을 만들고 이름을 "千眞洞" 또는 "千佛洞"이라고 하였다. 천진동은 입구가 남쪽으로 향하였으며 크고 작은 불상이 많이 있는데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동하고 활발하다. 이 불상들은 왼쪽으로 9행, 오른 쪽으로 8행으로 질서있게 배열되었으며 두 옆으로 큰 불상이 각각 하나씩 있다. 이런 불상은 모두 998 개이다. 북쪽 산 비탈의 "上天階"쪽에 또 두개의 불상이 있다. 전하는데 따르면 작은 불상들은 재앙을 물리치고 지혜와 힘을 준다고 한다. 九龍池:천진동의 위에 있는데 하늘에서 날아 내린듯한 크고 반듯한 돌이 있는데 신기한 것은 이 바위에 크고 작은 아홉 개의 홈이 있다. 큰 홈은 욕조만큼하며 작은 것은 찻잔만큼 한 크기로 되어 있는데 밑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장마에도 붓지 않는다. 이 곳은 용의 아홉 제자가 목욕을 하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九龍池"라고 하였다. 雲光洞:용정정의 위에 있는데 사철 벽계수가 흐르고 있다. 북쪽으로 암석이 많고 소나무가 우거졌으며 동쪽으로 깊은 계곡을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운광동의 8보로 은행나무, 자당나무, 함수동, 용천정, 선인교, 석조분,양양수, 보살묘가 있는데 이로 하여 8보운광동이라고도 불린다. "封神演義"에는 이 운광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재에 따르면 금나라 때 왕중양이 이곳에 와서 도교의 전진파를 만들고 옥양이 곤유산 연하동에서 왕중양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전수 받았으며 왕옥양은 나중에 운광동에 거처를 정하고 계속 도를 연구하였는데 전진교 곤윤파를 창시하였다. 여기에서 "운광집"이라고 하는 교의집을 집필하였다. 아직도 입구에서 "운광동"이란 글자를 볼 수 있다. 운광동은 도교 전진파의 발상지이다.
(5)유공도(류공다오)-청일 갑오전쟁의 유적지
유공도는 위해관광부두와 2.1해리 떨어져 있는데 배로 약 20분 소요된다. 앞으로 황하를, 뒤로 푸르른 위해만을 끼고 있는 섬은 "병풍을 두른" "침몰되지 않는 함대"로 불리어 왔는데 북쪽의 지세가 가파르고 남쪽의 지세가 완만한 편으로 동서의 길이는 4.08Km이고 너비가 1.5Km로 제일 좁은 곳은 0.06Km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14.95Km, 총 면적은 3.15㎢이다. 제일 높은 곳의 해발이 153.5m인 섬은 동쪽으로 잔잔한 물결이 이는 푸른 바다를 끼고 있으며 서쪽으로 바다를 사이 두고 시내와 마주하고 있다. 섬은 울창한 삼림들로 덮여 있는 데 주로 흑송이 많으며 삼림의 면적은 2700여 만 무에 달하는데 1985년 국가삼림공원으로 되었고 1999년에는 국가문명풍경구로 되었다.유공도는 국가AAAA급의 자연관광구에 속한다. 위해의 천연병풍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이 지역은 국방 보호의 견지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888년 북양해군이 설립되면서 섬에 전신국과 수사학당, 북양해군제독부, 철부두가 있는데 이 곳은 중국근대사에서 첫번째 해군이었던 "북양수사"의 탄생지이다. 1894년 갑오 청일해쟁은 이 섬의 동쪽에서 있었다. 지금 이 곳은 관광지로, 애국교육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되었는데 강택민 당 총서기께서 친히 "중국갑오전쟁기념관" 간판을 쓰셨다. 이 곳에는 북양수사제독 정여창이 살았던 옛터가 있고 갑오 청일전쟁에서 지울 수 없는 공적을 세운 철부두와 포대가 있으며 영웅의 넋을 기리는 충혼비, 중국병장기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중화병장기관, 원시림의 모습을 재현한 국가삼림공원, 빛과 전기 및 현대화한 수단을 충분히 이용하여 전쟁년대의 모습을 재현한 갑오해전기념관이 있는데 갑오전쟁박물관은 대량의 진기한 문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 중에는 무게가 20여 톤이나 되는 대형 함대가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것에 속한다. 기념관에는 문물과 그림, 도편 등 다양한 형식을 이용하여 북양수사와 갑오전쟁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실이 있다. 갑오해전관은 건축물, 조각, 그림, 영상의 종합예술형식으로 해전의 비장한 역사를 보여주는 대형 기념관으로 홀, 북양군의 설립, 의화원수사학당, 풍도전역, 평양전쟁, 황해대전, 여순기지의 함락, 위해전역, 마치는 부분 등 9개의 부분으로 이루어 졌다. 여기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의 전쟁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6)갑오 해전관
갑오해전관이 갑오전쟁 기념지 위해시 유공도에 이ㅜ치하여 있으며, 조합적인 예술형식으로 관광객들에게 전시하는 대형기념관이다. 갑오해전관은 9개 전시홀로 구성되어 고대대형조각, 대형 화폭과 영상 등 다양한 예술형식으로 또한 성, 광, 전기등 현대적인 수단으로 관광객들에게 북양수사전군이 전멸하고 위해시 인민들이 적들과 싸우는 역사적인 장면을 재현시켰다
(7)중국 갑오 전쟁 박물관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기지이다. 28곳에 분포되어 있는 갑오전쟁, 북향해군 옛터전국중점문물보호지며, 보존이 잘 되어있다. 그 중에서 북항해군제독서등 고대건물과 포대 등 7곳은 개방하였고, 경과면적이 10만평방킬로미터에 달하며 문물정화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었다
(8)위해 해변공원(위해 공원)
시내 중심에서 남쪽으로 위치한 이곳은 위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변공원으로, 중앙광장을 비롯하여 바다생활, 바다애, 바다찬미, 바다와 지혜 등을 주제로 각각 조성된 4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위해 도시건설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을 뿐 아니라 7만여종 이상의 나무와 수백만 그루에 달하는 꽃들이 자라나고 있어 생태여행지로 적합하다.
(9)中央电视台威海影视城(영화청)
(10)위해 국제해수욕장(국제 해변)
동서길이 2,100m의 중국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천연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위해 국제해변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사주가 완만하고 모래가 고와 해수욕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수질이 맑고, 해변의 주변을 송림이 감싸고 있으며,
화초와 석조가 해안가를 장식하고 있어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해수욕장에는 놀이공원과 수상세계 등 오락시설과 요트와 유람선, 모터보트 등 다양한 수상 스포츠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해변 주변에는 숙박시설과 식음료 시설 등의 설비가 고루 잘 갖춰져 있으며,
서비스도 괜찮아 중국인 및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곳이다. 매년 5월에서 9월까지가 성수기이다.
위해의 국제 해변은 긴 황금 모래사장, 비교적 깨끗한 물, 넓은 수영공간 등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어린이들을 위한 얕은 수영장과 소형 놀이공원이 있다. 샤워시설과 사물함도 갖추고 있다. 거의 스러져 가는 텐트를 100위안에 빌려 해변에서 하룻밤 자는것도 재미있다.
*교통: 시내에서 7번, 12번 버스를 타면 다을 수 있다
(11)환취(環翠) 관광휴가구
성급 관광휴가구로써 환취구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휴가구의 사방을 두 면은 산이 두르고 있으며, 나머지 두 면은 바다에 임하고 있다.
산수가 서로 의지하고, 임해(숲과 바다)가 붙어있으며, 갈매기와 제비가 섬 주위를 돌며,
하얀파도가 해변을 끊임없이 훏고 가는 그림같은 자연의 휴양지이다.
위해시 중심과는 8.5KM 거리로 위치상으로도 우수하며, 교통도 편리하다.
이곳은 세밀한 계획하에 7개의 테마별 구역으로 나눠져 있으며,이미 그 경치와 테마에 걸맞는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중앙TV방송국 위해 영화문화성, 녹해안(綠海岸) 오락센터, 匹特博 클럽, 만(灣)대교 등이 있으며, 만 대교 양편으로는
이 곳의 낭만적인 풍경과 정취를 말해주는 듯 아담과 하와의 아름다운 조소가 세워져 있다.
5,14,18 번 버스 이용
(12)바다새들의 고향 해려도(하이뤼 다오/ 海驢島)
성산두(成山頭)의 북부 해역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섬으로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가 4해리 정도다.
경치가 매우 수려하고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수많은 바다새들이 이곳에 서식하면서 산란하고 번식하고 있다.
매년 봄이 되면 수천수만의 바다 갈매기들이 이 섬에 들어와 산란하여, 암석들 사이사이에
새둥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바다 갈매기의 왕국같은 곳이다.
*교통 : 성산두에서 버스로 서하구(西霞口)까지 가면 해려도를 왕복하는 페리를 탈 수 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항하며, 매 시에 한번씩 페리가 있다.
*입장료(변동가능): 35위안(성산두와 함께 관광할 수 있는 표는 65위안이며,
성산두와 야생동물원까지 함께 관광하는 표는 90위안이다)
(13)성수관(聖水觀)
전진도교(全眞道敎)의 발상지
교동반도의 가장 동쪽에 있는 롱청시(榮成市)에 위치한 도교사원, 중국 도교의 일파인 전진도교의 발상지이다.
(14)해신 장보고 대사 유적지
(15)성경산
문등시의 서북쪽으로 20여Km 떨어져 있는 성경산은 사방 8Km가 전부 산이며 46곳의 풍경을 갖고 있다. "聖人", 聖經"으로 유명하여 聖經山으로 불리는 이 곳에는 산 위에 노자의 조각상이 조용히 세워져 있고 그의 저작인 "太上老子道德經"가 있는데 이는 도가에서 받들고 있는 성경으로 상하권의 5000여 자가 이 산에 조각되어 있다. 이 산의 마애석각은 세계에서 제일 큰 도가학설을 기록한 석각으로 약 천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중요한 문물로 되어 "중국명승지사전"과 "중국관광가이드북"에 수록되어 있다. 수려한 紫金峰의 선경에 오르면 속세를 떠나온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든다. 금나라와 원나라 때 도가 전진파의 비조인 왕중양이 이 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제자 구처기 등을 받아 들이여 "北七眞人"파를 만들어 도를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지금도 가는 곳 마다 그 때의 유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97년 문등시에서는 1600만 위안을 투자하여 1680미터에 달하는 고공 케이블을 만들었는데 두 산봉우리사이를 운행하고 있는 이 케이블을 이용하면 편안하게 구름에 묻혀있는 선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성경산에는 또 옛날의 정자와 누각이 많으며 곳곳에서 호수를 볼 수 있다. 3성급의 호텔과 별장이 있으며 고금의 문인과 묵객들이 만들어 놓은 수 많은 백여 개의 돌에 새긴 조각을 볼 수 있다.성경산은 "도교전진파의 발상지", "해상신선의 산", "문화의 명산"으로 유명한데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해안도시인 문등시와 잘 어울리며서 도교문화, 문물고적, 서예예술, 고목, 고산호수가 그 운치를 한결 짙게 해 주고 있어 국내 외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16)청샨웨이 백조 호수
백조호수관광휴가구는 교동반도의 가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성산위 경내에 있다. 동남쪽으로 발해에 면해 있으며 4계절이 뚜렷하고 연평균기온이 섭씨 11.8도에 달하는 온대계절풍성해양기후에 속하는 지역이다. 성산위 당위와 정부에서 1992년에 이 일대의 만 무에 달하는 숲과 만 여 마리의 백조, 만 미터의 금빛모래톱을 충분히 이용하여 지역개발을 하였는데1995년에 산동성인민정부의 허가를 받은 관광구로, 1997년에는 국가자연보호구로 지정되었다. 구내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백조서식기지가 있는데 호수의 수질이 깨끗하고 주변이 금빛의 모래로 덮여 있어 쪽빛의 호수와 어울려 아름답다. 해마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만 여 마리의 백조와 들오리, 기러기들이 내몽골이나 시비리아로부터 이곳에 와서 겨울을 나고 있는데 겨울철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되어 "동방의 백조의 왕국"으로 불린다. 호수와 바다는 100여 미터 너비의 넓은 모래뚝에 의하여 나뉘어지는데 천연적인 만 미터의 해수욕장을 이루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형의 오락장, 경마장도 있어 오락을 즐기며 휴가의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이 호수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 있는데 하늘을 날아예는 백조들이 진시황의 아내의 화신이라고 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진시황이 장생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이곳에 와서 바다를 메우고 다리를 만들었었는데 종이 울리면 아내더러 밥을 차려 보내오도록 하였다. 하루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황충들이 하늘을 날다가 부주의로 종을 치게 되었다. 이에 진시황의 아내는 진지상을 갖추라는 남편의 종소리인줄로 알고 급히 진시황에게 진지를 보냈는데 허락없이 밥을 보냈다고 대노한 진시황은 아내를 처형하였다. 후에 억울하게 죽은 진시황의 아내의 눈물이 모여 이 "눈물의 호수"를 이루었다고 하며 억울하게 죽은 진시황의 아내의 넋이 하얀 백조로 되어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났다고 한다. 영성시의 교통중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이 지역은 위해공항과 28Km, 위해신항과 26Km, 위해역과 28Km 떨어져 있으며 여름철에는 시원히 피서를 할 수 있고 겨울철에는 백조를 볼 수 있고 설경을 볼 수 있어 유명하다. 특산품으로는 해삼, 전복, 조개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땅콩, 사과 등 농산품이 많아 유명하다.
(17)해상공원
217헥타르의 면적에 광장과 인공호수, 대리석 조각공원, 숲속 생태공원, 해수욕장 등이 갖추어진 종합계획시설로, 북쪽으로 위해 공원과 연결되어 있다.
(18)화반채석경관
장방형으로 되는 꽃 무늬 채색 돌인데 총 체적은 7000㎥로 지질학의 견지에서 보면 전형적인 한무기 화산의 분출로 이루어진 화산암의 응결체이다. 지금까지 5억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체적이 크고 색채가 아름다우며 무늬가 다양하여 예로부터 "중화해상 제 1기석" 으로 불리어 왔다. 이 풍경구는 영성시의 동북쪽의 마도진 낙로만 경내에 있는데 길이는 35m, 너비는 20m, 높이는 9m로 해안선과 약 50m 떨어져 있으며 썰물일 때에는 직접 위에까지 등반할 수 있고 밀물이 올 때는 배를 타야 다다를 수 있다. 청나라 도광년간에 영성의 8대 자연풍경의 하나로 되었다. 주로 황, 백, 갈색으로 되었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섬세히 조각하였거나 수를 놓은 그림 같기도 한데 가로 세로 흘러가는 구름처럼, 또는 바람에 날리고 있는 것처럼, 또는 파도에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그 모습이 다양하다. 아름다운 여러 가지의 모양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유산 은탄관광휴가타운
이 휴가타운은 199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94년에 산동성정부의 허가를 받은 관광지로 되었는데 청도, 연대, 위해 세 지역이 접하는 곳에 위치하여 있으며 총 면적은 8.5㎢로 처음에 시작한 부분의 면적은 겨우 0.8㎢에 지나지 않았다. 이 지역은 온대해양성기후에 속하는데 산과 바다, 섬, 호수, 샘, 강, 삼림과 전설이 하나로 어울려진 관광가치가 있는 섬으로 은빛모래가 부드러워 유명하므로 "은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천하 제1탄"이라고도 한다. 이 관광지를 개발하는 과정에 특히 생태환경의 보호에 전력을 기울여 왔는 바 자연풍경, 생태환경, 문물, 고대건축 등 자원의 보호에 600만 위안을 투자하여 여러 가지 보호제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기존의 자원을 충분히 보호하는 동시에 새로운 풍경을 더 조화롭게 하여 "생태형, 가든식"의 해변관광타운을 개발하여 주위의 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 휴가타운에는 해림, 명월, 중호, 여일등 20여 개의 의 관광단지가 있으며 20여 개의 호텔이 있고 8개의 축구훈련장과 경기장 한 개가 있으며 물 저장양은 300만 ㎥ 이며 삼관정, 선인교, 도고산, 스님동이 있으며 호화유람선, 보트, 수영장을 비롯한 수상오락시설과 모래톱을 이용한 배구경기장, 로라스케이트장, 말 타는 곳, 낚시터를 비롯한 육지의 오락시설이 있다
(20)위해 범화 골프장
범화 골프클럽은 중국 특색이 있는 중국 북방의 해변 골프장으로 위해시 경내에 있다. 골프장은 유엔환경보호조직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북방 도시들의 건조함과 모진 추위가 없이 서늘하고 남방처럼 따뜻하지만 습하고 무덥지 않아서 좋다. 이런 아늑한 조건에서 골프를 치는 것이야말로 즐기며 사는 풍요한 삷이 되겠다. 골프장은 위해 환취구 손가동진에 있는데 교통이 편리하다. 시내의 중심지역과 4KM떨어져 있으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위해공항까지 40분, 연대공항까지 50분이 소요된다. 또 부두를 통하여 국내의 각 항구들과 연결되어 있고 한국까지 배가 운행하고 있어 해륙교통이 편리하다. 면적이 1500무인 골프장은 총 투자액이 2990만 달러에 달하며 18홀 72타로 만들어 졌다. 골프장은 삼면이 바다에 둘러 쌓여있는 형식으로 설계되었는데 언덕과 산, 협곡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골프장의 어느 위치에서든지 각이한 각도에서 바다가 보이고 있어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골프장으로 꼽힌다. 쪽빛의 바다가 골프장에 아름다움을 더 해주고 있으며 또한 골프를 치는데 난이도를 더 해주고 있고 골프장에 매력을 더 해주고 있다. 지세의 변화도 복잡한데 바다를 끼고 있는 것으로 하여 특색이 있기도 하지만 골프를 치는 기교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골프를 치는 사람에게 모험에 도전하는 쾌감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홀 씩 정복해 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무릇 범화골프장에서 골프를 쳐 본이라면 누구나 다 이 골프장에 대하여 절찬을 아끼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알 수 없다고 하는 편이 좋을 상 싶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감돌고 있는데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골프를 치는 것은 상상만 하여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범화골프장은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무능도원이라고 할 수 있다
(21)쇼핑
위해의 지방특산물과 관광상품은 품종이 많고 특색이 뚜렷하다. 주요 특산물로는 위해 땅콩, 위해사과, 왕새우, 해삼, 전복, 가리비, 미역, 굴, 멸몽새우젖, 사해된장 등이 있고, 주요 관광상품으로는 금후 가죽제품, 한국 의류, 낚싯대, 카펫, 자수, 주석 상감 공예품, 실크 등이 있다
출처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
호텔
해도호텔
관련 홈 페이지 http://www.weihai.gov.cn/weihai/kr/
첫댓글 정보 감사합니다....
중국 지부장님 잘 부탁해요!!